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왕이 있다!
금요기도회 사도행전 설교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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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7:1–9 (NKSV)
1 바울 일행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유대 사람의 회당이 있었다. 2 바울은 자기 관례대로 회당으로 그들을 찾아가서,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였다. 3 그는,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고난을 당하시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해석하고 증명하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 그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승복하여 바울과 실라를 따르고, 또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그렇게 하였다. 5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시기하여, 거리의 불량배들을 끌어 모아다가 패거리를 지어서 시내에 소요를 일으키고 야손의 집을 습격하였다. 그리고 바울 일행을 끌어다가 군중 앞에 세우려고 찾았다. 6 그러나 그들을 찾지 못하고, 야손과 신도 몇 사람을 시청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세상을 소란하게 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도 나타났습니다. 7 그런데 야손이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을 합니다.” 8 군중과 시청 관원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였다. 9 그러나 시청 관원들은 야손과 그 밖의 사람들에게서 보석금을 받고 놓아주었다.
영적 기억상실증
영적 기억상실증
A. W. 토저 목사님은 인간이 그 존재 목적을 잊고 살아가는 영적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책에서 한 예화를 들어 설명합니다. 캐나다 토론토 공항근처에서 한 노신사가 배회하는 한 젊은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멀끔하게 차려입은 그 젊은이는 다가와 말합니다. “제가 몇일 전에 세게 머리를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제가 왜 여기에 와 있는 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노신사가 묻습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나요?” - “모릅니다.” / 결혼은 하셨나요- 모르겠습니다. 이와같은 질문이 오가면서 젊은이는 자신이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에서 큰 좌절감을 느낄 때 즈음, 저기 멀리서 한 신사가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며 나타납니다. “어디에 계셨습니까?” 너무 반갑게 인사하는 신사에게 젊은 이는 “누구세요?”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 우리가 사흘전에 이곳에 바이올린 협주를 하기 위해서 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지휘자이고 당신은 바이올린 협주를 위해서 온 연주자입니다. 몇일동안 당신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이 젊은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삶의 여러가지 목적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삶의 참된 목적이 되시는 진짜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영적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가짜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삼아 살아갑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곧 목마르게 되고 말라 비틀어질 웅덩이에서 목을 축이는 인생"입니다.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목적이 됩니다. 때로는 학벌이 목적이 됩니다. 돈이 목적이 됩니다. 더 나아가서 이데올로기 까지 자기를 만족시키는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나 힌두교와 같이 미의 여신, 교육의 신, 경제의 신 , 정치의 신이 있듯이 가짜 하나님으로 만족하기 위해서 그들 만의 제사 방법으로 삶의 목적을 이루려고 발버둥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인간의 인생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인간을 참된 인생의 목적을 회복시켜 주시고, 진짜 하나님을 만나 생수를 마시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을 누리게 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참된 하나님을 계시하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최고의 계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즉, 우리가 읽는 성경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로 향하는 바울
데살로니가로 향하는 바울
빌립보에서 옷이 벗겨지고 매를 맞고 고난을 당하였지만,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가지고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가로 전도여행을 합니다. 바울은 로마의 대도로인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를 통해서 암비볼리 까지 53km, 아볼로니아까지 43km, 그 다음 데살로니가 까지 56km를 여행하였습니다. 총 약 160km를 여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이 우리는 왠지 익숙하지 않습니까? 핍박으로도 막을 수 없는 그의 열정 말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2 (NKSV)
1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2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전에 빌립보에서 고난과 모욕을 당하였으나 심한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BC 315년 마케도니아의 왕 카산드로스(카산더,Cassnader)가 아내의 이름을 따서 테살로니케 (테살리아의 승리)로 이름을 명명하였습니다. 이 도시는 로마 통치하에서 중요 무역경로를 따라 있는 광대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를 네 구역으로 나뉘었을 때 두번째 구역의 수도가 되었고, 로마인들이 마케도니아를 속주로 만들었을 때는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는 지금도 아테네 다음으로 큰 그리스의 제2 도시입니다.
바울의 규례
바울의 규례
사도행전을 읽다가 보면 비슷한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는 바울이 어떠한 습관 즉, 규례를 따라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알려 줍니다.
사도행전 17:1–2 (NKSV)
1 바울 일행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유대 사람의 회당이 있었다. 2 바울은 자기 관례대로 회당으로 그들을 찾아가서,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였다.
로마의 큰 길들을 통해서 이동하고, 이동하면서 그가 머물렀던 곳은 당시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등 거점 도시를 통해서 하루밤 정도를 머물며 움직였고, 데살로니가와 같이 다양한 종교와 인종과 문화가 함께 섞여 있는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데살로니가에서의 복음 전파에 있어서 유대 회당이 바울에게 중요한 장소였음을 오늘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전에도 왜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였는지 살펴 본적이 있습니다. 당시 회당에는 유대인이등 이방인이든지 구약과 유대교를 알고 있는 복음을 받아들이기에 준비된 사람들이 많아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유대인의 회당은 예배장소이며, 여행객의 숙소이며, 인력소개소 이며 유대인들의 모임장소로서 삶의 중심지 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그 일행들에게 숙소도 되고, 선교여행을 위해 경비를 조달하기 위한 일을 찾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회당 예배의 참석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당에는 회당을 관리하는 회당장이 있었습니다. 회당장은 안식일 마다 정해진 성경을 읽고 회중에게 “누가 성경 말씀을 잘 강해해서 우리 모두에게 도움을 줄 사람이 없겠는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 때마다 바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구약을 강해하고 예수를 전하였다고 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메세지
바울이 전한 복음의 메세지
이와 같은 기회를 통해서 바울은 회당에서 세 안식일에 걸쳐서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였다고 합니다. 회당에 앉아 있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서 개종자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강해하는 바울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복음의 구체적인 내용은 1차 전도여행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전한 설교가 복음의 핵심내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 전한 메시지를 누가는 간단하게 한절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7:3 (NKSV)
3 그는,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고난을 당하시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해석하고 증명하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즉, 구약성경에서 그리스도 즉, 메시야는 반드시 고난을 당하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고 바울은 전하였습니다. 누가는 바울의 메시지를 아주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말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예수가 바로 그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바울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설교 하였습니다. 바울은 시편-2편, 16편,110편, 이사야서 53장, 신명기 21:23 과 같은 말씀들을 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 이시라고 전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복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구약의 모든 예언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25–27 (NKSV)
25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26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서 자기에 관하여 써 놓은 일을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셨다.
바울의 복음을 들은 회당에 모인 무리들은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였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중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7:4 (NKSV)
4 그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승복하여 바울과 실라를 따르고, 또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그렇게 하였다.
유대인들 중에서 몇몇 사람이 승복하였고,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과 적지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구약에서 시작된 그 약속들이 예수의 생애와 죽음, 부활을 통해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이때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으로는 데마, 아리스다고, 가이오, 세군도 라고 봅니다. 데살로니가는 이러한 복음 전파를 시작으로 많은 이방인들이 믿었고, 이후 중요한 기독교 교회 대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다른 왕이 있다.
다른 왕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복음 전파에는 방해가 따르게 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매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에서는 자신들의 밥줄이 끊어 놓은 바울을 빌립보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는 매질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바울과 일행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7:5–8 (NKSV)
5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시기하여, 거리의 불량배들을 끌어 모아다가 패거리를 지어서 시내에 소요를 일으키고 야손의 집을 습격하였다. 그리고 바울 일행을 끌어다가 군중 앞에 세우려고 찾았다. 6 그러나 그들을 찾지 못하고, 야손과 신도 몇 사람을 시청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세상을 소란하게 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도 나타났습니다. 7 그런데 야손이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을 합니다.” 8 군중과 시청 관원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였다.
역시 유대 사람들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기다리던 왕은 누구입니까? 바로 다윗의 자손이 예루살렘을 회복하여 로마로 부터 독립시켜 줄 정치적 메시야 일 것입니다. 메시야 즉 기름부음 받음 왕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다는 것도 믿을 수 없는데, 부활하였다는 것은 더욱 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유대인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를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방법도 참 치사합니다. 거리의 불량배들을 끌어다가 패거리를 지어서 시내에 소요를 일으킵니다. 야손이라는 회심한 이방인의 집을 찾아가서 바울과 일행을 잡으려 했지만 집에 없어서 야손과 믿는 사람 몇 사람을 잡아다가 당신 데살로니가를 다스리던 시청관원 (politarchs) 앞에 데려 놓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큰소리로 고발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소란하게 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야손이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을 합니다.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력을 거슬러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교묘하게 지금 세상 즉 당시 로마를 소란하게 하는 무리들이라고 바울과 그 일행을 몰아세웁니다. 지금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성경을 풀어서 이야기를 했는데,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정치적인 이슈로 뒤집어 씌우려는 것입니다.
로마는 황제 숭배사상을 강요하고 그것을 이데올로기화 함으써 권력을 유지하는 체제였습니다. 황제 글라우디오는 급진적인 메시야 사상을 가진 유대인들을 모두 로마에서 추방하는 글라우디오 칙령을 내리기 까지 하였습니다. 가이사만이 황제인데 오늘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이 주장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예수가 다른왕이라고 소개했다고 하면서 쓴 단어가 로마 황제를 나타내기도 했던 단어 바실레이우스(βασιλεύς= 왕,임금) 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리하여 당국자들도 이 말을 듣고 소동하였습니다. 유대인들과 로마 사람들 모두 박해에 참여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다른 왕이 아니라 진짜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참된 왕을 받아들인 사람은 교회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가짜왕을 버리지 못할 뿐 아니라 믿는 사람들까지도 핍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를 믿는 야손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그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데살로니가를 떠나야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7–18 (NKSV)
17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잠시 여러분을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닙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여러분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18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에게로 가고자 하였고, 특히 나 바울은 한두 번 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우리를 방해하였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참된 왕이시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참된 왕이시다.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바울이 지난 주 로마 시민권을 이용하며 로마 황제의 지배를 인정하며 그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였다는 것을 알지만, 왕이신 예수님은 유대인 사회와 로마 제국을 향하여 소동을 일으키고 계시고 있단. 참된 복음은 강산에라는 가수의 노래처럼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무리와 같이 자신의 왕에게 갇혀서 참된 왕을 잊고 기억상실증이 걸려 메시야 사상에 갇혀 버린 유대들과 인간이 신이라며 자신을 숭배하라고 선포하고 그것을 어기면 폭력과 억압과 죽음으로 다스리며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인간인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미쳐버린 세상에서 그들 스스로 “다른 왕이 있다.” 참된 왕이 있다고 고백하게 하는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 복음의 힘입니다. 부활절을 기다리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기도하고 바라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예수가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참된 왕이 되셨다는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다. 라고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