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여기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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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부 교사중보기도회 설교

Notes
Transcript

서론

샬롬.
(인사말을 애드립으로.)
오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인데요.
여러분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혹시 한번 이야기해 주실 수 있는 분? (손 드는 제스쳐하며, 말씀해 주신 분께 선물 드림.)
저는 어떤 영화를 보고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외국 영화예요. 제가 더빙해서 한번 대사를 읊어보겠습니다.
일단 상황은, 남자가 큰 잘못을 했나봐요. 그래서 여자는 남자에게 헤어지자고 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자 대사부터 할게요.
남: “미안해!”
여: “거짓말!”
남: “아니야! 진짜야! 난 널 사랑해!”
여: “어딨는데!?”
남: “뭐?!”
여: “보여줘봐! 사랑이 어딨는데? 니가 말하는 사랑을 나는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어! 몇 마디 말은 들리지만, 그런 말들은 텅 비어있을 뿐이야.... 이제 끝났어..”
여러분, 저는 이 대화에서 가장 충격 받은 말이,, “사랑이 어디있는데?” 였어요.
여러분, 사랑이라는게 보이나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사랑한다고 말은 할 수 있겠죠.
카톡에 하트 모양 이모티콘을 쓸 수는 있겠죠.
그런데 사실 그런다고 ‘사랑.’이라는 모양이 보이진 않죠?
그런데 이 여자는 사랑이 보여야 하고, 만져져야 하고, 느껴져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여자가 뭐 잘못 먹은 걸까요? 아니죠.
이 여자는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는거예요.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여러분. 사랑이라는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식적으로 그 사랑에 대해 바로 알고, 의지적으로 그 사랑을 표현하려고 하면,,,
상대방 눈에 보입니다. 상대방이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죠? 부모님이 심장을 꺼내서 보여주시지도 않았는데, 부모님의 사랑이 눈에 보입니다. 들립니다. 느껴집니다.

본론

그렇다면, 사랑은 어떤 모양으로 우리 눈에 보일까요?
사도 요한이 오늘 본문 10절에서 힌트를 줍니다. 한번 함께 읽어볼게요.
요한1서 4:10 (NKRV)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이 여기 있다고 하죠? 눈에 보여야 ‘여기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사도 요한은 정확하게 사랑이 여기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요한이 말하는 여기 있는 사랑이 뭘까요?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신 사랑입니다.
화목제물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힐라스테리온.’인데, 그대로 직역하면, 화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거라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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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러분. 구약과 신약을 찬찬~히 한번 훑어보겠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예수님을 바로 보내셨나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자 마자 보내셨나요??
아닙니다. 인간의 죄를 참고~ 참고, 또 참으시다가 보내주셨습니다.
로마서의 3장 25절을 볼까요?
로마서 3:25 (NKRV)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은 곧바로 죄인들을 다 심판하실 수 있었는데, 그들의 죄를 계속 참으십니다.
죄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신 겁니다.
그들에게 회개할 수 있도록 주신 기회가 구약의 속죄제사였습니다.
일년에 한번, 죄인들의 죄를 대신해서 어린양이 피 흘리는 제사였죠.
이 속죄제사는 누구의 희생을 미리 보여주시는 걸까요? 예수님이시죠.
하나님은 이처럼 계속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면서 회개의 기회를 죄인들에게 주셨습니다.
벌 받아야 마땅한 죄인들을 왜 참아주시고, 기다려 주셨을까요?
‘존 머레이.’라는 칼빈주의 신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진노를 없애기 위해 아들을 죽음에 내몰아 그 피를 흘리게 하실 만큼 진노의 대상인 인간들을 지독히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그들을 지독하게 사랑하셨기 때문에 기다려 주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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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우리 11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시작.
요한1서 4:11 (NKRV)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죠? 오랫동안 기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서로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그러하셨듯! 오랫동안 기다려줘야 합니다. 목숨을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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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죠? 그렇다고 포기해야 할까요? 그것도 아니죠?
일단 기다려보는 겁니다.
그럼 그 사랑이 점점 선명해지고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1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요한1서 4:12 (NKRV)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일단 기다려보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합니다. 우리 혼자 계속 기다려 보려고 하면, 목숨 바쳐보려고 하면, 잘 안되는데, 일단 하나님을 믿고 시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해 주십니다.
그럼 어떻게 된다구요?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일단 사랑하는 이들을 기다려봅시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이들이 누군가요?
배우자인가요? 자녀들인가요? 내가 맡고 있는 사랑부 성도님인가요?
그들을 기다려봅시다. 어떻게 기다릴 수 있을까요?
잘 기다리기 위해선 일단 그 사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 사랑부 예배 설교 때 나온 신부는 신랑을 어떻게 기다릴 수 있었죠?
언제 온다고 확실히 이야기도 안 해 준 신랑을 어떻게 기다릴 수 있었죠?
신랑이 꼭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신랑은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잘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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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도님들이 간혹 예배 시간에 소리를 지르거나 막 돌아다니거나 해도 기다려주죠. 우리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구원 받은 우리 성도님들이 예배의 기쁨을 표현하고 교감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을 잘 이해하고 잘 기다려주면, 더 좋은 자세로 예배드리기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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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녀들은 어떻게 기다릴 수 있죠? 부모님 보기에는 마음에 안드는거 투성인데, 그럼에도 왜 계속 기다리시는 거죠? 선생님들?ㅎㅎ
내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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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이 불평할 거리 투성이인데, 그럼에도 우린 어떻게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릴 수 있죠?
하나님도 사랑으로 나를 기다려주셨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나를 기다려주셨다는 걸 아는 사람은 잘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은 나의 자녀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예배 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은 내가 맡은 성도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반복해서 죄를 짓는 나 자신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다려주셔서 내가 구원 받았듯이, 그들도 기다려주시며 구원의 은혜를 풍성히 채워주실 겁니다.
나 자신을, 우리 성도님들을, 나의 자녀들을 구원해 주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선생님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 때 우리의 걱정과 두려움은 다 사라지고 담대하게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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