하나님 자녀의 삶 3 (부제: 자기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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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지으시고 그곳에 아담과 하와가 살게 하셨습니다. 첫 인류가 에덴 동산에서 그곳을 경작하며 다스리고 정복하며 살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곳에서 따뜻한 햇살들을 맞으며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사과 한입을 베어물고 하나님과 이야기하며 지냈습니다. 또한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냇가에 발을 담그고서 주의 콧노래를 들으며 주와 노래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느때와 같이 동산을 지나가던 하와에게 사단의 도구인 뱀이 찾아와서 하와를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간교한 동물인 뱀은 하와에게 선악과 나무의 열매를 먹으라고 유혹합니다.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말했죠.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 나무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의 본질은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것,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로 우리는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관계가 성경이 말하는 죽음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죄 아래에서 태어납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류는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이죠. 즉, 하나님을 벗어나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죄악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잠깐 역사 이야기를 해보자면 하나님 중심이었던 중세시대를 지나면서 근대 시대 신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일어납니다. 신을 믿지말고 우리의 이성을 믿자는 주장이 나타났죠. 그리고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기준과 규칙, 전통, 관습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유발하라리의 호모데우스라는 책을 아시나요? 지구를 점령하고 정복한 사피엔스가 이제는 과학기술을 힘입어 신의 영역에 도달한다는 내용인데요. 이러한 책 역시 인간의 죄악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너가 하고싶은 대로 살아, 한번뿐인 인생 즐기면서 살어, 너 인생은 너가 주인이야, 욜로, 성적 자기결정권, 인권” 등등의 슬로건 들을 들어보셨나요? 이런 모든 주장들은 바로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다라는 것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류의 역사가 지난시간에 말한 사단의 후손들입니다. 하나님을 벗어나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사랑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 감정, 욕구, 충동 등을 따르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지난 시간에 말한 여인의 후손)들은 다시 나를 벗어나 하나님께로 향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를 하나님을 향한 자유로 사용하는 것이죠.
이러한 자들의 태도가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24절을 한번 읽어볼까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부인은 하나님 자녀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자면 자기부인을 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부인은 무엇인가?
첫째, 자기부인이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것이라고 했었죠? 자기 부인은 나로부터 벗어나 하나님께 향하는 것입니다. “내가 틀렸어. 주님이 옳아"라고 말하는 것이죠.
자기 부인의 반댓말은 뭘까요? 자기중심적, 이기적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여러분 왜 공부해요?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구요. 왜요? 대기업에 들어가야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중소기업말고 대기업에 들어가야 복지가 좋잖아요. 그래야 제 워라벨을 지킬 수가 있죠. 왜 사람들이 공무원하려고 그렇게 발버둥칠까요? 내 삶,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잖아요. 왜 결혼해요? 행복하니까. 내가 외롭지 않으니까. 누군가 퇴근하고 나를 반겨주니까. 왜 반려견을 키워요? 조건없이 나를 사랑해주니까. 그 누구도 반겨주지 않을지라도 강아지만큼은 언제나 변함없이 내 앞에서 꼬리를 흔들어주니까. 사람들이 돈을 벌고, 무언가를 사고, 무언가를 키우고, 함께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한거에요.
문제는 자기만을 위하다보니 점점 사람들이 이기적이게 되고 자기중심적이게 되어버립니다. 더군다나 오늘날은 치열한 경쟁사회잖아요. 내가 가지기 위해서, 내가 쉬기 위해서 남들 것을 빼앗아야만 하잖아요. 목사님도 말씀하셨지만 오징어 게임을 보셨나요? 그게 오늘날 사회현실을 잘 보여준 것 같아요. 내가 올라가기 위해선 남을 죽여아하는 데스 게임. 그리고 어느순간부터 남을 죽이고 빼앗는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지고 거리낌이 없어지는 사회. 이것이 자기를 위한, 자기만을 위한, 하나님을 벗어나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했던 죄악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나를 벗어나 다시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내 삶의 이유, 목적, 방향이 되는 것입니다. -> 고후 5:15 읽어볼까요?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벗어나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다고 했잖아요? 그 죄의 결과가 사망이고, 죄의 모습이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오셨어요. 그가 이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음으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죄를 없앰으로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주셨죠.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내가 죽은 이유는 채연아 너가 더 이상 너를 위해서 살지 않고 나를 위해서 살게 하기 위함이란다.”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더이상 육신(나의 정욕, 욕심, 욕망)을 따라 살지 않고 예수님을 따라가며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하는 거에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더 이상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부인으로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둘째,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것입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말하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라는 말을 오늘 설교 식으로 표현하면 자기를 부인하라 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너희는 너희 마음대로 살아, 너가 원하는대로 다해, 너 뜻, 너 생각 굽히지 말고 가는대로 다 살지말고 성령을 따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부인이죠.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벗어나 자기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죄를 지었다고 했습니다. 죄인인 우리는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더 이상 우리를 위해서 살아가지 말고 예수님을 위해서 살게 하기 위해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사랑에 의해서 우리는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나를 위해서 살아가려는 나의 정욕, 욕심, 욕망들을 매일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죽이기를 원합니다. “주님 내가 나를 위해서 살아가지 않게 해주세요. 주님 내가 또 나를 위해서 나만을 생각하며 살려고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와 하나님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해주시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매일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다윗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