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1 새벽] 교회를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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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329 주 날 불러 이르소서
본문 : 빌 1:1-11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허물많고 연약한 우리를 거룩하신 주의 몸으로서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우리를 교회공동체로 불러주시어 양옆에 많은 지체들을 붙여주셨사온즉, 우리가 한 몸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함께 자라갈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 가운데 주님의 교회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부어 주시고, 더욱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바울은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사이면서 동시에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던 자이기도 했다. 그는 빌립보 교회에게 보내는 서신의 첫 장에서 성도들을 위한 중보기도의 제목들을 나열하고 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그가 어떤 제목으로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는지를 살펴볼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교회를 위해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도의 교훈을 통하여 더욱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럼에도 마음으로 늘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며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였음을 말씀하고 있다. 교회를 생각하며 교회를 위해 부르짖는 기도. 이것이 바울 사도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인가? 그가 사도로 부름을 받았으니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바울만 할 수 있는 일이고, 바울에게만 주어진 사역으로 생각하시는가? 그렇지 않다. 사도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의 좋은 모범이다. 바울이 교회를 생각하며 교회를 위해 기도하였던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도 교회를 생각하며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특별히 3절에서는 이를 두고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라고 표현한다. 생각은 곧 관심이다. 누군가를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그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늘 교회를 깊이 생각했다는 것은 그에게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향한 깊은 애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관심도 없고 애정도 없는데 어떻게 교회를 위해 기도할 수 있으랴. 사랑하는 자만이 기도할 수 있고, 많은 관심을 가진 자만이 부르짖을 수 있다. 진심어린 관심과 애정은 교회를 위한 기도의 기초가 된다.
또한 바울은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근심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았다. 이어지는 3절 중반부를 보면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를 알게 하신 은혜, 또 하나님이 빌립보 교회와 교제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여러분, 양문교회를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는가? 오직 감사에 기초하여 교회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온갖 불평과 원망 가운데 교회를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이어서 바울은 4절 말미를 보면 ‘기쁨으로' 간구했다고 말한다. 이는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든든히 세워져가며,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들을 잘 감당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바울이 기쁨을 누렸다는 것이다. 그가 교회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기쁨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기도를 돌아보라. 여러분은 얼마나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얼마나 교회를 향한 진심어린 관심과 애정으로 교회를 생각하고 있는가? 얼마나 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 감사함으로 간구하였던가? 얼마나 기쁨에 충만하여 교회를 위해 기도했던가. 우리의 교회를 향한 기도는 이처럼, 깊은 애정과 감사와 기쁨 가운데 올려져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를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 어떤 기도제목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하는가? 사도는 이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첫째로, 사랑이 풍성하길 기도해야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 8-10절을 보라.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회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하나님이 증인이시라고까지 단언한다. 이는 교회를 향한 그의 사랑이 결코 거짓되지 않은 진실한 사랑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들에게 이 사랑이 풍성하게 자라나길 기도한다. 지금 그가 말하는 사랑은 단지 지체들 간에 누리는 좋은 감정 정도가 아니다. 감정에만 의존하는 사랑이라면 마음이 상하는 사소한 일에도 쉽게 깨어질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이 충만하기를 기도하되, 그 사랑이 지식과 총명, 다른 의미로 통찰력을 갖춘 사랑으로 풍성하길 기도한다. 왜 교회의 사랑에 지식과 통찰력이 필요한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지속적이고 희생적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깊이 알아갈 수록 우리의 사랑도 풍성하게 자라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는 지식과 더불어 총명, 곧 통찰력도 필요하다. 이는 상대방의 상태를 분별하고 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이다. 우리의 관점과 시야가 편협하면 상대방을 오해함으로써 지체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지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놓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묵상하며 말씀 안에서 지식과 분별력을 갖출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자신과 우리가 속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참된 사랑으로 풍성해져 갈 것이다. 오늘날 사랑이라는 단어가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참된 사랑은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다. 이기적이고 감각적인 사랑이 넘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교회 가운데 사랑이 풍성하길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양문교회 가운데 참된 사랑의 빛을 풍성히 나타낼 수 있도록 은혜 베푸실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둘째로, 열매가 풍성히 맺히길 기도해야 한다. 성도는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삶에서 의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도록 기도했다.
빌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간구한 의의 열매는 거룩한 삶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그저 성경에 기록된 규범과 규율을 잘 지키고 따르는 모습이 아니다. 성도가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같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도가 이러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비결을 따라야 한다. 포도나무 가지가 뿌리에서 영양을 공급받아야 열매를 맺을 수 있듯, 성도가 예수님과 바른 관계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과 깊고 친밀한 관계 안에 거하면서, 우리 교회가, 우리 교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지체들이 예수님과 연합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 그분의 임재 안에 머무는 삶을 살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따라 삶에서 구체적으로 선한 열매를 맺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를 위해 드리는 기도를 들으실 것이고, 그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우리 안에 거룩하고 선한 열매가 가득하게 하실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은 우리의 교회를 향한 기도를 통해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안에 사랑이 풍성하고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변화시키시며, 우리를 영혼 구원의 통로로 사용하실 것이다. 이 놀라운 역사들이 교회를 위한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가실 것이다. 이 놀라운 역사하심에 쓰임받는 이 자리의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이 시간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하자. 교회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사랑이 충만한 교회, 열매가 풍성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기도해 달라. 특별히 다가오는 양문목회자세미나를 통해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가 풍성히 임하기를, 또한 세우신 강사 목사님들을 위해, 또한 우리 양문교회의 담임목사님을 비롯한 직분자들과 여러 리더들을 위해, 아이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의 권속들을 위하여, 더 나아가 전세계 가운데 흩어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이 시간 간절히 주여 한번 외치며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