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 그리고 십자가] 아버지의 뜻에 붙들린 바(눅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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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3월 19일 주일 청년부
시리즈 : 가상칠언, 그리고 십자가
제목 : 아버지의 뜻에 붙들린 바
본문 : 누가복음 23장 46절 *신139
결단찬양 : 오직 믿음으로
[도입_믿음]
저는 여러분들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믿음에는 여러가지 항목들이 있는데, 우선 저를 믿고 따라주신다는데에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과 함께 한다면 딱히 못할게 하나 없겠다는 확신도 듭니다.
제가 청년 사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사실 은혜롭지는 못합니다. 딱히 계기에 은혜를 찾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이래 저래 하다보니 어느덧 3년차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을 뒤돌아 보았을 때, 청년 사역자로써 준비해온 것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저는 올해의 사역을 1년차라 마음 먹어 나아가고 있습니다. 초신자의 마음으로 하나 하나 준비해보자. 사역의 연차가 결코 짧지는 않지만, 초신자의 마음으로, 머리만 커가는 목회자가 되지 말자는 마음다짐으로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중입니다.
그러나 이런 제 모습을 아시고도 따라주심에 참 감사가 넘칩니다. 또 화합하려 애쓰는 그 모습에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누구나 처음은 완벽할 수 없다.’는 생각에도 스스로의 위로가 있지만, 그저 믿고 따라주심에 더 큰 위로가 됩니다.
또 어떤 믿음이 있는가 하면, 결코 여러분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사람 일 하나 모른다지만, 여러분을 만나주신 하나님이, 또 여러분이 만난 하나님이 결코 이단의 계략으로 빠지게끔 두지 않으실 것이란 확신이 듭니다.
‘나는 신이다’가 흥행(?)하며 많은 이들이 이단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마저도 같은 교회로 분류하여 싸잡아 욕합니다. 추잡하다. 더럽다. 성적 욕망 덩어리. 배신자. 진짜 사탄 마귀 등. 정말 요즘 온갖 수식어를 다 쟁취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더 글로리’에서도 썩 맘에 들지 않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아무래도 목사의 딸이 마약을 하며, 또 부모가 마약을 오히려 독려한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교회가 또 욕먹는 그림이 펼쳐집니다.
여하튼, 교회가 이래 욕먹는 이 시대 속에서 여러분들 안에 내주한 그 하나님이, 각자에게 필요한 모습과 능력으로 임하여 계심에 잘 견디어 승리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믿음’이란게 참 대단하구나 싶습니다.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해온 시간이 이제 1년입니다. 길다면 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또 막상 긴 시간은 아닙니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이 알기도 알았지만, 아직 알아가야 할 서로의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알고 지낸지 시간도 짧고, 알아가야 할 것이 아직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믿음이란 요소가 제게 위로를 주기도 하고, 확신도 주니 이래저래 ‘믿음’에는 생각보다 강렬한 힘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도입_불안]
그렇다고 믿음이 이 세상 모든 이들 마음밭에 가득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우리게 큰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 것은 맞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삶에 믿음보다, 서로를 향한 위로와 신뢰보다 불신과 불안이 더 많은게 현실입니다.
코로나19가 처음 우리에게 찾아 왔을 때를 떠올려 보면, 지금과 사뭇 다른 느낌이지 않았습니까? 지금이야 코로나에 대한 면역도 늘고 또 그만큼 인식에 대한 유연함이 생겼지만, 그땐 1-2명 확진에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저는 카페거리에 거주하면서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음을 경험했습니다. 정말 한산했습니다. 너무 조용했고 고요했습니다. 처음 이 집을 보았을 때, 또 들어왔을 때 활기차 보여서, 그게 정말 매력적이어서 왔는데, 몇개월 지나지 않아 활기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질병 뿐이겠습니까? 우리의 삶 속에 주어진 모든 문제 속에 우리는 확신보다 먼저는 불안과 두려움에 놓이곤 하지 않습니까? 학업의 문제에, 진로의 문제에, 가정 또는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가오는 문제에 우리는 걱정과 두려움이 먼저 앞섭니다.
[본문 속으로]
우리는 이 땅 가운데 거하며 ‘믿음’과 ‘불안’이라는 두 갈림길 앞에 자주 놓여져 살아갑니다. 주로 어떤 길을 택하십니까? 믿음입니까? 불안입니까?
결국 믿음의 길을 택하나 불안이 늘 먼저 다가오는 것이 우리 아닙니까? ‘그래, 주님이 일하실거야!’라는 확신이 있기에 앞서, ‘이렇게 가면 내가 힘들어질 것 같은데?’ 라 생각하며, 주님이 먼저가 아닌, 내가 먼저 되어 불안을 택하는 것이 우리 아니냐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두 갈림길 속에 있는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또 어떤 마음으로 갈림길 가운데 방향을 잡고 걸어갈 것인가를 보게 합니다. 바라옵기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인생과 신앙의 모든 갈림길 앞에 자유함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두 갈림길, 믿음인가 불안인가?]
먼저 본문을 봅시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죽음을 앞둔 상황에 주님은 얼마나 두려우셨을까요? 고통이 극에 달했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피는 쏠릴대로 쏠리고 살도 찢길만큼 찢겨서 감각이 없어졌는지도 모릅니다. 버티고 저항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을 이 때에, 주님은 마지막으로 힘을 쥐어짜 봅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불안 가운데 있는 예수님은 믿음을 택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주님은 믿음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기도하실 때에도 그의 선택을 보십시오.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게 그의 기도 아닙니까?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누구의 마음이 더 아팠겠습니까? 물론 주님이 직접 격은 고통과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이를 지켜보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더 아프지 않았겠습니까?
아엘이가 이 세상에 나온지 어느덧 1년이 되었습니다. 시간 참 빠르다 싶습니다. 근데 왜인가 이 친구가 태어날 때부터 ‘죽냐 사냐’의 문제를 가지고 나왔고, 또 병원도 참 많이 다녔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파라 인플루엔자’
어린 아이들에게 자주 등장하는 바이러스라 하는데, 코로나 증세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엘이가 세상에 나온지 3-4개월되어 코로나도 아닌 파라 인플루엔자에 걸려, 제 평생 해본적도 없는 입원을 그렇게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진짜 마음 아팠던건, 너무 어려 혈관이 보이지 않아서 이곳 저곳 바늘로 1시간을 찌르는데, 울고만 있는 이 아이를 붙잡고만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무런 지식도, 스킬도 없기에 그저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십자가 사건을 통해 누구의 마음이 더 아팠겠는가에 대답해야 한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훨씬 아팠고 무거웠을 것이라 대답할 것 같습니다.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는 늘 예수님만을 바라보지만, 사실 진짜 고통은 하나님께서 지고 계셨던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누구의 고통이 더 컸냐, 작냐를 재보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예수님의 고통과 하나님의 고통 모두가 있었기에 비로소 ‘믿음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들이 갈림길 앞에서 택한 믿음이 무엇이기에 완성이 됩니까?
[예수가 선택한 믿음]
한글 성경은 본문을 ‘부탁’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지만, 차마 부탁으로 표현하기에 원어가 담고 있는 늬앙스는 너무 무겁고 큽니다.
‘이것 좀 부탁할게~’의 태도가 결코 아니기에, 부탁이라는 단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원어가 가진 무게는 상당하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부탁은 절실했습니다. ‘이거 부탁할게~ 안되면 말고~’의 태도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걸고 주님 앞에 나아감 이었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겠다는 예수님의 부탁이었고, 믿음 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곧 시편의 말씀이 실현된 것인데, 시편 31편 5절입니다.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본문의 부탁이라는 단어는 구약, 즉 시편 35편에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는데, 이는 곧 장차 오실 메시야의 속량이었습니다.
마치 모습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갈림길 앞에 서 선택한 그 믿음은 곧 십자가의 성취입니다. 죄사함의 성취입니다. 우리를 속량하심의 성취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세상은 늘 우리는 불안으로 인도하고 불편으로 이끌어 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믿고 의지할 것은 모든 것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마음 아파하셨으나 자신이 약속한 모든 것을 성취하기 위해 실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취는, 또 이를 실현한 하나님의 주권은 오늘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며 인도하시며 이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 갈림길 앞에 서있다면, 결코 두려워할 것 하나 없습니다. 불안해 할 것 없습니다.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주권을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일하십니다.
아버지의 뜻에 붙들린 바대로 이루어진 십자가,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 청년부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기도제목]
Ⅰ 오직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는 우리 되게 하소서
Ⅱ 믿음과 불안의 갈림길 속에서 믿음을 택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찬양 후 기도제목]
Ⅲ 고난주간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주권을 묵상하는 청년 공동체 되게 하소서
[축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감동 감화 역사 임재 충만하심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인정하여 믿음으로 걷겠노라 결단한 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날마다 묵상하겠노라 다짐한 자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