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없는 용서
0 ratings
· 66 views1. 용서에 대해 다른 기준 2. 천국 비유의 의미 3. 우리의 생활 양식은?
Notes
Transcript
용서에 대해 다른 기준
용서에 대해 다른 기준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 예수님 앞에 베드로가 나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21절입니다. “주여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왜 베드로는 예수님께 “용서에 대해 질문하며,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을까요?”
(쉬고)
베드로가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예수님께 칭찬을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랍비들의 기준으로 반복해서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딱 세번이었습니다. 세번까지는 용서를 하지만 그 이상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해 베드로는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겠습니까. 예수님?”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베드로는 은혜와 자비를 강조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가까이서 듣고 배워왔던 사람입니다.
그는 세번은 너무 적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7번이라 말합니다. 왜 7번이라고 했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7이 완전수라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7이 완전수 인 것처럼, 용서를 7번하는 것이 완전하다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7번 하면 되겠습니까"라는 질문 속에 숨겨진 베드로의 마음은 “예수님 저 잘했지요? 이제 저도 좀 컸습니다.”라는 칭찬을 바라는 물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당연히 넓은 마음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각을 옳다. 라고 하시며 칭찬하실 것을 기대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가 듣고 싶었던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3번에서 7번으로 용서를 확장한 베드로의 말을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 산술적으로 생각하면 490번 용서하라는 것이죠. 490번의 용서가 가능할까요?
누군가 나에게 실수를 하면 그 것을 다 기억하고 세고 있으라는 이야기 일까요?
‘응 용서할게. 이제 378번 남았네" 라고 말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만약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법이 있다면, 저는 포기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누군가 나에게 490번이나 되는 반복되는 죄를 짓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일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예수님께서 하신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라는 말은, 실제로 490번을 용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예 셀 필요 없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 껏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한계가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 날의 기분과 감정에 따라 그리고 현재 내가 쳐해 있는 상황에 따라 용서의 크기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490번씩 상대를 용서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는 포기하겠습니다. 기권하겠습니다.
정말 무조건적인 사랑의 마음을 갖고 용서하는 것. 저에게는 너무 어렵거든요. 이렇게 무한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 일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지은 죄의 댓가를 반드시 치뤄야 하지만, 그 죄를 용서해주시고 또 품어주시며 끊임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심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이죠.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동일한 실수를 490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그 이상을 넘어서는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실수 앞에 관대하기도 하지만 화를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무한한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의 크고 작은 실수를 감수하고 용납하고 계시죠.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는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도 사람들도 의아해 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용서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던 그들에게 “천국"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천국
천국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천국'은 우리가 소망하는 하늘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말씀하고 계시는 ‘하늘 나라. 천국'은 우리의 생활 양식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존재. 닮아가기로 결단한 존재들이죠.
천국.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고 이끄시는 분께서 우리를 향해 무한한 용서와 사랑을 보여주고 계시죠.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닮아가길 원하고 바란다면, 우리에게도 이러한 용서와 사랑을 향한 마음이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처럼 무한한 사랑과 용서를 베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하기 위한, 용서를 위한 노력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24-34절은 그러한 노력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빚을 진 종 두명이 있습니다.
한 종은 도무지 자신의 능력으로는 갚을 수 없는 액수의 빚을 왕에게 진 사람이고,
한 사람은 왕에게 빚을 진 사람에게 소액의 빚을 진 사람입니다.
어느 날 왕이 종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에게 정말 놀라운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너가 나에게 지고 있는 만 달란트를 탕감 해 주겠다. 갚지 않아도 된다.”
만 달란트를 지금으로 환산하면 최소 30억은 넘는 돈입니다. 종은 자신의 빚을 보면서 희망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완전 인생 망했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빚을 갚으려면 아내와 자녀 그리고 모든 재산을 팔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팔아도 갚을 수 없는 빚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죠.
그것을 측은히 여겼던 왕은 빚을 탕감 해 주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던 왕은 자신이 갖고 있던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갖고 용서를 해주었습니다.
이 종은 죽다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생각했던 그 순간 다시 살아났습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그 마음에 소망을 되찾았습니다.
왕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고백과 인사를 수차례 한 후 궁을 나섭니다. 그리고 집을 향해 갑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가족에게 돌아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막 달려가지 않았을까요?
집을 가고 있는 그에게 “자신에게 소액의 빚을 진 다른 종"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가 “빚을 갚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애원합니다. 바로 조금 전에 이 종이 왕에게 했던 그 행동을, 다른 종이 자신에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것 같으신가요?
지금 나는 기분이 굉장히 좋습니다. 빚 탕감을 받았고, 다시 살아 갈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모든 것들을 다 이해하고 품어 줄 수 있을만큼 마음의 여유가 넘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러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면 “빚을 갚을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그의 요청에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 것 같으신가요?
“너 왕에게 용서 받았으니까 나도 용서해줘. 나 안갚아도 돼?”가 아니라 “갚을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말하고 있습니다.
(쉬고)
조금 전 자신이 받았던 빚 탕감의 기쁨을 알고 있었던 그 종이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합니다.
“무슨 소리야 당장 빚 갚아. 기다릴 수 없어.”
자신이 받은 그 자비와 용서의 기쁨을 나누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기분이 좋은 그 때 인데도 불구하고, 빚을 갚으라 요구합니다.
이러한 위선적인 모습에 대해 왕이 듣습니다. 그리고 그 종을 다시 불러 공개적으로 꾸짖 묻습니다. 33-34절입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그리고 용서를 철회하고 빚을 다 갚으라 말합니다.
다시 살아 갈 희망을 갖게 되었던 그 종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다시 빚을 갚아야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두 가지
두 가지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받은 사람은 우리를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전까지 우리는 도무지 해결 할 수 없는 죄의 길을 걷고 있었죠.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가만 둘 수 없어, 이 땅에 오셨고 모든 것을 해결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죄는 사해졌고, 이제 우리는 죄의 빚이 아닌, 사랑의 빚을 하나님께 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용서 받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적어도 새벽을 깨우시는 성도님들은 용서의 기쁨을 삶에서 나누고 계시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그 용서의 기쁨. 구원의 감격을 삶에서 드러내기 위해 열심을 내고 계시는 분들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그 자리에 있던 자들에게, 용서를 몇번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경험했던 용서의 기쁨과 감사함을 기억하며 살아가라.
그리고 그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라.
용서를 나누면 나눌수록 상대를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커질 것이다.
이 것을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저도 여러분도 이렇게 용서를 나눔을 통해, 사랑의 마음이 더 커져 가기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셨던 긍휼의 마음을 깨닫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가득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