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허락하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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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
본문 : 욥기 42:10-17
【성경봉독】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욥기 42:10-17] 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은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인 욥기는 ‘의인의 고난’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욥기를 읽다보면 항상 찾아왔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의 고난을 또는 재앙을 수락하셨는가?였습니다. 이런 질문속에서 명쾌하게 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결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러한 질문이 조금이나마 해결이 되어졌습니다. 왜? 의인인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셨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왜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늘날 1) 우리의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와 2) 의인인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에 대한 고찰을 오늘 본문과 욥기에 나오는 욥의 전체의 인생을 통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욥기의 첫 시작은 욥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욥은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평가합니다.(욥 1:1)
욥의 재산도 많았다.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였다.
욥의 자식? 아들 7, 딸 3 총 10명이다.
욥은 자식에 대한 신앙교육도 아주 철저했다. 잔치를 끝내면 욥이 자식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다. 이유는? 욥이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그렇다.
- 욥의 신앙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마음의 범죄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쉽게 말하면, 본질적인 죄악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했다고 한다.(1:5)
정리하면, 1-5절까지 욥에 대한 평가는 거의 완벽하다.
1) 온전, 정직, 하나님을 경외, 악에서 떠난 자
2) 동방 사람중에 가장 훌륭한 재력가
3) 자식의 신앙교육(본질적 마음의 범죄를 인식했던 사람)
-> 욥에 평가에 대해서 8절에 마지막에 한 문장으로 종결시킵니다. "세상에 없더라"
->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욥 같은 사람이 세상에 없더라"!!
사탄은 이런 욥을 보면서, 하나님께 고발을 합니다.
사탄의 하나님께 욥을 고발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탄에게는 '욥'같은 사람이 세상에 없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없앨려고.
[하나님과 사탄의 공통점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시선'이다]
하나님과 사탄에 시선이 동시에 고정되는 인물이 '욥'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시선의 다른점]
하나님의 시선은 세상에서 '욥'같은 사람이 없어서 보았고,
사탄의 시선은 세상에서 '욥'같은 사람이 있어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목적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욥'같은 사람을 세상속에서 '생존'(보존)시키는 것이고 번성케 하는 목적이고,
사탄은 '욥'같은 사람을 '멸종''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1)생존(보존)과 2)멸망이라는 두 키워드가 욥기에서 뿐만, 아니라 성서의 전체적인 대적관계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욥 같은 사람을 세상에 보존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의 목적은 '욥' 같은 사람을 세상에서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 같은 사람을 세상에 보존시켜서, 확장을 시키는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국가로 확장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온 세계 열방으로 확장시킵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열방으로...
사탄은 하나님의 보존성에 대해서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존성을 깨뜨리기 위해서 사탄은 ‘본질을 깨뜨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신앙 그리고 교회의 신앙의 본질을 깨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신앙인의 본질을 깨뜨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무기가 사탄의 고발의 내용을 통해서 알수가 있습니다.
사탄이 하나님께 고발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사탄은 하나님께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에 대해서 질문한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에 욥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었다.
-> 사탄은 욥에게 본질에 대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 복 받아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잖아.
기독교의 신앙에 본질을 하나님의 복으로 자리를 쏵~바꿔버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본질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복 받는게 목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복 받는 것에 열광하게 만든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고 누리는 사람들이 마치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자들처럼 보이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처럼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 복이 기독교의 본질입니까?
NO!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복' 받는 것이 아니라,
사나 죽으나 잘되든 안되든 부하나 가난하나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입니다. 사나 죽으나 잘되든 안되든 부하나 가난하나 병이생기든 건강하든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 주님의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 정리하면, 하나님의 모든 주권을 인정합니다.
1)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 첫 번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백'을 듣기 위함입니다. ‘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깨닫기 하기 위함이다. 본질을 깨닫기 하기 위함이다. 본질적 고백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욥기를 보면 본질(주권) 이야기로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 욥이 복을 받아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되시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습니다.
생각해 보셨어요? 하나님께서 사탄의 고발을 수락하셨는데, 만약 수락을 안하셨으면??
보세요. 욥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십니까?
이제 욥기는 하나님의 주권이야기로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고난이라는 주제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수락여부, 모든 결정여부는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허락하시는 장면속에서 알려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수락을 하셔야만 그 일이 진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부하든 가난하든 축복이든 고난이든 다 하나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 이 말은 고난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고난을 해결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사탄의 고발로 그리고 하나님의 수락으로 인해 욥의 고난이 시작이 된다]
이러한 욥은 종들, 재산, 자식들을 다 잃게 되어집니다.
- 욥의 고난은 하루에 다 일어나게 되어집니다. 성서는 "하루는...맏아들 집에서 자녀들이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있는데 ...."이라면서 시작되어집니다.
[종들, 재산, 자녀을 잃다] - [1장]
1) 사환이 와서 스바사람이 와서 종들을 죽이고 나만 홀로 피하였다.
2)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또 한 사람이 와서
하늘에서 하나님의 불이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죽여서 나만 홀로 피하였다.
3)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또 한 사람이 와서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낙타에게 달려들어 칼로 종들을 죽이고 나만 홀로 피하였다.
4)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주인의 자녀들이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데 큰 바람이 불어서 집 네 모퉁이를 쳐서 집이 무너져서 자녀들이 죽었는데 나만 홀로 피하여서 주인께 아뢰러 왔다. 총 4명.
- 욥의 재앙속에서 꼭 욥에게 알리는 보고자 한명만 꼭 살아남는다. 다 죽어야 되는데 왜 꼭 그 사건속에서 한 명만 살아남을까? 의도가 있는 것이다.
재앙 중에 살아남은 한 명은 알리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알려주는 사람이다.
- 재앙을 알려주는 한 명, 욥이(의인) 고난을 왜 받아야 되는가? 라는 실질적인 해결을 하시는 한 분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한 명은 알려주고, 한 분은 해결하십니다.
**실질적인 해결자는 한 분 '하나님'임을 드러내고, 알려주기 위해서 세 친구이야기가 나온다.
[4장-31장 까지의 친구들과의 대화] - 무려 27장을 사용한다.(42장중에)
- 엘리바스, 빌닷, 소발 세 친구들과의 대화의 목적은 '고난'을 받는 욥에 정당성에 대한 대화였다.
- 엘리바스, 빌닷, 소발 세 친구들과의 대화속에서 '욥'은 점점 더 미궁속으로 빠지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꼬여가고 있다.
이런 세 친구의 성향을 분석하는 연구도 있는데,
(경험주의(엘리바스), 전통주의(빌닷), 도덕주의(소발), 교훈주의(엘리후))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세 친구와의 대화는 쓸데없는 소리였다. 왜? 이 세 친구와의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평가하신다.
38장에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셔서 욥에게 말씀하신다.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욥 38:2)
**- 하나님께서 세 친구와의 대화를 종료시키시고 한 분인 하나님과의 대화로 집중시키신다. 마치 하나님께로 돌리면서 대화하신다. 욥아 나를 봐라....
욥과 친구들의 대화를 하나님께서 정리하신다. 무지한 말이라고...
- 친구들에 말에 집중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 여기서 주는 교훈은? 근본적인 해결은 하나님 한분과의 대화속에서 얻게 되어짐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 두 번째가 '한 분인 하나님께만 집중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고난 속에서 찾아야 할 대상은 친구가 아니라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욥의 고난에 대한 실질적인 문제가 하나님과의 대화속에서 해결이 되어지는데 대화의 내용을 집중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욥의 대화를 보면] - 38-41장까지
하나님께서는 욥을 위로하시거나 사랑스러운 표현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저 꽃은 누가? 태양은? 달은? 바다는?) 즉, 모든 자연 만물이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하나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 우리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문제가 닥혔을 때 하나님과의 대화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그 대화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상현의 스토리(자녀빼고 재산의 풍랑...결국 주권)
42장에 욥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회개를 한다. 회복이 되었다는 것.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근본적인 해결을 하나님과의 대화속에서 얻었다는 것이다.
욥이 하나님과의 대화속에서 근본적으로 얻었던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진정한 회개는 진정한 회복은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고 인정할 때 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가?
1) 고난을 통해서 본질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고 그 본질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가 위함이다.
2) 고난을 통해서 한 분인 하나님께만 집중하게 하는 것이었다.
- 그런데 중요한 포인트는 이 두 가지는 욥에게 고난을 받기 전에 이미 가지고 있던 욥의 신앙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가장 큰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욥이 고난을 받은 후에 욥의 신앙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하게 되었는가입니다.
- 10절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는, 욥의 곤경이 무엇이었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곤경’은 재산, 종들, 자녀들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욥의 곤경은 굉장히 다른 얘기였습니다.
즉, 하나님이 보시는 욥의 ‘곤경’은 재산이나 재물인 소유의 잃어버림이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1) 이전에 사로 잡힌 삶의 방식을 바꾸시다.
곤경을(슈부트) 돌이키시고(슈브)
"곤경"שְׁבוּת(슈부트) 삶의 방식, 사로 잡힌(포로된 자들) “사로잡힌 삶의 방식”이라는 단어가 슈부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는 욥의 곤경은 무엇이었을까? 욥에게 있었던 이전의 삶의 방식이었다. 고난 이전에 욥에게 사로 잡힌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가족’만 보고 살았습니다. 내꺼 내꺼 내꺼만 보고 살았습니다.
자기 재산, 자기 가족, 자기 종들 다 자기 가족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욥의 곤경은 욥이 가지고 있던 이전의 삶의 방식인 ‘가족’만 바라보고 있던 욥의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가정을 사랑하는게 문제 입니까? 아니죠.
가족만 보고 살아가는 인생은 결국의 신앙의 한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깊은 섭리인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인(이전의 삶의 방식을 가족만 바라보았던) 돌이키시고 가장 먼저 허락하시는 것이 공동체이다. 11절입니다.
2) 먼저 공동체를 허락하심(11절)
11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욥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함께 음식을 먹고..
고난 이전에 욥에 대한 기록을 보면, 고난이 찾아 왔을 때도 욥의 자녀들이 죽는 사고의 현장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무엇이냐면?
하루는 맏아들 집에서 자녀들이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있는데 ...
고난 이전에 욥의 식탁의 자리는 맏아들 자녀들로써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난 이후에 욥의 식탁의 자리는 형제, 자매, 이전에 알던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족장시대를 살고 있던 욥의 위치는 재산이 많았다는 것으로 보아, 하나의 족장 개념이었다. 왜? 욥은 종들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난 이후에 욥에 대한 기록은 욥의 ‘종들’이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형제, 자매, 이전에 알던 이들로 구성된다.
* 고난 이후에 욥에게 나타난 변화는 ‘신분 관계가 허물어짐’을 볼 수 있다.
-> 자료를 다 찾아서 보여줄수가 없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욥에게는 분명한 신분관계가 허물어 졌음을 볼 수 있다.
고난 이후에 욥은 이제 공동체의 위로를 경험한다.
고난 이전에 욥의 위로의 대상은 ‘가족’들이었다. 욥의 위로의 변화는 가족에서 공동체로 변화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 욥이 자녀을 잃었는데, 자녀를 먼저 보낸 아비의 마음은 어떨까? 마음에 묻는 다고 하는데 욥이 가지고 있던 마음의 위로를 형제, 자매, 이전의 알던 이들을 통해 공동체를 통해서 ‘위로’를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고난 이후에 욥은 공동체의 채움을 경험합니다.(케쉬타, 금고리(반지))
고난 이전에 욥은 동방사람중에 가장 훌륭한 거부였다. 욥이 도움을 받기 시작합니 다. 금고리(반지)를 하나씩 주었다는 것은 다니엘서나 구약에서 보면 반지를 끼우다는 것은 위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지만, 하나의 공동체로써 너가 나로, 내가 너로, 서로 자신을 위임하는 존재로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한 분인 하나님을 함께 섬기는 한공동체로써 우리는 한 몸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금반지를 주진 않았을까? 느낌도 받았습니다.
-> 고난 이후에 욥의 진정한 재산은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2-17절 마지막까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2절 욥에 재산을 먼저 하나님께서 채워주신게 아니었다.
하나님의 채우심은 우선적으로 공동체를 허락하셨고, 말년에 재산을 허락하셨다.
욥의 말년에 하나님께서 처음보다 재산(복)을 주셨다고 기록한다. 이 복의 내용들이 재산과 자녀들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면, 이 복은 재물과 자녀들임을 알 수 있다.
욥이 말년에 이 재물을 얻어졌다는 것은 말년까지 욥은 공동체를 통해서 공급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회복이 있은 후에 욥의 말년에 재산에 복을 주신 것이다.
-> 욥은 공동체와 함께 식사하고 공동체 안에서 위로받고 공동체에게 공급을 받는 공동체을 섬기며 사랑하면서 살았떠니 그 이후에 하나님의 복(재물)을 더하신 것이다.
-> 여러분 재산의 복을 받고 싶으시면, 공동체 안에 거하고 공동체를 사랑하고 공동체 안에서 위로받으며 공동체에게 공급하십시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복을 더하여 주실것입니다. 재물의 복을 더하여 주실 것이고, 자녀의 복을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 재물의 복과 자녀의 복의 시작점은 공동체안에 거하고 사랑하고 형제 자매를 섬기고 세워주고 안아주고 싸매주며 일으켜 세워주며 어려움이 있는 자들에 필요를 채워주고 공급할 때 하나님의 복은 부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욥의 자녀들을 열거할 때, 아들들의 이름(7명)이 아닌 3명의 딸들의 이름을 거론합니다. 구약의 관점으로 볼 때, 딸들의 이름을 거론한다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 것입니다. 첫째 딸 ‘여미마’ 둘째딸 ‘긋시아’ 셋째딸 ‘게렌합북’ 이들의 이름의 의미가 중요한게 아니라 이 세 딸들은 모든 땅에서 아리따운 여자였고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문맥상 7명의 아들들도 3명의 딸들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업의 축복이 주었지는 것은 재물과 자녀의 복을 누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들들의 이름이 아닌 딸들의 이름을 언급시킨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한 공동체로써 신부들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공동체로의 기업을 보존하였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가정만 바라보고 살았던 욥의 인생이 이제는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확장되어서 한 마음과 한 뜻을 품고 사랑의 공동체를 욥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공동체를 세상속에서 보존시키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 세상속에서 욥을 보존시켜서 이제 욥의 공동체를 보존시키는 것입니다.
고난 이전에 욥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평가는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욥 같은 자가 세상에 없더라”였습니다.
그러나, 고난 이후에 욥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평가는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욥 같은 공동체가 세상에 없더라”라고 평가하셨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욥이 140년을 살았는데 말년에 재산이 불어난 듯 욥에게 기쁨이 있었을까요?
고난을 받은 후 욥이 깨달은 가장 큰 깨달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축복은 재산이 불어나고 이쁜 자식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주시는 복이었습니다. 공동체와 함께 나누고 함께 먹고 공동체를 통해서 공급을 받게 하시는 그것이 이 땅 가운데 주시는 가장 큰 복인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욥의 고난 전, 후를 정리하면,
고난 전 – 가정, 재산에게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면,
고난 후 – 형제, 자매로, 함께 하는 공동체로 시선이 고정되어 변화되었다.
고난 후에 욥에게 진짜 가족과 재산은 형제, 자매들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악에서 떠난 욥의 공동체가 사대까지 이르리라...이렇게 들려졌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욥의 고난을 수락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욥의 신앙의 시선이 가정에서 이제 공동체로 확장되게 하시 위함이었다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여러분 때론 우리에게 정말 설명할 수 없는 맞아들이고 싶지 않은 잘 풀리지 않는 일들이 우리에게 닥쳐올 수가 있습니다. 그런 시간이 주어졌을 때, 우리에게 이전과 다른 시각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깨달으시고 영적인 형제, 자매인 공동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고난 후 욥에 신앙이 깊어지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은 우리의 신앙이 더욱 깊어지는 시간이 되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저는 소망이 생깁니다.
우리 대광교회에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더라”라고 평가하시고
대광의 공동체를 보시면서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악에서 떠난 공동체가 세상에 없더라” 세상에 없더라 세상에 없더라
이렇게 하나님께 평가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한복음 17장에 잡히시기전에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은,
하나 되게 하시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존하게 하옵소서.
“날 부르신 뜻 내 생각보다 크고 날 향한 계획 나의 지혜로 측량못하나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오늘도 날 이끄심 믿네“
우리를 하나로 부르심의 완전한 길은 공동체안에 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