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시는 하나님

모세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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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깊은 슬픔 속에 자라는 희망 2. overcome 3. 사막 : 자기 발견의 학교 4. 우리 모두 광야의 길을 걷는다

Notes
Transcript

깊은 슬픔 속에 자라는 희망

어느 덧 모세이야기 마지막 시간이에요.
혹 아쉬워하면 4월에도 하려고 했는데, 전혀 아쉬워하지 않으니 저의 탓임과 동시에 계획대로 4월에는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에 대해 함께 살펴보도록 할게요.
하나님이 구원해주셨고,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으나 완전히 망해버린 남자 모세이집트의 역사 그리고 개인의 모든 역사 속에서 이제 지워져 버렸어요.
이집트에서는 더 이상 그를 찾지도 않았고, 형제들도 그를 기대하지 않았어요.
자신에게 힘이 있을 때, 자신의 생각으로 진행하려 했을 때도 실패 했는데, 지금은 그런 힘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난 그 역할을 할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어요.
자신은 더 이상 아무런 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모든 것을 놓고 그 곳에서 지내고 싶은데 마음이 계속 불편했어요.
왜냐하면 이집트에서부터 모세가 살고 있는 곳을 지나며 물건을 거래하는 미디안 상인들이 계속해서 모세에게 한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이에요.
“히브리인들의 고통이 점점 더 심해지면서 그들이 울부짖고 있다.”
“매일 울부짖으며 살려달라 외치고 있다.”
모세의 속이 어떠했을 것 같으세요? 저는 모세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면서 두 가지 모습을 보였을 것 같아요.
하나는 ‘이제 나와 상관없다.’
그들은 나의 계획에 동조하지 않았고, 나는 이제 힘이 없다.
그들을 도와줄 수 없다.
이제 그만 듣고 싶다.
하나는 ‘나 때문이다.’
내가 너무 섣불리 움직여서 모든 계획을 망쳐버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왜 자꾸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왜 자꾸 이런 말을 듣게 하시는 것일까?
저는 이 두가지 마음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모세가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 한숨만 쉬고 있지는 않았을거에요. 이런 시기들을 겪으면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되찾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에 대해 너무 잘 알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으나
말과 모든 행동이 태양신 라를 믿는 사람의 모습이었었던 모세였었죠.
섣부르게 행동하던 그 때만 봐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세상의 방법"을 사용했거든요. 세상에서 배운데로, 세상의 방법으로 움직였어요. 무조건 성공할 줄 알았는데 완벽한 실패를 경험 했죠.
실패를 경험 한 이후 광야에서 멘탈이 깨진채로 떠돌던 그우물가에서 새로운 소망을 발견한 이후 “하나님이라는 존재"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 왔을거에요.
그리고 마침내 그는 결론을 내렸어요.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이 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자포자기식 마음의 고백이 아니에요. 드디어 힘을 빼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이죠.
미디안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이 상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께서 일 하실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는 세상의 방법을 포기했어요.
사실 그에게는 여전히 이집트에 지지자들이 남아 있었거든요.
그들을 통해 또 세상의 방법대로 바로 왕을 암살하거나 독립군을 조직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방법을 버리기로 해요.
구원의 시작과 끝을 맺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믿음그에게 생겼기 때문이에요.
그는 광야에서, 아무 것도 없이 척박한 그 곳에서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배워가고 있어요. 맡겼을 때 주어지는 평안함을 누리고 있어요.
평생을 히브리인으로써 이집트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가 이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고 있는 것이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가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여러분에게 있나요?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과 대화하고 교제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나요?
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평안함을 제대로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쉬고)
물질, 환경, 직장, 학교 등등 뭐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 상황 등등 여러 이유가 있을거에요.
이 것들이 평안함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가 된다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우리가 평안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저런 것들이 아니에요.
바로 나. 나 자신 때문이에요.
나에게 익숙한데로 세상에서 학습한데로 우리는 먼저 생각하고 결론을 내려버리거든요.
스스로 안돼. 어려워. 라고 생각하고 움직임을 멈추기 때문이에요.
이게 반복되다 보니 우리는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린거에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스스로 막아 버린 것"이에요.
실패와 결과를 먼저 내리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속에 후회, 아쉬움 등과 같은 것들자꾸 쌓여만 가요.
나 스스로 포기해놓고, 그것을 이루어 주지 않으신 혹은 주지 않으신 하나님에게 자꾸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거에요.
하나님께 서운한 감정을 느끼면? 찾지 않겠죠. 투덜 거리겠죠. 마음의 평안함은 무슨, 좌절감만 남는 거에요.
지금 여러분의 마음 상태는 어떠한가요?
그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감정은 무엇인가요?
(쉬고)
우리는 혹시 모를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도전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때가 참 많아요.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면 어떻게 하나,
내가 노력했던 것들이 다 부정되면 어떻게 하나 등의 생각으로 실패를 먼저 두려워하고 도전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아요.
그런데 여러분 정말로 미안하지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을 진짜 진짜 누리고 싶다면, 여러분의 삶에 찾아오는 선택과 도전 앞에 맞서야 해요.
세상의 기준으로 통밥 굴려서 포기하는게 아니라 들이대야 해요.
실패가 문제가 아니에요.
충분히 실패하지 않은 것이 문제에요.
실패를 통해 배우고 깨달을만큼, 그래서 내 삶에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로 필요하다!! 라는 고백을 할만큼의 실패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 문제에요.
실패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내 삶에 더 새겨지고 다가와야,
어떤 상황이던 흔들리지 않고 그분을 붙잡고 의지하면서,
주시는 평안함으로 일들을 감당하고 헤쳐 나갈 수 있는데,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으니, 예수 그리스도 내 삶에 필요하다가 되는거에요.
여전히 내 힘으로 이집트에서 백성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성령님이 계속해서 무한정으로 주시는 평안함을 스스로가 흩어 버리고 있는 것이에요.

OVERCOME

Overcome 이라는 영어 단어가 있죠.
over 넘어. come 오다.
난관을 넘어 오는 것. 극복해 내는 것을 말하죠.
삶은 늘 새로운 것을 만나는거에요.
내가 삶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환경과 요소들이 우리에게 늘 먼저 다가와요.
그것을 넘어서느냐 아니면 주저 않고 외면하느냐저와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거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그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충분한 힘과 능력을 공급해주고 계시는데, 우리가 포기부터 하는 것이죠.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실패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넘어서지 못하고 주저할 때가 참 많아요.
저와 여러분은 더더 실패해야 해요.
실패가 있어야 성공의 가치를 알 수 있어요.
일하면서 실수 할 때도 있을 것이고, 공부한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고, 일년에 한번 있는 시험에서 떨어질 때도 있을 거에요.
크고 작은 실패들을 우리는 매일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는 이미 실패자에요.
저와 여러분은 미안하지만 동의하고 싶지 않겠지만 사실 실패자에요.
우린 이미 실패자인데,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늘 아둥바둥 하면서 살아왔던 거에요.
내가 실패자라는 것을 반드시 우린 받아드려야 해요. 그래야 overcome 넘어설 수 있어요.
“하나님 나는 실패자입니다.”
찬양한 데로, 말씀을 읽고 들은데로, 기도한데로 살아가지 못하는 실패자입니다.”
두려워서 믿음의 발걸음을 걷는 것 조차 어려운 사람입니다.” 라고 반드시 고백해야 해요.
우리가 그렇게 고백하면, 바로 그 순간
우리를 우리의 모습 그대로
깨어진 모습 그대로
흠이 난 모습 그대로
실패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평안함을 선물 받게 될거에요.
다양한 형태로 저와 여러분을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사라지는 경험을 분명히 하게 될 것이에요.
(쉬고)
그게 바로 은혜에요.
저와 여러분을 실패, 좌절 혹은 아무 생각 없음에서 건져 내 줄 수 있는 그 은혜를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받고 누려야 해요.

사막 : 자기 발견의 학교

저와 여러분이 그 은혜를 정말로 받고 싶고, 주어진 환경에서 지레짐작하고 멈추지 않고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압박이 쏟아질거에요.
그 압박을 견디고 이겨내려면 ‘은혜를 정말로 원하면서 평안함을 달라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계속해서 고백해야 해요.
이러한 고백이 있어야 평안함을 계속해서 갖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그 적응의 자리에 내가 서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될거에요.
저와 여러분은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많은 과목들을 공부하고 있어요.
A를 맞을 때도 있고 F를 맞을 때도 있겠지만
우리는 모든 상황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으며,
그 분이 주시는 은혜의 의미를 중심에 새기고 있어요.
종종 우리는 내 삶을 “광야와 같다.”라고 표현하죠.
우리 진짜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긴 해요. 성경에서 광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우리는 광야라는 단어가 굉장히 익숙해요.
그런데 여러분 광야의 뜻이 무엇인지 혹시 알고 있어요?
성경에서 말하는 광야는 “말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어요.
아무 것도 없는 그 광야에서 무엇을 말한다는 것일까요?
전 사막을 가봤잖아요? 어떤 말이 안나와요. 처참해요.
나는 하루 자러 온거니까 사막이 너무 신기하고 재미 있었지만, 여기에서 이스라엘처럼 40년을 방황하면서 산다? 진짜 에바 노답이에요.
그런데 성경은 이런 노답 광야를 “말하다"라고 표현해요.
(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장소"가 광야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리고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장소가 광야이기 때문에 “말하다"라는 뜻을 붙인거에요.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모든 삶과 상황을 통해 “말하고 계셔요"
우리에게 광야가 있다는 것, 삶에서 실패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정말 엄청난 축복이에요.
이 곳이 없다면, 우리는 진짜 평생 외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거든요.
헛된 것들을 붙잡고, 의지하면서 살아갔을 거에요.
내 손에 쥔 것들이 허무하게 사라지게 되면 우리는 다시는 재기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지거나 혹은 또 다른 것을 붙잡고 살아가면서 인생을 허비할 거에요.
광야와 같은 삶. 실패를 경험하는 삶이라는 뜻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시간"이 되는 거에요.
사막에서 하루를 보내려고 낙타를 타고 쭉 들어 갈 때 이런 저런 짐들을 챙겨서 갔어요.
그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카메라였어요.
사막을 경험해보지 않았던 터라, 그 곳이 얼마나 더운지 추운지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저 사진을 찍고 기록할 수 있는 카메라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죠.
사막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사막의 밤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두꺼운 옷들과 침낭이에요. 저는 이 두가지를 충분히 챙기지 않았어요.
목이 말라서 물을 계속 벌컥 벌컥 마셨고, 사막에 들어갈 때 제가 챙겼던 것은 청바지, 아디다스 저지 그리고 진짜 얇디 얇은 침낭이었어요.
이런 표현해서 미안한데,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그 것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카메라? 이 카메라는 핫팩이 아니었어요. 저를 따뜻하게 해주지 않더라구요.
심지어 밤이 되서 기온이 뚝 떨어지니까 카메라 배터리가 방전되서 켜지지도 않았어요.
나에게 가장 필요하다 생각했던 이 것이 가장 쓸모 없는 것이 되어버렸어요.
(쉬고)
그 날 저는 사람이 얼어서 죽을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알았어요.
낮에는 45도 이상 올라가던 그 사막이 영하로 뚝 떨어지는데 이건 내가 참을 수 있는 추위가 아니더라구요.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다 쓸모가 없어지고 난 이후 제가 한 것“하나님 살려주세요.”라는 기도였어요.
“하나님 내가 사막에 묻혀 죽을 수는 없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저 얼어죽고 싶지 않아요"라는 기도 밖에 안나오더라구요.
한번도 경험해 본 적 없던 삶의 경계에 서자,
조용하고 황폐한 곳.
굉장히 낯선 곳에 서자 저에게 남은 것하나님 밖에 없더라구요.
사막에 들어갈 준비를 할 때에는 죄송하지만 하나님 생각 1도 안났어요.
그저 새로운 도전이 기대될 뿐이었어요.
하지만 삶의 경계에 서자 저에게 남은 것은 카메라도, 옷도, 물도 아닌 오직 하나님 밖에 없더라구요.
우리가 표현하는 “광야와 같은 삶”은 저와 여러분에게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발견 하도록 만드는 시간이에요.

우리 모두 광야의 길을 걷는다

우리는 다르지만, 각자에게 허락한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어요. 우리를 그 자리에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에요.
저와 여러분이 너어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거나 혹은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니까 우리에게 관심을 얻고자, 주의를 끌고자 그 삶을 지나도록 하고 계시는거에요.
광야는 수많은 얼굴을 지니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빼앗아가며 행복보다는 불행을 느끼도록 하기도 하고,
곧 피어 날 벛꼴들을 보면서 쓸쓸하게 만들기도 할거에요.
미안하지만 광야는 원래 외로운 곳이에요.
명기신 32장 10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우리 함께 찾아보면 좋겠어요.
읽어볼까요?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아멘"
여기에서 말하는 ‘그를'은 ‘나'를 말하는거에요.
우리는 너무 정신없이 살아가요.
갓생이라 표현할만큼 진짜 빡씨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죠.
복잡하면 복잡할 수록, 우리에게서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뒤로 밀려나요.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를 통해 우리 삶의 복잡함을 잔잔하게, 단순하게 만들도록 하시면서 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지속해서 말씀하고 계시는거에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살아가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없애는 방법을 기가 막히게 잘 알고 계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소음들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계셔요.
그래서 우리에게 야를 허락하시면서, 만나고 호위하고 보호하면서 눈동자 같이 지키고 계시는거에요.
“눈동자 같이 지키셨다.” 이 말의 의미는 정말로 엄청나요.
우리 신체 부위 중 가장 보호받는 부위는 눈동자에요.
속눈썹이 눈에 들어가는 먼지들과 같은 것들을 막아주고, 또 조그만한 것이라도 눈에 들어가면 우리는 바로 제거하죠.
눈이 없으면 제대로 볼 수 없고,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갈 수도 없어요.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눈동자'로 여기고 계시는거에요.
광야와 같은 삶을 걸어가도록 하셨지만, 절대 혼자 내버려두지 않겠다.
내 눈동자처럼 소중하게 여기면서 매일 보살피고 보호하며 함께 하겠다!
라는 것을 신명기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하고 계시는거에요.
여러분 아직 명기신 32장 펼쳐 놨죠?
11-12절도 같이 읽어볼게요.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아멘"
우리가 믿던 믿지 않던, 알던 모르던 모든 순간을 함께 하셨고 인도하셨고, 우리를 향해 뻗으셨던 손을 놓지 않으셨어요. 양날개로 우리를 완전히 감싸고 계신다는거에요.
홀로. 하나님 혼자 우리를 이끌고 계시는거에요.
저는 사막에 들어갈 때 그 지형을 잘아는 낙타몰이꾼이 있었어요.
제가 봤을 땐 그냥 다 모래인데, 기가 막히게 길을 찾아서 떠나더라구요.
구글 맵을 켜도 나갈 구멍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걷고 있는 삶의 자리를 이끌어 주고 책임져 줄 수 있는 분오직 하나님 밖에 없어요.
내가 걷고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걷도록 하시는 분하나님 밖에 없어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그 분이 저와 여러분을 떠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을 통해 말씀하고 계셔요.
(쉬고)
모세는 자신에게 맞는 광야의 길을 40년동안 걸어갔어요.
왕자로 살았던 40년 보다 보잘 것 없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괜찮았어요.
그 시간들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었고,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에요.
3장 1절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어요. 드디어 광야를 벗어날 시간이 찾아왔어요.
그 날 아침 천둥번개가 쳤다거나 혹은 어떤 놀라운 기적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저 평범한 어느 날과 똑같았어요.
그가 광야를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어떤 힌트도 징조도 없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날이었어요.
그렇게 그는 그 광야를 벗어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마음 껏 하나님과 함께 살아갔어요.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걷고 있는 그 광야를 벗어나는 그 날평범한 어느 하루 일거에요.
마음의 복잡함과 여러 생각들 그리고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모든 상황들 속에 불현 듯 평안이 찾아오는 시기가 있을거에요.
여러분의 일상적인 한 날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두 눈으로 보게 되는 날이 될거에요.
그 날을 정말로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면,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내 앞에 있는 일들을 마주보고 그 가운데를 걸어가야 해요.
두렵고 떨리겠지만, 눈동자처럼 보호하시며 양날개로 우리를 휘감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루 하루 살아야 해요.
우리 이번 주 이렇게 살아보면 어떨까요?
눈 뜨자마자 하자고 하면 솔직히 못할테니까, 준비를 다하고 직장을 가거나 학교를 갈 때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는거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듣는 하루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순간순간 위기가 찾아오거나 답답함이 찾아오면 또 고백하는거에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듣고 싶습니다.”
짧고 간단하지만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어,
광야를 벗어나게 해주는 평범한 일상
눈동자처럼 보호하고 계셨음을 깨닫고 평안함을 누리는 시간이 되게 해줄거에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듣는 하루 되게 해주세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듣고 싶습니다.” 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이번 한주가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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