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씨앗이 심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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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1–9 (NKSV)
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매우 큰 무리가 모여드니, 예수께서는 배에 오르셔서, 바다쪽에 앉으셨다. 무리는 모두 바닷가 뭍에 있었다. 2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가르치셨는데,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3 “잘 들어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먹었다. 5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으므로 싹은 곧 나왔지만, 6 해가 뜨자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렸다. 7 또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 그 기운을 막아 버려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런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가 되었다.” 9 예수께서 덧붙여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씨앗이 중요한가? 땅이 중요한가?
씨앗이 중요한가? 땅이 중요한가?
농사를 지으시거나 텃밭을 가꿀 수 있는 분들은 땅의 중요성을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식물은 그저 물만 잘 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땅이라는 것입니다. 땅의 상태를 알고 씨앗에 알맞는 땅이 만들어 질 때 열매가 맺히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부는 땅에 공을 들입니다. 땅을 기경하여 돌맹이들을 치우고, 땅을 뒤엎고 비료도 주어 농사하기 좋은 땅으로 만듭니다. 저같이 농린이 (농사 어린이의 준말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는 표현입니다.)들은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나라는 사람의 땅에 믿음의 씨앗이 심겨서 지금까지 자란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좋은 땅은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말씀의 씨앗을 심어주셨고, 믿음이 자라나게 하여 주셨습니다. 불교를 믿으며, 윤회사상을 믿으며 유교적인 사상과 샤머니즘으로 물들어 있던 저를 주님께서는 어린 시절 불러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목사로 써주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씨앗은 중요하지 않을까요? 씨앗 또한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죽은 씨앗은 생명의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씨앗을 구하려고 여러분들도 좋은씨앗을 파는 곳에 가셔서 구입을 하실 것입니다. 씨앗이 없다면 너무 큰 문제입니다. 인류의 먹거리가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유전자 변이 씨앗으로 재배된 식물을 먹으면 그것을 먹은 우리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국립 농업 과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까 씨앗은행이 있습니다. 총 14,313 종의 332,679개의 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씨뿌리는 자 예수님
씨뿌리는 자 예수님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공관복음에서 모두 쓰여진 중요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유로 말씀하시어 이 비유 안에 담긴 하나님 나라의 큰 비밀을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의 다양한 삶의 상황과 환경 가운데 적용되어 다양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누가복음 8:9–10 (NKSV)
9 예수의 제자들이, 이 비유가 무슨 뜻인지를 그에게 물었다. 1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 말하였으니, 그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 이다.”
오늘 비유에는 씨뿌리는 사람과 밭에 뿌려진 씨가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친절하게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19절에 보니까 하늘 나라를 두고 하는 말씀이 씨앗입니다. 마태/누가 복음에도 이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씨를 뿌리는 사람은 누구입니다. 설교를 하고 있는 목사가 씨를 뿌리는 사람입니까? 네 그렇다고 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는 사람은 여러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씨를 뿌리는 분은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 이십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우리는 땅에대해서 생각 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씨앗이 뿌려진 네가지 땅
씨앗이 뿌려진 네가지 땅
오늘 농사를 짓는 방법에 따라서 땅을 기경하고 비닐을 덮고 씨앗을 심을 구멍 안에다가 씨앗을 심는 우리들의 농사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당시 이스라엘에서 씨를 뿌렸다고 합니다. 하나의 방법은 농부가 일일이 손으로 씨를 뿌리는 법과 다른 방법은 씨를 담은 자루에 구멍을 뚫은 후에 짐승에 실어서 뿌리는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씨앗을 뿌린 후에 쟁기질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뿌려진 씨앗은 네가지 땅에 심겨집니다. 요약하자면, 길가에 떨어진 씨,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진 씨앗,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 그리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우리는 쉽게 좋은 땅과 나머지 세개의 나쁜 땅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길가에 떨어진 씨와 세가지 종류의 흙에 떨어진 씨앗의 관점으로 보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4:15 (NKSV)
15 길가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말씀이 뿌려질 때에 그들이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그 말씀을 빼앗아 간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곧 말씀을 들었을 때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설명하셨습니다. 길가는 밭이 아닙니다. 씨앗이 흙에 심겨지기도 전에 사탄이 즉시 그 말씀을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예수님을 거부하던 유대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의미할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거부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의 씨앗이 들어갈 것 같지도 않은 그 땅에도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말씀, 천국복음을 마음이 딱딱한 사람들에게도 전하여 주셨습니다. 전혀 먹혀 들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의 복음을 우리는 뿌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나머지 세가지 땅은 어떤가요? 길가와 달리 이 땅에는 씨앗이 심겨질 흙이 있었습니다. 돌밭에는 씨앗이 심겨질 흙이 있지만 돌이 너무도 많고 흙도 얇아서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 넘어지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16–17 (NKSV)
16 돌짝밭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17 그들 속에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환난이나 박해, 고난과 어려움이 올 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곧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믿음의 뿌리가 깊이 내리지 못한 결과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표징과 기적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열성적으로 예수를 믿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신앙의 뿌리는 너무도 깊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열성적으로 교회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는 믿음이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려움이 찾아 올 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 생활을 처음 하는 분들에게 더욱 세심한 관심과 사랑을 기울여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교회에 오래다녔어도 여전히 돌짝 밭 같은 마음이라면 마음의 돌짝을 기경하여 없애고, 믿음의 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충분한 흙을 공급하여 주어야 믿음의 뿌리가 내릴 것입니다.
또한 가시밭에 뿌려진 씨앗이 나옵니다. 가시나무가 자랄 정도라면 흙이 넉넉하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시밭이 되었습니다. 높은뜻 안성교회에서 일년을 지나면서 풀을 얼마나 많이 베어 주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무시무시한 가시가 돋힌 잡초들이 얼마나 무성하고 크게 자라는지 올해도 분명 그런 잡초들과 싸울 것 같습니다. 그런 잡초들을 제거해 주지 않으면 우리가 심은 꽃들이 아름답게 열매 맺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가시덤불과 잡초들이 모든 양분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가시 덤불을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4:18–19 (NKSV)
18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들이란 달리 이런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그 밖에 다른 일의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
믿음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세상의 염려와 재물에대한 유혹, 그리고 욕심이 들어오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사람 제자훈련 교재를 보면 유기성 목사님께서 겪으신 일화가 나옵니다. 목사님께서는 선한목자 교회에 담임목사가 되셨을 때 천문학적인 부채를 교회가 갚아야 하는 상황이셨습니다. 미국에서 집회를 은혜롭게 마치시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숨을 쉴수 없는 공황장애 증상이 일어나 심장이 압박을 느끼면서 괴로워하시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목회에대한 엄청난 부담감 때문이셨습니다. 어떻게 교회를 성장시켜서 이 빚을 다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가득하게 목사님을 괴롭혔던 것입니다. 그 때 목사님은 이 생각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님을 알고 늘 하시던 “예수님 저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 제안에 사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제 생명이고 주인이십니다.”라고 고백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제야 마음에 평안이 임하고 믿음이 일어나셨다고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이끄시고 책임지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고, 목사님께 하나님께서 네가 할일은 “사랑하는 것이지!!”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합니다.
좋은 땅이 되려면
좋은 땅이 되려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땅에 심기운 씨앗이 30배 60배 100배 결실을 맺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4:8 (NKRV)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표현에서 중요한 전치사가 있습니다. 바로 전치사 “에이스(εἰς)=안으로"입니다. 상상해 봅시다. 슬로우 모션으로 농부의 손에 던져진 그 씨앗이 좋은 땅 안으로 꽂혀 들어가는 역동적인 장면을 말입니다. 좋은 땅은 씨앗이 마음 속 깊이 지식과 감정을 뚫고 들어가게 됩니다. 이와같이, 마음에 꽂힌 씨앗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30배 60배 100배 맺게 됩니다. 마태복음에는 100배, 60배, 30배 역순으로 되어 있고, 누가 복음에는 100배라고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많이 맺는 다는 의미가 일차적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나아가서 그 열매의 많고 적음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땅입니까? 내가 좋은 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으신가요? 우리가 땅이라면 땅이 땅을 기경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받아 우리가 스스로 좋은 땅으로 기경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밭은 갈아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씨를 뿌려주신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삶에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허락하신 성령께서만 우리의 마음을 좋은 땅이 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길가와 같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셨고, 돌짝같은 마음에 돌을 제거해 주시고, 가시덤불과 같은 염려들을 거두어 가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 조차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세상의 염려가운데서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담대하게 교회를 세우고 증인이 되었습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구하신 보혜사 성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좋은 땅이 되는 것 즉, 말씀을 믿는 믿음도 주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4:3 (NKSV)
3 “잘 들어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잘 들어라 ! 이 말씀은 쉐마 이스라엘 , 들으라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귀를 기울여야 함을 나타냅니다. 잘 이라는 헬라어가 이두 라는 단어 입니다. 이두(ἰδού)= 보라 =Behold 라는 단어입니다. 즉, 예수님께 집중하여 잘 들어야 합니다. 이는 설교를 잘 들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마음 예수님께 드는 마음이 좋은 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들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3:23 (NKSV)
23그런데 좋은 땅에 뿌린 씨는 말씀을 듣고서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데, 이 사람이야말로 열매를 맺되,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결실을 낸다.”
예수을 바라보는 마음, 예수님께 듣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에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기경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땅이 될 때 우리의 마음에 심기워진 말씀을 깊이 간직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합시다. 주께서 결실을 맺게 해 주실 때 그때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