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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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찬25 면류관 벗어서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21장 1~11절까지 말씀입니다.
21장 1절 한절만 함께 읽고, 한절씩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함으로 성전에 나아오신, 성도님들의 삶과 가정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순미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일은,
공개적으로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감람산 벳바게에 도착합니다.
이 장면은 사무엘하 15장에서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에 쫓겨나,
감람산을 넘어 나귀를 타고 피신했던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이것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다윗이 도망한 루트 그대로, 같은 나귀를 타고
감람산으로부터 돌아와 예루살렘에 귀환하게 된다는 사인을 주는 것입니다.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예수님은 벳바게에 도착해서 두 명의 제자를 맞은편 마을로 보냅니다.
거기서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 하십니다.
만약, 누가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 하라는 답변까지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성취하신 일입니다.
스가랴 9장 9절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바로 본문 5절의 말씀이 이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장시 말은 전쟁에 사용되는 동물이었지만,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대속물로 드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시온의 딸은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2인칭 대명사 헬라어 “수”라는 단어는 배타성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의 왕이 아니라,
“너”의 왕이 “너”를 위해서 왔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특별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왕의 위엄은 내품으며 오시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오십니다.
겸손의 상징인 나귀를 타고,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제자들이 예수님의 지시대로, 명하신대로 움직였습니다.
여기서 쓰인 헬라어 “쉬네탁센” ‘지정하다’,
또는 ‘처방을 내리다’라는 의학용어로도 쓰이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실 때,
큰 주제로, 융통성있게, 추상적으로 명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하나 지정해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야고보는 어떻게 움직이고, 하나하나 지시하신 것입니다.
마지 약사가 약을 제조하듯이 무언가를 계획하여 꼼꼼히 체크하며 지시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셨습니다.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제자들은 나귀 새끼 위에 자신들의 겉옷을 얹었고,
무리의 대다수는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깔아 놓았습니다.
이 행위들은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신다’라는 의미의 퍼포먼스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겉온은 그 사람의 전 재산입니다.
대부분 한 벌의 겉옷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 사람의 겉옷을 보면, 그 옷이 누구인지,
그 사람의 신분이 어느 정도인지 금세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전 재산이자, 정체성과 같은 겉옷을 깔았다는 것은
‘당신을 나의 왕으로 모시겠습니다.’라는 뜻의 표현인 것입니다.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겉옷을 나귀와 길 위에 깔아
그 당시 유대인을 다스리는 헤롯대왕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의 왕임을 고백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도 이들과 같이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나의 전 재산, 나의 정체성 마저도 모두 예수님의 발 아래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겉옷이 깔린, 겸손하게 나귀 새끼를 타고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 될 수 있습니다.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가시자,
앞선 무리와 뒤따르는 무리가 “호산나” 소리치며,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찬양했습니다.
“호산나”의 뜻은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온 성이 소동했습니다.
여기에 쓰인 소동이라는 단어는,
“지진”, “광풍”이라는 뜻의 헬라어 “세이스모스”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등장하시자, 마치 지진이나 태풍이 일어난 듯한 소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이들이 예수님을 폄하하여 표현합니다.
‘이는 누구냐 하거늘’
예수님을 지칭하는 ‘이는’을 헬라어 ‘후토스’를 사용함으로서,
“이 자가 도대체 누구인데 이렇게 소란이냐?”
이렇게 폄하해서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님을 낮춰서 표현하며, 예수님이 누구인지 묻는 질문에
“그저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온 선지자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11절과 같이 표현한 무리는 9절처럼 예수님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 표현한 무리와는 정 반대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왕이요 메시아로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저 한 종교의 선생, 스승, 위인정도로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분이 진정한 왕,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유월절을 보내기 위해 수많은 지역에서 유대인들이 모여있었습니다.
평소 예루살렘은 20만명 정도의 유대인이 거주하지만,
유월절이 되면 각 지역에서 모인 유대인들로 200만명이 넘은 사람이 거주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예수님을 찬양하는 반열에 합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소문으로만 듣고,
그저 나사렛의 선지자로만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무리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평화의 왕으로, 겸손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에게 우리의 전부, 우리의 겉옷을 깔고, 이렇게 찬양합시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지금 구원하소서.
여러분, 우리도 오늘 주님의 날,
이 무리와 함께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기쁨으로 찬양하며 나아갑시다.
기도제목
1. 예수님을 나사렛의 선지자 정도로 생각했던 무리처럼, 예수님을 단순한 위인정도로 생각하는 세상의 무리에 속하지 않고, 우리의 왕, 구원자 메시아로 믿고, 전파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2. 우리의 겉옷, 나의 전부를 주님께 내려놓고,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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