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스터디 (4)
Notes
Transcript
복습
창세기 저자는 ?
창세기의 원독자는?
창세기를 몇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가?
어디를 어떻게 나눌 수 있는가?
창조의 순서는 어떠한가? 빛과 어둠, 하늘과 바다, 땅과 식물, 해와 달과 별, 새와 물고기, 동물과 사람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창조는 완벽하다.
그러나 우리는 왜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는가? 창조의 개념이 아니라 구원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은 어디에서 완성되는 것인가? 부활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한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게 하는 것이다.
타락의 결과는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
그렇다면 구원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친밀했던 관계가 회복되는 것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인정 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 할 수 있다.
히브리 문학 기법
대조 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완전히 다른 두가지를 대조해서 얼마나 다른 가를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환이라는 문학 기법이 있는데, 이것은 중심 주제를 가운데 넣는다. 이것을 전환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주로 주제를 맨 처음에 넣거나, 마지막에 넣는다. 그게 익숙하다. 그래서 주제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을 연역법, 주제를 마지막에 넣는 것을 귀납법 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환이라는 문학 기법은 주제를 가운데 넣는 것이다.
창세기 6장을 보면 대조의 관점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악했지만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다. 가 주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전환의 관점으로 보면 모든 사람과 의인 노아 사이에 어떤 구절이 있는가? 모든 사람과 노아의 의를 이야기 하는 그 사이에 있는 구절은 어디인가? 8절이다.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러기에 이것을 전환의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당시 모든 사람이 악하였다. 하지만 그 중에 의로운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노아 이다. 모든 사람이 악한 그때에 노아가 의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기억하길 바란다.
그렇다면 홍수가 일어난 때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
홍수가 언제 일어나는가? 창세기 7:11 노아가 600살이 될 때 홍수가 일어난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누구인가? 므두셀라이다. 몇살인가? 969 살이다. 그렇다면 므두셀라는 축복받은 사람인가? 다시말해 오래 산 것이 축복인가? 장수가 축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해야 하는가?
므두셀라의 아들은 라멕이다. 라멕은 므두셀라가 187세 되는 해에 태어났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에서 늘 아버지가 아들보다 먼저 죽었다. 그것이 기술 원칙이다. 그런데 므두셀라는 어떠한가? 라멕이 777세에 죽었다.
그렇다면 라멕이 죽었을 때 므두셀라는 살아있었나? 죽었나? 살아 있었다. 므두셀라가 964세 때 아들 라멕이 죽었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라는 것과 함께 성경에서 최초로 자신의 아들을 장사지낸 아버지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므두셀라가 축복을 얻은 것인가?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는 것 인정하는가? 그렇다면 므두셀라를 자신의 아들보다 더 오래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므두셀라 이름의 뜻은 이렇다. “손에 창을 들고 부족을 지키는 사람" 이 뜻이 ‘창 던지는 사람' 그래서 이렇게도 불리게 된다. “이 사람이 죽으면 재앙이 온다" 우리야 우리의 언어가 아니니깐 잘 모르지만 당시 사람들은 어떠했겠는가? “어이~ 이 사람이 죽으면 재앙온다 잘 있었어~ 건강하지?” 이런 것이다.
므두셀라에게는 라멕이라는 아들이 있다고 말했다. 라멕에도 아들이 있었다. 라멕이 182살이 되었을 때 아들을 낳았는데 너무 유명한 사람이다. 바로 노아 이다.
그렇다면 라멕이 노아를 낳았을 때 할아버지인 므두셀라는 몇살 이었겠는가? 187 + 182 하면된다. 노아가 때어 날 때 므두셀라의 나이는 369살이다.
그렇다면 홍수가 일어났을 때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살아있었는가? 600+182=782 살이 되니 라멕은 이미 죽었다. 그렇다면 므두셀라는 살아 있었는가?
369 + 600 = 969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홍수가 일어난 것이다.
조금 전에 한 이야기 기억하는가? 성경의 기술 원칙 중에 아버지가 늘 아들보다 먼저 죽는 것이 성경의 기술 원칙이다. 그러기에 원래 홍수는 언제 일어나야 정상인 것 이가? 최소한 아들이 라멕이 죽기 전에 또는 죽을 때 그때 일어나야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므두셀라를 아들보다
홍수사건을 읽을 때 창조사건이 반복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창세기 1:1-6:22 , 7:1- 12:9 이 동일한 패턴대로 흘러간다.
1,2장 끝나고 축복이 나오고 축복이 끝나고 나서 죄가 나오고 갑자기 벌거벚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벌거벚은 것을 하나님이 덮어주신다. (가죽옷)
9장을 보면 동일하게 하나님이 노아에게 축복하시고 노아가 벌거벚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두아들 셈과 야벳이 덮어준다.
그리고 3,4장이 끝나면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가? 갑자기 족보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담이 900년 살면서 자녀가 3명 뿐이겠는가? 성경에서는 선택적기록이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선택해서 기록한 것이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가인, 아벨, 셋이다. 그리고 아담부터 노아까지를 계수해 보면 10세대 이다.
9장에 홍수 사건이 끝나고 10장이 무슨 내용인가? 족보 이야기가 나온다. 패턴이 동일 한 것이다. 재밌는 것은 아담의 후손이 3명이 언급되는데, 노아의 후손도 3명이 언급된다. 그리고 노아 부터 아브라함의 아버지인 데라까지 계수해보면 정확히 10세대 이다.
지금 창조의 이야기와 홍수의 이야기가 동일한 패턴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속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이 있다는 것이다.
창조 - 축복 - 죄 - 벌거벚음 - 덮어줌 - 후손(족보) 이야기 후에 6:1부터 죄의 이야기가 나온다. 10장이 족보 이야기 이다. 그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오겠는가? 11장에 바로 바벨탑 이야기이다.
이러한 히브리 기법은 “병행" 기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병행기법에서 메시지는 끝에 있다. 그래서 죄 다음의 이야기가 창조와 홍수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이다.
창조사건 뒤에는 노아의 순종이야기가 나오고, 홍수사건 뒤에는 아브라함의 순종이야기가 나온다. 순종이야기가 마지막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이야기와 홍수 이야기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메시지 중하나는 순종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순종을 왜 강조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창조 하셨다. 죄를 범하고 하나님이 심판하셨다. 그래서 한세대가 끝이 났다. 그렇다고 그들을 버렸는가? 아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순종을 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한번 기회를 준다. 그 기회가 어떻게 됐는가? 죄로 인해 또 끝이 났다. 그런데 완전히 끝이 났나? 아니다. 한 사람이 또 순종을 한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시대가 또 열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순종의 역할이다. 순종 했을 때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새로운 새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믿음의 가장 좋은 반응은 순종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말씀이든 순종할때 그 순종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바벨탑
바벨탑을 쌓았는데 지금까지는 돌로 쌓았는데 갑자기 이 때 벽돌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 벽돌 사이사이에 진흙이 아니라 역청을 사용하였다. 무슨 의미일까? 역청은 왜 바르는 것인가? 역청은 방수 처리하는 것이다. 왜 탑에 역청을 바른 것일까? 그럴 이유가 없다.
성서 고고학자를 비롯해 일반 고고학자도 지구라트가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으로 인정을 한다.
당시 지구라트는 단순한 관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 탑 자체가 거대한 제단인 것이다. 그래서 바벨탑 가장 위에 큰 제단이 있었다.
당시 이집트는 태양력을 사용하였고, 메소포타미아는 태음력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이집트는 태양신을 섬겼다. 왜 그런가? 인간은 두려워하는 대상을 섬길 수 밖에 없다. 지금은 덜 하지만 과거 바닷가에 사람들은 바다의 신을 섬겼다. 그래서 용왕이 바다에 사는 것 아닌가? 매일같이 내 남편이 내 아들이 바닷가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바다의 신 용왕을 섬기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시 이집트도 그랬다. 그들에게 있어서 태양이 얼마나 두려운가? 그래서 그들은 태양신을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달신을 섬겼다. 메소포타미아 에서 발전한 학문은 천문학이다. 달의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달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의 신을 섬겼다면 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달의 신은 난나 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왜 바벨탑을 쌓고 달신을 섬겼을까? 지금은 과학으로 증명이 되어 초등학교만 나오면 밀물과 썰물이 무엇때문에 일어나는지 안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당시에도 그것을 알았을까? 물론 지금처럼 과학적으로 정확히 알 수 는 없었겠지만 당시에 천문학이 발달하였기에 달의 움직임과 물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난나는 달의 신이기도 하였지만 물을 주관한다고 믿었다. 이들이 천문학이 발달한 이유도 그들이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농사에는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바벨탑을 쌓아 놓고 난나라는 신을 섬긴 것일까? 홍수 때문이다. 왜 벽돌 사이사이에 역청을 바른 것인가? 홍수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래서 바벨탑 사건이 어떤 사건 후에 기록되는가? 홍수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자체는 하나님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다.
마치 이런 것이다. “하나님 당신이 다시한번 홍수를 보내보십시오. 이제는 우리도 홍수 무섭지 않습니다. 우리를 누가 지키고 있기에? ‘난나’” 가 지키고 있기에 우린 아무 상관 없다.” 라고 하나님을 향해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바벨탑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도전임과 동시에 거대한 우상숭배인 것이다.
1-11장의 4가지 사건은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죄 - 심판 - 회복 이러한 패턴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 - 심판(추방) - 회복(가죽 옷,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
가인의 살인 - 심판(도망하는 사람) - 회복 (구원의 약속을 준다)
6장에도 사람들의 죄가 찼다 - 심판(홍수) - 회복(무지개 약속)
이 후에 다시 사람들은 죄를 짓는다. (바벨탑) - 심판 (언어를 나누고 흩어버리신다.) 그렇다면 바벨탑 사건의 회복, 구원의 약속은 무엇 이겠는가? 그 바벨탑을 쌓았던 곳에서 한 사람을 부르신다. 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이 어디 출신인지 아는가?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갈대아 우르는 바로 바벨탑을 쌓았던 곳이었다.
그래서 학자들에 의해 성경 전체를 반으로 나누라고 한다면 2가지 기준이다. 첫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반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두번째는 창세기 1-11 그리고 12장 - 요한계시록까지 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창 세기 1-11 까지는 소극적으로 개입하신다. 그러나 창 세기 12장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신다.
그래서 바벨탑 이후에 아브라함이야기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벨탑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일하겠다는 의미로 바벨탑을 쌓았던 그곳에서 사람들을 흩으시고 한 사람을 불러내시는 것이다.
아브라함
아브라함 이야기가 원독자인 이스라엘 민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아브라함과 야곱의 관점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보면) ‘병행’
12장 아브라함이 기근을 만나자 어디로 떠나나 애굽
41장 야곱이 기근을 만나 어디로 떠나나 애굽
아브라함이 애굽가서 아내를 누이로 속인다. 잘못은 아브라함이 했는데 누가 하나님께 혼나는가? 바로가 혼난다.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출애굽기에 출애굽 하기 전에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재앙을 내리시는가? 바로와 애굽에 재앙을 내리신다.
아브라함이 애굽을 떠나게 된다. 그때 빈손으로 나왔나?
이스라엘도 애굽을 떠나게 한다. 그래서 출애굽을 한다. 이스라엘도 빈손으로 나왔는가? 아니다.
지금 광야에서 막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읽었을때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어? 이게 아브라함이 우리와 똑같네!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출애굽하자 마자 네왕과 싸운다.
역시 이스라엘 백성도 출애굽하고 나서 아말렉과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나서 15장에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도 출애굽기 19-24장에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