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흐름

룻기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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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12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는 생각보다 사랑을 중요시 여기지 않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둘러싼 수많은 사랑에 대한 얘기들이 있습니다.
소설, 음악, 영화 등 문화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사랑에 관한 얘기들을 접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의 현실로 가보면 사랑의 그 고귀한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죠.
먼저 우리 세대는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올바르지 못한 정의를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각자 가치관에 따라 생각하는 사랑이 다를텐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 연애를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연애하는 상대방에 대한 감정같은 것이 사랑이 될 수도 있고요.
또 가족 안에서 사랑을 느낀대로 정의내릴 수도 있겠죠.
그러나 확실한 것 하나는 이것입니다. 사랑은 행해질 때 그 힘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아무리 알고 있고, 느끼고 있어도. 그 사랑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알고, 느끼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삶에 사랑이라는 가치관이 작용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사랑이 작용하게 하는 것은 “실천”입니다.
아무리 입아프게 “저는 제 아내를 사랑합니다”라고 떠들어다녀봤자 그 사랑의 효력은 그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실천에서 힘이 오죠. 말로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랑은 결국 사람의 위선을 드러나게 해주는 것 같은 상황만 남게되는거죠.
오늘 본문은 사랑을 행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의 원천이 어디로부터 어떻게 흐르는지 나오미와 룻의 관계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1.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결혼할 것을 제안함 (8-13절)

(1) “어머니의 집”의 의미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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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왜 굳이 “어머니의 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가? “어머니의 집”의 성경 안에서의 용례를 살펴보면 “결혼에 관련된 논의와 결혼 계획을 짜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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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3:4 NKRV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
창세기 24:28 (NKRV)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머니 집에 알렸더니
이 두 구절 모두 사랑과 결혼과 관련된 단락 가운데서 어머니의 집을 사용한다.
(2) “남편의 집”의 의미(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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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1:9 (NKRV)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그래서 “남편의 집”도 등장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집에서 재혼을 준비하고 새로운 “남편의 집”으로 들어가 재혼 후 위로를 받으라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나오미의 제안은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자신의 생계의 공급원(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가 그나마 함께 버틸 유일한 가족들은 룻과 오르바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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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재혼을 제안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의 유지보다 며느리들의 앞으로의 삶을 위하는 것이다.
(3) 나오미의 행동의 진정성(9-10절)
나오미의 이러한 행동이 우발적이거나 충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오미는 아마도 그녀의 삶 속에서 진정으로 며느리들을 위한 삶을 살아냈고 그것을 충분히 보여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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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만약 나오미의 삶이 그렇지 않았다면 이 며느리들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청년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아무리~시어머니가 좋아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다라는 말도 있다.
미우새라는 예능을 보는데 패널로 연예인의 어머니들이 있고, 연예인들의 생활을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서 보니 어머니들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관계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며느리를 딸같이 대한다고 자기 며느리는 고부 갈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연예인의 어머니가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딸이냐고, 며느리가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그래서 며느리가 불편할까봐 배려하는 여러 모습들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그 연예인의 어머니의 말이 많은 며느리들의 마음에 공감을 주는 것 같았다.
나오미의 때는 지금과같은 시어머니-며느리의 관계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룻, 오르바는 결국 시어머니보다 친 엄마가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오미가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 재혼할 것을 제안하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소리내며 울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갈 것을 간청한다.
이것은 단순히 예의상 하는 며느리들의 반응이라기보다는 정말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반응같다.
시어머니로서 며느리들에게 평소에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구체적이진 않지만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어머니로서 나오미는 단순히 며느리들을 잘대해주기만 했을까? 오늘 본문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2. “선대함”의 의미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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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1) “헤세드”
여기서 “선대한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세드”이다.
많이 들어보았을텐데 헤세드는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아주 여러 단어로 번역된다.
자비, 인자, 선함, 선대, 은혜, 긍휼
즉 어떤 한 단어로 번역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켄펠드라는 신학자는 ‘헤세드’의 용례를 연구하여 의미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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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자가 곤궁에 처해 있을 때 강한 자가 그럴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보이는 언약적 충성”
즉 하나님의 헤세드는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사실 돕고, 안돕고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돕지 않으셔도 되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그 선택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헤세드”의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사랑과 자비를 조건없이 베푸십니다.
이것이 헤세드이죠.
룻기를 쓴 저자는 헤세드의 개념을 이미 깊이 알고 있을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를 쓴 이유는 나오미와 며느리들 사이에 헤세드의 정신으로 행했던 수많은 선한 행위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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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며느리들이 먼저 선대하여서 여호와께서 며느리들에게 선대하심을 베풀기 원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여기서 조금만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어머니-며느리 관계에서 특히 고대에는 더욱 위계질서가 뚜렷하다.
그러한 환경에서 ‘헤세드’의 의미가 드러나기 위해선 즉, 그럴 의무가 없는 상대적 강자가 조건없이 베푸는 사랑을 보이기 위해선 누가 먼저 헤세드를 보였을까?
당연히 나오미다. 나오미는 이미 며느리들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 그들 위에 군림하고, 강자로서 그들을 억압하거나 무언가를 요구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나오미는 오히려 며느리들에게 평소의 일상 가운데 계속해서 헤세드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오미의 헤세드의 사랑과 자비를 보며 며느리들은 자연스레 그들의 마음에 동해서 나오미와 나오미의 가족들 즉 남편, 시아버지에게 선대함, 헤세드를 베풀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나오미와 같은 삶의 모습이 일어난다.
나오미가 베푼 헤세드의 모습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헤세드는 그 받은 사람이 헤세드를 자연스럽게 행하는 삶을 살게 된다.
흔히 가정에서 사랑받은만큼 그 아이가 사랑할 줄 안다라는 말을 한다.
하나님의 헤세드의 사랑을 받은 자는 그러면 어떤 자들인가?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으로 다 행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베푸는 자들이다.
즉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닮은 사랑을 하게 되는 자들이다.
나오미가 바로 그러한 삶을 일상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며느리들은 자연스레 나오미를 따르게 된 것이다.
나오미와 룻은 모압 땅에서 이방 신들을 모시고 있었을 것이다.
이방 신들이 행하는 자비는 강자와 약자 사이의 조건으로 건 자비이다.
그 신을 섬기는 자들에게 풍요를 주는 대신 무언가를 요구한다. 애굽의 신들도 그랬고, 바알신도 그랬다.
여기서 종교가 가지는 특징이 있다. 조건을 걸고 무언가를 해야 그만큼 받는다는 원리가 종교의 특징이다.
그러나 복음의 원리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며, 창조주시지만 조건이 없이 곤궁에 처한 백성들에게 사랑을 베푸신다.
며느리들은 나오미를 통해서 이방 신을 섬겼던 고향 땅의 자신의 가족, 친척들과는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게되는 것이다.
며느리들의 입장에서 나오미가 섬기는 하나님은 그러한 조건없는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나오미의 행실을 통해서 보게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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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룻과 오르바의 갈림길 (14-18절)

(1) 오르바의 선택
나오미는 헤세드를 베푸는 삶을 통해서 며느리들에게 하나님이라는 신이 어떤 분인지 보여준다.
게다가 이제는 자신의 생명보다 며느리들의 남은 삶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헤세드를 보여준다.
다시 모압 땅으로 가서 재혼하고 남은 삶에 위로를 받도록 제안하게 되는 것이다.
두 며느리가 만약 나오미를 두고 모압 땅으로 돌아간다면 이제 나오미는 어떻게 살게 될까?
나오미가 재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녀의 나이가 40대 초중반 정도로 추측을 한다. 그 당시는 15살 전후로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40대 초중반이면 재혼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당시는 다르다. 먼저 재혼 자체가 힘들다. 그리고 그 당시 평균 수명을 50대 정도로 추측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룻은 거의 노년기로 볼 정도로 생물학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거의 노년기에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에서 과부들은 한 가지 굶지 않고 살 길이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도 나올 이삭 줍기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자비하신 성품이 담겨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과부들에게 굶어죽지 않기 위한 율법을 남기신다.
그것은 곡식을 거둘 때가 되었을 때 떨어지는 자투리 농작물들을 거두지 않는 것이다.
그 자투리 농작물들은 고아와 과부들이 주워서 먹도록 남기는 것이다.
나오미는 그 이삭을 줍는 자로서 남은 노년기를 홀로 지내야하는 것이다.
이때 오르바는 한번은 거절했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나오미에게 인사를 하고 모압으로 돌아간다.
혹자는 오르바를 배신자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오르바는 과연 진짜 배신자인가?
사실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정말 솔직히 생각하면 오르바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 것은 당연한 일이며,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오르바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오르바는 모압 땅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고,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르바는 돌아간 것을 선택한 것이다.
(2) 룻의 선택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 룻의 선택은 그렇지 않았다.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룻의 선택에 큰 감동이 있지만 그녀의 고백에서 그 선택의 동기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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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개역개정판 (1장)
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라는 고백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민족적, 종교적 의미가 담겨있다.
고대 사회에서 신은 민족적 정체성, 종교적 정체성을 담고 있었다.
우리 시대는 신의 역할이 크지 않다. 중요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 당시 그들이 섬기는 신은 그들의 정체성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룻의 고백은 자신의 정체성이 이제는 나오미가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길 원한다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17절의 고백은 더 예술이다.
자신이 나오미를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만약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벌을 내리신다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자신의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얘기다.
나오미는 지금 자신의 모든 삶과 정체성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이다.
(3) 룻의 고백에서 드러나는 헤세드
룻의 고백에서 우리는 나오미의 삶으로부터 받은 그 헤세드가 룻을 통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룻은 나오미로부터 받은 헤세드를 다시 나오미에게 행하는 자가 되었다.
헤세드는 무엇인가? 자신의 삶에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이상을 베푸는 사랑이다.
룻은 오르바와같이 모압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불법적이거나, 도덕적으로 악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선택의 문제였다.
그러나 선택의 문제에서 룻은 헤세드를 베풀게 된다.
이방여인이었던, 이방 신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서 모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룻은 하나님의 가치관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것보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 그 사람이 진정으로 잘되길 원하는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1. 진정한 헤세드와 그 영향

하나님의 헤세드의 그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수준이다.
결코 우리의 의무만을 다하는 사랑을 얘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의무적으로, 도덕적으로 베푸는 선행을 헤세드로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해야하는 의무를 넘어서 그 사람이 정말 잘되길 원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행하는 사랑이 바로 헤세드이다.
우리는 나오미와 룻의 관계에서 헤세드의 사랑이 어떻게 흐르는지 볼 수 있다.
나오미는 그저 시어머니로서 해야하는 그 이상의 사랑을 며느리들에게 베풀었다.
우리의 삶에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을 무지무지 싫어한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니까 예전에 어떤 주변 관계에 있는 기독교인이 자신을 전도하려고 아주 노력을 했다는 거에요.
그런데 자기가 아무리 전도를 하려고해도 설득이 안되니까 그 관계를 끊어버렸다는거에요.
그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은 그저 교회 수 한명을 더 늘리기 위한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는 방식은 정말 여러가지지만, 말로하는 전도 이전에, 그 관계 안에서 의무를 넘어서는 사랑을 해보신적 있으신가요?
목적이 단순히 교회를 데려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 관계 안에서 그 사람을 위한 사랑을 해보셨냐는겁니다.
진정한 전도는 그러한 사랑이 없이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모든 관계에서 마찬가지죠.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전도가 있을 수 있나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교회 공동체가 있을 수 있나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가족이 있을 수 있나요?
그렇다면 그 사랑이 행해지는 곳이 바로 우리가 간 그곳이어야 하는겁니다.

그리스도는 무엇을 하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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