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0 금요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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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새순교회 성도 여러분.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이 기도회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소망을 기도로 얻고 돌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사사기는 성경에 등장하는 암울한 시대 중 하나입니다. 여호수아 세대가 가나안을 정복했지만 원주민들을 쫓아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해 결국 하나님께서 이방민족들을 쫓아내지 못하면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 이루어져 가나안 정복 세대의 다음 세대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방 민족에 의해 고통받아 울부짖는 이스라엘을 위해 사사를 세우셔서 이방 민족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십니다.
여러 사사들이 있지만 오늘 읽은 본문에는 사사들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인 삼손이 등장합니다. 삼손은 단 지파의 마노아의 가정에서 태어나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택함받은 사사이며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람입니다.
성경은 삼손이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다는 직접적인 고지도 받고 근력이 아주 강력하여 영웅적인 모습도 보여주지만 동시에 우둔하고 우유부단하며 잘못된 사랑으로 그의 인생이 나락으로 가는 모습,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나실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나실인은 포도의 소산을 먹으면 안됨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거리낌 없이 먹고, 나실인은 고사하고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해선 안되는 시체를 만지고, 특히 이방 여인과의 결혼을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삼손의 삶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삶과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사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사로서 일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삼손 이야기가 기록된 이유는 이런 삼손조차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삼손 이야기의 절정이자 결론 부분에 해당합니다. 삼손은 총 세 여인을 만납니다. 14장에서 첫 번째 여인과 결혼했지만 그 아내는 삼손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합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본문이 해당하는 16장의 1절에서 삼손은 두 번째 여인인 가사에 있는 한 기생과 놀아납니다. 이때에도 삼손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가사에 삼손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블레셋의 공공의 적을 제거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삼손이 워낙에 강자이기에 곧장 삼손을 죽이려고 하지 않고 잠복하고 있다가 삼손이 기생과 밤새 놀고 새벽이 되어 기진맥진할 때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런 음모를 아는지 모르는지 삼손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생의 집에 머무릅니다. 그러다가 블레셋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알아챘는지 한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가사에서 유유히 사라집니다. 삼손은 그것들을 어깨에 메고 무려 60km 이상을 걸어 헤브론 맞은편 산꼭대기로 가지고 올라갑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의 다섯 개 주요 도시 중에서도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멀리있는 곳에 있는 가사의 성문을 뜯어다가 이스라엘의 중심부인 헤브론에 가져다 버린 것은 아마도 이스라엘이 비록 40년 동안 블레셋의 지배를 받아 블레셋의 통치가 당연한 것 같고 블레셋에 저항할 만한 힘이 자신들에게 결코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회개하고 돌아와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블레셋도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15장11절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대한 두려움이 이미 그들에게 탑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아무렇지 않게 성 문짝을 떼어 헤브론으로 가져옵니다. 성문이 없어졌다는 것은 언제든 성이 적으로부터 쉽게 침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함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 삼손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이 블레셋을 언제든 무너뜨리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블레셋이 강력해서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군대가 약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삼손이 가사의 성문짝들을 떼어버린 사건 이후 다음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바로 그 유명한 들릴라와 삼손의 이야기입니다. 삼손은 세 번째 여인인 소렉 골짜기에 있는 들릴라를 만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제 삼손을 죽일 궁리를 하지 않고 삼손의 괴물과 같은 힘이 어디에서 생기며 어떻게하면 그를 사로잡을 수 있을지 들릴라에게 알아보라고 은 천백 개씩 주겠다면서 거래를 요청하고 들릴라는 받아들입니다. 이 들릴라 또한 삼손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삼손과 함께한 세 여인은 모두 삼손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특히 이 들릴라는 앞의 두 여인의 이름은 사사기의 저자가 밝히지 않았지만 마지막 세 번째 여인의 이름은 들릴라라는 것을 밝히면서 이 여인의 역할이 지금까지 등장한 두 여인보다 훨씬 더 중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들릴라는 거래를 위해 삼손의 사랑을 이용합니다. 6절에서 그에게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지 내게 말하라”라고 합니다. 들릴라는 삼손에게 부탁하는 것도 아니라 그저 자신이 알게 하라고 하면서 명령합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녀에게 진실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7절에서 삼손은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으로 결박하면 내가 약해진다.”라고 말하여 블레셋 사람들과 들릴라가 삼손이 말한대로 실행하지만 삼손을 사로잡지 못합니다.
그러자 들릴라가10절에서 “보라 당신이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청하건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는지 내게 말하라”라고 말합니다. 니가 날 진짜로 사랑한다면 진실을 말해라 라는 것이죠.
이쯤되면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누구나 다 알 것입니다. “아, 이 사람에게 알려주면 내가 위험해지겠구나” 더 나아가 “이 사람은 날 위할 생각이 전혀 없네”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들릴라를 떠나야 정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들릴라를 끔찍하게 사랑했나봅니다. 그녀를 떠나지 않고 이야기해주지만 이번에도 진실은 이야기해주지 않습니다.
11절에서 삼손은“만일 쓰지 아니한 세 밧줄들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진다”라고 말합니다. 이에 들릴라는 이번에는 진실이겠지 하면서 삼손이 알려준대로 결박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사로잡는데 실패합니다.
그러자 들릴라가 이번에 또“당신이 이 때까지 나를 희롱하여 내게 거짓말을 하였도다 내가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할 수 있을지 내게 말하라”라고 말하며 니가 날 진짜로 사랑한다면 진실을 이야기하라고 다시금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삼손은 이번에도 들릴라를 떠나지 않고 못이기는척하며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되리라”라고 진실을 숨기고 말해줍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들릴라와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사로잡지 못합니다. 그러자 들릴라가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강하게 15절에서 말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들릴라가 매일매일 그 말로 삼손을 재촉하여 조르자 삼손은 이제 아주 죽을 지경이 되어 결국 17절에서 나실인의 규정을 말해주며 진실을 이야기해줍니다.
삼손의 문제점은 나실인의 규정을 어긴 것도 있었지만 자신이 나실인으로 구별되어 부름받았다는 것에 대한 무관심이 가장 심각했습니다. 삼손의 나실인 신분은 삼손에게 있어 하나님의 사명을 성취해야 할 소명이 아니라 그저 괴물과 같은 힘을 의미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자신의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들릴라도 이번에는 삼손이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직감한듯합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블레셋 사람들을 부르고 19절에서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릅니다. 그랬더니 삼손이 말한대로 정말 힘이 없어졌습니다. 20절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에게 들이닥치고 삼손은 예전처럼 무찌르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신줄 깨닫지 못하였고 그는 붙잡히게 됩니다. 20절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언틋보면 삼손의 힘의 원천은 머리카락에 있는 것 같지만 머리카락은 그저 상징에 불과했고 그의 힘의 원천은 바로 하나님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손에게 머리카락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의 힘은 하나님의 선물이었고 은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힘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정욕과 복수하는 일에만 사용하였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히자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두 눈을 빼고 가사로 끌고 가서 놋줄로 매어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는 일을 시킵니다. 삼손의 인생은 이렇게 끝이 나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22절에서 그의 머리털이 다시 자란다는 것을 통해 반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기대하게 됩니다.
삼손을 사로잡은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 신이 원수 삼손을 넘겨주었다면서 다곤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즐거워하며 블레셋 백성들 또한 삼손을 보며 다곤 신을 찬양합니다. 그리고는 삼손에게 재주를 부리라며 모욕적인 일을 시킵니다.
그리고나서 두 기둥 사이에 삼손을 세우게 되는데 삼손이 눈이 안보여 삼손이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년에게 삼손이 신전의 기둥을 자신이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삼손은 약 삼천 명이 있던 그 신전의 기둥을 붙잡고 28절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 번에 갚게 하옵소서”라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두 기둥을 삼손이 박살내며 삼천 명의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됩니다. 이때 삼손이 죽인 숫자가 살았을 때 죽인 사람들보다 더 많았다고 성경이 말합니다.
이처럼 삼손은 영웅적인 모습과 함께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과 우둔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특히 삼손은 여성과의 문제에 있어서 아주 심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어찌할 줄을 모르는 반면, 삼손은 여성에게 항상 얽매여 있어 어찌할 줄을 몰라합니다. 사사기 저자는 삼손을 마치 헤라클레스와 같이 영웅 이야기만 기록했다면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삼손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영웅으로만 남았겠지만 그렇게 기록하지 않고 삼손의 치부까지 기록하였습니다. 아니, 영웅적인 면모보다는 오히려 삼손의 부정적인 모습을 더 많이 기록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삼손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우둔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삼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삼손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과 은사인 괴물과 같은 힘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정욕과 복수를 위해서만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범죄와 부족한 모습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의 대적인 블레셋을 물리치십니다. 사사기의 저자가 삼손의 이야기를 기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범죄하고 이방신을 쫓아살려고 하며 심지어 사사조차도 사명을 수행하지 않고 오히려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끝이 없었습니다.
삼손이 최후에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할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의 힘이 머리카락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삼손을 붙잡은 것으로 다곤 신전에서 찬양하고 있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삼손이 다곤 신전을 무너뜨림으로 이 세상의 진짜 신은 다곤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임을 알게 하십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물리칠 수 없었던 것은 군사적인 이유도 아니었고 블레셋이 이스라엘보다 강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해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에게 고통받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이스라엘과 삼손의 모습. 우리랑 정말 똑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율법들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다른 것들을 사랑하며 그것을 갈구합니다. 심지어 하나님보다 그것이 더 커보여 두려워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만 율법대로 사는 것이 즐겁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범죄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도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버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진정한 사사가 되심으로 삼손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우리를 압제하며 괴롭히는 죄와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가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조차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새순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할 때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은 안중에도 없어 나실인의 규정을 어기고 자신의 정욕을 채우려고 했지만 결국 비참해진 삼손과 같이 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게 되어 그분의 말씀대로 살게 되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무한한 사랑을 기억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습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내가 무엇인가를 소유하면 나에게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처럼 느낍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과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미련한 자들입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버림받아 마땅한 우리를 대신해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받으셨습니다. 이 시간 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감사하며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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