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

주일 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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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12–17 (NKSV)
12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뒤에, 옷을 입으시고 식탁에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14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16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버팀목 식구들

지난 주 우리는 버팀목 공동체 모임을 가졌습니다. 각 공동체 모임마다 첫모임의 설렘과 어색함들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도 함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한 공동체는 첫 모임부터 너무 친해졌다고 합니다.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은혜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또한 다시한번 강조 드리고 싶은 것은 높은뜻 안성교회의 식구가 된다는 것은 예배를 통해서 생명의 떡이 되시는 주님의 말씀을 먹고, 생수가 되시는 주님의 은혜를 통해 마심으로서 예배공동체로서의 의미가 가장 크다는 것입니다. 아직 공동체에 들어가기 주저되시는 성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의 소원을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공동체에 참여 하시면 됩니다. 뿐만아니라, 교사들의 모임, 찬양팀, 새가족팀, 그리고 봉사하는 모임들도 하나의 공동체로서 성장되어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 모양으로 버팀목 공동체가 세워지길 소망합니다.

식구(食口)가 되는 세족례

저는 개인적으로 발에대한 컴플렉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발을 보여주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누군가 제 발을 만진다거나 씻겨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의 성향이 다른 만큼 그 발도 가지 각색이었을 것이고,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샌들과 같은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발이 많이 지저분했을 것입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께서 하인들에게 채우라고 했던 항아리도 다름아닌 발씻을 물을 담을 항아리 였습니다.
발에대한 저의 컴플렉스와 반대로 우리는 누군가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회에서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천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발을 씻어주는 일은 생각하기 힘든 일입니다. 보통 그런일은 흔히 종이나 노예들이 하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1–5 (NKSV)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2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수난 앞에서 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일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의 세족의식을 할 때를 살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을 씻어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일반 유대인들도 성전에 들어갈 때 자신의 손과 발을 깨끗이 씻어야 했습니다. 즉, 성전 출입을 할 때 필수요소입니다. 두번 째 전통은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가정을 방문할 때 집 주인은 발씻을 물을 제공해야합니다. 종들이 방문객의 발을 씻도록하여 최고의 환영의 인사를 합니다. 즉, 세족은 가정환대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다는 것은 바로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사람들을 정결케 하시는 십자가 사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정결케 된 제자들은 하나님의 성전 공동체의 일원이 되며, 그러한 공동체는 동시에 하나님의 가족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족은 십자가 사역을 통한 구원을 의미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성전과 가족으로 제자들을 환대하는 예식인 것입니다.

목욕과 세족

베드로는 자기 발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어 주시는 것에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며 선생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3:6–11 (NKSV)
6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이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시렵니까?”
7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8 베드로가 다시 예수께 말하였다.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예수께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내 발뿐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주십시오.”
1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11 예수께서는 자기를 팔아 넘길 사람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베드로의 발을 씻어 주셔야 예수님과 상관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발을 씻긴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몸된 공동체, 교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우리의 죄로 인하여 부정함을 정결케 하여 죄값을 치러 주시시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불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와의 대화를 통해서 우린 몸의 목욕과 발을 씻는 세족의 두가지 정결례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교회에서 이 부분을 보통은 목욕은 예수님의 피로 씻음을 받은 원죄의 해결이며, 발을 씻는 것은 날마다 회개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미 깨끗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3 (NKSV)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그 말로 말미암아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유월절을 지키러 오는 유대인들은 보통 유월절 식사 전에 깨끗하게 의식적 목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식사하러 오는 동안 길에서 더러워진 발을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를 하나님나라의 잔치를 상징하는 천국 식사로 바꾸셨습니다. 공관복음에서 최후의 만찬은 성만찬의 제정을 나타냅니다. 요한 복음에서는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종된 모습으로 세족을 행하여 주시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의 계시의 사역으로 예수님의 전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되는 정결입니다.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을 사랑하자 섬김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시는 수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욕과 세족은 둘다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었으므로 목욕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는 종, 메시야로 이땅에 오셨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여야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일원, 식구가 되어 하나님 나라 가족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식구들의 생활방식 - 섬김과 사랑.

tv 프로그램 중에 언터커버 보스라고 흥미롭게 보았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기업의 사장이 위장취업을 하여 직원들이 하는 일들의 고충을 몸소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한 항공사 사장이 언더커버보스에 출연했는데, 항공기를 정비하는 일을 체험합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항공기를 청소하고 정화조같은 곳에서 오물을 퍼내는 일을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체험을 통해서 사장은 그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을 격려하고 근무요건을 바꾸어 주거나, 때로는 정말 자기 회사를 위해서 충성되게 일하는 직원의 직급을 올려 주기도 합니다. 이와같은 체험도 우리에게 감동을 줄 지언정,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종의 자세로 노예의 입장이 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3:14-17
14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16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예수님은 주님이시며 선생님이십니다. 가장 존귀한 분입니다.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그런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나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발을 씻겨주었으니 이제 너희가 내 발을 씻겨 주지 않겠니?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은 너희가 서로 발을 씻겨 주라는 것입니다.
서로 종이되어 섬기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두 종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주인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 당시에 주인이나 선생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그 당시 문화를 거르는 행동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계급을 나누어 높고 낮음을 만드는 문화가 아닙니다. 교회의 직분 조차도 높고 낮음으로 여깁니다. 교회의 직분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역할일 뿐입니다. 우리의 직분이 절대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친밀감과 영성의 깊이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직분 그 자체가 믿음의 분량을 나타내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동호 목사님께서 성도 김동호라는 말을 묘비에 새기시겠다는 말이 참 좋습니다.
복음은 역동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식과 법과 맞지 않는 세상의 식과 법과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였을 때 서로 누가 먼저냐고 싸웠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발을 씻겨주라는 것은 너희 안에 계급을 무너뜨리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시작된 공동체 가운데 마음에 있는 세상적인 기준의 높고 낮음, 학벌, 출신, 직급을 다 예수안에서 내려 놓는 공동체가 되어 성도라 부르고 형제님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발을 씻겨준다는 것은

이 말씀을 들은 요한복음 독자들은 실제로 세족례를 실시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성만찬과 같이 우리가 예배에서 꼭 해야하는 예식은 아닙니다. 저는 이 세족식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발을 씻겨 준다는 것이 지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어떤의미가 있을가요?
먼저는 앞서 살펴 본바와 같이 우리의 식구됨과 공동체 됨이 바로 예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섬김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섬겨 주시고 정결케 하시여 댓가를 다 치르셨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 공동체, 교회가 되도록 십자가를 통해서 섬겨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과 가족이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작게 소그룹 공동체로 각각의 나무로도 모이고 뿐만 아니라 교회로 모인 것은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두번째는 우리의 자랑을 내려 놓고 십자가의 은혜로 공동체를 바라보는 것이 세족식의 참된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높음을 내려 놓으시고 종된 마음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사실 잘 내려 놓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직분 지위, 한국 사람들은 특히 나이입니다. 무례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화적 배경의 높고 낮음의 개념을 교회 공동체에서 내려 놓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번째 공동체에서 우리는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합니다. 현대인들의 문화에서는 세족식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발을 씻어 주고, 부모가 자녀의 발을 씻어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서 청소년부나, 장년부에서 세족식을 할 때는 조심해야할 정서적인 부분이 있기에 늘 예배에서 할 수는 없겠지만 적용에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족례를 하는 의미를 통해서 서로의 발을 씻겨준다는 것은 서로의 어려움을 돌보아 주는 청소년 시기나 청년 때 했던 비밀 도움 친구 , 마니또와 같은 적용을 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통은 제비 뽑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제가 제안 하고 싶은 것은 지금 한번 기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주시는 교회 공동체 성도 한 사람을 사순절과 부활절 기간에 섬겨 주시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게 비밀리에 말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예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기도하고, 성탄절에 많이 우리가 이웃을 생각 하듯이 부활절에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세족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사님들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한번 더 기억하는 우리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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