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널 사용하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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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views1. 내가 갖고 있는 욕심 2. 하나님의 뜻과 나의 방법 3. 깨지기 쉬운 존재 4. 그럼에도 일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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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있는 욕심
내가 갖고 있는 욕심
오늘도 말씀을 나누기 전에 질문을 하려 해요. 이 질문에 굳이 답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머리로만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왜, 어떤 목적을 갖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나요.”
“누구에게 말할 수 없는, 내가 갖고 있는 욕심은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쉬고)
대부분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렵고 힘들게 정말 없어서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해요.
넉넉하진 않아도 내가 쓸만큼의 여유가 있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아니어도 내가 바라는데로의 성공을 이루어 내고 싶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거에요.
어쩌면 세상에서 말하는 부와 권력을 손에 쥐고, 그 것을 선한 곳에 활용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구요.
솔직히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죠.
그리고 모두에게 존경 받는, 모두의 워너비가 되는 것이, 무시 당하는 것보다 더 나을거에요.
내가 믿는 하나님을 전하는데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사람보다, 영향력 있는 멋진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좋겠죠.
내가 공부하고 또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아무 것도 몰라서 보탬이 되지 않는 것보다, 또 내가 최고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열심히 하려는 마음들이 모두에게 있을거에요.
그럼 우리 한번 상상해보죠.
여러분이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 되었어요. 정말 유능하고 센스 있고 또 여기저기서 여러분을 모셔가려고 하고 있어요.
진짜 모두의 워너비가 되었어요. 롤모델로 여러분을 꼽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유튜브던 어디던 여러분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어요.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이 세상에 막 전파되고 드러나요. 여러분이라는 존재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어요.
어떨 것 같아요? 굉장히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겠죠.
나라는 사람이 그렇게 사용되고 있으니까.
(쉬고)
승승장구하면서 잘되고 있는 어느 날 여러분이 중고등학교 때 했던 행동 하나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어요.
학폭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떤 문제 하나가 꼬투리 잡혀서 여러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나락에 갔어요. 모두의 워너비에서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존재가 되어 버렸어요.
더 이상 여러분을 찾는 사람이 없고, 여러분을 통해 전해지던 예수님도 사람들이 믿지 않아요. 오히려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이 욕을 먹어요.
분명 방금 전까진 나에게 웃으며 인사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아서서 욕을 하면서 나를 적대시 해요.
그럼 여러분의 마음은 어떨 것 같으세요? 생각만 해도 최악 아닌가요?
(쉬고)
하나님의 뜻과 나의 방법
하나님의 뜻과 나의 방법
지난 주부터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모세가 딱 그랬어요.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삶을 부정 당하는 사건을 통해 완전 나락으로 빠져 버렸어요.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바로에게 아들도 상속자도 없었기 때문에, 모세는 왕권을 이어나가기 위해 양육 되었다.’라고 해요.
갑작스럽게 왕궁에 와서 살게 된 모세는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왕권을 받기 위한 훈련이 시작된거에요.
그는 지금까지 유모라 알고 있었던 어머니를 통해 히브리인으로써의 정체성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교육과 훈련을 받아왔어요.
그런데 지금부터는 아니에요.
자신이 배워왔던 모든 것들을 싹 다 버리고 잊어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해요.
히브리 가정과는 전혀 다른 철학을 가진 이집트인으로 살아가야 해요.
히브리인들이 살던 고센 땅의 집단 거주지에 있는 작고 초라한 오두막집에서 벗어나, 왕이 사는 품위 있고 정말 크고 강한 성에서 살아야 해요.
이제 자기 방을 갖게 되었어요. 자기 방 없이 형과 누나랑 좁은 방에서 같이 부대끼며 살다가 이제 정말 말도 안되게 큰 자기 방을 갖게 되었어요.
심지어 방에 거실도 있고, 손님이 오면 맞이하는 응접실도 있어요.
이집트에서 내노라하는 일타강사들이 와서 교육을 시켜줬어요. 자신이 배웠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들을 보고 듣고 배워야 해요.
태양 신전에 가서 태양신 라를 향해 무릎을 꿇어야 하고, 그에 대한 신앙을 고백해야 하며, 태양신 라가 진정한 신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배웠어요.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신되시며, 나를 구원하셨다.’라는 것을 들으며 말씀을 통해 교육을 받아왔는데, 갑작스럽게 태양신 라에 대해 배우게 된거에요.
히브리 언어를 배웠었는데, 이제는 그림 문자를 배워야 해요. 복잡한 생각들을 나타내는 수준 높은 상형 문자를 쓰고 읽고 해석 해야 해요.
이집트의 생활 양식과 문화 그리고 다른 나라와 진행하고 있는 외교에 대한 부분, 문화, 화학, 신학, 철학, 법률 등 모든 것들을 왕이 되기 위해 배우고 있어요.
이 공부들이 쉬웠을까요? 이 어린 아이가 배우기에 버거운 내용들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모세는 힘들어하지 않았어요.너무 똑똑했거든요.
분명 6-7살이 배우고 감당하기엔 너무나 어렵고 힘든 교육과 문화적 충격이었을텐데
모세는 원래 이런 공부를 했던 아이였던 것처럼, 쉽게 받아드리고 이해한거에요.
아무 것도 모르던 아이가 진도를 다 따라 잡은 것도 모자라서, 먼저 공부를 시작했던 사람들을 뛰어 넘을만큼의 성취를 보인거죠.
이 당시 교육 커리큘럼을 보면 우리처럼 쉬는 시간? 체육 시간 없어요. 그냥 왕이 되기 위해 공부만 죽어라 했어야 해요.
이 아이가 그 모든 것을 다 견뎌냈다는 것이죠.
이제 이집트 학문이, 이집트의 모든 것들이 그의 생활이 되었고, 그의 사상이 되었고, 이집트 사람 그 자체가 되어 버렸어요.
성경에서 기록 된 모세 말고, 일반 역사학자가 기록한 모세의 이야기를 보면,
모세는 당시 이집트 사람들의 워너비였다고 해요. 바로가 신경을 쓸 만큼 매우 핵인싸. 모두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었어요.
말과 행동이 뛰어난 사람이었어요. 진짜 완벽한 지도자의 모습이었어요. 지적 능력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었어요.
30세 때 에디오피아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올만큼, 뛰어난 군 전략가이면서 상대국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어요.
말 그대로 이집트의 영웅이면서 이집트의 자존심 그 자체였어요.
(쉬고)
이 시기 모세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평가 했을까요?
(쉬고)
깨지기 쉬운 존재
깨지기 쉬운 존재
성경 그 어디에도 이러한 성과를 거두는 동안 모세가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나님께 예배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라는 기록이 없어요.
모세는 꽤 오랜 시간을 이집트 사람으로 살았고,
세상이 원하는 사람의 모습이 되어 그 곳에서 성공하기 위해 고군분투 했고,
세상의 기준에 완전히 부합하는 사람.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 살아갔어요.
(쉬고)
사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났는지 알고 있었어요. 또 왜 지금은 왕자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는 지도 알고 있었고, 히브리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잘 알고 있었어요.
이집트의 학문을 배우고 거기에 집중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과 때를 전혀 구하지 않았어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를 보면서,
내 뜻과 방법에 따라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겠다는 정말 위험한 생각을 하기 시작해요.
6-7살 때 궁에 들어갔고 평생을 왕자로 살면서 다양한 전투의 승리를 경험하고 위대한 인물이 되었어요.
30-35년을 지내고 이제 나이 사십이 되었을 때 형제들을 돌아 볼 생각이 났어요.
그는 이스라엘 형제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의 진짜 형제들은 노예였고, 이집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더러운 일들을 하던 사람들이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30-35년을 지켜보기만 했었어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바라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는데, 나이 40이 되자 그의 마음에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한다는 계획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죠.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자신에게는 이스라엘을 데리고 나갈만큼의 힘과 능력이 있어요.
이 두 가지가 그의 마음에 딱 들어오자 조급함을 느껴요.
왜요?
내가 가진 지혜와 지식 그리고 경험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다! 는 판단을 했거든요.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노예에서 해방 시킬 수 있다는 그 확신의 마음이 생겼거든요.
모세가 점점 조급함을 느껴요. 매일 생각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해방이 된 거죠.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그를 감싸기 시작하면서 그의 마음에 자리 잡았어요.
그는 그 조급한 마음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라 착각했어요.
스스로 위대한 일을 해보려는 열심을 가졌고, 자신의 방법대로 일을 추진해요.
그리고 기회가 불현듯 찾아왔어요. 11절. 맞고 있는 내 형제 노예를 보게 된 거에요. 그래서 큰 돌덩이를 들어서 사람을 내리쳤어요. 갑자기 발생한 사건이 아니에요. 그는 자신이 의도한 계획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거에요.
그리고 12절. 좌우로 살펴요.
사람을 죽인 것을 숨기기 위해 좌우로 살펴보고 그것을 덮으려는 행위가 아니에요.
사람들을 의식하는거에요.
“이스라엘 사람들아. 봤니? 내가 이제 움직였다.”
“너희를 노예에서 건져내기 위한 첫 걸음이 시작되었다!”
“내가 고민했던 방법이 이제 시작되었다!”
(쉬고)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신이 있었어요.
이 것을 기점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예 해방에 대한 마음을 갖기를,
이 사건이 그 마음에 기폭제가 되기를 바랬어요.
하지만 그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 하나 있었어요.
(쉬고)
하나님은 그에게 “학대 받는 상황을 해결하라" “돌을 들어 내리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죠.
조급한 그의 마음이 시야를 가렸고, 조급한 마음이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 여겼어요.
부당하게 노예를 괴롭히고 있었다면 왕자의 신분으로 노예 감독관을 혼낼 수 있었어요. 왕자의 자리를 사용해서,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때려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어요.
마음만 굉장히 앞선 상황이에요. 마음이 앞서서 결과를 만들어냈어요.
그런데 그는 자신이 잘못 된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동의할 것이라 여겼어요.
자신의 행동이 무조건 옳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며칠 뒤 다시 그 곳을 찾아갔어요.
그 곳을 가면서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찾아와 고맙다 말하며,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 것인지 물어볼 줄 알았어요.
노예 해방의 기틀을 다졌다고 생각했어요. 자신을 지지하기를 바랬어요.
첫 단추를 끼웠으니 두번째 단추를 끼우기 위해 그 곳에 돌아갔어요.
그 곳에서 히브리인들을 결집시키고 함께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려 갔어요.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한거에요.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다른 분위기인거에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요. 자신에게 와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아요.
냉랭해요. 그리고 두 사람이 앞에서 싸우고 있어요.
이 것은 모세의 계획 속에 없던 그림이에요.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했던 그였기 때문에, 그가 생각한데로 사람들이 반응을 했어야 해요.
아무도 자신을 기다리지 않았어요.
그가 그려 놓은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해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아요.
모세는 아직 그 것을 바로 잡을 기회가 있다 생각했고, 자신은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싸우지 맙시다. 우리 이제 힘을 합칩시다!”라고 운을 띄워요. 이 상황을 해결 할 수 있다 믿었으니, 확신에 찬 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했을거에요.
그 때 싸우던 사람들이 모세를 향해 이렇게 말하죠.
“아 오셨군요. 앞으로 노예 해방 운동을 어떻게 할지 우리끼리 논의하다가 작은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말씀하시면 들을게요. 제가 뭘 하면 될까요?”
가 아니라.
“너 뭔데? 니가 뭔데 싸우라 마라야.”
“왜 우리도 죽이려고? 니가 뭔데 여기와서 명령질이야"
라 해요.
(쉬고)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어요.
그가 원했던 말이 아니었어요.
일을 시작하면 히브리인들이 자신을 지지 할 줄 알았어요. 자신을 지지해야 할 그들이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거에요.
자신이 왜 노예 감독관을 죽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자신을 밀어내고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요.
스스로 모든 위험을 다 감수하면서, 히브리인을 위해 기꺼이 살인까지 한 사람이 자신이었어요.
히브리인만을 위한 마음으로 과감하게 행동한 사람이 자신이에요.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렇게 행동하면 안 돼요.
(쉬고)
여기에서 모세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해요.
이집트 사람들의 워너비. 전쟁 영웅. 모든 방면에서 뛰어났던 모세.
전투에 나가면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강한 멘탈을 갖고 있던 모세.
바로를 위협할만한 인기와 능력을 가졌던 모세.
그가 이 상황 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내려요.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서는 이 상황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부정당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자신을 환영할 줄 알았던 히브리인들은, 모세를 멀리하고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모세가 사람을 죽였다는 그 결과만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가 히브리인들을 향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들으려 하지 않고, 그를 비난하고 있어요.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어요.
마음만 앞서 했던 행동이, 심사숙고하지 않았던 그의 돌발 행동이
그를 완전히 무너뜨렸고, 더 이상 이집트에서 살아가지 못하도록 만들었어요.
여러분, 왕자이자 이집트의 권력을 쥐고 있던 모세가 왜 사람을 죽인 이 일 때문에 도망을 가게 되었을까요?
당시의 왕족은 엄청난 힘이 있었잖아요? 그럼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을텐데, 왜 모세는 광야로 도망을 쳤을까요?
(쉬고)
마음만 앞섰던 모세의 이 행동이 엄청난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이에요.
(쉬고)
왜 바로 왕이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고 했을까요?
이집트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번성하고 강해지는 이스라엘이 이집트 왕국의 위협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쿠테타를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는 전력들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 남자 아기들을 죽이라고 한 것이죠.
이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여서 반란을 일으키면 아무리 이집트라고 해도 쉽게 정리하기 어려웠던 것이죠.
모세가 사람을 죽였고, 다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거주지에 갔다. 라는 이 소식을 들은 바로는 자신이 우려했던 그 일. 반란을 모세가 준비하고 있다고 판단한거에요.
언젠가 사고 칠 것이라 생각했던 이스라엘을 규합하는 사람이 하필이면 모세였던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모세는 그런 마음이 있었잖아요.
가뜩이나 바로를 위협 할 만큼 이집트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눈에 거슬렸었단 말이죠.
모세를 제거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거에요. 왕의 자리를 위협하는 모세를 합법적으로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모세의 멘탈이 무너졌어요. 도무지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을만큼 나약해졌어요.
바로에게는 지금이 최고의 기회에요. 그래서 왕자였던 모세가 애굽을 탈출해서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쉬고)
모세는 마음이 너무 앞선 나머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지 못했어요.
그 분께 이스라엘 해방의 주도권을 내어드렸어야 해요.
지금으로부터 40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해방의 주도권을 잡으셨을 때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졌거든요.
출애굽을 위한 10가지 재앙도 있었지만, 그들이 자랑하던 군대를 홍해 바다에 다 수장 시켜버리는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셨어요.
40살이 되어, 이스라엘 해방을 생각했던 그 때 하나님께 주도권을 내어드렸다면 다른 결과를 보게 됐을거에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많은 경험이 갖고 노력해도,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 전에 결승선에 도달할 수 없어요.
내가 아무리 뛰어난 존재라 해도 하나님의 계획과 시간을 뛰어 넘을 수 없어요.
모세는 조급함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어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움직였고, 그 결과 40년을 도망자로 광야에서 살아야 했어요.
저와 여러분은 어떤가요?
나의 조급함이 나의 시야를 가리고 있지는 않았나요?
그 조급함이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되지는 않았나요?
조급한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뢰를 지우고 있지는 않았나요?
(쉬고)
그럼에도 일하신다
그럼에도 일하신다
왕궁에서 살던 모세는 아무 것도 없는 광야로 도망을 쳤어요.
더 이상 사람들의 워너비도 아니에요.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도 없어요. 형제들에게 버림 받았어요.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자신을 바라보니 완전히 쓸모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고, 어떤 목적을 갖고 살아야 할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어요.
한순간의 조급함이 그를 완전히 망가 뜨렸어요.
그가 방황하고 있는 광야. 여기는 사람을 더 망가뜨리는 곳이에요.
뜨겁고 건조한 모래와 자갈 그리고 울퉁불퉁한 바위. 제대로 마시지도 먹지도 못한 모세에게 있어 정말 최악의 장소에요.
뜨거운 햇빛을 피해 숨을 곳도 마땅치 않아요.
그리고 지금 그는 자기 자신은 ‘굉장히 쓸모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모든 것들이 무너진 상황이에요.
돌아갈 곳이 없어요. 광야에 혼자 있어서 너무 두려워요.
삶의 모든 목적과 방향이 부정 당했어요. 이제 그는 살아갈 어떤 목적이 없어요.
“내 인생은 끝났어. 하나님은 날 용서하지 않을거야"
완전히 쓸모 없는 사람. 용서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평가했어요.
(쉬고)
정말 그의 인생은 끝이 났을까요?
끝난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그를 향해 세워놓으셨던 하나님의 시간표가 본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해요.
15절 후반절이에요.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 곁에 앉았더라.”
끝난 것 같아 보였던 그의 인생이었는데 그가 우물가에 앉았어요.
여러분 광야. 사막. 정말 뜨거운 그 곳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해요?
맞아요. 물이에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실패한 듯 보였지만 그에게 우물이 있었어요.
죽어가는 그에게 힘을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소망을 줄 수 있는 물이 그에게 있었어요.
비틀거리며 걷다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나는 실패했어. 하나님을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실거야!
모든 것을 포기했던 그 때,
마침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힘이 빠진 그 때 그에게 신선한 물이 있었어요.
그에게 소망을 주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게 해줄 신선한 물.
그의 목을 축여주고 두 발을 딛고 일어 설 수 있게 해줄 진정한 희망 여호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고 계셨던거에요.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지고 가야 한다.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모세는 열심히 달려왔어요.
그는 늘 성공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그렇게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왔어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도 모세처럼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 혹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열심히 잘 해야 한다는 그런 부담감 속에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쉬고)
너무 힘이 들어가서 경직된 삶을 살고 있다면,
시선 때문에 억지로 그 길을 걷고 있었다면,
그래서 나의 삶이 버겁다 느껴지고 어딜 향해 걷는지 모르겠다면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그 자리에 앉으세요. 털썩 주저 앉으세요. 그거면 충분해요.
(쉬고)
저도 여러분도 매우 멀리 달려왔고, 오랫동안 서 있었어요.
오랫동안 투쟁하는 삶을 살아왔고,
억지로 밀어 붙이면서 걸어오느라,
우리 정말 많이 지쳤어요.
(쉬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앉아도 돼요. 털썩 주저 앉아버리세요.
달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래도 세상 무너지지 않아요.
주저 앉는다고 해서 내 삶이 박살나거나 망하지 않아요.
(쉬고)
불확실한 미래를 걸으며 허우적 거리지 않고, 자리에 앉겠다는 그 결단은 “이제서야 하나님을 바라 볼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에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그만 해. 잘했어. 충분히 잘해왔어. 그러니까 멈춰도 돼”
“이제 내가 할게. 나를 믿고 앉아봐"
라고 말씀하고 계실거에요.
우리 옆에 우물. 신선한 물을 준비하셨어요. 우리는 앉아서 그 것을 마시기만 하면 돼요.
물 한 사발 들이키면서 하나님께서 이제 일하시는 것을 보면 되는거에요.
(쉬고)
오늘 설교 제목은 “그가 널 사용하시리"이죠.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모세. 40년간 광야에서 떠돌며 패배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모세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그를 사용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단 한번도 내려 놓으신 적 없으셨어요.
그분은 모세가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승승장구 할 때에도" “모든 것을 잃고 무너져버린 그 때에도"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그를 사용하고 계셨어요.
저도 여러분도 넘어지고 좌절하고 쓰러지고 있지만,
말씀대로 제대로 살아가는 날이 정말 하루도 없을 수 있지만,
그 분은 우리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계셨고, 우리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온 세상에 선포하실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달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천천히 걷다가 그 자리에 앉아도 괜찮아요.
아니 앉아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을 분명히 경험할 수 있어요.
이번 한 주를 살아갈 때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앞서서
그래서 세상에서 살아내기 위해 열심을 내는 삶이 아니기를 소망해요.
일단 한번 주저 앉아보길 바래요.
그래야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용하고 계셨는지를 볼 수 있어요.
주저 앉았을 때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를 두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그러한 한 주가 되기를 정말 간절히 바래요.
주저 앉아서, 하나님이 주시는 물. 은혜를 마시며 다시 일어서는 그 은혜가 있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