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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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누가복음 13장 10~17절 말씀입니다.
제가 가진 성경으로는 신약성경 117페이지에 있습니다.
함께 합독하시겠습니다.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이 시간, “안식일의 주인”라는 제목으로 김현규 목사님께서 말씀 전하실 때,
큰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 일 시: 2021년 3월 14일 ◉ 장소와 유형: 청년부예배
◉ 설교본문: 누가복음 13장 10~17절 ◉ 설교제목: 안식일의 주인
오늘도 청년부 예배를 함께 드리는 여러분들의 모든 삶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늘 함께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신약 대하설교 9번째 시간,
누가복음 13장 10~17절 말씀을 함께 살펴보며,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닫고, 그 고백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갈릴리에서 사역하시고,
사마리아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행적을 살펴보았습니다.
갈릴리에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사마리아를 지나, 간음한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초점은 항상 소외되고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혹시 “청담동 살아요” 라는 드라마를 보신 분 계십니까?
재개발 직전의 낡은 2층 건물 안에서 초라하게 살아가는
김혜자 씨의 식구들과 이웃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린 드라마입니다.
그 드라마 중에 한 짤방을 보게 되었는데
김혜자 씨가 문화센터에서 숙제를 받았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말을 적어와라.”
한주 내내 끙끙거리며 생각해 내는데, 좋은 기억이 없습니다.
매일 꾸지람 듣고, 실패했던 과거만 떠오릅니다.
좋은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길가다 시골에 살던 동네 오빠를 만났던 기억이 났습니다.
차를 마시고 헤어지면서, 유심히 돌아서는 김혜자에게
“돈은 있니? 없으면 얘기해...”
김혜자 씨에게는 그거보다 감동적인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가장 현실적인 것이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허공에 뜬 언어가 아니라 현실적인 것입니다.
오늘 가장 감동적인 분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감상적인 분이 아니셨습니다.
항상 처절한 고난의 현장, 눈물겨운 삶의 현장에,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 드디어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 도착하셨습니다.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무리를 가르쳤던 회당은 차가운 종교의 본산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회당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가장 복합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종교, 교육, 문화, 정치, 경제 모든 것이 회당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회당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에게 전통적으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가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어내면서
가장 심각하게 걱정했던 문제가, 모국어와 토라를 잃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회당이었습니다.
회당에서는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서기관이라는 직책을 세워
성경을 후손들에게 남기고,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포로 시대에도 다음세대를 위해서,
하나님을 본질적으로 더 알고, 놓지지 않기 위해서, 잘 섬기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회당은 마을의 어느 지역에서든 가까이 있을 수 있도록,
항상 마을의 정 가운데 위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회당은 하나님을 잘 알고, 섬기기 위한다 하면서
전통을 고수한다는 목적으로 기득권 세력의 정치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회당은 약한 자들에게 흘러가는 하나님의 사랑은 온데간데 없고,
유대 지도자들의 명분을 유지하기 위한 공간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오늘 그 곳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무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누가복음 13장 10절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목숨과도 같은 날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그토록 목숨처럼 아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까지 깊이있게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 째 안식하셨습니다.
그래서 7일 째 안식일을 기념하여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안식일 다음 날, 8일 째는 무엇을 하셨을까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다시 일을 하셨다고 대답합니다.
외국에서 렌트카를 빌려주고, 다시 반납하면 꼭 물어보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사람이죠?”
어떻게 알았을까요?
1주일에 5천킬로를 뛰는 민족은 한국사람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6일 동안 일하시고, 7일 째 쉬셨다는 것은,
다음 날 다시 일하려고, 체력을 보충하려고 쉬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7일 째 안식하신 것은,
6일 동안의 창조역사가 더 이상 손댈 것 없이 완전했다는 고백으로 안식하신 것입니다.
안식의 개념은 휴식의 개념이 아니라, 고백입니다.
1) 이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2) 하나님의 창조는 완벽했다.
이 두 가지 고백을 하는 날이 바로 안식일의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에 안식해야 한다면서 예배 때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서 예배만 보다 가는 것진정한 의미의 안식일을 지킨 것은 아닙니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하고, 고백하고,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내용이 어디에 나옵니까?
네, 맞아요. 십계명, 제4계명에 있습니다.
그 내용이 성경에서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신명기 5장출애굽기 20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의 두 본문에서 말하는 안식일의 개념이 다릅니다.
출애굽기 20장 8~11절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신명기 5장에서는 어떻게 지키라고 기록되어 있을까요?
신명기 5장 12~15절
12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13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4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내신,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입니다.
왜 이렇게 안식일에 대한 내용이 다른 것일까요?
순서를 살펴보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다가
나중에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추가한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 처음 소개하실 때는 창조주 하나님을 먼저 소개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광야를 지나 신명기 말씀을 주실 때는,
출애굽 사건을 다시 언급하면서, 그 의미를 해석해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가 완벽했기 때문에, 7일째 쉬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해서 죄를 지었습니다.
완벽한 창조를 고백하고, 그것을 누려야 할 인간이 죄로 인해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구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출애굽 사건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모형을 제공합니다.
안식일에 출애굽 구원의 고백을 넣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우리를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기념해서,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주일로 언제 바뀌나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그것을 기념하는 날이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시점으로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되어야 하나요?
안식일에 고백하던 구원의 하나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제 안식일의 내용이 창조에서 구원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의 내용을 생각해볼 때, 안식일의 주인은 누구인가요?
창조의 하나님, 구원의 예수님이 바로 안식일의 주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안식일의 주인이 안식일에 회당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제가 십자가를 설명하고 싶은데, 십자가 모형이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대신해서 펜을 십자가라 하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누가 십자가를 찾았다면서 저에게 가져다 주었어요.
그러면 모형으로 사용하던 펜이 여전히 필요할까요?
여러분, 실제가 오면, 모형은 필요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안식일에 오셨습니다.
안식일은 예수님을 가르치는 모형의 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의 계획을 이루고 계시는데도
여전히 안식일을 붙들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장 11절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8년 동안 허리를 펴지 못하는 척추교착증 환자가 회당에 있었습니다.
성경은 암묵적으로 이 여인의 모습을 통해,
차갑게 굽어져 있는 유대 종교의 상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회당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예배하며,
엄격하게 안식일을 지키고, 주장하는데
정작 그 속에는 18년 동안이나 허리를 펴지 못하고 꼬부라져있는
가슴아픈 여인이 회당에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해볼 때,
적어도 이 여인에게 두 가지 변화 중 한 가지는 일어나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한 육체의 구원을 받던지
구원자 예수님으로 인한 영혼의 구원을 받았어야 합니다.
둘 중의 하나는 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회당에 모든 사람이 그 여인의 회복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3장 12~13절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여기에서 “펴다”라는 단어는 “재건하다, 회복하다, 세우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인을 고침으로, 회당에서 안식일의 의미
다시 재건하고, 회복하고, 세우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실 유대 관습에서 공식적 자리에서는 유대남자가 여인을 멀리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회당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다 여인을 보시고 직접 부르십니다.
보시고 -> 불러 -> 놓였다 하시고 -> 안수하시고 -> 펴고 -> 영광을 돌리는지라
예수님께서 적극적으로 다가가셔서, 회복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진정한 영광과 경배를 돌린 것입니다. 안식일에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들일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3장 14절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당연히 안식일에 일어나야 일을 하셨는데
회당장이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장이 누구한테 화를 냅니까?
죄없는 무리에게 화를 냅니다.
원래 누구한테 화를 내야 맞는 것입니까?
예수님께 화를 내야하는데, 예수님의 압도적인 권위에 눌려
직접 화를 내지 못하니깐, 괜히 죄없는 무리에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무리는 회당에 있던 환자들을 의미합니다.
회당에는 어떻게든지 회복하려는 환자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 일을 누가 도와야 합니까?
회당장을 비롯해 회당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유대지도자들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회당 안에 있는 지도자들은 회당 밖에 환자들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회당의 역할을 회복하자, 죄없는 환자들에게 화풀이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교회에는 이런 무리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무언가 삶은 고단하고, 힘든데, 어떻게든 회복해보려고
교회에 가면 회복이 있을까, 마지막 끈이라도 붙들고 싶어서
목마름에 찾아온 영혼들에게 예수님의 구원은 못줄망정
오히려 회복을 갈급해하는 그들의 목마름에 되려 화를 내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에 이런 교회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고, 현재 우리의 신앙 수준입니다.
회당장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1)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2) 안식일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3)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회당장은 도데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었을까요?
그를 지배하는 것은 차가운 종교적 의식이었습니다.
형식과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종교인이었습니다.
생명이 이지러지고, 짓눌려서, 마치 18년 동안 허리를 굽어 펴지도 못하고,
매일을 고단하게 살아가는 무리들이 회당 밖에는 즐비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교적 명분만 남아서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럼에도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너무나 떳떳한 것입니다.
감동적인 것은 가장 현실적인 것이다.
예수님은 항상 현실에 있었고, 현장에 있었습니다.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삶의 현장에 육심의 몸을 똑같이 입고 오셨습니다.
우리의 약함을 스스로 겪으시고, 우리의 통증을 그대로 느끼시며,
우리의 슬픔에 공감하셨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공감하는 것은 놀라운 기적입니다.
우리가 자꾸 1%를 향해 갈수록, 떨어지는 것이 공감능력입니다.
‘탑’이 되어 갈수록, 우리 안에 자리잡는 의식은 “나는 너희들과 달라.”
스스로 약자들과 선을 그어버리는 의식이,
내 안에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커져갈수록, 마치 우리가 대단한 신앙인이 된 것처럼 착각합니다.
저는 고3때까지 개척교회를 섬기다가 20살때부터 줄곧 큰교회에서 섬겼습니다.
청년으로 있을 때도, 큰교회를 경험했고, 전도사, 목사 사역도 큰교회에서만 했습니다.
큰 교회에서 사역하면, 큰 일을 하는 것 같고,
마치 나의 신앙이 더 커진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제가 큰교회 청년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제대로 신앙이 서있는 청년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자기 신앙보다는 군중심리에 감정이 따라가는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성공주의 신앙도 참 많이 있습니다.
가장 신앙적인 것이, 세속화의 한복판에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가장 신앙적인 것은, 가장 인간적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정통 유대남자로서 공적인 자리에서
여인을 불러 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이 관습을 과감하게 무너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우선순위는 항상 생명이었습니다.
우리의 판단 근거도, 예수님과 같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이 일이 생명보다 중요한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러면 답은 훨씬 더 선명해집니다.
우리 청년부가 2021년도부터 예배라는 형식으로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예배는 형식에 불과합니다.
10년, 15년 전만하더라도 재적 50명에, 매주 20-30명 모이던 청년들이
지금은 5명, 6명 모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다시 되찾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영혼을 담을 형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오랜만에 온 청년이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대예배를 드리고, 어른들을 만나고,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면서 정착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 때 청년부 예배라는 형식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누구라도 오랜만에 교회를 온 청년들이 있을 때, 청년부 예배를 소개하고, 청년들을 만나고,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4월 4일이 되면,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에는 부활의 주님을 기념하고, 기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이 복된 소식을 세상이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탄생의 의미를 담은 계란을 삶고, 먹고,
또 이것을 가지고 지역주민에게 나눠주며,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부도 부활절 행사를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먼저 시급한 것은 잃어버린 청년들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부활절의 컨셉은 “홈커임데이”로 잡았습니다.
부활의 주님, 다시 한 번 신앙을 회복하고,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는 부활을 경험하고, 기뻐하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었습니다.
18년 동안 허리가 구부러진 여인처럼,
차가운 종교적 관습에 물들어버린 유대사회다시 펴시고,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우리의 고단한 삶에 동참하기 원하십니다.
여러분, 요즘 삶에 많이 지쳐 있습니까?
매주 예배는 빠지지 않고, 주일마다 반주로, 교사로 섬기는데 많이 버거우십니까?
유튜브로 예배를 드리는 청년 여러분,
잠시 교회를 떠나 세상에 안주하며 몸은 편한 것 같지만,
마음 한구석 허전하고, 참된 평안과 쉼에 대한 목마름으로 갈증을 느끼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모든 아픔을 아시고, 함께 겪으시고, 공감하고 계십니다.
낮은 곳으로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말구유에서 태어나시고,
가난한 지역, 가버나움에서 사역하셨습니다.
더러운 땅, 사마리아를 거쳐 지나가셨고,
회당 밖에서 울고 있는 무리들에게 먼저 다가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를 위해 전부를 내어주시려고, 십자가를 향해 달려가십니다.
여러분, 주님께로 나아오십시오.
주님은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로 오는 진입장벽이 절대 높지 않습니다.
혹시 높아서 우리가 못 올까봐, 먼저 낮은 곳으로 내려오셨고, 먼저 달려오셨습니다.
이 찬양 같이 고백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낮은 곳으로, 이것이 영원한 삶>
기도제목
1. 안식일의 주인되시는 창조의 하나님, 구원의 예수님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2. 먼저 다가오신 그 사랑에 반응하고, 주님께 더 깊이 나아올 수 있도록
축도
이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시며
우리와 교제하기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넓고 크신 사랑과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모든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내주 교통하심의 역사가
안식일의 주인되시는 예수님께 더 깊이 나아가기 원하는
군산삼학교회 청년들 머리머리 위에 지금으로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적용과 나눔
1. 그동안 나에게 안식일(주일)은 어떤 날이었는가?
2. 안식일의 의미와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신지 깨닫고, 나에게 새롭게 적용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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