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1:24-29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삶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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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1. 서론
수요예배 나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골1:24-29 절 말씀을 가지고, “새로운 존재, 새로운 삶”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주제문: 제가 오늘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또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과 예수님을 믿은 후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왔다가, 예배당을 떠나는 이유?
그것은 변화되지 않는 자신들의 모습에 실망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리서치 결과, 3040세대 40%가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올까요?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나? 예배당에 오지 않으나?
자신들의 삶의 모습은 변하지 않기 때문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가지고,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영적으로 하나된 새로운 존재이고 ,
또 새로운 삶을 살아야 되는 사람들아라는 것을 보고자 합니다.
`
[골로새서]
골로새서 -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AD 62년경에, [골로새]에 사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골로새]
골로새 - 오늘날 터키, 에베소에서 동쪽으로 160km 떨어진 곳에 있고, 현재, 데니즐리라는 곳에서 25km 떨어진 작은 도시입니다.
[골로새근처에,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교회]
골로새근처,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가 있습니다.
4장 13절을 보면, “에바브라” 라는 사람이 이 지역 출신인데,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일에 헌신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 4:13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골로새 교회]
골로새 교회 역시 “에바브라”가 골로새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교회를 세워나갔습니다.
골1:7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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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내용을 보면, 바울은 골로새서 전체에서, “새로운 삶”에 대하여 여기 저기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1.골1:3 - 6 까지, 골로새 성도들의 새로운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ex)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2.골1:24-29까지, 오늘본문인데요, 여기에서 바울은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새로운 삶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ex) 교회를 위해 고난
3. 골2:6-23까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삶을 방해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말씀합니다.
4. 골3장 이후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새로운 삶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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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본문 1장 24절부터 29절까지 말씀을 가지고,
바울이 살았던 “새로운 삶”을, 우리에게도 적용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7절을 보시면,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예수님이 너희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1:27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또, 29절을 보시면, 바울은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1:29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이 말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다” 것이 무슨 의미인지 보겠습니다.
사도행전을 1장 9절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3일만에 부활하였고, 40일 동안 사람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행1:3)
그리고, 사람들이 보는 데서,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행1:9)
행1:9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골로새서 3 장 1절을 보아도, 예수님은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다고 말합니다.
골3:1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런데 어떻게? 하늘로 올라 가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을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요한복음 14 장을 보아야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 -20 절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1)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어, 성령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4:16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요14:17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He]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2) 내가 너희 안에 거할 것이다.
요14:18 “18 내[I]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14:19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요14:20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논리적 으로 한번 이해해보면,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사역이 완성된 있을 사건들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사역이 완성되면, 그 사역을 근거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시고,
성령이 오시면, 곧, 성령을 통하여 (through the Holy Spirit) 예수님이 영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껏 예수님은 제자들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육체적인 존재였습니다. (밖에 있었던 존재)
하지만, 십자가 사역의 완성으로,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의 눈에 보이는 존재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나타나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늘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안에 존재하게 됩니다. (안에 있는 존재)
다시말해서, 우리는 영적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 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인것 처럼, (요10”30)
우리도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 입니다 (요17:11)
요17:11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새로운 존재라는 것?= 남자와 여자가 결혼으로 하나가 되는 것 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영적으로 하나가 된 존재라는 것 입니다.
요한복음 1 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 사도 요한)을 부르시고,
요한복음 2 장에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것은
예수님과 성도들이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 입니다.
골로새서 에서, 바울은 예수님과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존재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합니다.
새로운 삶을 우리는 결혼에 비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 결혼하기 전의 삶과 결혼 한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다른 것 처럼,
결혼 한 이후에는 서로 맞추어 살아야 하는 것 입니다.
결혼 한 이후에는, 상대방을 신뢰하고, 사랑하고, 서로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 처럼,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신뢰(믿고)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께 소망을 두고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죠.
이러한 모습들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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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울은 이러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이 어떻게 새롭게 살고 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힘을 다하여 수고하였습니다.
23절을 보시면,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일꾼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골1:23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복음이 무엇입니까?
1)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2)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대속)
3)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 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인지?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한다는 것도 놀랍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는 것도 놀랍고,
또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도 놀랍고,
그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참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알수도 없도 받을 수도 없는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1:26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바울은 이 비밀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친 사람입니다.
행20:24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오늘 , 골로새서도 바울은 여기저기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1)예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이시며,
골1:15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2)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시며,
골1:18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3)이런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골1:22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4) 그리고, 이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1:27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복음에 반대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
바울도 원래 복음의 일꾼이 되기전에, 복음에 반대하는 자였습니다.
1)사도행전 22 장을 보면,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바리새인이었고, 가말리엘 에게 율법 교육을 받았고, 하나님을 열심으로 믿는 자였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박해하였습니다. 예수님과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습니다.
2)그런데, 예수를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행9:3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3)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박해를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a. 1차 전도여행 때-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한테 돌에 맞아 죽을 뻔 했습니다.
행14:19 “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b. 2차 전도여핼 때 - 바울은 빌립보에서 복음 전하다가, 빌립보에서 엄청나게 많이 맞았습니다.
행16:23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이것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고난을 고후 11 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맞아서 죽을 뻔하였고, 자지고 못하였고, 먹지도 못하였고, 입을 옷도 변변치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고난 가운데에 기뻐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1:24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처럼, 바울이 지금 새롭게 살고 있는 인생은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1)세상 사람들은 복음도 이해하지 못하고
2)복음으로 인한 고난과 역경도 이해하지 못하고,
3)고난가운데에 기쁨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복음은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하고,
왜? 이렇게 힘든 삶, 고난 당하는 삶을 살면서도 기뻐하고 있다고 말하는가?
자기 안에 있는 예수님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겪는 고난 = 예수님이 당한 고난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지 전에 복음을 전하였고,
사람들은 복음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와똑같이, 바울도 복음을 전할 때에, 거부당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기를 원하였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기를 원했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기를 원했습니다.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똑같은 삶을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바울이 당하는 고난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있습니까?
예전에 제가 어렸을 때에,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전도 문구를 들고 전도하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역효과가 많이 났던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믿으세요” 라는 말도 해야되지만,
우리의 직장에서 가정에서 우리의 입술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요.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수많은 역경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히고, 육체적으로 폭행을 당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역경을 만나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의 조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해야하는 역경은 우리들의 삶에서 “희생”입니다.
내 것을 양보하고, 성실하고, 거짓이 없고, 진실한 모습에서 세상 사람들은 복음에 호기심을 나타낼 것 입니다.
우리는 말로 하는 전도보다, 우리의 행동으로 복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1-1. 복음을 위해 살았던 이수정
한국 교회사에 “이수정(1843~)” 이라는 사람입니다. 들어보신 분도 있을텐데요.
이수정은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였고,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호레이스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원두우, 1859–1916)와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가 함께 인천 제물포에 입국했다.
이 두사람의 손에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사람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사람도 이수정 이었습니다.
이수정은, 더 큰 도시에 가서 선진문물을 공부해서 조선 백성들에게 유익을 주려고 하였습니다.
이수정은 일본의 농업 기술을 배우려는 목적으로, 일본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농업 박사인 “쓰다센” 을 만나 농업 기술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알게 됩니다.
이수정은 쓰다센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약 4개월 만에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에 편지를 보내는데요. 그의 편지를 언더우드가 보게 되고, 마음이 요동하여 한국 선교사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경외국어대학 조선어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활동하였는데요,
이수정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조선 백성에게 복음을 전할까 하는 것 이었습니다.
저 죄와 어둠 가운데에서 거하면서, 소망없이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복음이라고 생각했던 것 입니다.
농업 기술을 배워 조선에 전파하여, 백성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보다 더 필요한 것은 “복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수정은 우선 미국 성서 공회의 도움으로 “마가복음”을 번역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수정은 미국 성서 공회로부터 50엔을 받고 일했는데요. 다른 일을 하면 120엔을 받을 수 이었다고 합니다.
이수정은 그의 시간과 힘을 성경 번역하는 일에 매진하였습니다.
이 마가복음을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에게 전해주었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우리 선조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 입니다.
[이수정 적용] 이수정은 복음을 위해서 자신이 희생할 수 있는 것은 다 희생하였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이수정 처럼, 복음을 위해서, 살기를 원합니다.
고난이 와도 기쁨으로 감당하길 원합니다.
2.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드러내기 위해 살았습니다.
25절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골1:25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of which I became a minister according to the stewardship from God that was given to me for you, to make the word of God fully known,
25절 말씀을 영어 성경은, 바울이 교회의 일꾼이 된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드러내도록, 알려지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구약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해석할 때에, 예수님을 빼버리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구약 성경을 볼때에, 예수님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다시 봅니다.
1) 예를들어, 이사야 53 장을 해석할 때에, 유대인들은 고난 받는 종을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사야 53 장의 고난 받는 종을 “예수님”이라고 해석합니다.
로마서 4:25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살아나신 고난 받는 종으로 해석하였습니다.
2) 또 다른 예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해석할 때에,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해석하는데요.
바울은 어떻게 해석합니까? 홍해를 건넌 사건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례 받은 사건으로 다시 해석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세례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내가 죽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골2:12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3) 절기나 안식일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다고 말합니다.
핵심 - 바울은 구약을 예수님 안에서 해석한다는 것 입니다.
[적용] 바울은 구약 성경에서 예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제 완성된 계시를 가지고,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할 것 입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겸손과 순종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3. 바울은 교회를 위해 살았습니다.
골로새서 1 장 25절을 보면, 바울은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1:25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1)바울의 전도 여행의 목적은 복음을 전해,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회심 이후 (ad 33-36), 순교할 때까지 (ad 64-68). 약 30년 동안 교회를 세워 나가며, 교회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교회를 세웠다는 것? 건물(building)을 세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를 세웠다는 것은 사람(believers)들을 세웠다는 것이고 =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였다는 것 입니다.
바울은 전도여행을 통해, 수 많은 교회를 세웠고, 이들이 새로운 삶을 살도록 가르쳤습니다.
1)갈라디아 교회
2)빌립보 교회, 데살로니아 교회, 고린도교회
3)에베소 교회, 골로새 교회
그리고 이러한 교회들이 이단이나, 잘못된 가르침에 직면했을 때에, 편지를 보내, 그들이 복음에 굳게 서도록 권면하였습니다.
오늘도, 골로새서를 써서 보낸 이유가 골로새 교회내에 잘못된 가르침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된다는 잘못된 가르침이 골로새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골2:16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잘못된 가르침- 부정한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 매년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을 지켜야 한다. 안식일을 지켜야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교회가 이러한 가르침에서 벗어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얻는다라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가르쳐,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28절을 보시면, 바울은 편지를 통해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사람들로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골1:28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완전하다 = mature in Christ = 성숙하다로 번역하는 게 더 적절합니다.
바울은 수 많은 편지를 통해, 복음을 가르치고, 잘못된 행동들을 고치길 원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는 특히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많았나 봅니다.
그러니까 골3:5 절에서, 욕심을 부리는 것 = 우상 숭배와 같다고 말합니다.
또, 화를 내는 사람이 많았나 봅니다.
골3:8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또, 거짓말 하는 사람이 있어나 봅니다.
골3:9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2-1) 교회를 위해 살았던 사람 - 에바브라
에바브라 - 교회를 위해 항상 기도하였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성숙한 사람들이 되도록 가르치고 애썼습니다.
골4:12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에바브라의 고향 - 골로새입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였는지 성경에 기록이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에바브라가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할 때, 에베소에서 복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에베소와 골로새의 도시 규모를 보았을때에,
에베소는 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 (a major city) 였으며 바울 시대에 소아시아(현대 터키)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서기 1세기 동안 에베소의 인구는 200,000명에서 300,000명 사이로 추정됩니다. 서기 2세기까지 인구는 약 500,000명으로 증가했을 것입니다.
On the other hand, 골로새는 에베소보다 훨씬 작은 도시로 , 인구는 기껏해야 수천 명 정도였을 것입니다. 일
일부 추정치는 인구를 약 10,000명으로 추정하는 반면, 다른 추정치는 인구가 약 5,000~7,000명으로 더 작았을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이러한 것을 볼때에, “에바브라”는 작은 도시 “골로새”를 떠나서, 더 큰 도시인 “에베소”로 갔는데,
(처음 목적) 아마도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함이나, 더 큰 도시에 가서 돈을 벌기 위해 갔을 것 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가장 귀한 복음을 듣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시 “골로새”로 간 것입니다
사도행전 19 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하고 있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니까, 에베소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습니다.
행19:6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바울은 3개월 동안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였고, 2년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행19:10 절을 보면,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행19:10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그리고 놀라운 능력이 일어났습니다. (행19:11)
행19:11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지고 가서, 아픈 사람들의 몸에 얹기만 하였는데도, 사람들이 병이 나았습니다.
행19:12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때에, 에바브라 라는 사람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에바브라는 복음을 가지고 고향으로 가서 골로새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골로새 교회가 잘못된 가르침으로 위험에 빠지자, 다시 바울에게로 가서 이 소식을 전하였고, 이로 인해 바울이 편지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
그 당시 골로새에서 로마까지 먼 거리였는데. 교회가 위험에 빠지자 열일을 제쳐두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돈과 시간을 헌신한 것입니다.
2-2) 교회를 위해 살았던 눔바
골로새 교회에, 눔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골4:15 “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이 여인은 자신의 집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열어 자신의 집에서 모였습니다.
오는 사람들 음식도 제공했을 것이고, 어쩌면 잠자리도 제공했을 것이고, 또 사랑방 처럼 여러 사람들이 왔다 갔다 했을 것입니다.
때때로, 귀찮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집을 내어주는 희생을 하였습니다.
바울, 에바브라, 눔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왜 이들이 교회를 위해 살았을까요?
바로 자기 안에 계신 예수님 때문이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삶으로 살아낸 사람들입니다.
[적용]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영적 가족 공동체인 교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로운 가족 공동체(교회) 안에서, 새로운 가족 공동체(교회)를 위해 살도록 하셨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 대하여, 교회를 일주일에 한 번 예배드리러 가는 곳 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를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는 곳으로, 즉 장소적 개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장소를 이야기 하는 것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을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태어나면, 가정 안에서 자랍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길러집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자식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자녀를 사랑으로 기릅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삽니다. 자식도 장성하면, 부모를 위해, 부모를 보살피며 삽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영적인 가족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살고, 서로 사랑으로 섬기며,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교회(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위해서 어떤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까?
셀 식구들(전도회)을 위해서 어떤 희생을 하고 계십니까? 셀 식구들을 위해 어떤 사랑을 베풀고 계십니까? 셀 식구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십니까?
저희 지역에 셀 리더님들을 보면, 참으로 교회를 위해 사랑을 베푸시고, 헌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계시다는 것을 느낍니다.
교회를 위해 사는 새로운 삶을 소망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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