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신앙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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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views1. 계속 된 논쟁 2. 예수님의 대답 3. 상황의 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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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된 논쟁
계속 된 논쟁
예수님과 사두개인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계속해서 논쟁을 펼칩니다. 이 전의 이야기를 보면 사두개인은 예수님에게 논쟁에서 졌습니다.
34절을 보면, 사두개인들로 대답 할 수 없게 하셨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 대답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입을 꼭 묶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입마개로 동물의 입을 틀어 막는다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사두개인들에게 사용 되었습니다.
즉, 사두개인들은 예수님과의 논쟁에서 완전히 졌고, 이제 어떤 말도 반론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죠.
이 것을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은 속으로 만세를 불렀습니다. 드디어 자신들에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일석이조의 기회가 왔습니다.
먼저 예수님께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해서 사두개인들보다 지적으로 자신들이 우월함을 증명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선동만 하는 랍비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논쟁에서 져서 아무 말 하지 못했던 것처럼, 바리새인들도 지금까지 말하지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다시 기회가 왔습니다.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이제 바리새인도 입이 묶여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 전에 예수님에게 섣부르게 덤볐더가 졌던 전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질문 앞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라고 심플하게 답변하셨기 때문이죠.
바리새인들은 복수의 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래서 있는 힘껏 예수님에게 치명타를 날리기 위해 기회를 기다려 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사를 데려왔습니다. 율법사는 말 그대로 율법의 사람. 전문가 입니다.
율법사들은 성경이 변질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꼼꼼히 필사하는데 평생을 바쳤던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박식했으며, 율법에 대해 잘 알았고, 율법 설명을 굉장히 잘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사들이라면, 예수님과 논쟁하여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율법사들 중에서도 굉장히 뛰어난 학자를 찾아 데려 왔습니다.
율법사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 어느 것이 가장 큽니까?”
이 질문은 정말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대답을 하던 걸려 들 수밖에 없는, 어떤 변명도 불가능한 질문이었습니다.
율법 중에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일까요?
(쉬고)
이 질문이 빠져나갈 구멍 없이 치명적이었던 이유는,
율법학자들은 십계명. 10개의 계명과 동일한 구속력을 갖는 613개의 계명을 따로 분류해 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대답을 하시던 613개의 계명 중 하나를 들이대면서, 말꼬리를 잡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예수님을 패배자로 만들기 위해, 율법사는 613개의 계명을 들이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이것은 게임이 되지 않는 논쟁이었습니다.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교수와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 같은 나사사출신의 아마추어와의 싸움으로 보였기 때문이죠.
예수님의 대답
예수님의 대답
그 곳에 모인 모두가 다 예수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정말 의기양양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인들도 계명들 중 가장 큰 계명을 뽑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계명은 이 것이다! 말하는 그 첫 마디에 모두를 납득시켜야 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순간이죠.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쉬고)
유대교에서 가장 친숙하고 많이 인용되는 말씀의 한 구절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명기신 6장 4-9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이 본문은 율법사들이 가장 많이 필사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신조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루에 두 번씩 인용하여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수적이고 반드시 알아야 하는 말씀이 바로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으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이 오히려 허를 찔렸습니다.
율법에 대해 너무나 잘 알았기에,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이 말씀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너무 많이 알았던 탓에 잊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은 연이어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연타를 맞았습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십계명에 대한 내용도, 613개의 명령도 아니었거든요.
그들이 생각했을 때 허를 찌르는 질문이었는데, 예수님은 너무나 간단하게 즉석에서 편하게 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멈추지 않고 또 한 번 더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이젠 나에게 허락하신 사람들을 너의 몸처럼 사랑하라.
(쉬고)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 사랑과 인간을 향한 수평적인 사랑이 함께 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한쪽만을 향한 사랑은 균형이 깨어진 제대로 된 것이 아님을 이야기 하시는 것이죠.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다면,
그 분과의 교제가 정말 제대로라면!
그분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주위 사람들에게 결국 흘려 보내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연달아 이 말씀을 들은 율법사는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합니다.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졌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이 마가 복음 12장에 등장합니다. 그 곳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 말씀 앞에, 서기관은 맞다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 질문해놓고, 그 앞에 맞다고 대답하면서 동의하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은 논쟁에서 완전히 패배해서 씁쓸한 감정 속에 있는 그 율법사를 향해 예수님은 “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다"라고 칭찬을 하십니다.
비꼬기 위함이 아니라, 가장 첫 계명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그를 향한 칭찬의 말씀입니다.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습니다. 학자 율법사가 나사렛에서 올라온 젊은 청년과 논쟁이 시작되었는데, 젊은 청년이 모두에게 인정받는 율법사를 평가하고 계십니다.
이제 역으로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이냐?”
“다윗의 자손입니다"
메시아야 관한 예언이 확실하게 나와 있기에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이라 대답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완벽한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대답하고 안도하고 있던 그들에게 예수님이 한번 더 물으십니다.
“그럼 왜 다윗은 자신의 자손을 주라고 칭하고 있는가?”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자신들이 놓치고 있었던 부분을 깨달아가게 됩니다.
단순히 다윗의 자손이라 생각했을 뿐, 편시 110편 1절에 다윗의 고백처럼, 다윗이 먼 후손을 향해 주. 그리스도라 부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죠.
적용
적용
오늘 본문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은 예수님을 이겨야 한다라는 생각에 빠져 중요했던 부분들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 네 이웃을 사랑하라! 라고 늘 말은 하고 다녔지만, 하나님도 이웃도 사랑하지 않는 존재가 나였음을 알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그 때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닌 나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나라는 사람의 자아. 나라는 사람의 생각에 좀 더 집중하고 섬기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거든요.
제가 인도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 들어야 하는 과목 중에 핫 요가가 있었습니다.
요가의 나라 답게 수업 과목에 있었는데, 그 수업을 들을 때 교수님이 지속적으로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모든 번뇌와 고통을 내려놓고 너 자신에게 집중하라"
“너 자신에게 집중하여 내면의 너와 외면의 너가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번뇌를 벗어버리고 해탈 할 수 있다.”
(쉬고)
내 상황, 환경과 같은 눈 앞에 있는 부분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갈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대한 것이 참 어렵습니다.
설교를 마무리 하면서 한 가지 질문을 저와 여러분에게 하고 싶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며 묵상하며 기도하는 이 시간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나는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가?
누군가 저와 여러분을 보고,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에게 반드시 “나는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가?” 질문 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 사역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깊어지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할수도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것처럼 흉내내는 것일 뿐 진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일 수 없습니다.”
본문의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머리로만.
우리는 그들과 다르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저는 믿습니다.
“나는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기도하고 그 해답을 하나님에게서 찾아가는 이 시간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