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신 자를 잃지 않으리 (요한복음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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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신 자를 잃지 않으리

오늘은 요한복음 18 을 통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정의했었습니다. 어제 정의하기로 요한복음은 큰 틀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어떤 복음입니까?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하려 함이니라" 라고 20:31절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그 복음 사역을 마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하나님 앞에 이 땅에서 다 이루고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이 이땅에서 해야 할 일들을 다 마쳤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마음을 하다여 하나님 앞에 중보기도하며 이 땅의 피조물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아가는 이들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되어 이땅에 역사하신 것처럼, 이 땅의 믿음의 자녀들과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시고 자신의 떠남으로 말미암아 이 땅의 믿음의 자녀들이 더욱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어떻게하셨습니까? 자신이 떠남으로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성령 하나님이 계속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선포하시고,
어떻게요? 16장에서는”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잇으면 나를 보리라"라고 선포하시며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신 다는 것을 선포하셨고,
17장의 중보기도에서는 예수님이 11절에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중보기도와 더불어 우리에게는 선포되는 말씀인 것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을 이루신 예수님이 마지막 완성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 방금 본문에서 읽은 것처럼 유대 제사장들에게 끌려가고 빌라도 법정에서 심판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떻게 마지막을 완성하시는지 보겠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예수님의 죽음에 집중할 수도 있지만, 그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집중해서 살펴보시길 소망합니다.
1절에서요
John 18:1 NKRV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기도를 다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십니다.
제자들과 함께 그곳을 들어가시는데 여기는 제자들과 자주 모였던 곳입니다. 말씀을 가르치시고 하셨던 그런 곳, 쉽게 말해서 성경공부하고 그랬던 곳이죠
그곳에는 유다도 잘 아는 곳이죠.
유다가 등장합니다. 유다가 결국 어떻게 합니까? 여기서의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이 아니라, 야고보의 아들 유다, 12사도중에 하나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 자라는 것을 예수님은 이미 예언하셨었죠?
6장에서의 기록을 기억하신다면, 6장 70~71절에 보면 12제자들이 예쑤님의 말씀, 복음의 말씀을 듣고서 떠나갈 때 그 중에 마귀가 있다 했는데 그게 바로 가룟 유다였던거 기억하신다면,
예수님은 그 예언데로 여기서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정말 예수님의 제자가 얼굴 싹 닥고 예수님을 잡히게 하고 팔아버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잼있는 장면이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누구를 찾으러 왔느냐 했더니 잡으러 온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라 했고, 예수님은 그게 나다 라고 이야기하는데, 잡으러 온 사람들이 머뭇거리는 것을 봅니다.
이 일에 대해서 잡으러 온 사람들도 정당하지 않게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확인절차를 거쳐서 확실하게 하려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반복해서 묻고 예쑤님이 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분명히 유다가 같이 잡으러 왔고, 유다가 뻔히 아는데도 유다는 바로 직언하며 저사람이다 잡아라, 이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부인하지 않으시고, 지금 상황을 모면하지 않으시려는 모습을 보면서, 예상했던 일을 대면해서 그러신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을 담대하게 어쩌면 더욱 적극적으로 맞이합니다.
그러면서 9절을 보면요
John 18:9 NKRV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나 하나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도 다치지 않기를 소망하는 예수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꺼이 감당하려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때 이렇게 그런 상황으로 나아가는 예수님을 보면서 옆에 있던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잡으러온 대제사장의 종들중에 하나의 귀를 짤라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물러가게 하려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읽으면서 어쩌면 사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감정에 대해서 약간 혼란스러울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지금의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마가복음 14:32 )라고 고백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Mark 14:32 NKRV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맞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보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위로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때, 내 잔을 옮겨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할 수 있겠구나 하지요. 하지만 그 이어서 마가복음 14:36
Mark 14:36 NKRV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에서 나의 원대로 마시옵소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럼에도 하나님의 계획을 인정하고 그대로 나아가길 소망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계획이고 그것이 최선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 요한복음에서는 완전히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어놓은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요한복음에서 말하고자 하는 장면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을 강조하다보니 요한복음에서의 해석은 그리스도의 완성을 위한 메시지로 보시면, 예수님은 단한번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 앞에서 나아갔다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의 목적에 따라서 표현방법이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감당하고자 하는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이제 군대들이 예수님을 잡아 결박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예언이 입으로 고백되어지니 군대들이 그 일을 실현하는 것을 봅니다.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끌려갑니다.
그리고 안나스의 장인 가야바가 나오는데, 실질적으로는 대제사장의 역할이 가야바의 자식들과 가야바의 사위인 안나스에게 지위가 넘어갔음에도 아직은 정세적으로나 상황으로 봤을 때, 가야바가 족장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가야바의 뜻을 보며 백성들을 지휘했다고 합니다.
대충 대제사장의 권력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고요,
그렇게 제사장 안나스에게 끌려 갔을 때,
이제 또 배신하는 제자가 등장합니다. 아까 예수님 앞에서 칼부림하던 그자!! 마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오히려 더 흥분하여 분노하였던 그 베드로가,
결국 예수님이 잡혀들어가니 배신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처세가 아주 극명한 모습입니다.
John 18:16–18 NKRV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이렇게 “나는 아니라”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밖에서 예수님을 배반하는 사이에,
대제사장 안나스가 물어봅니다.
“도대체 은밀하게 전하던게 뭐냐?”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드러내놓고 세상에 말했다”
“유대인이 모이는 자리에서 가르쳤고"
“은밀하게 한 적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안다"라고 말합니다.
뭔가라도 꼬툴이를 잡아야 죄명을 씌울텐데 그게 안되는거죠.
이미 다 세상이 다 아는 것이었고 그것에는 특별한 죄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 당당하게
“내가 말을 잘못한게 있으면 그 잘못을 증언해라!!”라고 오히려 반문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지금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억지로 이 일을 조장하여 만들고 있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자 안나스 입장에서는 더이상 증명이 안되니 자신보다 실세인 장인 가야바에게 보냅니다. 아까 그 실세를 말씀드렸었죠? 가야바에게 이렇게 보냅니다.
그리고 또 그 다음 문장을 보면 베드로의 부인 장면이 나옵니다.
안에서는 예수님의 상황이,
밖에서는 그렇게 키웠던 제자의 배신이....
그렇게 예수님의 예언은 하나도 오차없이 맞아 떨어집니다.
그렇게 밤새 베드로는 3번의 물음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그렇게 닭이 울자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대제사장 가운데 판결받지 못한 예수님이 가야바를 떠나 관정으로 끌려갑니다.
(여러 의미있는 내용이 있지만 지나서 29절을 보면요)
빌라도 앞에 예수님을 데리고온 사람들에게 빌라도가 묻습니다.
무슨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말합니다.
그러나 재판장에 데려온 대제사장들, 유대인들은 뭐라고 합니까?
우리가 이자를 죽일 권한이 없다.
왜그렇습니까? 예수님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그런것이지요. 그들 안에서 종교적 논쟁으로 이러난 일인데 이것을 정치적으로 죄목을 붙이기가 참 어려웠던 것입니다.
근데 사실 로마 총독인 빌라도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그들이 알아서하길 바라지 이것을 가져온 것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담스러운 일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그것이 로마법으로 처형되는 과정을 하나님이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John 18:32 NKRV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그래도 원하는 유대인들의 말을 들어주면서 로마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너무 재미있는 것이 누구도 빌라도에게 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빌라도에게서 이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John 18:35 NKRV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유대인들에게 뭍지 않고, 예수님에게 물어봅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사실 이 일에 대해 빌라도는 부담이 있습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처리해야 하는 문제를 자신에게 가져왔으니 유대인들이 처형해달라고 하지만 이것을 선듯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나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것이지요.
빌라도가 “너가 있는 나라 사람들이 너를 잡아왔다 네가 무엇을 했느냐?”라고 재차 묻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쫓차내고 하는 그 세상은 이제 내 세상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였다면 그럴일이 없지만, 죄악에 쓰여 예수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러자 밀라도가 그럼 네가 왕이 아니냐 라고 묻습니다.
그렇지 않다. 내가 유대인의 왕이고 내가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왔다라고 전합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 진리가 무엇이냐 물어보니 예수님이 말씀하셨겠지요...
그 이야기는 생략된체 이후의 내용이 38절 후반부에 나옵니다.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느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
어쩌면 복음을 들었을 수 있는 빌라도가 이 일에 벗어나기 위해일지 몰라도 이렇게 말합니다.
John 18:39 NKRV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그러자 40절에서 유대인들은
John 18:40 NKRV
40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오히려 강도를 내세웁니다.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어떤 것이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의 역할을 분명히 하였고,
그 역할은, 무엇입니까?
John 18:9 NKRV
9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오늘 제목입니다. 내게 주신 자를 잃지 않으리....
우리가 이런 험난한 과정만 생각한다면 어떻게 저렇게 억지로 죄를 뒤집어 써서 놓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로마 총독의 손에 빌리는 것도 어쩌면 유대인들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특히 3번이나 부인한 베드로 어떻습니까? 정말 웃기는 일이지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는걸 다 봐왔기 때문에 밖에 서성이는 베드로에게,
너 예수님과 함께한거 다 알아, 그니깐 너 맞지? 제자 맞잖아? 이렇게 3번이나 물어보는데, 배드로가 부인합니다.
근데 우리가 결론만 보자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그러잖아요. 우리도 베드로처럼 복음을 전하길 원합니다.
나도 베드로처럼 살 순 없을까?
왜 그렇습니까? 사도행전에보면 복음전하는 1등! 특히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을 향한 첫번째 선교사가 누구입니까? 베드로이지 않습니까?
아니 세상에, 지금 이 성경만 보면 배드로는 정말 몰살당해도 부족한데,
하나님은 이들도 살리시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이 선포의 말씀은, 우리에게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실패가 있더라고, 어느 순간 하나님의 손길을 떠나 내가 생각했던데로 했더라도, 또 누가봐도 잘못이라고 생각한 것을 했더라도,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다시 돌아오면 이 땅에서 숨이 머지지 않는한 우리가 다시 돌아온다면, 우리도 하나님 앞에 버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큰 은혜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부터 그렇게 살자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복음을 들었고 이전의 일들도 봐왔잖아요!!!
그런 상황들 본것을 우리는 깨닫고 하나님 앞에 성실히 나아가야하는 줄 믿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누구하나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
누구하나 버려지지 않기 위해서...
단순히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속에서...
그들이 다치지 않도록....
어쩌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철저한 계획속에....
우리를 다치치 않도록 보호하고 계시는 것일수도 있겟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번 느끼지만, 하나님이 참 많이 봐주시는구나...
우리가 자주 하나님을 놓치고 사는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봐주시고 지켜주시고… 참아주시고…
그렇게 버리시지 않으시는 것,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어떤 죽음의 길이었습니까?
우리를 살리기 위한 길이었구나 라고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오늘 18장을 보면서,
주변 여러 상황들이 있지만 그 상황을 만들어가시는 이유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예수님 입장에서
나를 배신한 베드로도, 그리고 나를 죽이려고 파는 유다도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깨닫게 되면
그들을 살리려고 하시는것이구나 라는 사실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그렇게 예수님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고백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이 고백이 우리에게 큰 은혜임을 깨닫는 여러분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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