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한 사랑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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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ㄱ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지난 주에 사도 바울은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자유인 사라와 종 하갈에 비유해서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에 미혹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요즘 한 다큐멘터리 때문에 이단, 사이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신, 혹은 신의 대리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흔히 이단, 사이비 교주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종교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가로채고, 가정을 파괴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폭력을 가하는 짓도 서슴치 않습니다. 이런 이단, 사이비 교주들은 어김 없이 대한민국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왔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들을 진짜 신(혹은 신의 대리자)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단, 사이비 교주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순종합니다. 대가없이 노동력을 제공하고, 가족과 재산을 갖다 바치고, 심지어는 범죄까지 저지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의아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어리석은 짓을 할까? 어떻게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믿을 수 있지? 아마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단, 사이비 신자들은 왜 그렇게까지 교주를 신뢰할까요? 사실 그들의 헛된 믿음의 중심에는 복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복이란 부나, 명예, 권력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자녀의 성공이나 건강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어쨋든 간절히 소망하는 것을 주겠다는 교주의 속삭임은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한번 미혹된 사람은 그러한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이 교주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었다는 거짓말 때문에 더 쉽게 넘어갑니다. 그래서 이단, 사이비 교주들이 구원을 약속하거나 축복을 약속하면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서 교주의 명령은 마치 신의 목소리처럼 들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굉장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영적인 존재인 사람은 매우 미혹당하기 쉬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벧후 3:17)
세상의 모든 종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종교에는 각자 그들이 추구하는 선(善)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의 교리들을 살펴보면 남들보다 더 선(善)이나 덕(德)을 쌓으라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 수행, 혹은 고행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섬기는 신들의 축복을 받거나, 득도하거나, 열반의 경지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결국은 이 모든 것들은 복, 즉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깊게 고민하는 철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철학도 결국은 내가 누구인지 존재를 증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