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신세계입니다.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4 views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시편 119:103(구약 894쪽)
시편 119:103 NKRV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반갑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신지 모르지만, 저는 성경을 보면서 가끔 의심스러운 문장들을 만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이 그렇습니다. 오늘 성경 구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처럼 달다’고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진짜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느껴집니까? 가령,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 성도님들은 달콤함을 느낍니까? 목사가 이런 말 하면 안 될지 몰라도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달콤함보다 씁쓸함을 더 자주 느낍니다. 성경의 구절들을 소화하고 그것을 통해 설교하는 일은 자주 긍정적인 느낌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 말씀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설교가 그렇다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농부가 결실을 얻기 위해서는 열심히 작물을 가꾸는 것처럼, 성경 말씀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일은 그와 같은 고생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러니, 성경 말씀을 잘 소화하기 전까지 또는 그 말씀을 토대로 좋은 설교를 써내기 전까지 저에게 성경 말씀은 그렇게 달콤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로서 오늘 시편의 기록자가 쓴 얘기는 의심스러운 문장입니다.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는 하나, 실제로 그 말씀이 곧이곧대로 내게 다가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리의 말씀이라는 믿음 아래서, 저는 이 말씀을 소화하고자 애를 씁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도 씹어보고 왼쪽으로 씹어보고 진짜 단맛이 나는지 찍어 먹어도 보고, 위에서 아래에서 요리조리 살펴봅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 이 말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리 말씀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는 시편의 기자가 말하는 꿀에 관한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꿀을 대신해 단맛을 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식품들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화학조미료인 설탕이나 아스파탐일 것이고, 그것을 통해 만들어낸 여러 식품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탕이나 콜라와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는 단맛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이 꿀이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시편의 기록자는 그 시대 속에서 단맛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꿀을 이야기합니다. 동시에 꿀은 중요한 영양공급원이기도 합니다. 단맛이라는 것이 맛뿐만 아니라, 열량이라는 것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적은 단맛을 내는 설탕과 같은 것이라고도 하죠.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피로에서 회복하고 우리를 각성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보면, 구약성경 사무엘상 14장에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피로한 가운데 꿀을 먹고 눈이 밝아졌다는 다시 말해 기력이 회복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시편의 시인은 당시 단맛의 상징으로 꿀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우리를 회복시키는 중요한 에너지원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오늘 시편의 시인은 하나님이 말씀이 바로 꿀과 같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우리를 회복케 하는 것임을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 달콤하다는 뜻을 말한다기보다는 그것이 우리의 삶에 특별한 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말해 줍니다. 그러니 성경을 씹어 먹는다고 해도 사실 단맛이 나지는 않을 겁니다. 꿀을 바르지 않는 한에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기에 그와 같은 능력들을 행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이에 관해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4장 4절에 보면,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40일을 금식하며 굶주린 예수님에게 사탄은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하지요.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또 예수님은 신약성경 요한복음 6장 35절에서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 말씀하셨는데,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명되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떡이라는 얘기입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 시키는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보자면, 우리가 육신적으로 아무리 잘 먹고 잘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우리의 삶은 온전한 삶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점에서 오늘 시편 기록자의 얘기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같은 것은 우리가 그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고 온전한 삶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많은 이들의 의심이 다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영역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믿음의 영역이고 이른바 신앙을 통해 초월에 속한 영역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말 속담에도 이런 말이 있는데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이해되지 않고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모호한 것이지요.
사실 저는 최근에 이러한 느낌을 받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주변에 하도 많이 떠들고 다녀서, 아마 제 곁에서 가까이 계신 분들은 좀 지겹다 싶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약간은 진입장벽이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제 제가 못 알아먹을 이야기를 잠깐 하겠습니다.
저는 최근에 환희에 찼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공지능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A.I 기술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으로 말해보자면, 일전에 세상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알파고와 같은 기술에 관계된 것입니다. 현재의 그것은 chat GPT라고 불리지만, 이름이 중요하진 않습니다. 그것이 보여주는 신세계가 저는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이런 겁니다. 예전에는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검색할 때, 내가 어떤 검색어를 입력해서 그 내용이 담긴 여러 자료를 읽고 분석해서 꼭 필요한 자료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찾는 일은 검색능력과 자료를 분석하는 능력이 모두 필요했습니다. 흔히 이것을 전세계적으로는 구글이라는 것을 통해 많이 했고 우리는 네이버를 통해서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 접한 chat GPT라는 기술은 자료를 일일이 찾는 그 수고를 덜어줍니다. 마치 내 옆에 비서가 있어서, 나를 대신해서 필요한 자료를 찾아주고 내게 꼭 맞는 자료를 선별해서 가져다줍니다. 비유하자면, 밥을 먹기 위해서 이전에 저는 직접 요리를 했다면, 이제는 원하는 요리를 대신해 주는 것이 생겼다는 겁니다.
제가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고 했지만, 얼마나 잘 전달이 됐을진 모릅니다. 아마, 이 얘기를 저와 함께 사무실을 사용하는 전도사님과 관리집사님이 들으면 또 저 얘기한다고 혀를 내두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와 같은 기술이 보여주는 신세계의 환희를 주변에 나누고 싶은 열정에 휩싸일 만큼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그와 같은 것이 바로 신앙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계이고 또한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참으로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그 환희에 감싸이면, 그 세계를 여기저기 전파하고픈 마음에 들뜨게 됩니다. 그것이 때로는 뭇사람들에게 제정신이 아니라 어딘가 이상하게 보이는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오죽하면, 예수쟁이라는 말이 생기기까지 했겠습니까.
그런데, 그와 같은 세계가 주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저는 최근에 계속해서 또한 여러 신앙서적들을 읽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오디오북으로 듣습니다. 그 각각의 저자는 나름대로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서로 다른 색깔로 하나님의 놀라움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속에서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통해 놀라운 변화들을 경험하고 그 놀라운 세계를 전파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험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힘입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모습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여전히 우리에게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까? 이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실 때, 우리는 놀라운 충만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그 일을 떠들지 않고는 견디기가 힘들 지경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달게 느껴지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