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향남교회 중등부 설교(23.3.19)
Notes
Transcript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1. 도입
친구들 혹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을 들어본적 있나요? 2010년 지금으로부터 12~13년 전에 ‘개그 콘서트’라는 프로그램에서 유행한 말인데 아마 우리 친구들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모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아무튼 이런 말이 있는데 우리 친구들은 이 말에 동의 하나요? (질문)
누구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하고 많은 스펙을 쌓아야 한다는 논리로 본다면 이 말에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을 거 같아요. 근데 과연 어떤 분야에서 1등을 하거나 특정 부분을 특출나게 잘하거나 어떤 단체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해야지만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길이고, 가치 있는 길일까요? 만약 누군가 나의 이름을, 내가 이룬 업적을 기억해주지 않으면 내 모든 일은 가치가 없는걸까요? 우리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질문) 물론 1등을 함으로 얻는 명예와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근데 인간의 삶은 그게 다가 아니에요.
2020년 3월 28일 서울 용산역 승강장에서 한 남성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어요. 어떤 외침이었냐면 “살려주세요!”였어요. 남성은 어떤 상황이었길래 승강장이 울리도록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요청했을까요? 바로 아이를 임신한 아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아기가 나올 거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었어요. 아기가 나오려면 몇일 더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터라 외출을 나온건데 아내가 갑자기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거에요. 아내의 상태에 당황한 남편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 해야할지 몰라서 큰 소리로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리고 남편의 이 간절한 외침에 근처에 있던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반응하기 시작했어요. 임산부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임산부의 경직된 몸을 마사지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아이의 상태를 살피면서 119에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역무원들을 불러왔어요. 그리고 달려온 역무원들은 산모와 아기를 담요로 감싸주었고, 그외에 많은 시민들은 산모와 아기가 안심하고 쉴 수 있도록 119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산모와 아기 주변을 끝까지 지켜주었어요. 그리고 도착한 119 구조대원들의 도움으로 산모와 아기는 안전하게 병원으로 이동할 수 있었어요. 친구들 여기에서 누가 1등인가요? 누가 더 큰 일을 행했으며, 누가 더 가치 있는 일을 행했나요? 119에 연락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산모의 출산을 도운 사람인가요? 이불과 담요를 가져다준 역무원들인가요? 아니면 119 구조대원들인가요? 누구죠? 누가 더 가치 있는 일을 행했나요? 친구들 우리는 여기에 가치를 매길 수 없어요. 왜냐하면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모습을 지녔지만 혼란과 고난의 상황에 오직 생명을 구원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어 반응했기 때문이에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각자의 최선으로 헌신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헌신에 가치를 매길 수 없어요. 비록 이들 모두 우리 기억에 무명(이름을 알 수 없는)으로 남았지만 그들이 한 헌신은 지금도 우리 안에 계속해서 기억되고, 우리 사회가 따뜻하다는 걸 깨닫게 해줘요.
2. 문제제기
사랑하는 중등부 친구들 우리 사회는 소수의 엘리트가 이끌어가는 사회가 아니에요. 물론 뉴스나 세상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무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최선으로 삶을 살아내기에 이 사회는 돌아갈 수 있는 거에요. 근데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교회 안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겨주시는 성도님들이 계시기에 우리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편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거에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안디옥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 내용
오늘 말씀 사도행전 11:19-21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오늘 말씀의 배경은 우리가 한달 째 계속 살펴보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가 스데반의 순교 사건으로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그런데 핍박을 받고 있는 성도들이 어떻게 하고 있어요? 도망다니면서 예수님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전해졌던 복음이 어느새 그들이 원수처럼 여기던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파되었어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이 개와 돼지 취급을 하던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거에요. 근데 그들에게 누가 복음을 전했나요? 바로 무명의 성도들이었어요. 이름을 알 수 없는 성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우리도 이 복음을 전해드릴 수 있게 된거에요.
우리 사도행전 11:22-24 같이 읽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무명의 성도들을 통해 전파된 복음의 열매가 이방 땅인 안디옥이라는 도시에서 조금씩 꽃을 피우기 시작하자 그 소문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면서 이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바나바라는 리더를 그곳으로 보내요. 그리고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는 이방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들의 믿음을 보고는 기뻐하였어요. 그리고 자신 혼자서는 이 이방인 성도들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 바나바는 10년 동안 다소에서 이방인 사역을 하고 있는 바울을 안디옥으로 불
우리 사도행전11:25-26 말씀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의 권면으로 안디옥에 오게된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자신이 그동안 갈고 닦은 이방인에 대한 말씀 사역을 진행하였고, 많은 이방인 제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근데 그때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안디옥교회 성도들을 향해 놀리듯이 이야기했어요.
“그리스도인”이다
1년 동안의 말씀 사역으로 입만 열면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결 같이 하나님을 찾는 그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던 거에요.
4. 결론
사랑하는 친구들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에 불과하지만, 구원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세상이 말하는 것처럼 눈에 띄는 성공을 하지 못하더라도,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으로 인정 받지 못하더라도, 눈에 띄지 않는 무명으로 살아갈지라도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예배의 자리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