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동행하는가?

리딩지저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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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은 평생 믿음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구원 얻고, 믿음으로 구원을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사역은 성도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구역과 전도회와 부서 등 교회의 모든 모임은, 성도의 믿음에 유익한지를 잘 살펴서 기획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올해는 여러분의 믿음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데 초점 맞춥니다. 이를 위해 리딩지저스 성경통독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읽기를 기획했습니다. 정해진 성경 말씀을 온 성도가 같이 읽고,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같은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새벽기도회도 하루 읽을 분량 중에서 핵심 되는 장을 설교합니다. 주일 오전 설교도 지난 주간에 읽었던 말씀 중에서 한 본문을 선택하여 설교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읽었던 말씀을 기억하고, 한 은혜 안에서, 한 믿음으로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지난 주간 창세기 전반부를 통독했습니다. 창세기는 시작의 책입니다. 창세기를 읽으면 시작에 관한 궁금증이 풀립니다. 하늘과 땅의 시작, 우주의 시작, 천지와 바다에 있는 만물의 시작, 인류의 시작, 부부의 시작, 가족의 시작 등 모든 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창세기가 보여줍니다.
지금까지 창세기를 많이 읽었지만, 저는 이번에 읽으면서 자문자답하며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나는 누구와 동행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창세기를 읽으니까, 만물을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반면,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즉 세상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세상과 동행하는 사람은 다수였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한 주간 통독하며 저 자신에게 계속 물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동행하고 있는가? 내가 품었던 생각과 마음은 누구와 동행하는가? 그리고 다수가 세상을 따르고 있다면, 다수가 위협하고 압박하는 불안을 이겨내고,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결단하는 소수의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용기가 내게 있는가?
이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창세기 전반부에, 세상과 동행하는 다수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소수를 계속 위협하고 압박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나는, 세상을 따르는 다수의 어떤 위협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목숨 걸고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할 믿음이 있는지 저 자신에게 계속 되물었던 것입니다.
1.대조
오늘 읽은 본문은 같은 세대에 사는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사람을 대조합니다. 9절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1절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두 구절은 의롭고 완전한 노아(9절)와 부패한 온 땅(11절)을 대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 포악함으로 가득한 온 땅을 대조합니다. ‘동행’은 ‘걷는다’라는 뜻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걸었고, 하나님으로 가득 채운 반면에, 온 땅은 포악함으로 가득 채운 모습입니다. 이 대조를 통해, 다수의 ‘온 땅’이 부패하고 포악함 가운데, 소수의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의롭고 완전하게 살려는 힘겨운 몸부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온 땅이 부패한 원인을 12절에서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대다수 사람의 행위 하나하나가 부패했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총체적 부패로 포악함이 온 땅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13절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인간의 포악함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내리신 결론은 멸하시겠다는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반면에 세상의 포악함과 동행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의롭고 완전하게 살던 노아에게는 구원을 선언하셨습니다. 14절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노아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구원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온 땅이 포악하여 심판할 것인데, 노아 너는 나와 동행하였으므로 심판 때에 너를 구원하겠으니 지금부터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슨 이유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무슨 이유로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포악한 자는 심판을, 의롭고 완전한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포악한 자는 부패한 세상과 동행하고, 의롭고 완전한 자는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포악함이 심판의 원인이었습니다.
2.포악함
이제 포악함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면서, 나의 행위 하나하나에서 혹 포악한 요소가 없는지 자세히 살펴야만 발견하여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포악이 무엇일까요? 6:1~2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포악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해석의 중요한 실마리는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 행위”(2b)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들들이 딸들을 보고 아내로 삼는데, 자기들이 보기에 좋다면 누구든지 아내로 취하는 행위입니다. 아내가 있는데도, 길을 가다가 자기 마음에 드는 어떤 여인을 봤다면 아내로 삼아 버립니다. 그런데 만일 그 여인이 혼인하여 남편이 있다면, 어떻게 그 여자를 자기 아내로 삼겠습니까? 방법은 그 남편을 없애야 합니다.
더 많은 여자를 아내로 얻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여인들이 남편이 있다면, 마음에 드는 여인들을 아내로 삼고자 하는 만큼 많은 남편을 제거해야 합니다. 고대 시대는 여인의 남편을 죽이려면 그 남자를 짓밟을 수 있을 만큼 힘이 있어야 하고, 무기가 있어야 하고, 강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 주변이 이렇다면 얼마나 무섭고 소름 돋는 이야기입니까? 이것이 내 이야기라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고대 시대에 입장 바꿔 생각) 따라서 창세기에서 ‘포악함’이란 다른 사람을 짓밟고 죽여서라도 자기 마음에 좋은 것을 취하려는 모든 행위를 말합니다. 그것이 사람만이 아니라, 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무엇이든지 간에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상대를 제거해서라도 취하려는 행위,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포악함이요, 하나님이 탄식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이런 악행이 너무 많았습니다. 4절에 보면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라고 하면서, 그 네피림이 어떤 자들인지 바로 이어서 소개합니다.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네피림은 용사, 곧 전쟁에서 싸우는 사람입니다. 힘 있고, 무기가 있고, 강합니다. 그런데 그 용사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기 위해 많은 남편의 피를 흘립니다.
창세기 10장에는 니므롯이란 사람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여호와 앞에 용감한 사냥꾼이로다”(9절).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포악함으로 사람을 잡는 사냥꾼이란 말입니다. 청부살인업자들입니다. 청부살인업자를 매수한 배후의 악한 자들입니다. 사탄에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이 포악한 일이 얼마나 유명했는지 고대에 명성이 날 정도였습니다. 힘없는 사람이 얼마나 죽었겠습니까? 소중한 가정이 얼마나 파괴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정의가 사라진 세상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어떻게 이토록 악할 수가 있는지 하나님은 너무 분노하셔서 3절에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5절에 그런 사람의 계획은 항상 악하다는 것을 아시고, 7절에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고 심판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노아시대 네피림은 그 시대만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오래전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까지 거슬러 갑니다. ‘네피림’이란 단어의 원뜻은 ‘안색이 변하다.’입니다. 어디서 많이 읽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창세기 4:5~7절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선을 행하지 않고, 그 상태로 예배를 드렸으니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왜 네가 화를 내며, 안색이 변하느냐?”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왜 네피림이 되려고 하느냐, 왜 포악해지느냐”입니다. 결국 그는 회개할 기회를 버립니다.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도 싫고, 동생도 꼴 보기 싫어서, 죄가 원하는 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무고한 아벨을 살해합니다. 포악함이란, 우리 앞에 놓인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행하는 모든 일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시는데, 여러분의 마음에 든다고 그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말입니다. 죄는 다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안색이 변하고, 포악해지는 이 시대의 네피림이 될 수 있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면, 가인의 포악함을 보고 자란 후손들이 가인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을 대조하겠습니다. 창4:23 “라멕이 이르되,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라멕은 가인의 후손입니다. 자기에게 상처 입힌 자를 용서하지 못했고, 분노했으며, 죄를 다스리지 못했고, 하나님이 금하신 일을 자기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는 네피림이 되었습니다. 부모의 비신앙적이고 반신앙적인 포악함을 보고 자란 자녀에게 그 행태가 전가된다면 무섭지 않습니까? 이와 대조적으로 죽은 아벨 대신 셋의 후손인 에녹에 대해서는 성경이 이렇게 기록합니까? 4: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가인, 라멕, 네피림의 계보와 셋, 에녹, 노아의 계보를 대조해보십시오. 가인과 라멕과 네피림 계보는 대다수입니다. 온 땅에 퍼져있습니다. 세력이 막강합니다. 그 배후에 사탄이 조종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지만,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계획하고 행동합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갑니다. 자기들은 옳다고 여길지 몰라도 그곳에는 하나님의 정의가 사라진 시체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만의 성을 쌓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떠난 뒤에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자기 보호를 위한 성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높은 성을 쌓고, 강한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왜요? 더 강해지기 위해서, 원수를 더 짓밟기 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실제로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큰 성을 쌓고,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반역한 네피림의 인생입니다. 이들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심판이 기다립니다.
반면에 셋, 에녹, 노아의 계보는 소수입니다. 미약합니다. 세력이 약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을 쌓은 것과는 달리,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셋, 노아, 아브라함 등) 하나님이 금하신 일을 멀리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이유는 여인의 후손이 뱀의 후손, 곧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네피림처럼 포악함이 아닌,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자기가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며 살았습니다. 네피림의 거대한 다수의 세력에 동화되지 않았고, 굴하지 않았고, 악한 세대에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의를 전파했던 노아. 22절에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이들의 마지막은 구원이 기다립니다.
3.의로움
창세기 전반부를 읽으면서 여러분은 누구와 동행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면서 우리 안에 네피림의 삶이 있지는 않습니까? 위대한 성군 다윗 왕도 유부녀 밧세바를 아내로 취하려고,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다윗도 자기가 좋아하는 여인을 아내로 삼는 네피림의 포악함이 내재 되어 있었습니다.
이 일로 그는 침대가 젖을 만큼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금하신 일인데, 자기가 보기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선악을 아는 열매를 취한 하와의 행위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의 포악함과 같았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 네피림의 포악함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간절히 회개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의 영이 영원히 포악한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택한 백성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가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눈물로 기도한 것입니다.
의롭고 완전한 노아라고 해서, 그가 죄 없는 완벽한 사람이란 뜻이 아닙니다. 그도 연약했고, 강하고 포악한 네피림들 앞에서 두려웠지만, 구원을 주실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신뢰하며 말씀을 따라 준행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의 의로움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금하신 일을 내 마음에 든다고 마음대로 취하는 네피림의 악함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내 생각과 마음을 살펴서, 세상을 따르는 다수가 위협하고 압박해도 그 불안을 이겨내고,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결단하는 소수의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강력한 네피림이 판을 친 가장 악한 시대에 사람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로 오셔서, 포악한 세상을 향하여, 친히 십자가의 사랑을 보여주신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대로 취하며 살지 않으셨고,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며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과 동행하셨습니다. 죄의 권세와 끝까지 싸우신 예수 그리스도, 포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의를 따르는 자들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 세상에 굴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과 끝까지 동행하신 예수 그리스도, 이런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 아버지와 동행하는 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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