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었는데 거듭날 수 있을까?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➁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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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John 3:1–5 NKRV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삼성그룹의 창업주셨던 故이병철 회장께서 1987년 타계하기 한 달 전에, 한 천주교 신부에게 스물네 가지 질문을 남겼습니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에서 시작하여 ‘종말은 언제 오나?’에 이르기까지 그 분이 평소에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할 수 없는 매우 실존적이면서도 신과 인간에 관한 절박한 질문이었습니다.
마침 10여 년 전쯤에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이라는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이 되었는데요. 저도 꽤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책의 내용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인상 깊었던 질문 몇 가지가 이렇습니다.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신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예수는 우리의 죄에 대해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주로 이런 유의 질문들이었습니다. 당대에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이며 재계의 거물이셨던 이병철 회장님의 이 질문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분이 폐암 선고를 받고 2년간 투병 중에 당신의 삶을 돌아보며 또 죽음을 예견하며 깊은 고뇌를 하면서 던진 24가지의 이 질문은 단순한 물음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니고데모도 이런 종교적이면서도 실존적인 고민으로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오게 됩니다. 니고데모는 당시에 율법과 성경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역사가였던 요세푸스라는 사람은 헤롯왕 시대에 팔레스타인의 총인구가 50만 명 정도인데, 그중에 바리새인은 6천 명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은 상위 1%에 속하는 종교엘리트들이었던 셈이죠.
1절을 보니 심지어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합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국회의원들의 모임인 산헤드린 공의회 즉 로마가 위임해 준 범위 내에서 유대인들의 정책을 결정했던 71명의 고위인사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니고데모는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어쩌면 떠돌이 랍비처럼 보이는 예수님을 찾아온 것 아닙니까? 언제 찾아왔을까요? 2절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밤”이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닉스’(nyx)라는 단어는 ‘어둠에 속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였지만, 아직은 어둠에 속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라는 이름의 뜻은 ‘사람들을 이긴 자’ 즉 ‘정복자’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볼 때 하나님께로부터 온 메시아처럼 뭔가 비범하지만 뭔가 정복자 같지는 않고 그냥 떠돌이 랍비 같아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직접 밤중에 찾아온 것입니다. 마주 앉은 니고데모가 먼저 말문을 엽니다. 2절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3절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이에 니고데모가 물러서지 않고 예수님의 말을 받아치게 됩니다. 4절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아니 어떻게 나이 든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여러분들은 니고데모의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예수님이 행한 기적이 하나님 나라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그렇지 않다면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엉뚱하지만 면도날과 같이 날카롭게 반문하는 니고데모를 보십시오.
실제로 요한복음 3장 전체를 들여다보면,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는 종교 역사상 최고의 대담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니고데모와의 대화 뒤에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복음의 핵심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이 두 남자의 대담은 ‘영생’이라는 주제를 두고 하나님의 아들과 유대교 최고 종교엘리트가 벌인 토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니고데모가 던진 날카로운 지적과 바보 같은 대답에 대한 깊은 의도가 무엇인지를 해석해 봐야 하는데요.
오늘 본문을 통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당시에 죄인 취급을 받던 세리와 창기 같은 사람들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하지 않으시고 경건한 바리새인에게, 그것도 그가 유대인의 지도자이며, 산헤드린 공의회의 의원이면 최소한 사 오십대의 중년 남자일 텐데, 왜 그런 중년남자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을까요?
둘째, 당시의 종교엘리트였던 니고데모는 왜 이런 유치하기 그지없는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진 것일까요? 이 두 가지 질문을 염두에 두면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여러분, 유대교의 지도자가 이 정도의 칭찬을 했다면 대단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덕담으로 응수하지 않고 무례하다 싶은 말을 쏟아내십니다. 3절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을 때, ‘거듭’이라는 말의 헬라어 원문에는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헬라어로 ‘아노센’이라고 해서 ‘다시 한번’이라는 뜻도 있지만, ‘하늘로부터, 위로부터’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의미를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거듭남이란, 다시 한번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태어남은 하늘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이 중에 첫 번째 의미인 ‘다시 한번 더 태어나야 한다’ 이 말만 귀에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은 늙었는데 어떻게 다시 날 수 있겠냐는 것이죠.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 것을 육신이 거듭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영생의 문제를 육신의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6절과 7절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육신의 나라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복자로 오신 게 아니라는 것이죠. 이 땅의 나라와 같이 영토를 두고 전쟁을 해서 왕으로 등극하는 그런 정복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지금도 어쩌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거듭남’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을 단계별로 자세히 알아보길 원하는데요. 거듭남을 위한 첫 단계는 ‘자신의 문제를 정직하게 인정하기’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외모만 보면 별문제 없어 보이지 않습니까? 늘 멀쩡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내면세계는 그렇지 않은 분들이 많더라는 것이죠. 젊고 건강할 때는 잘 모르지만, 육신이 늙어가면 자신감도 없어지고 건강 때문에 어려움 당하지 않을까 불안한 게 우리 인간 아닙니까? 뭔가 초연하게 살아가고 싶지만, 이 열등감과 우울감은 늘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옵니다. 자족하고 감사하고 싶지만,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이 생기는 게 우리 인간의 삶인 것 같습니다.
힘이 있는 시절에는 어떤가요? 대단하지는 않아도 나름대로 진실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살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나를 속이고 이웃을 속이면서도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죠.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고 서로 다치면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점점 내면의 깊은 공허함을 달랠 길이 없는 것이죠.
우리가 사회나 세계로 시각을 넓혀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가 정말 심각하죠. 0.81명으로 세계 1위라고 합니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에 280조를 쏟아부었다는 뉴스가 무색하게 작년 출산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 나라에서는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 아닙니까?
뭐 국제 정세는 더욱 힘들죠. 중국과 미국, 거기에 러시아까지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에서 우리나라는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합니다. 치솟는 물가와 연료비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잖아요? 이런 현실들이 보고 싶지 않아 TV 프로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며 잊으려고 하는 게 우리 일상 아닙니까?
이것이 우리가 살고있는 깨진 세상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미래는, 육체적으로는 점점 쇠하고 내면도 공허해지면서 결국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병철 회장님도, 니고데모도 그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의 질문은 어리석은 우문이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것은 좀 아닌데’ 하면서도 텅 빈 가슴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차원에서 거듭남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두 번째 단계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받아들이기’입니다.
우리는 물론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소멸되어 가고 있으며 구약의 에노스처럼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 아닙니까? 그것을 인식하고 살아가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이 두 번째로 단계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은요. 늘 하나님을 멀리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중심축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떠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당연히 인간성을 상실하고 외로움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죠.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데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이 질문에만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일 뿐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요.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자녀 삼으시기 위해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셨습니다. 그 대가는 우리 생명 대신에 사랑하는 아들 죽음으로 내어 주신 십자가의 사건 아닙니까?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2절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4절, 15절 합독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놋뱀을 만들었듯이, 나도 죽어가는 당신을 살리려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드디어 하나님의 치료책, 영생을 얻을 처방전을 제시합니다. 16절 합독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아들을 믿는 사람은 절대로 버려지지 않고 누구든 빠짐없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하나님의 치료책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린 그 불뱀을 형상으로 만든 놋뱀을 바라보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 뱀에 물린 백성들에게 놋뱀을 쳐다보라고 하니 얼마나 끔찍했겠어요?
십자가에 끔찍하게 달려 죽으신 예수님,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영생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믿기만 하면 말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너무 불공평한데요. 저는 열심히 착하게 살았는데, 그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고 그냥 믿기만 하면 된다고요? 나쁜 짓만 하다가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달려 죽은 강도처럼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으면 되는 건가요?”
이런 분들에게는 십자가 사건이 너무도 이상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처럼 겉으로는 반듯하고 선하지만, 내면은 밤거리를 헤매는 것처럼 어둠으로 뒤덮여 있는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틀림없는 치료책이 될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말 그대로 ‘Good News’ ‘복음’이 되는 것이죠.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 말씀이 정말 기쁜 소식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자, 이제 “사람이 늙었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이 니고데모의 질문을 마지막으로 살펴보길 원하는데요.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5절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복음서를 통해 “진실로 진실로”라는 반복된 표현을 쓰시는 이유 아시죠? 정말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 아닙니까?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까 “물과 성령으로 난다”라고 바꾸어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이 말 여러분들 중에 처음 들어본 분 계십니까? 신앙생활을 어느 정도 하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표현 아닙니까? 그러나 당시에 예수님께 직접 이 말씀을 듣은 니고데모에게는 매우 낯선 말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내가 유대인이기에 구원받는다고 생각했던 사람 아닙니까? 그런 선민의식에 빠진 이에게 뒤통수를 치는 말이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유대인이고 바리새인이기 구원을 받는 게 아니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태신앙이냐, 목사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내 존재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표현한 것 아닙니까?
그러면 어떻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 말씀의 배경이 있습니다. 에스겔서 36장과 37장이 그 배경인데요.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민족이 죄를 짓게 되자,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통해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포로로 끌려가 각자 흩어져 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모으실 때가 온다고 말씀하세요. 그때 하나님께서 맨 먼저 하시는 일이 그들을 물로 깨끗하게 닦아 주십니다. 겔36:25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여기서 그치지 않으시고 그다음에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준다고 하십니다.
겔36:26(새번역)
26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속에 새로운 영을 넣어 주며, 너희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갗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며
굳은살 박이면 아프잖아요? 여러분 우리 마음이 굳은살 박여 있을 때가 많거든요. 마음이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뭐예요?
첫째는 물로 씻어주십니다. 그다음에 굳은살과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새 살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을 그 속에 심어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하시는 처방이 에스겔 36:27절입니다. (새번역)
27 너희 속에 내 영을 두어, 너희가 나의 모든 율례대로 행동하게 하겠다. 그러면 너희가 내 모든 규례를 지키고 실천할 것이다.
화면에 거듭남의 과정을 정리해 봤습니다.
➀ 물로 씻어주심 ➁ 굳은 마음을 도려내심 ➂ 새로운 영을 심어주심
그래서 에스겔 37장을 보면, 해골의 골짜기에 하나님의 영이 불어와 하늘 군대를 형성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난다고 하고요. 여러분, 거듭남에 대해서 무엇인지 그림이 좀 그려지시나요?
우리가 씻어져야 하고,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갓 태어난 갓난아기의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들어오는 것이죠.
씻어주시고 도려내시고 새 살처럼 돋아난 마음에 새로운 영을 심어주실 때 비로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 얘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8절 합독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여러분, 바람은 눈에 안 보이지만 바람이 분다는 것은 다 알잖아요? 바람이 내 뺨을 스치기도 하고 바람 때문에 나뭇잎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사시나무 떨듯이 떤다고 하잖아요? 바람 때문이죠. 은 사시나무가 반짝반짝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 바람이 부는구나’ 알게 되잖아요?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안에 성령이 임했을 때, 알게 되거든요. 그리고 성령이 임한 사람은 육의 생각을 멈추고 영의 생각만을 하게 됩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죠. 이제 니고데모가 대답을 합니다. 9절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절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안타깝게도 니고데모는 아직도 온전히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평생 믿고 따르던 세계관이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그 세계 속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정말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있군요” 여전히 육의 생각에 머물러 거듭나지 못하는 니고데모를 보며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다행인 것은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책망만 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지도자이며, 종교엘리트였던 그가 찾아와 진지하게 묻는 그를 보면서 여전히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인정해 주고 계시잖아요? 우리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십니다.
물론 니고데모가 그 자리에서 바로 변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에 니고데모는 다시 등장합니다. 그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려고 당시에 살벌했던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비싼 향유와 몰약 백 근을 드려 예수님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했습니다(요19:39).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십자가의 죽음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의 행동을 보면 예수님을 만난 다음부터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오늘도 주님은 여러분을 찾아가십니다. 진지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길 원합니다. 아직 단 한 번도 예수님 앞에서 나의 마음을 드리면서 “그렇습니다. 주님, 저는 죽어가고 있고 주님이 제 마음에 오셔야 제가 다시 살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을 해 본 적이 없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았지만, 다시 돌같이 마음이 굳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이 바람처럼 불어오지만, 민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존중해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저 우리의 진심을 원하실 뿐입니다. 우리가 다시 태어나길 바라고 계십니다. 씻어주시고 도려내시고 새 살처럼 돋아난 마음에 새로운 영을 심어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가 진실하게 나의 문제를 인정하고 하나님만이 나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믿을 때, 그분의 치료책인 십자가를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성령께서 내 마음에 훅 들어오셔서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의 니고데모처럼 지금은 듣고도 모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니고데모를 포기하지 않으신 것처럼, 여러분들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3장을 지나, 그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주인 삼은 것을 내려놓고 진짜 주님을 모시는 요한복음 19장의 인생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예배가 회복되기 시작하고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삶의 의미가 분명해지기 시작합니다. 목표가 생기고 헝클어졌던 인생의 많은 부분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육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을 추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모든 것이 바로 다시 태어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우리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다시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랑의 해결책을 기꺼이 받아들여서 다시 태어남을 누리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제 씻어주시고 도려내시고 새 살처럼 돋아난 마음에 새로운 영을 심어주시는 거듭남의 역사가 모든 성도님들 위에 충만하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 : 내가 주인 삼은
❙합심기도
말씀 붙들고 기도. 주님, 니고데모처럼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는 분들이 혹시 계신다면, 우리를 씻겨주시고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해 주셔서 새로운 영을 부어주시는 주님의 해결책을 받아들이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를 보는 눈이 열리도록” 한목소리로 함께 기도.
❙마침 기도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나의 문제를 정직하게 내려놓고 십자가를 통해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해결책을 받아들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죄를 씻어주시고 돌처럼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새 일을 행하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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