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1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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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공생애 기간동안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며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사역은 계속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고 복음을 전하자 그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예수님이 어딜 가든 많은 사람들이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이유가 다 제각각 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감시하고 잘못된 것을 들춰내기 위한 목적으로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율법 학자들 이었습니다. 심지어 오늘 본문을 보면 적은 수가 아니었습니다.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한두명의 사람이 아니라 그들만 해도 한 무리가 됐을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이유와 목적은 제각각 이었습니다.
이러는 중에 예수님이 집안에서 사역을 하시고 계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이 계신 집이 지붕이 열리고 중풍병자가 누워있는 침상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지붕을 걷어내면서까지 무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 이겠습니까? 19절에 의하면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그 누구도 상상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예수님을 만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끝내 병고침을 받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중풍병자를 본 예수님은 그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선포하셨고 그 선포 후에 중풍병자가 일어나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이처럼 중풍병자를 고쳐주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확인 할 필요가 있습니다. 20절에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지금 중풍병자의 믿음이 아니라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의 믿음 때문에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친구들을 통해 2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먼저는 진정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친구들은 중풍병을 얻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친구를 위해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있어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남들에게 피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친구를 향한 마음에 지붕을 뜯어 예수님을 만나게 함으로써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처럼 내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우리의 마음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육신의 질병이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 내 주위에 있는 친구들의 영혼을 위해 이들과 같이 애쓰고 힘써야 함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들은 자신의 친구의 몸이 회복될 수 만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던지, 어떻게 하던지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집은 돌로 지었고, 지붕은 짚을 섞은 흙으로 평평하게 만들어 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붕을 뜯는 것이 오늘날처럼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붕이 뜯겨지고 있는 그 집 안에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아마 화가 많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기다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지붕을 뜯고 있는 이 친구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을 것입니다. 시선 뿐만 아니라, 소리도 치고 지붕을 뜯지 못하게 막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자신의 친구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하며 지붕을 뜯은 것입니다. 그러니 친구를 향한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도 우리 이웃을 향한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영혼이 구원 받을 수 만 있으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예수님을 모르는 그 영혼을 주님 앞에 데려가기 위해 애쓰고 또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님들이 영혼을 위한 마음이 생기길 바랍니다.
그리고 두번째 이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예수님도 인정하셨듯이 이들의 믿음입니다. 이들에게는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예수님이 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그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지붕을 뜯어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간 것입니다. 아마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고 조금의 의심이라도 있었다면 그들은 그런 모험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 앞으로 몸이 아픈 친구들 데려다 놓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들의 행동을 보며 그들의 믿음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이 있는지 각자의 믿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정말 예수님이 나의 목자이시니 부족함이 없으십니까? 이 말씀에 정말 아멘하실 수 있으십니까? 오늘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님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으로 충분한 믿음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가 어떠한 상황과 환경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리며,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우리의 구세주 이시기에 우리는 그분 한분만으로 충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이러한 기적을 두 눈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세주로 인정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율법 학자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자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예수님을 신성모독을 한다고 하며 예수님을 몰아 붙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병이 나았다라고 말씀하시 않으시고 ‘죄가 사하여졌다’ 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리시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의 질병을 고치실 뿐 아니라 영혼의 죄를 사하는 구원자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지금 메시야를 보고 있으면서 구세주를 못 알아보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그들이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못 알아보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8
Matthew 5:8 NKRV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깨끗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결은 다른 것이 섞이이 않은 그래서 나눠지지 않은 마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8 의 청결을 영어성경에서는 clean 이 아니라 pure(퓨어)로 번역 하였습니다. 지금 율법 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이 더 높아지려 하고,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눈 앞에서 죄 사함과 치유의 역사가 벌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 역사를 일으키신 분이 메시아일 수 밖에 없음에도, 그들은 그럴 수 없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 한 사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나눠지지 않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며 믿는 믿음이 우리안에 있어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온전히 바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을 되돌아보시고 혹여나 아직까지 예수님보다 내가 앞서있거나, 아직까지 예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며 신앙생활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은지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하루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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