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하나님 나라로의 초대(마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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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일시 : 2023년 3월 18일 토요일 새벽
본문 : 마태복음 22장 1-14절 *신36
찬송 :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Point Message : 1. 우리의 사명은 ‘전하는 것’ 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보며 자신을 잡으려 하는 자들에게, 욕하고 비방하는 자들을 향해 또 비유로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며, 진짜 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복음을 전함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또 한 번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오늘의 비유는 ‘혼인 잔치의 비유’ 입니다. 이 비유는 ‘천국’에 대한 힌트를 줍니다.
천국을 혼인잔치에 비유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결코 슬프지 않고 비방과 비난 그리고 음모가 없는 곳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임금 하나가 있는데, 이는 곧 하나님이심을 보게 합니다.
이제 그 임금으로부터 혼인잔치가 시작되었음이, 그리고 이 잔치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초대될 것임을 본문 초반을 통해 봅니다. 하지만, 이런 초대에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본문을 보다보면, 차라리 무관심으로 끝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6절을 보니, 초대를 위해 파견된 종을 모욕하고 죽이는 모습까지 보게 됩니다.
그렇게 준비된 혼인잔치는 무산되는가 싶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임금은 자신의 종들을 죽인 자들을 진멸하고 또 동네에 불을 질러 혼인잔치로 다시금 초대를 시도합니다.
임금이 말합니다.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이에 종들이 움직입니다.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그러자 혼인잔치에 사람들이 가득 채워집니다. 얼마나 임금이 바라던 모습입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게 주시는 교훈은, 첫째, 우리의 사명은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잘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목적도 아니요, 세상이 인정해주는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적도, 목표도 아닙니다. 우리의 사명은 그저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가장 고귀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이들이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하는 우리를 향해 조롱과 때로는 협박이 찾아올 것입니다. 마치 사람들이 임금의 종들을 대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런 대응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를 대신해 진노하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또 일하실 주님이 우리의 뒤에 계시기에, 그저 우리는 우리게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할 뿐 입니다.
사명을 다하면 늘 비난과 조롱만이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전함에 그 잔치가 사람들로 가득해질 수 있습니다. 혼인잔치가 열렸으나 초청하는 자가 없었더라면, 끝내 그 혼인잔치는 방문자 없이 지나갔을 수 있지만, 초청하는 자들이 있기에 혼인잔치는 가득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의 목적은 전하는 것이며, 그 전함에 고난과 핍박이 오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함은, 끝내 그 혼인잔치를 사람들로 채우실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기로는, 전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으나, 그렇다하여 전하는 일을 뒤전으로 두기보다, 우리의 유일한 사명인 그 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Point Message : 2. 그리스도의 의의 ‘예복’을 입으라]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게 주시는 두번째 교훈은, ‘예복’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최근 공개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을 보며 분개하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압니다. 저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만 들어도 충분히 화를 끌어올릴만한 내용이 충분함을 압니다.
충분히 화가 나지만, 이들보다 성경을 더 모르는 제 모습에 더 화가 나기도 하고, 이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그 헛것에 열정으로 미쳐있는데, 정작 제 모습은 진리를 믿고 따르면서도 열정 하나 없이 살아가는 이 모습에 화가 났습니다.
여하튼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도구삼아 헛된 삶을 살아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반석삼아 그 위에 우리는 서가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예복을 입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예복이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3장 27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옷을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의 옷, 그 예복은 곧 세례, 즉 성령충만함 아니겠습니까? 골로새서 3장 12절을 보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무엇입니까? 성령의 열매 아니겠습니까? 로마서 13장 14절은 또 이렇게 기록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여기서의 예복 또한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곧 성령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 악한 시대에 우리가 입어야 할 예복, 거짓이 우리를 유혹하는 이 때에 우리가 입어야 할 예복이 무엇입니까? 곧 예수 그리스도, 성령충만함 아니겠습니까?
바라옵기로는 날마다 성령충만하기에 더욱 부르짖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충만하시고, 날마다 찬양으로 충만하시며, 날마다 기도함에 충만한 우리 모두 되길 소망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 가운데 창조됨은 우리 알아서 잘 먹고 잘 살라고 창조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 압니다. 그렇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바로 전하는 것, 복음 전도자의 삶이 곧 우리의 삶 아니겠습니까?
또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위해 힘써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의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그 예복을 입기에 힘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령충만함이 우리의 삶에 날마다 넘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또 하루를 허락하신 주님 앞에, 주님 복음 전도자의 삶, 성령충만한 삶을 결코 놓치 않는 주의 자녀 되겠노라 고백하는 오늘 이 새벽되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1) 우리 이 시간 들은 말씀을 가지고
- 복음 전도자의 삶을 위해, 담대함 허락 하소서,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우리 되게 하소서
- 그리스도의 예복을 입기에 노력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주의 말씀 위에 세워지는 오늘 하루 되게 하소서
2) 한 번 더 기도하겠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각자 가지고 나오신 기도제목을 가지고
- 내일의 모든 예배가 성령충만한 예배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