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7 금요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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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3:4–14 NKRV
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새순교회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큰 위로와 평안을 가지고 돌아가시는 여러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사울이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2년이 됐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한 왕입니다. 이스라엘에 왕이 있길 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질타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대로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사울은 암몬을 무찌르고 길갈에서 마침내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12장에서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자 이스라엘에게 은혜와 구원을 베푸셨던 하나님의 일을 말하며 “하나님이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으며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하나님께서 너희 위에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너희 조상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13장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사울은 암몬과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이스라엘의 진짜 문제는 암몬이 아니라 블레셋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블레셋을 치고자 군사 3천명을 모으게 됩니다. 그리고 그 3천 명 중 천명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이끌고 블레셋의 주둔지를 선제 공격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 모이게 됩니다. 이 길갈은 블레셋의 본진이 북쪽, 남쪽, 동쪽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서쪽의 길갈이 군대를 모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을지 모르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길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요단강을 건넌 것을 기억하기 위해 열두 돌을 세운 곳이며 할례를 행하여 하나님과의 언약을 다시 한번 갱신한 역사적인 곳입니다.
이렇게 블레셋을 이스라엘이 선제 공격하자 당연히 블레셋 또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5절에서 모이게 되었다고 했는데, 블레셋 군대의 규모는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라고 말하면서 이스라엘 군대와 비교할 수 없는 숫자가 모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블레셋 군대의 숫자를 보자 위급함을 느낀 이스라엘 군사들은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고 어떤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서 도망치며 사울을 따르는 모든 백성은 두려워 떨게 됩니다. 이에 사울은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무엘이 와야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바칠 수 있는데 사무엘이 기다리라고 정한 기한동안 오지 않자 더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군대는 와해가 되어 군사 시스템이 마비가 되었지,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고 전쟁을 해야 하는데 사무엘은 오지 않지, 아주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군대의 와해를 막고자 사울은 결국 번제와 화목제물을 차례대로 먼저 드리려고 하였고, 번제를 먼저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참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이 번제를 드리자마자 바로 사무엘이 사울이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사무엘이 오자 사울은 10절에서 반갑게 맞이합니다. 여기서 ‘문안하매’라는 단어는 ‘축복하매’라고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울은 사무엘을 축복하려고 나갔고 반갑게 사무엘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기대와는 달리 사무엘의 반응은 사울과는 달리 딱딱하고 냉담하며 비난적이었습니다. 사무엘은 11절에서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습니다. 이에 사울은 나름의 정당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바로 이스라엘 군대가 와해가 되고 제사장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무엘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않는데 블레셋의 군대는 이스라엘 군대 앞에 있어 블레셋이 이스라엘 군대의 상태를 알고 공격해올 것을 우려해 부득이하게 번제를 드렸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사울의 대답이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정당한 이유입니다. 사무엘은 약속한 기한에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자신이 왜 약속한 기한을 지각했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13-14절에서 사울을 꾸짖고 심지어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인데, 왕에게 명령하신 것을 왕이 지키지 않으셨으므로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라고 사울이 아닌 다른 사람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성경의 관심은 사무엘의 지각이 아니라 사울의 불순종에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사울이 순종했다면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정을 세우셨다는 것과 사울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왕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영속적이 왕권에 대한 약속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사울이 행한 불순종은 바로 제사장만이 행할 수 있는 권한을 제사장의 권한을 가지고 있던 사무엘을 대신하여 행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개인적인 욕심과 열정, 그리고 공격적으로 희생제사를 드린 것도 아니며 제사장의 권한을 가로채려는 목적으로 드린 것도 아닙니다. 그는 군대의 와해를 피하고 예배를 드림으로써 군대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와 전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신 것은 맞지만 희생제사 자체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은 아닙니다. 희생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이스라엘 군대와 전쟁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고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제사장 권한을 월권하여 단지 군대 규합만을 위한 희생제사였습니다.
이렇게 사울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임명이 성공적이지 못했으니 그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틀림 없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왕을 세운 사무엘과 더 나아가 하나님을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일을 맡은 사람에게 책임이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또한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싶어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12장에서 사무엘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셨다는 것을 말하며, 그 구원과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도 있음을 사무엘이 말하였지만 사울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지 않았고 그래서 결국 12장 25절의 예언대로 멸망한 것입니다. 왕을 세우면 이스라엘이 승승장구 할 줄 알고 가장 자신들의 눈에 좋아보이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그들은 블레셋 앞에 여전히 두려워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윤리적인 면이 아니라 그가 요구하신 법도를 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히 여기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반면 그의 아들인 요나단은 14장에서 블레셋을 공격할 때 하나님의 뜻을 묻고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사울을 통해 우리의 눈에는 좋게 보이고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결국 우리에게 유익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선택의 순간 속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닌가? 라며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토록 바라던 사울이 왕이 되었지만 이스라엘에게는 불행과 두려움만이 찾아왔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결과가 찾아왔듯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과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된다면 우리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왕을 세우시겠다는 그 말씀은 바로 다윗으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그의 왕권이 영원할거란 ‘다윗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그리고 이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엄청난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다윗 또한 밧세바를 범하고 범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살인하여 범죄하였습니다. 다윗도 사울과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윗이 사울과 달리 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였냐면 바로 사울은 죄를 짓고도 핑계만 댈뿐 회개하지 않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죄를 알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사울, 그리고 다윗보다도 더 위대하고 완벽한 왕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윗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을 완벽하게 순종하셨습니다. 니케아 신경의 고백처럼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귀영화의 복을 누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결국 우리에게도 가장 좋고 유익이 되는 것을 보여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완벽하게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로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야 비로소 우리가 진정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삶 속에서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꼭 기억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참 쉽지 않습니다. 십계명조차 우리는 너무나 버거운 짐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를 힘들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과 기쁨을 주시기 위해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셨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능력이 되어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셔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 참으로 자비하시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짐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이 되어 기꺼이 순종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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