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05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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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views주님만을 의지하고 만나고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우리의 삶의 터전 속에서 만들어 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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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마 나욧
나의 라마 나욧
골리앗을 죽인 후 사울은 다윗을 집으로 보내지 않고 왕궁에서 살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윗은 계속해서 전쟁을 하였고 나가는 전쟁 마다 승리를 하였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군대 장관에 임명 하였고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합당하게 여길정도로 다윗은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을 좋아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다윗이 과거 골리앗을 죽이고 성안으로 들어왔을 때, 여자들이 길거리에서 노래를 하길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다" 라며 사울보다 다윗이 세운 공이 더 크다고 노래를 하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 하고 질투하기 시작하였다.
이게 다윗의 입장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지금 다윗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이다. 그렇다면 다윗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지 않겠는가? 기대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이기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좋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울왕이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그냥 미워하고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늘 본문을 보며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우발적으로 이번 한번만 이러난 것이 아니라, 오늘 본문 바로 전인 18:10 이하에 보면 자신을 위해 수금을 타는 다윗을 죽이려고 창2번이나 던졌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에서도 악령에 싸여 괴로워하고 있는 사울을 위해 다윗이 수금을 탈 때 또 사울은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어 다윗은 도망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군사를 다윗의 집으로 보내 죽일 것을 명령하였다. 이에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아내인 미갈이 다윗을 도망치게 도와주게 된다.
수련회때도 이야기 하였지만,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소위 성령충만함을 경험 했다고 해서 우리의 앞길이 내가 원하고 바라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예수 믿고 복받으라고 말한다.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100% 정확한 말은 아니다. 우리는 예수 믿고 복받아야 하는가? 아니다. 여러분들이 이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복을 받은 것이다. 다시말해 우리는 예수 믿고 복받는 것이 아니라, 복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지금 다윗의 상황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지금 고난 가운데 있다고 생각 할 수 있다. 물론 육의 눈으로 보면 그는 고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인가? 사울이 왜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죽이기까지 하려고 하는 것인가? 그이유는 분명하다. 그가 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다면 사울이 다윗을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다윗의 상황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다. 뭐하나 되는 것이 없어보이기까지 한다. 다윗이 지금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 본문에 또 사울을 위해 수금을 연주한다. 다윗은 어떤 마음에서 사울에게 수금을 연주하는 것인가? 아마 사울이 지금 정상이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측은한 마음도 있고, 원래 사울이 그렇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회복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그 사람 앞에서 다시 나와 수금을 연주하는 것이다.
(마치 술만 마시면 가정폭력을 하는 남편과 사는 아내가 이혼하지 않는 이유가 “우리 남편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천사에요, 그래서 술만 안마시면 너무나 좋은 사람이에요" 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다윗에게 생기는 일은 계속해서 어려움 뿐이다. 다윗은 긍휼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사울은 왕으로 인정하였는데 돌아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울의 모습이다. 다윗이 얼마나 실망감이 크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다시한번 이야기 하지만, 다윗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지 않았다면 다윗은 이러한 어려움을 격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묘하한다. 사무엘상 18:14
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다윗이 지금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성경이 분명히 이야기 하는 것은 그러한 다윗에게 누가 함께 하신다는 것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누가 떠오르지 않는가? 바로 요셉이다. 요셉은 어린나이에 형들의 미움을 사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고 거기서도 잘 될만 하니깐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얼마나 비극적인 상황인가? 누가봐도 부러워할수 없는 삶이 요셉의 삶이 아닌가? 그런데 성경은 그때마다 뭐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지금 당장은 힘든일이 나에게 몰려오는 것 같아보이고, 심지어 고난과 환란은 왜 그렇게 겹쳐오는지.... 내 힘으로 도저히 무엇하나 할 수 없을 정도로 버거운 때가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눈물 밖에 나오지 않는 때가 있다. 아마 지금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청년이 있을것이다. 그런데 그럴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내가 주님을 구세주로 믿는 이상 내가 예수님을 나의 삶을 주인으로 고백하는 이상, 주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 다윗과 함께하신 그 하나님이 지금 나와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하고 믿어야 한다. 내가 주님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아보여도,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주님을 붙잡고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자. 그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주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신 것이다. 이것이 온전히 믿어지길 바란다. 내가 주님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신다.
그러니 우리의 삶속에서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있다면, 나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길 바란다.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벌려 놓으려고 할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주님을 찾지 못하고 나 혼자인것 처럼 착각하게 만들 것이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전지전능하신 그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끝내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지금 다윗은 사울을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사울의 군대의 수장으로 누리던 명성대신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사무엘의 기름부음이 이런 도망자의 삶으로 다윗을 내몰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골리앗을 물리치고 사울의 사위가 되었을 때만해도 사무엘의 기름 부음이 성취되는가 싶었지만, 결국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다윗이 어디로 도망갔는지 아는가? 사무엘상 19:18
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다윗이 사울의 눈을 피해 도망간 곳은 바로 라마라는 지역이다. 라마는 선지자 사무엘의 고향이자 사무엘의 활동지이다 그리고 사무엘이 사울을 처음 만난 곳도 라마이다. 지역적으로 보면 지금 사울왕이 있는 곳이 기브아인데 라마는 기브아에서 북쪽으로 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역이었다. 따라서 다윗은 사울이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사울을 피해 있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울과 사무엘이 만났던 곳이 라마이기 때문에 사무엘에게도 라마는 익숙한 곳이다. 그러기에 사울의 눈을 피해 라마로 도망한 것은 인간적인 판단에서는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있는 라마로 피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은 어려움이 찾아 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는가? 때때마다 다르겠지만 그때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을 할 것이다. 다윗의 입장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사울을 피해 멀리 도망칠 수 도 있었다. 그리고 사울을 대적하기 위해 많은 군사를 모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있는 라마로 간 것이다. 이것은 지금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오직 하나님분이라는 믿음이 다윗에게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우리도 우리의 삶속에서 어려움을 만났을때 나만의 라마 나욧으로 피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시는 곳,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곳으로 우리는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그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주님 앞으로 나오는 이시간이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힘들수록 우리는 이곳에 모여야 하고 우리의 삶속에서 버거울 수록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앙공동체에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또한 나만의 라마 나욧을 만들어야 한다. 주님만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나만의 라마나욧을 만들어야 한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하나님과 온전히 교제 할 수 있는 나만의 라마나욧을 만들어 우리의 삶속에 힘들고 어려움이 닥쳐 올 때마다 주님과 온전히 교제하며 주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