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식탁

마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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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병이어 2. 풍성함 그리고 없음 3. 없음을 통해 경험하는 풍성함 4. 소망을 이루심

Notes
Transcript

오병이어

오늘 말씀은 우리가 정말 많이 들어 본 물고기 두마리 보리떡 다섯 개. 오병이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병이어 사건 앞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오병이어는 앞선 내용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그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는데요. 오병이어 바로 앞에 이야기는 헤롯 안디바라는 왕이 세례 요한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굉장히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 잔치에는 나라에 중요한 보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모였고, 먹을 것이 풍족하다 못해 넘쳐났습니다.
그 속에 술에 취했던 헤롯은 자신이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세례 요한을 죽이게 됩니다.
세례 요한을 죽이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던 그에게 한가지 이야기가 들려 옵니다. 세례 요한이 살아 있을 때 했던 것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 아니 그 보다 더 큰 기적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자신이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유심히 지켜보게 됩니다.
그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헤롯이 자신을 지켜보고 또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예수님은 자리를 떠나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십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먹을 것이 굉장히 많고 화려했던 그 지역을 떠나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구하기 어려운 빈 들로 길을 떠나십니다.
오병이어 사건 바로 앞은 먹을 것이 굉장히 많고 화려했던 이야기였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 볼 이야기는 그와 대조 될 만큼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초라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고 사람만 가득한 그 곳에서. 세상을 구하러 오신 메시야가 활동하는 곳이라고 하기엔 정말 너무나 초라한 빈 들에서 그 어떤 것보다 즐겁고 풍요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풍요로운 은혜의 이야기가 바로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풍성함 그리고 없음

예수님께서 자신을 향한 헤롯의 뜨거운 시선을 피해 빈 들로 나가십니다. 조용히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따로 나가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찾아나섭니다. 배를 타고 건너고 있음을 안 사람들은 갈릴리 호숫가를 따라 계속 걸어 왔고, 결국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신 곳 까지 다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그들을 멀리했고 배척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기에,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예수님 밖에 없었거든요.
예수님은 그렇게 찾아 온 사람들을 가만 두지 않으셨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병자들을 고쳐주기 시작하십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저녁을 먹을 때가 되었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녁을 구해야 한다 말합니다.
“예수님 주변 마을에서 먹을 것을 구해와야 할 것 같습니다.”
언뜻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제안처럼 보입니다.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 앞에 있는 사람들은 급히 따라 나서느라 먹을 것을 챙기지 못해 굶주려 있었기에, 먹을 것이 필요 했거든요. 그리고 아무 것도 없는 빈 들에서 음식을 구할 수 없었기에, 마을로 내려가 먹을 것을 사오자는 제안은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합리적인 제안을 들은 예수님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요?
그와 반대로 굉장히 비합리적인 제안을 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굉장히 황당한 말씀입니다. 누가 봐도 먹을 것이 없는 빈 들인데, 성인 남자만 5천명, 어린 아이 그리고 여자들을 포함하면 최소 1만명이 되는 인원이 여기에 있는데,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정말 말도 안되는 비합리적인 명령입니다.
사실 제자들의 이 제안도 합리적인 제안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있는 빈 들과 가장 가까운 지역에 3천명 정도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빈 들에 최소 1만명이 모여 있죠. 3천명 정도 사는 마을에서 만명 이상이 먹을 음식을 바로 구할 수 있었을까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제자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 없이 피하거나 떠넘기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제자들은 200데나리온. 한 노동자의 일당이 1데나리온인데,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사람들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고 또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들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봤던 사람들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으면서, 살아있는 자들을 먹이시는 기적은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비합리적인 제안 앞에 황당해 하던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어린 소년이 갖고 있던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들고 나옵니다. 이것은 어린 소년 혼자 배불리 먹거나 친구 한명과 나눠 먹을 양입니다. 그리고 갈릴리 지역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식사이기도 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들. 1만명의 사람들. 그리고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

없음을 통해 경험하는 풍성함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가져오라 하신 후, 무리를 잔디 위에 앉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앉다"입니다.
우리는 ‘앉다'라는 단어를 들으면 양반다리를 하고 앉거나 혹은 의자에 나란히 앉는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에게 ‘앉다'라는 단어는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용되는 ‘앉다'라는 단어는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잔치에 참여하면 자리에 바르게 앉지 않았습니다. 옆으로 누워 담소하면서 음식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고작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 밖에 없으면서도, 만명의 사람들에게 잔치가 열릴 것이니 편하게 앉아 준비하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가진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명령은 정말 황당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던 상관없이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들고 축사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음식을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이 오병이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신 것이죠.
오늘 본문을 잘 보면 ‘갖다 ‘ 축사하다' ‘떼다' ‘주다'라는 말들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모든 단어는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되는 동사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시면 우리가 누리게 될 천국 잔치 때 사용되는 단어들이라는 것이죠.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통해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앞으로 반드시 경험하게 될 천국 잔치의 기쁨을 먼저 알려주신 것입니다
또한 12바구니가 남았는데, ‘모두' ‘배불리' ‘남은 조각' ‘차다' 라는 말들이 나옵니다. 기적이 시작 될 때보다 먹고 남은 음식이 더 많은, 풍성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없었습니다. 거의 없었습니다.
오병이어로 만명을 먹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해 내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유월절이 있는 봄에 오기를 바랬습니다. 오늘 오병이어가 일어나고 있는 기적의 순간은 봄입니다.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소망과 바람대로 봄에 구세주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없음을 통해, 그들은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굉장히 진부해 보이는 문장입니다. 하지만 이 것은 우리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붙잡아야 하는 중요한 문장입니다.
우리들 제자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필요를 절대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앞만 보고 살아갑니다. 수평적인 시선을 갖고 내 주위만 둘러보며, 내 시선이 닿는 곳에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답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고, 힘들고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삶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으로 나에게 다가 올 때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수평적인 시선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예수님이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평적인 시선으로 문제를 회피하려고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수평이 아닌 하늘.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한다 말씀하십니다. 수평이 아닌 고개를 들어 하나님과 눈을 맞춰야 한다 하십니다.
우리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와 눈을 맞추기 위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자들도 우리도 예수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오늘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었는가를 생각하며 묵상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시선이 수평을 향해 있었고, 하나님이 아닌 상황을 보고 있었다면 그 시선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함께 기도하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시선을 맞추는 풍성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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