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열심히 살다가도...

룻기 강해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31 views
Notes
Transcript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1. 우리가 행한만큼 받는다는 논리의 모순

우리는 은연 중에 우리가 행한만큼 돌려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 용어로 “인과응보”나 “업보”라고 흔히 말하는 것들이죠. 그래서 우리는 항상 못된 사람은 벌을 받고, 선한 사람은 좋은 대가를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믿음 체계에는 아주 큰 모순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현실을 가만히 지켜다보면 절대로 인과응보의 원리가 절대 원칙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도덕적으로 정말 큰 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불행들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저 열심히 자기 삶을 살아가던 이들에게 일어나는 안좋은 일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반대로 계속 죄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끝도없이 잘 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방식으로는 현실의 일들을 설명하기엔 참 어렵습니다.
이러한 사고 방식을 우리가 기독교 내부로 가지고 오게 되면 우리는 율법주의라는 비슷한 면모를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불행한 일들, 고난들에 대해서 인과응보적으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어떻게 되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잘 못지키면 심판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율법주의적 사고 방식은 우리가 아까 말했듯이 “종교적 사고 방식”입니다. 기독교는 종교적이지 않죠. 우리가 무언가를 잘해서, 잘못해서 복을 받거나, 심판을 받거나 하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본질은 아닙니다.
기독교 복음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주신 것들을 우리가 믿으면 받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의 진리는 행동에 따른 결과가에 맞는 보응을 받는다가 아니죠. 행동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것이 기독교 진리입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이제 새로 시작하는 룻기 첫 부분을 통해서 언급한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1. 룻기의 시대적 배경

1절에서 우리는 룻기의 여러가지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ppt)
룻기 1:1 NKRV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1)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기
(ppt)
룻기 1:1 (NKRV)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먼저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기는 영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애굽으로부터 가나안 땅으로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오죠. 모세가 죽고난 후 여호수아가 리더가 되어서 가나안 땅을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이후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침체를 겪게 됩니다.
(ppt)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7장)
사사기 17:6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21장)
사사기 21:25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 이 두 같은 구절이 사사기에 두번 반복됩니다.
사사기가 어떤 시기인지 쉽게 알 수 있죠.
사람들이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겁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죠.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해야 할 자들이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영적으로 침체한 모습인거죠.
(2) ‘흉년’이 가지는 오해(신학적, 교훈적)
그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 이스라엘은 흉년을 겪게 됩니다.
(ppt)
룻기 1:1 (NKRV)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이스라엘에 흉년이 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단순히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지 않아서 심판하신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흉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3) ‘흉년’이 말하는 정경적 의미
흉년은 성경 안에서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ppt)
1. 비극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계획은 전진됨
2. 흉년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어떤 종류의 더 큰 미래를 암시
물론 흉년과 같은 재앙을 이용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에 성경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중에 일어나는, 그리고 더 큰 미래를 암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흉년 이후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큰 미래를 주목해야 합니다.

2. 등장인물과 사건

(1)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리고 남자들의 죽음
그리고나서 1절 후반부와 2절에서 성경은 룻기의 등장 인물에 대해서 말합니다.
(ppt)
룻기 1:1–2 NKRV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
먼저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입니다.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리고 그 아들 둘이 베들레헴에서 살고 있었는데 모압으로 이주합니다.
흉년과 같은 기근 속에 살아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우리나라 보릿고개와 같은거죠. 말로만 들었지만 정말 굶어죽는 사람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엘리멜렉과 나오미와 두 아들은 모압으로 이주하죠.
그런데 모압으로 이주한지 얼마 지나지않아 엘리멜렉이 죽습니다.
(ppt)
룻기 1:3 NKRV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고대 사회에서 남편이 죽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생계가 보장이 안되는겁니다.
고대 사회에서 생계 유지는 곧 노동력인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농업이나, 목축업은 남자가 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되는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인 겁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남편이 죽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슬픔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최악은 아닙니다. 두 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젊은 두 아들이 있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두 아들 말룐과 기룐은 모압 땅에서 아내를 얻게 됩니다.
(ppt)
룻기 1:4 NKRV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하나는 오르바, 하나는 룻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나오미의 상황을 아주 극한까지 몰고갑니다. 5절을 읽어볼까요?
(ppt)
룻기 1:5 NKRV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나오미의 남편이 죽었어도 너무나도 슬펐음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두 아들이었죠.
그런데 그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나오미는 이제 누구를 의지할 수 있을까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남자가 집안에 아무도 없습니다.
(2) 남자들의 죽음의 오해와 의미
어떤 신학자 혹은 성경해석자들은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이 죽은 것을 마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받아들여왔습니다.
왜 그런 해석을 했을까요? 먼저 나오미의 집안이 먹을 것을 찾아 모압으로
여기서 우리는 또 율법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엘리멜렉과 나오미를 비판하고싶은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왜 약속의 땅에 거하지 않고 흉년이 들었다고 모압으로 이주한 것을 이유로 듭니다. 모압은 이방 땅이잖아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버리고 모압 땅으로 먹을 것을 찾아 이주한 것을 그 근거로 삼습니다.
또 한 가지는 이방 여인들을 며느리로 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가지가 결코 남자들의 죽음의 원인이 아닌 것을 알아야합니다.
먼저 모압으로 이주한 것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은 큰 흉년이 들자 먹을 것을 찾아 그들의 가족과 함께 애굽으로 가게 된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잃었던 아들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야곱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죄이고, 어떤 심판을 받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나오미의 가족들이 이주할 수밖에 없었던거죠. 흉년은 정말 생명을 앗아가는, 굶어죽게 만드는 큰 재앙이기 때문이죠.
이방 여인,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들인 것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신명기 7 장 1절부터 4절에서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그러나 1절을 자세히 보면 모압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ppt)
신명기 7:1 (NKRV)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모압여인들과 결혼한 것이 직접적인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은 아니라는거죠. 심판받을 만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편들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정말 어렵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중 누군가가 생명을 잃었을 때 아주 큰 슬픔을 겪게 됩니다.
그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죠.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교리 시간에 일반계시에 대해서 배웠었죠. 자연과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을 드러내시는 계시가 일반계시였습니다.
사실 죽음도 일반계시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은 죽음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죽게 하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죽음으로 인한 고통은 정말 힘든 일이지만 정말 영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게 해줍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고 의지하던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 분만은 영원합니다. 바로 하나님이죠.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그 하나님 안에서 한 소망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것은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자들이 하나님 안에서 영생의 소망을 바라보게 된다는거죠.
우리에게는 죽음이 있겠지만 하나님 안에서 그것을 극복해내는거죠. 이미 죽음을 초월하신 하나님께서 계시니까요.
그러니 죽음은 사실 정말 슬픈 일이면서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3. 모압에서 다시 베들레헴으로..

(1) 모압에서 다시 베들레헴으로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서 나오미에게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신거죠. 영원한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요.
오늘 본문을 보면 정말 재밌는 점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지명 여러분 많이 들어보셨을거에요.
베들레헴은 “빵”을 의미하는 “레헴”과 “집”을 의미하는 “베트”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은 빵의 집이라는 의미에요.
참 웃긴 것은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흉년이 들어서 더 이상 빵을 찾을 수 없는 빵의 집, 베들레헴에서 나와 모압 땅으로 이주합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나오미가 맞이하게 된 현실은 무엇이었나요? 빵은 찾을 수 있었을지라도 자신들이 사랑한 남자들의 죽음이었습니다. 남편부터 두 아들까지요.
그런데 한번 6절을 읽어볼까요?
(ppt)
룻기 1:6 (NKRV)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여기 “양식”이라는 단어가 바로 “베들레헴”의 “레헴”과 같은 단어입니다.
나오미의 인생이 어떤가요? “빵의 집”에서 “레헴” 즉 “빵”을 찾아서 모압을 갔더니 인생의 엄청난 고난을 맞게 됩니다.
그 고난 속에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양식”, “레헴”을 주시는 하나님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1.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나오미의 인생과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양식을 찾아 해맵니다. “레헴”을 찾아서 달려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정말 열심히 살아갑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가죠.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다보면 세상에서 말하는 그 원리대로 “인과응보”, “업보”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믿읍이 있지요.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결코 원인을 알 수 없는 고난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아직 나오미처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는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겪어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또한 같은 고난은 아니더라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그저 정말 양식을 얻기 위한, 당연히 해야해서 열심히 살아가기 위한 삶을 살아가다가도 알 수 없는 고난이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좌절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을 열심히 살아나가는 이유는 우리가 “레헴”을 얻기 위해서잖아요.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고난이 생깁니다.
그때 우리는 이 소식을 분명히 겪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레헴”을 주셨다는 소식이요.
cs루이스의 헤아려 본 슬픔 이라는 책이 있어요.
cs루이스는 독신으로 살다가 꽤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합니다. 60세가 다 되어서 결혼을 하죠.
cs루이스의 인생에서 그렇게 사랑했던 여인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내는 병으로 인하여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됩니다.
결국 결혼한지 3년 만에 그 아내 조이는 사망하게 됩니다.
cs루이스는 일생에서 단 한번도 마주해보지 못했던 슬픔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정말 높은 수준의 신앙을 가졌지만 막상 그 슬픔을 마주하게 되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왜 그분은 우리가 번성할 때는 사령관처럼 군림하시다가 환난의 때에는 이토록 도움을 주시는데 인색한 것인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cs루이스는 그가 겪은 슬픔 속에서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려고 애써도, 결국 다시 돌아오는건 하나님을 향한 물음이었습니다.
루이스는 결국 하나님이 그 슬픔을 받아들이게 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거죠.
또한 우리는 그 모든 슬픔으로 인한 빈 구석을 채우시는 분은 결국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셨는가?

그런데 우리는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겪게 되는 그 고통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과 우리의 굶주림을 채우는 “양식” “레헴”을 우리에게 준비하셨고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겁니다.

1. 영원한 양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 본문의 6절을 한번 다시 보겠습니다.
룻기 1:6 NKRV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양식을 주셨습니다. 단순히 흉년이 끝나고 농작물이 생겼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흉년으로 기근에 들었던 백성들을 먹이시기 위하여 다시 베들레헴에 양식을 내리십니다.
영적으로 기근이었던 우리에게 내리는 하늘의 양식, 여호와의 양식이 있음을 기다리십니까?
여호와의 그 양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요한복음 6:47–51 (NKRV)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달리시고찢기신 그 살이 바로 우리의 양식이 됩니다.
나오미가 당했던 환난과 가난, 기근과 같은 일들은 우리에게 항상 일어납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했던 모든 노력 가운데서도 우리는 어떤 때는 남편과 아들들이 죽은 것과같은 고난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내 삶은 정말 끝까지 갔구나..”라고 낙심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은 양식을 주십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앞으로의 룻기 강해를 통해서 나오미와 룻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게 될겁니다.
그 가운데 그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이 그 백성인 나오미와 룻의 굶주림을 충만하게 채우시는 역사를 보게 될 겁니다.
단순히 굶주림을 채우실 뿐만 아니라요, 그 집안 전체의 구원을, 더 나아가 그들의 삶이 예수님의 나심을 예비하는 것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렇습니다. 너무나도 슬프고 힘든 고통 가운데로, 고난 가운데로 들어갔다가도 다시 영원한 양식인 예수님이 우리 삶에 여전히 계시는거죠.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소망이 생깁니다. 예수 그리스도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게 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