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시리즈 (1) - 심령이 가난한 자
Notes
Transcript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Intro
만약 이 자리에 예수님이 나오셔서 설교를 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수님이 말씀을 직접 가르쳐 주신다면, 꿀송이 같이 달고, 우리 안에 진정한 회개의 역사,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복음서를 읽으면 예수님이 가르쳤을 때 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제자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이후에 능력에 놀랐다고 하죠.
감사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이 기록으로 남아서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은 본문은 예수님께서 축복의 산이라고 불리워진 곳에서
가르치셨던 산성수훈 부분 중 팔복에 관한 내용입니다.
특히 팔복은 산상수훈 가운데 가장 앞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산상수훈은 5장부터 7장까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산상수훈는 팔복외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주옥 같은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을 말씀해 주신 내용이 바로 산상수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기준이 무엇인지, 기도나 구제나 금식이나 아니면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지 궁금하면 산상수훈을 읽으면 됩니다.
이렇게 때문에 산상수훈을 ‘천국의 대헌장’ 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구약과 신약 전 메세지의 요약' 이라고 합니다.
오늘 읽은 범위는 마 5 장 이고 앞으로 저는 앞으로 마태복음 7장까지를
5월과 7월 계속 이 산상수훈에 대해서 다룰 것입니다.
마태복음 말고도
눅 6 장 20-49절에도 좀 더 짧은 버젼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기록을 해 놓았습니다.
눅 6 장에서의 말씀은 산이 아니라 평지에서 한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6:17 (KRV)
17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그래서 눅 6 장의 가르침은 평지수훈이라고 불립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태복음 5 장에서 7장까지 산상수훈의 내용을 반복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오늘도 설교 준비를 하면서 쭈욱 쭈욱 계속 읽어 보았어요.
그리고 누가복음도 보면서 신기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기록된 산상수훈과
누가복음 6장에 기록된 평지수훈이 똑같은 점을 강조하면서 끝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긴 가르침을 끝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그리고 누가복음에 기록된 평지수훈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거니와
49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주초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히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말씀을 통해 보니깐 예수님은 말씀을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이 말하신 것을 행하는 사람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매 주 말씀을 들을 때, 내가 살아 낼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들은 말씀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실까? 적용할 수 있는 것, 내가 행동으로 옮겨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저는 지난 주 주일설교 승리하리라에서 마지막 세번째 포인에서 내가 받아야 승리할 수 있다라는 부분을 적용 포인트로 잡았어요.
그래 맞아, 내 힘으로는 절대 승리할 수 없지,
하나님이 주셔야 승리할 수 있지, 그러면 내가 승리할 수 있는 은혜를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고민하며 나름대로 실천하며 5일을 살았어요, 그래서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도했어요.
지혜를 구하고 도움을 구하고, 힘을 구했습니다.
오늘 부족한 제가 말씀을 전하지만,
하나님이 말씀이 들려지길 바라며 그 들은 말씀을 살아내시기 위해서 치열하게 고민하시고 그 말씀을 삶 가운데 put into action 하시는 저와 여러분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다시 본문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1-3절이 오늘 본문입니다.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1절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고 나옵니다.
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을까요?
그 대답은 4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25절만 띄워주시면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에수님을 좇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4:24 (KRV)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병고침 때문에 그 소문이 나서 수 많은 무리가 모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3가지 요약하면 Teaching Preaching Healing 입니다.
Healing 도 중요한 사역이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살펴보면 늘 말씀이 먼저 되는 것을 볼 수 가 있어요.
마태복음 4:23 (KRV)
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예수님은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안타까워 하시고 고쳐 주셨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생명의 말씀을 늘 먼저 전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말씀보다 현상에 더 집중을 했죠.
현상에 집중해서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그 걸 피해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마태복음 5:1 (KRV)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앉으셨다는 의미는 이제 정말 중요한 가르침을 하실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누가 나오옵니까?
마태복음 5:1 (KRV)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옵니다.
이것이 제자와 무리의 차이입니다.
무리는 일어나는 현상들에 집중하지만 제자들은 말씀 앞으로 나아옵니다.
예수님이 다른 사역이 아닌 말씀 사역을 하실 때 함께 했던 부류의 사람들은 큰 무리가 아닌 제자였습니다.
누 6장 20절에도 이렇게 기록이 되어있죠,
누가복음 6:20 (KRV)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여러분은 제자입니까 무리입니까?
제자라는 말에는, 학생,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늘 학생처럼, 말씀을 가까이하고 배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본인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생각하면서 말씀을 배우고 있지 않거나, 가르치고 있지 않거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있지 않는다면, 제자가 아닙니다.
다시 한번 반복하겠습니다.
말씀을 배우는 태도가 없다면 여러분은 제자가 아닙니다.
어떤 현상이나, 사람 모이는게 좋아서 모이는 무리 일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진지하게 앉아서 말씀을 전하려고 하시면 다 떠나가는 무리 일뿐입니다.
여러분 무리가 되지 말고 제자가 되십시요.
그리고 제자는 현상이 아닌 말씀에 집중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2절에 보니
마 5:2
2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가르치시기 시작을 합니다.
산상수훈에 가장 먼저 부분에 기록된 팔복은 모두 그리스도인의 내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한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흉이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그리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예수님께서는 현상이 아닌 더 본질적인 그리스도인의 내면이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내면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복이 있나니, 복이 있나니.. 이 말씀이 팔복에 모든 말씀에 반복이 됩니다.
복에 대해 말씀을 나누길 원합니다.
기독교는 복의 종교입니다. 이 것 때문에 기복신앙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지만,
그것은 복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7–28 (KRV)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또한 신명기 8장과 신명기 28 장은 축복장으로 알고 있죠, 신명기 28장만 살펴보면
신명기 28:2 (KRV)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또한 시편의 첫마디는 무엇으로 시작합니까?
시편 1:1 (KRV)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성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에도
요한계시록 1:3 (KRV)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복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복의 개념을 모르면 오해할 수 있죠.
성경에서 말하는 복을 3가지로 정리해 볼수 있겠는데요,
성경이 말하는 복의 3가지 의미
성경이 말하는 복의 3가지 의미
여러가지 의미가 있지만,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성경적 복의 의미를 나누어보겠습니다.
첫째, 복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것. 즉 하나님 자체가 복이다.
첫째, 복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것. 즉 하나님 자체가 복이다.
디모데전서 1:11 (KRV)
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복을 누릴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지름길입니다.
복되신 하나님, 하나님 자체가 복입니다.. 그렇다고 복이 하나님이다 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것이 복이다.
두번째,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이다 복이다.
두번째, 받는 것이 아닌 주는 것이다 복이다.
사도행전 20:35 (KRV)
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우리는 흔히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서 무엇을 받아야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복이 맞죠. 그런데 오늘 말씀은 뭐라고 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는게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가진게 없어도 누군가에게 주면 그게 그렇게 행복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누군가에게 주는 것이 그렇게 기쁜 것입니다.
세번째, 메마른 곳에서도 영혼이 만족되는 것이 복이다.
세번째, 메마른 곳에서도 영혼이 만족되는 것이 복이다.
이사야 58:11 (KRV)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 메마른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오아시스는 끊임없이 지하수가 솟아 오르기 때문에 그 오아시스 근처에는 나무가 자라고 짐승이 살고 사람이 쉴 수가 있습니다.
사막과 같이 메마른 시대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오아시스에서 공급되는 성령의 생수를 받아서 영혼이 만족되는 복을 누리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복에 대해서 정리가 되셨죠?
복 자체이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복입니다.
주는 것이 복입니다.
메마른 곳에서도 영혼이 만족되는 것이 복입니다.
이런 복을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을 통해서 복에 대해서 완전히 정리해주셨습니다.
정신적인 것, 내면적인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세상적인 복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이 아님을 이야기 해준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할까요?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오늘 본문 5장 3절은 모든 팔복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심령이 가난해 지는 것이 핵심 키입니다.
성령의 열매처럼, 이 팔복의 성품들은 동시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심령이 가난한데, 애통하지는 않아,
나는 애통은 하지만, 마음이 온유하지는 않아,
이런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애통하지 않을 수 없고,
애통하는 사람은 온유하지 않을 수 없고,
온유한 사람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가질 수 있고, 어떤 것을 가질 수 없는 성품이 아닌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났을 때 우리 안에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축복과 가지게 되는 성품 인 것입니다.
어? 나는 아닌 것 같은데? 라고 하시는 분이 지금 계신 것 같은데,
이 성품을 우리가 가져야 내가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을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이런 성품들을 주셨습니다.
아마 예전에는 내가 좀 심령이 가난했는데, 요샌 좀 안 그래..
내가 예전에는 마음이 청결했는데, 요샌 조금 지저분해...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그 것은 내 안에 있는 영을 active 하게 activate 시키지 않고,
자꾸 혼과 육으로 살아갔기 때문에 그 성품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지,
내가 다시 복되신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복되다 여기며,
오아시스처럼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참 복을 받으면 여러분 안에 성령님이 주시는 내면의 성품들이 살아 날 줄 믿습니다.
*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첫째, 심령이 겸손한 것을 의미합니다
첫째, 심령이 겸손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성품이 무엇일까요? 바로 겸손입니다.
반대로 가장 싫어하는 성품은 무엇일까요? 교만입니다.
성경에 교만이라는 단어가 무려 133번이 등장을 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셨습니다.
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바로 심령이 겸손한 것입니다.
그런데 겸손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만약에 자기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겸손이라는 것은 내가 날마다 숨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모르고 살아가듯, 내가 겸손한 것을 모르고 사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겸손하기가 어렵습니다.
무엇 하나 작은 것을 이루면 그냥 막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겸손은 경건의 훈련을 통해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28–30 (KRV)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에게 와서 배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어떤 모습 가운데 겸손함을 배울 수 있나요?
빌립보서 2:5–8 (KRV)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근본 본체시지만 종의 형체를 가지고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고,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께 배울 겸손입니다.
이 마음,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중국 성경에서는 3절 말씀 심령이 가난한 자를 심령이 겸손한 자로 번역을 했습니다. 원어에 의미가 가나한 자, 겸손한 자 둘 다 포함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또한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두번째, 심령이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번째, 심령이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세상에 깨끗한 마음은 사실 없습니다.
아주 갓 태어난 아기 말고는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이 지저분 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뒤죽박죽 된 마음, 쓰레기로 가득찬 마음을 하나님께 가지고 와야 합니다.
스스로 짐어지고 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아서 쏟아 내야 합니다.
마태복음 11:28 (KRV)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 가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심령을 깨끗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을 합니다.
내가 깨끗해지면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게 아니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내가 자꾸 나가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요한1서 1:7 (KRV)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빛 가운데 행하고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우리의 심령을 깨끗케 하는 것입니다.
세번째, 심령이 비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세번째, 심령이 비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심령이 비워진 것을 의미합니다.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비결은
하늘의 것으로 채울 수 있도록 심령일 비워야 합니다.
나머지 7가지 복은 심령이 비워져 있어야 그 빈 심령 가운데 채워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도저히 지금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것으로, 하늘의 것으로 채울 수 없다면,
심령이 다른 것들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심령 가운데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질 수 없습니다.
불순물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섞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기 위해서 여러분의 마음을 철저히 비우실 수 있는 시간이 오느르 기도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결론)
그러면 이렇게 심령이 겸손하고, 심령이 깨끗하고, 심령이 비워졌을 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5:3 (KRV)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이것이 무엇일까요?
제가 보는 프리셉터 성경에 이렇게 설명이 달려 있더라고요.
천국, 헬라어로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즉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 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산상수훈에서 말하는 이 천국은 영토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미치는 모든 영역을 의마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는 복은
심령이 가난 한 자가 받는 복: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심령이 가난한 자의 삶의 모든 영역 가운데 미친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 한 자가 받는 복: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심령이 가난한 자의 삶의 모든 영역 가운데 미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심령이 가난한 자의 삶의 모든 영역 가운데 미친다는 것입니다.
Isn’t this amazing?
wow!
여러분 하나님의 그 통치를 느끼며 삶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내 삶에 임한 것을 느끼며 살고 싶지 않습니까?
전 너무 그래요. 그게 최고에요. 이 땅 가운데 살면서, 육신을 입고 살면서 받을 수 있는 큰 복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내 삶 모든 영역에서 느끼며 그 분께 감사하며 영광 드리는 것 아닐까요?
이런 복이 누구에게 임한다고요?
심령이 가난한 자 바로 심령이 겸손하고, 심령이 개끗하고, 심령이 비워진 자...
이런 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가 됩시다.
그런데 이 복이 산상수훈 마지막에 또 언급이 되요....
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예수의 복음을 위해서 핍박을 받은 자도.. 천국이 저희 것임이래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통치하심을 느낀대요..
wow..
사랑하는 대학청년부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니다. 기도생활, 구제생활, 금식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그런데 가장 먼저 말씀하시는 이 팔복은 모두 우리의 내면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것이 먼저라는 거에요.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내면을 먼저 살펴 봅시다.
내 심령은 겸손한가요? 내 심령을 깨끗한가요? 내 심령은 하나님의 것으로 채우기 위해 비워져 있나요?
다 함께 찬양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