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스터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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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

디모데전서 2:9 NKRV
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고린도전서 11:6 NKRV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여자들은 머리를 땋으면 안된다. 금, 진주 오늘 가실 때 다 놓고 가야 한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당시 고린도지역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가 연결된 항구도시이다. 항구도시라는 것은 많은 배들이 왕래를 무역도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시 고린도 지역은 매우 부유하였다. 그리고 소아시아에서도 항구도시가 있었는데 바로 에베소라는 곳이다. 그런데 고린도와 에베소의 특징이 무엇이냐하면 둘다 여신을 섬기는 것을 유명하다.
에베소는 아데미라는 여신이다. 고린도는 아프로디테이다. 그래서 에베소와 고린도에는 남자 사제들 보다 여사제들이 훨씬 많다. 그런데 그둘의 특징이 달랐다. 길거리를 다니다가 어떤 자매를 보면 한눈에 아데미를 섬기는 여사제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마치 오늘날 스님을 길거리에서 만나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에베소지역의 여사제들(신전 창녀들) 신전 창녀라고 말하는 이유는 당시 아데미를 섬기는 사람들의 예배 방식 때문이다. 풍요 다산의 신이기에 여사제들과 관계를 맺는게 에배 형식 중 하나였다. 그런데 여사제들의 특징은 머리를 땋고 다니고, 금은 보석으로 몸을 감고 비싼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어디서든 한눈에 여사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고린도 지역은 같은 예배 형식이었다. 하지만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여사제는 머리를 밀고 다녔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머리를 민 여자를 보면 100% 여자제 이다.
디모데전서는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디모데야 에베소 교회에 있는 여성도들에게 이렇게 좀 말해라 제발 좀 머리를 땋지 말고, 금은 보석으로 치장하지 말아라" 그렇다면 이렇게 말한 바울의 뜻은 무엇이겠는가? 아데미를 섬기는 여사제들처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에서 목회를 하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아프로디테를 섬기던 여사제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이다. 어느날 교회에 왔더니 교회 이곳 저곳이 번쩍번쩍 거린다. 고린도 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아프로디테를 섬기는 예배 방식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예를 들어 내 남편이 2달전부터 교회에 나왔다. 그리고 그전까지는 아프로디테를 섬겼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제가 교회를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계신 아내분들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래서 교회안에서 분열이 되었다. 그런데 바울이 보기에 이 여사제가 정말 회심을 하였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다.
“다음주부터 자매들은 교회 나올 때 모두 머리에 두건을 쓰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두건 쓰기 싫으면 다 머리를 밀어버리라" 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이 왜 그렇게 말 했겠는가? 회심한 그리스도인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말해 교회안에서 그 누구도 차별해서는 안된다. 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본문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것을 적용해야 하는 것인가? 머리에 두건 쓰는 것인가? 아니면 차별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래서 사도바울이 13서신서를 기럭하였는데 고린도서에서만 이렇게 이야기 한다.
고린도후서 5:17 NKRV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러기에 바울이 이야기 하는 것은 이 사람이 과거에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하지만 이 사람이 정말 예수님을 만나 새로워졌다면 우리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자. 이전것은 지나갔다. 그리고 새 것이 되었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무엇이 중요한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셔서 사람을 통해서 기록한 책이다. 성경은 우리를 위해 쓰여졌다. 하지만 당시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은 우리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원독자의 시선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에게 적용시켜야 하는 것이다. 어떤 성경은 지금도 문자 그대로 적용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어느 성경은 문자 그대로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원독자의 시선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원독자의 시선으로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이것만 얻어가도 4일동안 진행되는 이번 바이블 스터디 성공한 것입니다.
그럼 이제 창세기를 들어가겠습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누구 입니까?
그렇다면 창세기의 원독자는 누구입니까? 창세기의 원독자는 광야에서 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이고 이삭의 아들이 야곱이다. 이 야곱과 70명의 가족이 애굽으로 떠나게 되고 애굽에서 몇년을 사는지 아는가? 430년을 살게 된다. 그리고 나서 출애굽을 하였다. 그리고 광야에서 40여년을 방황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쓰여진 것이 바로 창세기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창세기를 볼 때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았나? 알았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하나님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그 방법은 무엇인가? 글로 남긴 것이 아니라, 구전으로 남겨줬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이삭도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전해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정말 살아 있는 지식 이었다.
아브라함이 죽고 이삭이 야곱을 낳는다. 야곱도 마찬가지로 아버지 이삭에게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야곱도 감사하게 하나님을 직접 경험한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살아있는 지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가족70명을 데리고 애굽으로 간다. 430년 후에 출애굽 할 때 장정만 60만명 이었다. 만약 아버지를 계수했다면 가정수는 어떻게 되겠는가? 60만 가정일 것이다. 그리고 60만중에 아버지와 아들을 같이 계순 한 것이라면 30만 가정이 될 것이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마어마한 가정 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 있었을 430년동안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인 기록물이 없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었겠는가? 오직 구전이다. 아버지를 통해서 구전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한가족이 10만 20만의 가족이 되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때 20만의 가정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다 동일하겠는가? 그럴리가 없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점점더 견고해졌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그리고 이스라엘의 애굽생활이 어땠는가? 좋았는가? 나빴는가? 요셉이 살아있을때는 좋았고 그 이후에는 노예 생활을 하게 되어 매우 고된 삶을 살았다. 하루종일 고된 노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자녀들에게 하나님 이야기를 잘 해줄 수 있었겠는가? 이건 아버지 성품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성품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이 바뀔 가능성이 컸다. 그러기에 430년의 애굽생활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아버지를 의지 하게 된다. 따라서 아버지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신실한 아버지를 둔 자녀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알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 밑에서 자라면 그 자녀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흐려지는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한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믿음은 커녕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굉장히 얇았다. 그래서 출애굽해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간 사이에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것이 너희를 출애굽하게 하신 하나님이다! 라고 말하니 그것이 진짜인줄 알고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다.
그래서 애굽에서의 삶이 어떠하였는지가 중요하다. 지금도 이집트에는 신이 많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신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이집트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더 하였다. 그들이 섬기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을 섬겼다. 해도 섬기고 달도 섬기고, 개구리도 섬기고, 그들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섬겼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든 것을 섬겼던 나라가 바로 과거 애굽이었다. 에이~ 그런게 어딨어? 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을 가면 집집마다 귀여운 고양이 인형들이 문 밖에 있다. 그것도 신이다. 운동장을 지키는 신도 있고 동네마다 얼마나 많은 조각들이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과거 애굽은 더 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러는데 자녀가 없는 집에서는 개구리 신을 섬긴다. 그리고 전쟁을 나가 승리해야 하면 메뚜기 신을 섬기고,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뱀신을 섬긴다. 그러니깐 애굽에서는 유일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보호가 필요할 때는 메뚜기, 자녀가 필요할 때는 개구리, 성공을 위해서는 뱀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환경속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했겠는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생각 했겠는가? 아니다 그 중에 하나의 신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 사상이 구약시대에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출애굽하였지만 여전히 아기를 못 낳으면 무엇을 찾겠는가? 개구리 신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선 우상이라고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이야기 할 정도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창세기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아는가?
창세기 1:1 NKRV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너희들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나 하나님이 만들었다. 라고 창세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천지창조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섬기는 그 모든 신들은 아무것도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진짜 너희를 위한 신임을 선포하며 창세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430년 전체는 아니지만 요셉이 죽고나서는 애굽의 노예 생활을 하였으니 오랜시간 노예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도 노예이고 나 자신도 노예이고 자식들도 노예이다. 얼마나 힘들고 버거운 삶의 연속인가? 그러면 그들은 힘들때 마다 누구를 탓 할 수 있겠는가? 야곱이다. 야곱만 아니었어도, 아니 왜 야곱은 애굽으로 와서 힘들어도 그냥 좀 버텨보지 왜 애굽에 와서 이 난리야!?!? 라고 충분히 생각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기록된 책이 바로 창세기 이다.
창세기 46:2–4 NKRV
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 그것을 아셨는가? 모르셨는가? 당연히 아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이러한 비참한 삶이 다 우연인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이스라엘은 이 본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닌것인가?” 계속 보자.
하나님이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신다. 70명 내려갔다. 그런데 지금 몇명인가 ? 장정만 60만명 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이 지금 이루어진 것인가? 아닌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당시 그들의 과거의 모든 삶은 그냥 조상 잘못만나서 고생하고 있다 정도로 생각 할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삶과 생활을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본문을 읽은 이스라엘은 무엇을 깨달았겠는가? 나는 우연이라고 또 자랑하기 수치스러운 과거와 현재의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뜻이었다는 것을 깨달지 않겠는가? 그들이 숨기고 싶은 과거이지만 하나님은 “아니다 내가 너를 향한 뜻과 계획이 있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4절을 보면 “내가 너와 함게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내려가 살았던 430년의 기간동안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던 것인가? 애굽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셨다는 것이다. 430년의 시간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많이 하나님께 기도 하였겠는가?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한번도 그것에 응답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하나님이 나를 떠났구나… 우리를 떠났구나....” 이렇게 생각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창세기를 볼 때 원독자의 입장에서 보아야 그 뜻을 온전히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간동안에 창세기의 원독자가 이제 막 출애굽한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만 알아도 창세기를 읽을 때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성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수업을 시작하겠다.
창세기는 총 50장으로 이루어져있다.
50장을 두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11장 12-50장이다.
1-11장은 4사건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창조 - 타락 - 홍수 - 바벨탑
그리고 12-50은 4명의 족장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누구인가?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요셉
창세기 1:1 NKRV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2 NKRV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그래서 태초의 상태는 혼돈, 공허, 흑암 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하신 것이 무엇인가? 수면위를 운행 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운행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라하프"라는 단어이다. 이 라하프 라는 단어는 3가지 상황일 때 사용된다.
독수리가 한 점을 중심으로 빙빙 돌 때
헬리콥터가 마찬가지로 한 점을 중심으로 돌 때
어미 닭이 알을 품고 돌릴 때
그러니 이 라하프라는 단어는 목적과 의지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서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그 때에 수면 위에서 “라하프” 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 것인가? 생각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하시다. 믿으시는가? 그러기에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전지 하시기에 고민해서 결정하시나 즉흥적으로 결정하시나 그 결과는 같아야 한다. 그러야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신 것 아닌가? 그래서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께 필요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민하고 생각하시는 것이다. 그냥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그냥 단번에 생각해도 된다. 그런데 1:2을 보면 하나님이 뭐 하고 계신 것 같아 보이시는가? 고민하고 계시는 것이다. 어떻게 만들까 어떻게 하면 조금더 잘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게 “라하프"라는 단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 심사숙고해서 창조하셨다. 인정하는가?
에베소서 2:10 NKRV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만드신으로 번역된 원어는 “포이에마"이다 이것은 걸작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걸작품인 것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이 정말 이 땅을 만들면서 우리를 만들면서 심사숙고해서 창조한 귀한 작품이 우리인 것이다.
창세기의 원독자는 누구라고 했는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다. 이들의 삶은 고난 그 자체였다. 노예로 일평생을 살다가 출애굽을 한 것이다. 이들의 마음은 어떠 했겠는가? 이들이 자존감이 있었겠는가? 노예로 일평생을 살았다. 누군가의 감시속에서 일평생을 살았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넌 나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너를 만들기 위해 내가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창조했다는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아들에게 감탄하듯 이런 말을 한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하심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냥 그렇게 대충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내가 결정 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오랜 고민끝에 놀라운 계획하심으로 이자리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성, 우리의 부모, 우리가 태어난 나라, 우리가 태어난 때,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혼돈하고 무질서했던 곳 그곳을 포기하지 않고 그곳을 품고 있었다.
혹시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으신가? 놀라운 사실은 그 때도 하나님이 우리를 품고 계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던 그때에도 이스라엘 백성을 품고있었듯이, 우리도 품고 계셨다는 것이다.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한번도 내 삶속에서 실수하신 적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내 삶에서 언제나 최고의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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