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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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교수님께서 모교인 이화여대 교수님이 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지선 교수님은 23살에 대학교에 다닐 때에 밤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빠의 차를 타고 집으로 귀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음주운전자에 의해서 일어난 7중 출돌사고를 겪게 됩니다. 차에 불이 났고, 정신이 없는 가운데 오빠가 자신을 차에서 꺼내서 생명을 구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신 55%에 3도의 중화상을 입게 됩니다. 7개월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30번이 넘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수술이 잘 끝났고 회복도 기적적으로 잘 되었다고 했지만 이전의 얼굴을 기억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변해 버린 자신의 모습에 처음에는 절망이 되고 좌절이 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화상치료의 순간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고통 중에 하나님께 ‘하나님 저를 데려가 주세요.’ 기도했을 정도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심지어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에게 ‘이제는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고 사람들도 가까이 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23살의 아가씨가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절망적이었습니다. 퇴원한 이후에 이지선교수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따져 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왜 저를 살리셨습니까? 이런 모습으로 살려 놓으셨으면 계획이 있으실거 아닙니까? 그래야 저도 살아 볼 용기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예배의 마지막에 목사님이 오셔서 이지선 교수를 안아주면서 기도해 주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세상 가운데 반드시 세울 것이고 병들고 힘들고 약한 자들에게 희망의 메세지가 되게 할 것이다.” 목사님을 통해서 전해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에 이지선 교수는 화상으로 엉망이 된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라는 약속을 붙잡을 수 있었고, 거울을 볼 수 있는 용기,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교수님의 페이스북에 자신이 이화여대 부임 한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이런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어두운 시기를 지날 때는 그게 끝인가 싶은데 우리 그러지 맙시다. 결국 비극이 아닙니다. ‘이렇게 절망스럽게 끝나겠구나' 처음 제게 사고가 난 뒤 주변 사람뿐 아니라 저도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인생 곳곳에 소소한 기쁨이 있었고 결국 인생은 비극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난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절망과 고통 중에 있는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한나라는 여인입니다. 한나라는 여인이 겪고 있던 고통은 무엇일까요? 불임이라는 고통입니다. 지금도 불임은 많은 가정들에게 아픔이 되고 고통이 됩니다. 특별히 여성들에게 불임은 아픔을 주죠.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서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불임의 책임이 모두 여성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들 중에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불임의 원인 중 여성이 40%, 남성이 40%, 원인 불명의 경우가 20%입니다. 최근에는 성 개방 풍조에 따라서 성병으로 인해서 임신이 안되거나 흡연이나 비만 등의 원인으로 인해서 임신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의술이 발달해서 원인을 밝혀 내고, 치료를 통해서 임신하는 경우들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가 살던 시기는 모든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던 시기입니다. 당시에 임신을 못하던 여인은 신의 저주를 받은 여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들고 다니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아이를 얻기 위해서 두 번째 부인인 브닌나를 얻게 됩니다. 브닌나는 자녀를 잘 낳는 것입니다. 성경에 봤을 때에 브닌나는 최소 4명 이상의 자녀를 낳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누가 봐도 원인은 한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했습니다. 그런 모습에 화가난 브닌나는 분이 나서 한나를 괴롭힙니다. 브닌나로 인해서 한나는 큰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한나의 인생에서 임신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겠습니까? 10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괴롭다'는 단어는 ‘마르'라는 단어로 ‘근심하는 자', ‘쓴'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가 사용 된 것을 보면 아들을 잃어 버린 여인이나, 질병으로 인해서 죽음 앞에 놓여져 있는 경우에 사용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극심한 고통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한나의 인생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만난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없는 고난 중에 한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해결 할 수 없는 인생의 고난 중에 많은 사람들은 절망하과 좌절하지 기도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당시 많은 사람들은 애를 낳지 못하면 바알과 아세라 신에게 찾아 갔습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다산의 신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돌 하르방이 코를 만지만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임신이 안되면 뭐라도 하겠죠. 그런데 한나는 다른거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구약 성경 중에 개인적인 고통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 기도한 첫번째 여인이 한나입니다.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이전에는 남편 앞에서 울고, 가족들 앞에서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눈물은 그녀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울 때에 그녀의 눈물은 의미 없이 끝나버린 눈물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고난으로 인해서 울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때로는 억울해서 울고, 때로는 자신이 너무나 처량해서 웁니다. 어떤 사람은 술먹고 웁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이 울면 극심한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울면 마음 건강에 좋다는 것이죠. 우리 나라 남자들이 마음의 질병이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울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태어나서 3번 운다는 이상한 말 때문에 우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기 때문이죠. 유교적이고 쓸데 없는 세상 생각일 뿐입니다. 사람이 울어야 할 상황이 되면 울어야합니다. 그러나 운다고 모든 것이 해결 됩니까? 혼자 울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울든 운다고 해결 되는 것은 없습니다. 마음만 잠시 시원해질 뿐입니다. 문제는 여전히 남아서 다시 나를 괴롭게 할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 앞에 우리는 어디서 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한나와 같이 통곡하며 자신의 마음을 쏟아 내야합니다.
한나가 엘리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통한다'는 단어는 원어적으로 ‘쏟다', ‘흘리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노를 쏟아낸다는 의미나 피를 많이 흘리는 모습 등에 사용 됩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밖으로 표출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한나는 자신의 마음에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 앞에 모두 쏟아 냈습니다. 자신의 비참한 처지나 브닌나가 얼마나 미운지에 대해서 모두다 하나님께 쏟아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 할 때에는 마치 사람 앞에서 말하듯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감정과 상한 마음 그대로 나가면 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과 분노를 사람에게 말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음이 시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사람에게도 내 말이 전달 되겠죠. 계속 그렇게 하다가는 주위에 남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억울한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위로 해 주실 뿐만 아니라 해결 해 주실 것입니다.
군대에 가면 우리 나라에 이상한 사람이 모두 모이게 됩니다. 정말 돌+아이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처음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내무 반에 60명이 있는 것입니다. 잠자는 침상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무실이 큽니다. 그런데 그중에 대표적인 돌+아이가 4명이 있었는데 저희 소대에 3명이 있었고, 건너편에 1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제 주위에 돌+아이가 모두 모여 있는 것입니다. 이등병 시절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같은 소대에 말년 병장이 군종이었는데, 신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같이 근무를 서면서 야간 근무 끝나고 같이 새벽기도를 가는 것입니다. 매번 새벽기도 시간이 바뀌지만 그래도 교회에 가서 기도 할 수 있어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가서 뭐하겠습니까?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하고, 억울한 마음을 하나님께 다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면 가서 내무 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저를 도와줄 사람을 붙여 주시는 것입니다. 아이 이유 없이 저를 좋아해주고, 돌+아이로부터 지켜 주고, 심지어 가장 쌘 돌+아이가 저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새벽기도가 아니었다면 60명이 우글거리는 내무실에서 못견뎌 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힘든 순간에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쏟아 낼 때에 그 시간을 이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우는 중에 하나님을 알아갑니다. 본문11절 말씀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고백합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고백은 구약 성경에서 한나가 처음 고백한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권능으로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한나는 기도 하는 중에 하나님 만이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을 주관하고 계시고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나가 아들을 낳으면 어떻게 한다고 고백합니까? 11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삼상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아들을 주시면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고백합니다. 한나는 자신의 고백과 같이 아들을 낳았을 때에 젖을 때자 마자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어떻게 얻은 아들인데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아들을 하나님께 드린 다른 인물도 등장합니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 아브라함 입니다. 100세에 기적적으로 얻은 아들을 하나님이 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이 어떻게 합니까? 그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함께 산에 오릅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을 하나님이 그대로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었었습니다. 제물로 드릴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물론 사람을 제사로 드리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고 단지 테스트를 해 본 것 이죠. 하나님은 이삭을 대신할 다른 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사실을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아들을 드리려고 했던 그의 마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나는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이를 잃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자녀가 가장 축복 된 자녀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신의 아들을 책임져 주신다면 무엇이 걱정 되겠습니까? 이 세상의 어떤 사람 보다도 가장 뛰어난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내 자녀의 인생이 얼마나 축복 된 인생이 되겠습니까? 한나는 가장 좋은 것을 택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만 압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합니다. 한나는 고난 중에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 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적적으로 맡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저를 사용해 주세요.’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시라도 선교사로 보내실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미안한데 아무나 안보냅니다. 하나님도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기 바랍니다. 때로 우리의 인생에 생각지도 못한 고난이 올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지선교수님과 같은 감당키 힘든 고난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지선 교수님과 같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