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 그리고 십자가] 용서 이상의 자유를 향해(눅23:34)

가상칠언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37 views
Notes
Transcript
일시 : 2023년 3월 5일 주일 청년부
시리즈 : 가상칠언, 그리고 십자가
제목 : 용서 이상의 자유를 향해
본문 : 누가복음 23장 34절 *신139
결단찬양 : 예수 피를 힙입어
[도입]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게 됩니다. ‘Double Income, No Kids’ 의 앞글자를 따 만들어진 ‘딩크족’도 서로를 사랑하지만 각자의 자유를 위해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최근 이 딩크족들이 서로 문제를 느끼고 있는 글 하나를 보았습니다. 서로 자유를 추구하며, 각자의 스케줄과 일들을 위해 거의 매일 밤 사람들을 만나러 나갔는데, 그렇게 하고보니, ‘이렇게 살거면 왜 결혼한거지?’ 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이 결혼하며 ‘딩크족’ 선언한 것이 후회가 된다는 글이었습니다.
또한 중국에는 ‘탕핑족’이라하여, ‘열심히 노동을 해도 대가가 없는 중국 사회의 노동 문화에서는 최선을 다해 눕는 것이 더 현명하다.’ 라며 정치적 상황을 비꼬는 것과 동시에 자신 인생의 자유를 추구하는 자들을 탕핑족이라 합니다.
처음에는 이 탕핑족이 소수 몇 명의 일이었는데, 이젠 이 탕핑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많은 이들이 탕핑족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 탕핑족의 문화가 다른 나라들에도 전파되어 각자의 나라에 맞게 단어가 탈바꿈 되어 사용되고 있다 합니다.
결국 이들이 원하는 것, 또 인간이 원하는 것은 후회도 없는, 문제가 되지도 않는 자유를 추구하고 또 추구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담 오늘날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우리도 자유를 추구할 수 있고, 또 지금도 추구하며 살아가는데, 끝내 후회가 온다면,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자유를 추구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우리 삶에 문제가 된다면, 우리 신앙에 문제가 된다면 우리 삶에 자유라는 단어를 지워버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성경은 죄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행복해지고 나를 통해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담겨져 있는 이 누가복음은 이를 ‘죄 용서’와 ‘희년’이라는 키워드 속에서 자유를 말합니다.
[본문 속으로]
저번 주 우리는 마태복음 27장 46절,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외침 속에서 버림받은 임마누엘, 그로인해 우리와 함께 한 임마누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누가복음 23장 34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십자가가 주는 후회없는, 또 문제 하나 발견되지 않는 자유를 함께 나누며, 또 우리 삶에 이 자유가 온전히 임하길 결단하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 : 용서의 십자가 그 이상인 희년의 십자가]
오늘 본문을 한 번 더 읽어 봅시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힘에도 ‘구원’에 대한 생각 뿐이셨습니다. 정말 구원밖에 모르는 바보처럼 말이죠.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저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게 예수님입니다.
어쩌면 누가는 그런 예수님을 더욱 나타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은 다른 사복음서에 비해 ‘잃어버린 자를 찾는 것’에 대해 더 많이, 더 자주 표현합니다. 그래서 구원, 구원자, 구원하다 등의 단어들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역시 구원에 대한 행위가 기록되어 있음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먼저 ‘저들’입니다. 저들이 누굽니까? 일차적으로는 정말 눈 앞에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로마 군인’들 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매단 로마 군인들만을 본 것은 아니었을겁니다. 만약 로마 군인 한정의 구원이었다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제한적 사역에 그쳤을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외친 ‘저들’은 로마 군인을 비롯하여 자신을 못 박도록 모함을 한 유대인들까지도 포함한 외침이었을 겁니다.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죄인 모두를 포괄하는 하나님의 외침이었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이런 ‘죄 용서’는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 매우 핵심이 되는 사역이었습니다. 사역뿐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셔 살아가는 이 삶에 핵심 키워드였습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의 용서의 십자가는 그저 용서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은 십자가를 용서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희년의 십자가로서 나아감을 기록합니다. 즉 누가복음의 십자가는 용서의 십자가이자 그 이상 희년의 복음을 위한 십자가가 됩니다.
[본문 ; 사하다, 용서 이상의 자유]
34절을 한 번 더 봅시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사하다’라는 표현은 용서하다라는 뜻임을 문맥을 통하여서도 충분히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하다라는 표현을 헬라어로 ‘아피에미’라 쓰는데, 이 단어에는 단순 ‘용서’가 아닌 ‘자유롭게 하다’, ‘해방시키다’, ‘떠나다’라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조금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같은 단어가 사용된 장면이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 속에서 등장합니다. 죽은 나사로를 베로 감싸 장례를 치르기 위해 준비합니다. 그는 죽어 더 이상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으며, 손끝 하나 까닥할 수 없는 무능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그의 육신이 어찌 됩니까? 되살아 납니다. 생명이 끊어졌던 자에게 다시 생명이, 눈을 감아 앞을 볼 수 없던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선사하십니다.
그리고 이 죽은 나사로가 베를 풀고 일어나자 예수님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때 ‘다니게 하라’를 직역하니 ‘자유롭게 다니게 하라’ 는 뜻을 보인다는 겁니다. 즉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 이제는 어떠한 것도 행동에 제한되는 걸림돌 없이 자유롭게, 가고싶은 곳으로, 하고싶은 데로 행하며 살아가라 선포하시며 풀어 놓아 다니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사하다’, 이는 단순 용서라기보다 우리 삶의 죄를 아예 던지고 버려 완전한 자유로운 자의 삶을 살아가라 선포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 그럼 하나 묻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보고 자유하라, 자유하라 선포하시는데 도대체 이 자유는 어디로부터 나오는겁니까? 도대체 이 자유의 기초가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 그 십자가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본문 : 희년, 십자가로부터 시작되다]
우리는 용서 이상의 자유를 선포한 십자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자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희년’이라는 것을 무시한채 넘어갈 수 없습니다. 분명 ‘희년’은 자유에 대해서, 또 무엇으로부터 자유함에 있어서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은 구원자에 대한 모습을 잘 드러냈지만, 희년에 대해서 또한 잘 드러냅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과 19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이 본문 속에서 ‘은혜의 해’는 곧 희년입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천국에 대해서 잘 설명한다면, 누가복음은 이 희년에 대해서 참으로 잘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은혜의 해, 즉 희년은 누가복음 4장 21절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 안에서 성취되게 되는데, 그 중심에 있는 것이 곧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죄와 책임과 형벌로부터 우리가 자유롭게 되며, 이것이 죄 용서이며, 자유라 말할 수 있습니다. 희년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본문 : 희년의 규례 1. 대속죄일]
레위기 25장을 보면 안식년에 대해 다룹니다. 안식년이 뭡니까? 7년마다 땅이 쉬도록 하는 것 아닙니까? 단순 쉼이 아닙니다. 이 안식년을 통해 이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년은 무엇입니까? 희년은 7년 안식일이 7번, 49년의 다음해 되는 때를 희년이라 합니다. 조금 더 쉽게, 50년마다 희년이 온다고 보면 됩니다.
이 희년은 조금 더 특별합니다. 지금껏 안식년은 땅의 자유를 주는 날이었고, 또 이 땅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면, 희년은 조금 더 포괄적이고 조금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그 중 희년에는 특별한 세 가지의 규례가 있었는데, 먼저는 ‘대속죄일’에 관한 것입니다.
희년을 히브리어로 ‘요벨’이라 쓰는데, 이는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가리킵니다. 즉 희년의 시작은 이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며 시작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이 대속죄일인데, 이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가장 큰 절기입니다. 왜 가장 큽니까? 이스라엘 전체의 속죄를 위한 날이기 때문이며, 오직 이 날에만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매우 거룩한 날이기도 합니다.
대제사장은 두 염소를 취해 한 염소로는 죽여 그 피를 지성소에 뿌려 성막을 깨끗케 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죄를 안수하여 광야로 보내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그 염소가 담당하여 죽게끔 했습니다.
이 사역의 절차는 결국 성막을 깨끗케 하는 것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사함을 위함이었고, 더 나아가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은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며, 성막의 깨끗해짐을 통해 영적으로 이들이 충만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즉 희년은 이 대속죄일, 죄 용서의 날, 자유의 날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 희년의 규례 2. 땅]
또 두번째는 ‘땅으로부터의 자유’ 입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에 땅에 들어가 땅을 분배 받았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수확량의 차이로 차이가 생겼습니다. 이 차이가 성실에 따른 차이일 수 있고, 농사를 잘 짓고 못짓는 능력의 차이일 수 있지만, 확실한건 이들에게는 수확량에 차이가 있었고, 이로인해 부족한 자들이 자신이 가진 것들을 팔고 또 넘겨 생계를 유지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넘기고 넘기다 보면 자기의 자식들을 넘기고 끝내 자기 자신 마저도 넘기게 되는데, 희년은 이렇게 가난한 자들에 의해 팔렸던 땅과 집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아가는 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돌려주고 나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럼 부자들은 가지고 있던 것을 잃는 것이니, 마냥 좋은 날은 아닌 것 아닙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희년은 가난한 자들에게만 기쁜 날로 제한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희년이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지만, 가난한 자들은 땅과 집이 없어 물질적으로 속박되어 있었으나, 그것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해이며, 부자들 또한 자칫 땅이 많아 물질에 속박될 수 있었으나 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해였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희년은 누군가 선택받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해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중심에도 누구를 보아야 합니까? 바로 진정한 자유를 허락하시는 주님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 아닙니까?
[본문 : 희년의 규례 3. 종]
또 세 번째로는 ‘종으로부터의 자유’ 입니다.
희년은 땅 뿐만 아니라 신분또한 원래대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그래서 비록 가난한 자들이 종으로서 들어왔지만, 희년이라는 시간이 있어 돌아가기에 이들을 마냥 종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부자들은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대우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레위기 25장 41절은,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 라고 기록하며, 모두가 자유로워짐을 보게 합니다.
신분 차별의 속박이 사라지고, 종들은 자유인이라는 존귀한 신분을 회복합니다. 주인은 종이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도록 그를 자유롭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자신의 형제처럼 대우해야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순간 서로 사랑하며 존중하며, 섬김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야 했습니다.
[본문 : 예수님의 희년 성취 1.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
희년은 이처럼 죄로부터, 땅으로부터, 신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입니다.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며, 모두가 함께 세워가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희년의 자유가 신약으로 넘어와 도대체 예수님으로부터 어떻게 성취가 됩니까?
방금 나눴던 희년의 3가지가 곧 예수님 안에서 실현됩니다. 어떻게요? 먼저 예수님 안에서 죄 용서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죽어가는 그 순간조차도 구원에 힘 쓰셨습니다. ‘저들’에 속한 모든 이들이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지금 십자가에 달려 계시지요. 저들이 행할 어떠한 댓가도 없이, 그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소망은 곧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베드로의 설교로 3,000명이 회개와 죄 용서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주 앞에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묻죠. ‘우리가 어찌할꼬’ 이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그렇게 교회가 시작됩니다. 교회는 회개와 죄 용서를 통해 구원받은 자들이 모여 이룬 곳입니다. 교회는 자유인들의 공동체가 됩니다.
[본문 : 예수님의 희년 성취 2. 신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
죄 용서의 은혜가 임하고,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사람은 두번째, 자기 자신의 신분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누가복음에서 또 하나 강조되는 점이 있다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입니다. 사회에서 천대받던 자들도, 사마리아인과 어린아이 그리고 세리와 죄인 등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졌고,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며, 예수님으로부터 높임을 받았던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 안에서 모든 차별로부터 자유해집니다.
이 또한 희년의 성취가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 누구든, 나이 국적 불문하고 모두가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고, 서로를 차별하지 않는 공동체가 됩니다.
탕자를 보십쇼. 그가 아비를 욕하고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돌아와 회개하자 그의 발에 가장 좋은 신이 신겨지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며 신분의 회복으로 이어져 갑니다.
희년의 나라는 당시 비판 받거나 소외 당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에 의해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나라가 됩니다. 과부여도, 어린아이여도 존귀하게 여김을 받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 자리 가운데 모인 여러분들이 그런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귀하고 가장 아름다운, 사랑받기에 마땅한 존재가 바로 여러분이 됩니다.
[본문 : 예수님의 희년 성취 3. 물질의 속박으로부터 자유]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물질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오순절 다락방 성령 충만함을 입은 자들이 행한 첫 걸음이 무엇입니까? 자긴 물건을 통용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과 물질을 나눔으로 자신과 상대방이 물질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 물질로부터 자유함을 얻게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 공생애 중에도 이 물질로의 자유는 권면되었습니다.
삭개오를 만나 예수님께서 그를 향해 권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나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절반을 나누고, 또 속여 빼앗을 물질에 있어서는 4배로 되갚겠다 고백하지 않습니까.
이는 물질이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학생이니까, 월급이 적으니까 ‘난 아니야.’ 라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희년은 선택받은 자만의 것이 아니었고, 제한적이지 않았습니다. 모두에게, 그리고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그런 공동체, 희년 공동체, 청년 공동체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길 소망합니다. 생색내기 보다, 나눔의 기쁨을 누리시고, 쟁취하기 보다, 함께함에 즐거움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누가복음에서 희년은 ‘하나님 나라’의 또 다른 표현이 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희년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성취한 것이지요.
이 희년이 담고 있는 아름다운 성취가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 진정한 자유로 실천되어지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Ⅰ 희년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감사와 영광 돌리는 우리 되게 하소서
Ⅱ 죄와 신분 그리고 물질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되게 하소서
[찬양 후 기도제목]
Ⅲ 서로 사랑하는 청년 공동체 되게 하소서
Ⅳ 서로 섬기며, 남이 아닌 내가 움직임으로 하나되어 만들어가는 청년 공동체 되게 하소서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 충만하심이
희년의 성취를 이루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참된 자유를 누리겠노라 다짐한 자들과
자유의 기쁨과 감사를 서로에게 섬기겠노라 결단한 자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무궁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