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강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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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리문답 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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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성경 진리를 믿고, 수호하며, 전파하는데 있다.
성경의 진리-삼위일체, 인간, 그리스도, 구원, 교회, 종말
건강한 교회의 척도-얼마나 진리를 바르게 믿는가? 얼마나 진리를 바르게 가르치는가?
이를 위한 방법-교리공부 : 성경의 핵심 진리
교리문답은 질문과 대답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를 공부하는 방법이다.
교리문답은 현세대만이 아니라 기독교 전수를 위해 다음 세대를 교육하는데 있어 필수적이다(루터, 칼빈).
벨직(1561), 하이델베르크(1563), 도르트신조(1618~9), 웨스트민스터(1647), 웨민대교리, 웨민소교리
런던 웨스트민스터 채플: 1643.7.1~1649.2.22. / 5년 6개월에 걸쳐 1,163회 이상 모임 / 대표 151명
(121명: 목회자, 30명: 평신도 국회의원-상원 10명, 하원 20명) / 스코틀랜드 신학자 6명 파견
신조, 교리문답, 예배 모범, 교회정치에 관한 규례 제정
1. 하나님을 향한 공적 예배를 위한 지침(1644)
2. 장로교 교회 정치의 형태(1645)
3.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1647)
4. 대교리문답(1647)
5. 소교리문답(1647)
소교리문답: 다음세대를 양육하기 위한 간단한 문답서
107문답 / 1~38: 우리가 믿어야 할 내용, 39~107: 우리가 행해야 할 내용

1문답: 인간의 최고 목적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왜 사니?
포레스트검프: 인생에 대한 현대인들의 생각. 깃털이 오랫동안 날아다니는 장면/포레스트를 대변하는 상징.
지능75-포레스트의 삶은 우연의 연속
*인생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연의 산물이다.
지성사의 흐름
전근대-신학의 시대
토마스 아퀴나스의 자연과 은총
세계를 하나의 도화지라고 한다면, 그 가운데 선을 하나 긋고 아래 쪽을 “자연” 위쪽을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보이는 세계인 자연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자연이 보이지 않는 세계와 함께 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지으신 온전한 세계가 확인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세계를 은총과 자연으로 설명한 이유는 자연으로는 세계를 다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문제가 생겨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분법적 분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죠. 은총은 종교의 영역으로, 자연은 경험과 과학의 영역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서 인간은 신적 계시의 도움 없이도 이성만으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세계 전체가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하다고 설명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설명이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연을 은총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이로서 신앙과 이성은 각자의 범주로 나뉘게 되고 그 가운데 이런 질문이 제기됩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이성으로 알 수 있다면, 우리에게 계시와 신앙이 왜 필요한가?” 이런 맥락 가운데 서구의 개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서구의 ‘개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구의 개혁하면 흔히 마틴루터의 ‘종교개혁’만을 떠올리는데 실제로 그 당시의 ‘개혁’은 세 가지 흐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잘못된 신앙을 다시 성경적으로 회복한 종교개혁입니다. 두 번째는 카톨릭 안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로마 카톨릭교회 자체의 정화운동입니다. 세 번째는 이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되는 중요한 변화로서 기독교 내에 초월적인 부분을 던져 버리고 그 자리에 이성을 채워넣는 개혁, 즉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변화입니다.
2. 근대
세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성경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함으로서 가능할 것이라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입니다. 근대가 열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합리주의’가 태동하게 됩니다. 합리주의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이성을 인식의 원천으로 보아 이성위에 모든 지식의 체계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상관없이 진리를 알 수 있는 수단으로 이성만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러한 이성의 자율성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최고조에 달합니다. 계몽주의의 신조는 ‘이성의 자율성’입니다. 이성으로 무지의 어둠을 밝히자는 것이죠. 계몽주의에는 하나님의 계시라는 도움이 없이도 이성의 힘만으로 자연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다는 신념이 들어있습니다. 계시가 필요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초월적으로 은총을 베푸시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이제 모든 신적인 권위가 부정됩니다.
근대 이전 시대의 절대좌표는 기독교 신앙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과 성경을 절대좌표로 삼아 살고 있었는데 이제 그 좌표가 거부된 것입니다. 그때까지 받아들여져 오던 기독교라는 절대좌표가 거부되자 사람들은 새로운 좌표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이런 맥락 속에 데카르트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을 다 아시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데카르트는 절대적인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진리가 아닌 것들을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심할 수 없는 게 딱 하나가 있는 거에요. 무엇일까요? 바로 의심하고 있는 자기 자신입니다. 의심하는 자신은 그저 존재하고 있는 것이죠. 의심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자기자신인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도, 계시도 다 필요 없고 부정할 수 없는 의심하는 존재인 나. 이성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근대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창조주, 섭리자, 심판자로서 절대좌표의 원점이었어요. 그런데 근대에 이르러서는 생각하는 인간. 인간의 이성, 자아가 그 원점을 대신합니다.
3. 포스트모던 시 대
근대를 지나면서 인류는 ‘계몽주의’라는 이름처럼 인간의 이성에 의한 승리를 낙관하며 과학이 만들어낼 유토피아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근대의 낙관주의를 산산조각 내는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근대와 근대이후를 나누는 중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결정적 사건은 바로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입니다. 서구 사회에서 이 전쟁들은 제국주의의 밥그릇 싸움이나 이데올로기적 차이로 인한 싸움과 같은 문제를 넘어서서 근대 이후 지성에 대한 경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즉 ‘왜 과학이 발전하는 만큼 인간의 정신이 발전하지 않는가? 왜 인류는 과학으로 행복을 만들어내지 못하는가?’하는 심각한 질문이 제기된 것입니다.
근대 이후 인류는 이성과 합리주의를 통해 이것들이 기독교를 대신해서 새로운 절대좌표를 만들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굳게 믿었던 기대가 허물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인간의 행복을 위해 인류를 이끌어줄 리더십에 공백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좌표를 버리고 이성이 새로운 절대 좌표를 제시하겠다고 나왔는데 그것이 세계관의 통일도, 종합도, 인류의 행복도 만족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무수한 부작용만 남긴 채 폐기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삿21:25).
만들어진 물건에는 그것에 맞는 용도가 있다.
사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조나단 에드워즈
궁극적인 목적(최고 목적)과 부차적인 목적
“영광”(카보드)- 한 사람이 남들보다 더 탁월하게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을 대할 때 느끼는 무게감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를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특별히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이성을 주신 목적은 우주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을 구원하실 때 가장 많이 드러났다. 그 영광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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