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일하신다

모세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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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절한 시대를 살아가다 2. 믿음과 계획 3. 우연한 사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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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시대를 살아가다

오늘도 말씀을 나누기 전에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어요. 질문을 듣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기도가 가장 잘 되지 않을 때가 언제인가요?”
“어느 상황일 때 기도하기 어려웠었나요?”
아.. 늘 기도하기 힘든가요? 기도가 안나오는군요...
저는 어쩌면 기도하기 가장 어려운 때가 내 인생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 그 때가 가장 기도가 나오지 않을 때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왜냐하면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배워왔던데로, 학습 된데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찾고 기도해요. 그런데 그 기도가 길지 않아요. 똑같은 이야기만 계속 반복할 뿐이에요.
“하나님 도와 주세요. 이 어려움이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하나님 어떻게 해요.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돼요. 꼭 도와 주세요.”
“이번 한번만 도와 주시면 예배도 빠지지 않을게요. 말씀 꼭 읽으면서 살게요!”
그 외에 다른 기도가 나오지 않을거에요. 그저 내 마음을 어렵게 하는 그 상황이 해결되기만을 바라는 기도 외에 어떤 말도 하기 어려울거에요.
평소에 기도를 꾸준히 했었다면 ‘단순히 나만을 위한 기도’. 그 상황을 벗어나기를 바라는 기도'만 하지 않을거에요. 이 상황 속에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달라는 기도가 먼저 나올거에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시작되면, 그 때부터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가 시작이 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될거에요.
그러면 내 상황에 대한 어려움은 더 이상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해요.
그 안에 일하실 하나님을 진짜. 진심으로 기대하게 되거든요.
각자가 겪고 있는 그 상황과 일들을 받아드리는 것이 다 다를거에요.
똑같은 사건을 누구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상황이 굉장히 힘들고 마음이 어려울 수 있어요.
힘들다라는 감정은 굉장히 주관적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요즘 사회를 보면 우리 모두가 정말 다 동의할 수 있을 정도로 힘들고 각박한 시대가 되어 가는 것 같아요.
정치도, 사회도, 경제도, 물가도 모든 것들이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막 나가는 경우들이 참 많이 보이거든요.
저희 아내는 저에게 “예수님이 곧 오실 것 같다. 지진과 기근과 전쟁이 멈추지 않는다.”라는 말을 자주하는데, 정말 그 말처럼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것들이 정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보여요.
계시록에 기록된 것처럼 마치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날이 다가 온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정말 너무 많아요.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은 정말 늘 어려움과 힘듦 그리고 각박한 시대인 것처럼 보여요.
제가 토플 공부를 위해 성남에 있는 큰외삼촌 댁에서 한달 정도 머물면서, 매일 강남에 있는 학원을 다녔던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 때 진짜 완전 충격을 받았었어요.
시골에서 막 올라온 양휘석은 굉장히 들떠 있었어요. 도시 life와 출퇴근 지하철을 경험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대가 되었거든요.
제가 살았던 곳은 지하철이 없어요. 그리고 그 때만 해도 버스 앞 유리창에, 그 버스가 서는 정류장들을 안내하는 패가 꽂혀 있었어요.
여기처럼 몇 번 버스를 타면 어디를 간다 이런 것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을 때에요.
아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이게 20-30년 전 이야기가 절대 아니에요. 불과 10년 전 이야기에요. 시골은 그래요.
성남에서 강남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내려서 지하철 환승을 했어요. 그리고 저는 지옥을 맛봤어요.
사람이 많아서 너무 낑겨 가야 했기 때문에 지옥을 맛본게 아니었어요.
사람들의 표정이 표정이 아주, 누군가 건들면 바로 폭발할 것처럼 살벌했거든요. 굉장한 피곤에 쩌들어 있었고, 표정이 좋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정말 기계처럼 서 있기도 했구요.
새로운 곳에서 공부를 하고 지낸다는 설레임과 서울 life를 기대하고 왔던 저와 달리, 매일 그 지하철을 타던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던 것이죠.
저는 그 만원 지하철이 너무 충격이었어요.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문화충격을 겪은 것이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죠. 일주일만에 저도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서 무표정하게, 제발 누군가 나를 밀지 않기를 바라며 서 있었어요.
서울 life가 그런 것인 줄 알았다면 저는 절대 설레어 하지 않았을 것이고 올라 오지도 않았을거에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이 그랬어요.
야곱시대에 그들은 기근을 피해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으로 내려와 고센 땅에 정착을 했어요. 그들은 그 시기가 지나면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어요.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들이 그곳에 완전 정착을 해버렸고 400년 430년이라는 시간을 살게 되었어요.
처음 그 땅에 정착했던 사람들은 너무 행복했을거에요.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먹을 것이 넘치는 그리고 자신들을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최강대국 애굽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이 분명 설렜을거에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설렘은 점점 사라졌고, 풍부했던 먹을 것들도 점점 사라졌어요. 당연하게 주어지던 그 것들이 이제는 노동을 해야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자유를 박탈당한 노동자.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행복하고 편하게 지내는 동안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지 다 잊어버린 이스라엘이었어요.
기도가 쉽게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버틸만 했어요.
왜냐하면 내 힘듦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자녀들이 태어났고, 가족끼리 모여 어려운 상황을 함께 견딜 수 있었기에 그들은 행복했어요.
고통과 종살이와 절망 밖에 없는 사회였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가족이 있어서, 그래도 하나님이 계셔서 기뻐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바로 왕이, 그들에게 남아 있는 그 가정의 기쁨을 빼앗아 가는 정책을 발표했어요.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져 죽여라.”
정말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들의 희망을 바로 왕이 빼앗아 간거에요.
아이가 태어나면 가정의 축복이죠. 정말 기쁨의 잔치가 열리는 날이죠.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 날이 기쁜 날이 아니게 된거에요.
지금처럼 초음파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아이의 성별을 구분 할 수 없었을거에요.
딸인지 아들인지 모르는 그 아기를 10달동안 품고 있다 낳았는데, 아기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품에 안아 보기도 전에 나일강에 던져서 죽여야 하는 것이죠.
아기가 태어나는 날은 기쁨이 아닌 눈물과 통곡 그리고 절망만 남는 날이 되는거에요.
웃음을 잃어가고 희망이 점점 없어 보이는 그 때, 한 아이가 태어났어요. 성경을 보면 그 아이의 준수함. 아름다움을 보고 석 달을 숨겨 키웠다고 하고 있어요.
갓 태어난 아기를 삼개월동안 숨기면서 키웠다. 이 문장을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면 절대 안되요.
아기들의 특징이 뭐에요?
우는거에요. 틈만 나면 우는거에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울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계속 우는거에요.
울음소리만 듣고 남자 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어떻게 알아요? 울게 둬도 되는 것 아닌가요?
맞아요. 쉽게 눈치채지 못할거에요.
하지만 이 가족은 알잖아요. 울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을거에요.
사람들의 눈치도 봤을거에요. 더군다가 이 사람들이 살던 집은 방음이 빵빵한 집이 아니었어요. 굉장히 초라한 집이었어요. 울면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었어요.
결정적으로 갓 태어난 아이가 있는 집에 이집트인들이 와서 수색을 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 안에서도 내부 고발자가 있었을 수도 있었을거에요.
내 아들은 죽었는데, 왜 너 아들은 살려뒀어? 라고 하면서 고발 했을 수도 있죠.
서로를 견제하고 눈치를 살피며 의심하는 그러한 시기에 3개월 동안 아이를 숨기면서 키운 것은 정말 피눈물 나는 부모의 노력이 있었다는 거에요.
태어난 아기가 준수했다. 아름다웠다고 해요. 아기는 다 예쁘잖아요. 그럼 이 표현은 무엇일까요?
뭔가 말로 할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 외적인 아름다움 이상의 무엇 인가가 이 아기에게서 보였다는거에요.
여기에서 말하는 이 아름다움. 준수함이라는 표현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좋았더라"라고 하신 것과 같은 표현이에요. 뒤에 말하겠지만 바로의 딸도, 이 아기를 보고 “좋았더라"와 같은 감정을 느껴서 아기를 살려주거든요.
이 아기에게 정말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요즘 표현으로 아우라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죠.
삼개월을 숨겨서 키웠어요. 그런데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됐어요. 이젠 이 아기를 떠나 보내야 해요.
이 때 그 가정의 마음이 어떠 했을까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든 감정이 있었겠죠. 너무나 사랑하는데, 떠나 보내야 해요.
결국 그 엄마는 절박한 조치를 취하게 되어요.
갈대 바구니를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역청과 나무 진을 꼼꼼히 모든 부위에 바르기 시작해요.
모든 틈에 역청과 진을 바른 후, 갈대 바구니 위에 부드러운 천과 짚을 깔았어요.
무너지는 가슴을 뒤로 한체, 그 갈대상자를 갈대 밭 사이에 두었어요.
여러분 여기에서 우리가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장면이 있어요.
이 어머니는 갈대상자를 나일강에 떠내려 보내지 않았어요.
3절 하반절처럼, 정확하게 갈대 사이에 두었어요.
떠내려가지 않도록, 분명한 의도를 갖고 갈대 사이에 상자를 두었어요. 그리고 그 이후의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인도 해주시기를 기도했어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맡기고 있어요.
이 엄마의 이 행동을 통해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어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떠넘기듯 맡겨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시험 공부 안해놓고 시험 잘보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나, 승진이나 이직 준비 하나도 안해놓고 지혜를 주셔서 잘 되게 해달라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나도 내 할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 해야 한다는 것이죠.
갈대 사이에 두면 나일강에 서식하는 악어가 와서 잡아 먹을 가능성이 높았어요. 하지만 상관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거든요.
아기를 담은 갈대 상자는 히브리어로 테바에요.
이 것은 노아의 방주와 같은 단어에요. 노아의 방주가 어떤 역할을 했죠?
노아의 가족과 방주에 탄 동물들을 구원해주었죠.누군가를 구원했던 그 방주와 같은 단어가 갈대상자에 사용되었어요.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기가 담긴 이 상자는 아기를 구원하기 위한 방주였다는 것을 말해요.
아기의 엄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취하고, 하나님께서 아기를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갈대 사이에 상자를 두었어요.
그리고 바로의 딸 공주가 그 갈대 근처로 목욕을 하러 나왔어요.
여러분 이 모든 것들이 우연이었을까요?
아기를 구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갈대 사이에 두었는데, 때 마침 바로의 딸이 딱 등장한 것일까요?
아니에요. 미리 준비했을거에요.
같은 장소와 시간에 공주가 목욕하러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거에요. 그래서 그 때에 맞춰 아기를 놓고 공주가 아기를 발견하기를 그리고 아기를 향한 긍휼의 마음을 갖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있었어요.
아기 울음 소리를 제발 듣기를 바라는 비통한 심정으로 숨어서 아기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엄마의 소원대로 아기가 발견되었어요.
이제 정말 완전히 그녀의 손을 떠났어요.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역이에요.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신다면 이 아기는 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게 될거에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외에 답이 없는 상황이에요.
정말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숨을 죽이고 그 상황을 바라 보았어요.
공주는 갈대상자를 열어보고, 이 아기가 히브리인 아기라는 것을 알아 차렸어요. 히브리인의 아기를 다 죽이라 했던 아버지의 명령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동시에 차마 아기를 익사 시킬 수 없었던 엄마의 마음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공주는 아기를 죽일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 애굽 사람들은 이러한 의식을 통해 선서하던 내용이 있었거든요.
나일강은 많은 신들 중에 하나인데, 나일강에서 발견 된 아기는 신이 보낸 아기이다.
나일강의 신이 보낸 아기를
“괴롭히지 않는다"
“괴롭히거나 죽여서 누군가를 울게 만들지 않겠다.”
“젖을 빠는 아이의 입에서 젖을 빼앗지 않는다.”
물론 공주는 이 고백이 아니었어도 아기를 키웠을거에요.
왜냐하면 세상을 짓고 “좋았더라"라고 하셨던 그 고백이 아기를 본 순간 “공주의 고백"이 되었거든요.
아이를 살려서 키우기로 했는데, 문제는 이 아기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하나님이 일하셨어요. 이제 그 다음 공이 인간에게 돌아왔어요.
공주의 결단을 보자마자, 그 아기의 누나가 등장해서 “유모가 있다며 소개"해요. 그리고 근처에 있는 엄마에게 달려가서 당장 오라고 이야기를 해요.
아기가 살아 남았어요. 그 아기를 보러 가야 해요. 어떤 마음으로 달려갔을까요?
전속력으로 달려갔을거에요.
하지만 아기를 아는 척하면 안돼요. 그저 유모의 일을 하러 온 사람처럼 보여야 했어요.
아기를 보고 울어서도, 손을 떨어서도 안돼요.
살아남은 아기를 보고 가쁜 숨을 몰아셔도 떨리는 목소리도 안돼요.
무덤덤하게 살아남은 내 아기를 바라보면서, 유모의 역할을 해야 해요.
바로의 딸. 공주의 공식적인 허락과 보호를 받았어요. 아기를 계속해서 키울 수 있게 되었어요. 자식도 키우고 양육비도 받게 되었어요.
더 이상 내 아들로 키울 수는 없지만, 이 아이는 본인들이 키울 때와 다르게 좋은 것을 먹고 입고 교육을 받게 되었어요.

믿음과 계획

믿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오늘 이 아기의 엄마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어요.
믿음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을 멈추고, 될대로 되라는 식의 믿음을 갖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뒷수습 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삶을 사는 것일까요?
아니요. 절대 아니에요.
믿음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믿음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는 삶이에요.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미안하지만 저도 그렇게 못 살아요.
내 믿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산다? 어떻게 보여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말씀대로 한 1분도 살아내지 못할거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서는 안돼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위해 반드시 몸부림 쳐야 해요.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고 이루실 수 있도록 신뢰하는거에요.
믿음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믿음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는 삶이에요. 있는 힘껏 몸부림 치는 삶을 사는 것이 믿음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에요.
몸부림을 치면서 부딪쳐야 그 것이 온전히 나의 것으로 흡수가 되는거에요.
힘들게 어렵게 나의 어떠한 노력과 시간으로 얻게 된 것은 계속해서 나의 것으로 남게 되거든요.
아기의 어머니는 갈대 바구니에 아기를 담았어요. 어떤 심정이었겠어요.
될대로 돼라.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살겠고 아니면 죽겠지. 라는 그런 무책임한 마음으로 담았을까요?
아니에요.
3개월동안 마음 껏 울지도 못하게 했던 아기에 대한 미안함
더 이상 가족과 함께 할 수 없는, 아기를 버려야 하는 비참함과 미안한 마음으로 담았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니 이 아기를 하나님의 손에 드립니다. 라는 신뢰. 결과를 신뢰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에요.
하나님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며, 할 수 없는 영역에 하나님을 신뢰했던 그녀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어요.
노동의 대가를 받게 하셨을뿐만 아니라, 아기를 다시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어요.
이제 아기에게 어떻게 살아났는지, 히브리인의 뿌리가 누구이고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합법적으로 가르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아이가 6-7살쯤 되었을 때, 바로의 공주에게 데려갔어요. 그리고 그 때가 되어서야 아기가 이름을 갖고 불리게 되었어요.
그 이름이 무엇일까요? 맞아요. 바로 모세에요.
모세는 애굽말로 아들이라는 뜻이에요. 바로의 딸은 이집트의 방식대로 아이의 이름을 지었어요. 정말 단순한 뜻이죠.
이집트어로 ‘므시'라는 동사가 있는데, 이 것은 태어나다. 남자 아이라는 뜻을 가져요.
동사의 변형으로 모세. 아들 이라는 정말 단순한 이름을 지었어요.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이 단어가 히브리어로 오면, 건져내다.가 되어요.
아기가 모세가 앞으로 누군가를 건져낼 것이라는 의미를 담긴 이름이 된 것이죠.
하나님은 모세를 갈대 사이에서 구해준 것으로 일을 끝내지 않으신거에요.
아이가 자랄 때까지 합법적으로 지켜 줄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 주셨고,
결정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던 바로의 딸을 통해, 이스라엘을 건져내겠다.라는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셨어요.
믿음으로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한 여인의 삶이,
한 아기를 살렸고, 나아가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해내는 역할을 했어요.

우연한 사건은 없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목적과 이유를 갖고 살아가고 있나요?
여러분이 살아야 할 특별한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내가 원하는데로, 내 기도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라는 생각을 하며 낙담하고 있나요?
혹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시는가 등의 생각을 하고 있나요?
미안하지만 그래서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실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에요.
모세는 히브리인 가정에서 자랐어요. 그리고 지금은 궁에 들어왔어요.
모든 상황과 환경이 다 바뀌어 버렸어요.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 갈 나이의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환경으로 갔어요.
언어도 다르고, 공부해야 하는 것도 달라요. 어쩌면 매일 밤 유모가 없는 그 방에서 혼자 울었을지도 몰라요.
우리가 읽은 오늘 본문 1-10절을 보면,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아요.
한 여인이 레위가문에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았고, 몰래 3개월 키웠고 갈대 상자에 담아 갈대 사이에 두었다.
그리고 유모가 되어 아이를 길렀고, 때가 되어 궁으로 돌려보냈다.
이 이야기가 다에요.
하나님이 언급되지 않은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늘 일하고 계셨어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인정하고, 신뢰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사람을 향해 하나님은 확실한 결과를 보여주신거에요.
우리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세 가지를 반드시 깨닫고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해요.
첫째, 하나님을 신뢰한다 고백하세요.
하나님은 늘 나의 편이에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모든 목적은 바로 저와 여러분. 나 때문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상황을 허락하시고, 그 안에서 기도하게 하시고 몸부림 치도록 만드시는 모든 이유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요.
삶이 무너지거나 혹은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혹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을 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라 육성으로 외치면서 고백해야 해요.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히브리인들은 더욱 더 번성했어요. 더 강대해졌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반드시 적응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어요.
환경과 상황은 하나님의 통제를 받고 있고,
그 것을 통제하는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나의 편이기에 “하나님을 신뢰한다!”라고 고백해야 해요.
둘째,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다 선포하세요.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그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듣고 고민을 끝내고 날이 밝자마자 아들을 데리고 길을 떠났어요.
3-4일을 걸어 산에 도착했고,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는 그 길에서 “아들이 제물이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라고 말해요.
그리고 아들을 잡아 묶었고 죽여 하나님께 드리려 했어요. 하나님은 이삭을 살려주셨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제물을 정말로 준비해 두셨어요.
히브리 아기들이 태어나면 남자애들을 나일강에 던져야 했어요. 산파들이 아기를 죽이면 누구도 말릴 수 없었어요. 그런데 산파들이 아기를 죽이지 않았어요.
세상의 권세를 잡은 바로보다 하나님이 더 두려웠던 거에요. 그 분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산파들이 바로의 말을 듣지 않은거에요.
하나님의 도우심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찾아와요. 그 분의 일하심의 깊이와 생각은 우리가 절대 따라갈 수 없어요.
우리 스스로 그 분의 일하심을 제한해서는 안돼요.
일하고 계셨고 일하고 계시며 일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다.”라고 선포해야 해요.
마지막, 인내하겠다 결단하세요.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세요. 하지만 나의 시간표와 다르게 일하세요.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금방 떠날 줄 알았지만 오랜 시간 살았어요.
고통의 시간을 400년이나 보냈어요. 하나님이 없어진 것 같았어요.
하나님의 일하심이 끝이 난 것처럼 보였어요. 아들들을 다 죽여야 하는 상황까지 몰렸어요.
하지만 그들은 이 말씀을 붙잡으며 버텼어요.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 올 것이며"
무려 400년도 전에 하신 말씀이지만, 이들은 붙잡고 신뢰하며 도우실 것을 믿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일하셨어요.
내가 기도하는데로 원하는데로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지면 너무나 좋겠죠. 그럼 우리는 하나님을 더 이상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을거에요.
그 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거에요. 그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럭키요정으로 여기게 될거에요.
하나님의 존재를 격하시키고 무시하게 될거에요.
하나님은 그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되는 존재에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그런 대우를 평생동안 받으며 지내오셨어요. 그리고 다 참고 인내해내셨어요.
저와 여러분이 “인내하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돕기를 선포할 때까지" 참고 계셔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한주 이 세가지를 꼭 기억하며 되내이며 살아가세요.
첫째,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고백하세요.
둘째,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다 선포하세요.
셋째, 인내하겠노라고 결단하세요.
모세의 시대에 일하셨던 그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 세가지 고백을 통해 만나는 은혜가 넘치는 이번 한주가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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