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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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은 바뀝니다. 가령 눈앞에 고난이 찾아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눈앞의 고난을 단순히 하나의 힘들고 어려운 사건으로만 해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고난을 단순히 어려운 사건으로만 본다면 그 사람에게 고난은 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괴롭게 하는 사건 이외에 아무런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입니다.
반면에 그 고난을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해석했다고 해봅시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분명 그 고난을 통해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이 누적된다면 분명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참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까지는 조금만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경험해 봤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와 관련된 책들은 자기개발 코너에 가면 순위를 앞다투며 진열되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앞서 말한 차원과는 다른 차원의 해석을 해야 합니다. 눈앞에 고난이 찾아왔을 때, 고난 자체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극복할 것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 시간에 나에게 왜 고난을 허락하셨는가?’,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나를 다루시고자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고 싶으신 것은 무엇인가?’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선에 따라 우리를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의 삶을 해석하려고 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더 좋은 사람, 더 단단한 사람의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요셉 또한 눈앞에 펼쳐진 일들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잘 아시다시피 요셉은 형들로부터 버림받습니다. 그리고 그 버림받은 후 요셉은 각종 누명과 수모를 겪으며 자신의 눈앞의 미래도 모른 채 이리저리로 이끌려 다녀야 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거쳐 세월이 지난 이후에 요셉은 어느덧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고, 자신을 버린 형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여러 사건들을 걸쳐 이제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는 본문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창세기 45:4 를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45:4 (DKV)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제게 가까이 오십시오.” 그들이 가까이 오자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형님들이 이집트에 팔아 버린 형님들의 동생 요셉입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지난날 자기가 겪었던 모진 수모와 고난의 시간이 어떤 시간이었는지 해석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창세기 45:5-8 를 함께 읽겠습니다.
창세기 45:5–8 (DKV)
하지만 형님들이 저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자책하지 마십시오. 이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하시려고 저를 형님들보다 먼저 여기로 보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2년 동안 이 땅에 흉년이 들었지만 앞으로도 5년 동안 밭을 갈지도 못하고 추수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형님들의 자손들을 보존하시고 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나님께서 미리 저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를 여기에 보내신 분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바로의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의 주인과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습니다.
나를 이곳에 보내신 분은 다른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앞으로의 흉년을 위해 그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리로 보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죠. 지난날의 수모를 겪고 누명을 받던 시간들을 형들과 그 후손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이 계획한 시간으로 해석했으니 말입니다. ‌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만약 여기서 요셉이 바른 이런 수모와 역경과 고난의 시간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해석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다시 말해서 요셉이 자신이 겪은 수모와 역경과 고난을 단순히 고난 그 자체로 해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어떤 일이 있어났을까요? 만약 고난 자체를 고난으로만 해석했다면 요셉은 염세주의자나 인생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말하는 삼류 철학자 정도는 되었을지 몰라도 수십 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는 믿음의 선조가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요셉이 고난을 단순히 극복해야 하는 하나의 사건으로만 보았다면 해봅시다. 그럼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다고 봤을 때 아마 당대에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고난을 극복한 의지가 뛰어난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는지는 모르겠습니 다. 뭐 이런 책도 냈을지 모르겠습니다. ‘노예에서 총리까지’, ‘내가 총리가 된 비결' 유튜브가 있었다면 이런 영상을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노예에서 총리가 되는 10가지 방법, 애굽의 총리가 했었던 10가지 행동. 수백, 수백, 수만 조회 수가 나왔을지 모르겠습니다. 당대에 인정받는 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의 쓰임 받은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물이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모든 고난과 수모와 역경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르게 해석을 하였기 때문에 그 모든 시간이 비로소 의미가 있게 된 것입니다. 옥에 있는 절망의 시간이, 보디발의 아내로 인해 오해를 받았던 시간이,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은 처절한 시간이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해 주는 귀한 본보기로 되어주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진정한 소망과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주는 역할로 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요셉의 바른 해석으로 말미암아 야곱의 자손들이 보존이 되었고, 그 야곱의 자손을 통해서 예수님을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가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말입니다.
성경 속에 이를 완벽히 보여주신 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죠. 예수님께서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 것은 단순히 고통 그 자체로 해석하셨을 때 그 십자가의 의미는 고통 그 자체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 너머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발견할 떄 어떻게 되었나요?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 십자가를 해석하자 그 십자가는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구원의 수단이요, 모든 이들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영광의 수단이 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해석하여 그 일을 행하시는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상황과 문제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나라의 지평을 넓혀 가시길 원하고 계십니다.
만약 우리에게 하나님의 시선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일을 해석하는 눈이 없다면 하나님 나라의 통로로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설사 하나님께서 그 일을 우리를 통해 진행시키셨다고 해도 바른 시선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말거에요.
하지만 우리의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고 우린 눈앞에 펼쳐지는 사건을 바르게 바라본다고 해석하기 시작한다고 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귀한 통로로 사용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상황과 사건 너머에 있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앞의 일들을 상황을 눈앞에 벌어진 사건으로, 극복하여 넘겨버릴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시선으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분명 그 상황과 문제를 통해 우리를 사용하실 것이며 우리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나라의 지평을 넓혀 가실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많은 이들이 주님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해석의 차이에서 수준의 차이가 나옵니다. 바르게 해석하여 하나님의 영광 안에 사시는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세부적인 상황과 문제를 알 수는 없지만, 여러분 안에 크고 작은 일들이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여러분이 그 상황과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상황과 문제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고 있지 못하다면, 그 상황과 문제를 바르게 해석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바라보는 시선과 바꿔야 하며, 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해석의 차이에서 수준의 차이가 나옵니다.
우리가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기 원하는데요.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모든 상황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시선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바른 해석을 통하여 주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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