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주를 고백하다(마1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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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일시 : 2023년 3월 3일 금요일 새벽
본문 : 마태복음 16장 13-20절 *신27
찬송 :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Point Message : 1. 세상의 중심 속 주를 보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으로 잘 알려진 본문입니다. 오늘 이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이 새벽 우리 또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다짐하고 무장하는 새벽되길 소망합니다.
먼저 우리는 세상의 중심 속 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13절입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빌립보 가이사랴 이 지역은 로마의 황제 가이사에게 헌정한다는 의미와 지방의 분봉왕 빌립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수많은 우상과 세상 헛것이 존재하는 곳이었습니다.
온전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중국 베이징 한복판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 고백하는 것이 안전한 행동이겠습니까? 북한 평양 한복판에서 ‘주는 다윗의 자손이시요 우리의 구원자 되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이들에게 익숙한 행동이겠냐는 겁니다. 결코 이들에게 익숙하지도, 또 그런 곳에서 이러한 신앙 고백은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안전하지도 지역 사람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주님은 묻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고 말입니다.
이 질문에 여러 대답들이 나옵니다. 누구는 세례 요한이라고도 합니다. 누구는 엘리야라고 합니다. 누구는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 중 하나라 말합니다. 등등 수많은 대답이 나옵니다.
이에 주님은 다시 묻죠. ‘그럼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고 말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16절 함께 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는 세상의 헛 것들이 만연한 곳에서, 또 오히려 주보다는 세상 헛 것이 더 익숙하다 말하는 곳에서 담대히 고백합니다. 그는 세상 속에서 중심되시는 주님을 본 것이지요.
바라옵기로는 우리 삶이 이런 삶 되길 소망합니다. 세상 속 살아가는 우리지만, 세상의 것을 피할 수 없는 운명 속에 놓인 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심되시는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는 우리 되길 소망합니다.
[Point Message : 2. 우리의 입술 열어 주를 고백하다]
또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보며, 우리는 우리의 입술 열어 스스로의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즉 베드로의 고백이 지식으로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가운데 믿음으로 나오는 고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차 오실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임을 바리새인도 너무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주님을 보며 누구보다 잘 알던 사실도 믿음으로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주를 고백하기보다, 주를 고난 가운데로 내모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달랐습니다. 주가 다윗의 자손이심을 알았고 믿었고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젠 정말 모두가 압니다. 좋은 경로든, 나쁜 경로든 이제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기독교를 압니다.
하지만, 이들이 안다고 해서 모두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왜 이들은 고백하지 않습니까? 믿지 않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믿음이 없기에 고백이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소위 신앙도 있고 믿음도 있다 말할 수 있는 자 아니겠습니까? 그런 우리의 입술을 통해 주를 얼마나 고백하고 계십니까? 때론 기독교인인 것이 부끄러워 감추고, 담대하지 못한 것이 우리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는 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목회자라는 거룩한 직분 받은 자로서 세상 가운데 희망이요 소망이고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때론 제가 목회자임을 감추려 하는 행동에 혼돈이 오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합니다. 알기에 믿음으로 고백해야 하는데, 아는 것에 그쳐 그 삶을 감추는 연약함에 아쉬움만 넘쳐나는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 고백은 결코 부끄러운 것도 아니며, 우리가 주를 믿음이 조롱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이제 보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반석이 되었고, 그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마태복음에서 처음으로 교회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곳이 바로 오늘 본문 18절입니다.
우리의 고백이 한겹 한겹 쌓여 아주 단단한 반석이 되고, 또 그 반석 위에 교회가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바라옵기로는 우리 이어진교회가 우리의 욕심과 욕망, 인간의 쾌락과 시기 질투 음모 속에 커가는 교회가 아닌, 그저 주님이라는 반석 위에 커가는 교회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위에 세워져 가는 예배, 주님 위에 세워져 가는 찬양과 기도, 주님 위에 세워져 가는 제자훈련과 신앙훈련 등. 그저 주님 위에 세워져 가는 교회 되길 소망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의 고백이 귀한 것은 지식으로 알기에 나온 고백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믿었기에 귀한 것입니다.
헛 것 가득한 오늘날 가운데, 우리의 입술 통해 이와 같은 믿음의 고백이 담대히 선포되길 소망합니다. 이러한 신앙 고백이 우리 교회 가운데 흘러 흘러, 한겹 두겹 쌓여가는 반석이 되고, 그 반석 위에 세워져 가고 커져가는 교회되길 소망합니다.
또 그런 교회를 위해 누구보다 중보하시고 힘쓰시고 말씀의 기쁨을 나누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1) 우리 이 시간 들은 말씀을 가지고
- 세상 어떤 환경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우리 되게 하소서
- 우리의 입술 열어 날마다 신앙 고백이 흘러 넘쳐 나게 하소서
2) 한 번 더 기도하겠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각자 가지고 나오신 기도제목을 가지고
- 다음세대가 말씀 위에 세워져 어려서부터 이들의 입술로 주를 고백하는 말씀 공동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