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20: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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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오늘 요한복음 20 말씀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는 제목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20 말씀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는 제목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마가.누가.요한이라는 사복음서에서 요한복음은 특별히 예수님의 일생을 목적으로 삼았다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과 그 결과로 이어지는 내용으로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 대해서 설명한 것을 보면예수 ,
요한복음 20:31 (NKRV)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라고 되어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그것을 믿게하려는 것과 그게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을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게 됩니까?
물론 우리가 실상 믿음으로 나아오게 된 것을 이야기 한다면 간증거리로 모두 하루 이상은 해야겠지만,
우리가 대부분 결과론적으로 믿음을 생각한다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각 사람에게 미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다 다를 것이고 저 또한 제가 하나님 앞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저와 하나님만의 무언가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살펴본 요한복음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복음의 메시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믿음과 우리와 비교해 볼 수 있는 도마의 믿음까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에는
첫번째,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습니다.
첫번째,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 중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응하게 하다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폴레로오(πληρόω)’ 라는 단어인데 이 뜻이 퍼팩트, 완성되다, 충만하게하다, 만족하다, 가득차다라는 뜻으로 결국 성경의 완성을 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만 찾아보면 우리가 살펴본 본문 바로 앞 부분에 요한복음 19:36 에 보면,
36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안식일을 앞두고 예수님과 두 죄인들의 시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형으로 사형 당한 양 옆에 있는 두 죄인들은 다리를 꺾어 시체를 정리했는데,
예수님 같은 경우에는 병사들이 예수님의 다리를 꺾어서 죽음을 확인하는게 아니라 창으로 찔러
죽음을 확인했다고만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약성경(출12,민)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보이는 마지막 재앙에서,
처음난 것,
장자의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어린양을 잡아 먹을 수 있게 하셨던 규례가 있었는데,
그렇게 유월절 규례 중에 어린양을 잡아먹는 행위가 장자를 살리는 일이었고,
그런 과정이 구약에서는 메시야에 대한 예표로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장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에 이르게하는 형태로 완성되는 것을 봅니다.
그렇게 요한복음은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언되어진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말씀들로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구약에서 선포된 일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동행하며 말씀하신 여러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한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구절,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되었구나’ 라는 사실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요한복음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는 선포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하는,
메시야로서 확신을 갖게 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는 그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였고,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두려워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어쩌면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함께하면서 믿음이 자랐고, 어쩌면 함께함으로서 생기는 동역자로서의 믿음이 더욱 컸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후에는 어떻게 되지?’
‘그 예수님이 떠나신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거지?’
이런 고민들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하며 자랐던 믿음이기에,
늘 예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그 두려움이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적인 관계에서 느껴지는 한계, 사람이 갖는 믿음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장 전반부에 보면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에 무덤에서 사라진 것을 제자들은 몰랐다고 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돌아가신 그 순간 제자들이 패닉이 된 상태에서 몰랐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20:2 말씀을 보면,
2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예수님이 무덤에서 사라졌는데, 사라진지를 모릅니다.
어쩌면 이게 무슨 상황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드시,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말씀을 통해 선포하셨고, 그렇게 선포하셨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9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아직 알지 못했다는 의미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깨닫지 못하는 상황인거 같습니다.
요한복음 2:19 절에 보면,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하신 말씀을 기억하더라도, 그 성전의 의미가 예수님의 본체이신 것을 깨닫는 제자들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예수님의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의 부활하신 본체를 보이셨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 앞에 예수님이 직접 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증거가 되어 보이셨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서서 말씀 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요한복음 20:19 (NKRV)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 지어다!”
평강은 안식처 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은 부활하여 다시 제자들 앞에 오셨고, 그리고 평강, 영원한 안식처(요한복음 14:2)를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 (NKRV)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영원한 안식처를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완전한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이기고 우리에게 평강, 영원한 안식처를 우리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이 상황을 보는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놀랍고 매우 기뻤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0:21–22 (NKRV)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두번째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에는, 성령이 있습니다.
두번째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에는, 성령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그리고 다시 그들 앞에 메시야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 부활의 감동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리라는 약속도 지켜 주십니다.
“성령 받으라"
예수님이 이전에 이렇게 선포하신 적이 있습니다.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이 당시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뜻이 이해가 됩니다.
“성령 받으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떠나가더라도 예수님 말씀대로, 우리와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십니다.
“성령 받으라"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제자들이 지금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예수님이 왜 무덤에서 사라진지도 모르고, 그래서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이 모든 것을 깨달은 이후 결론은 어떻게 됩니까?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은 이미 예수님이 예언하신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셨고, 그 말씀은 예언한데로 이뤄지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기뻐하며 예수님의 등장에 예언을 성취하시는 은혜에 감격합니다.
세번째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세번째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다 본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요한복음 20:24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도마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과 함께할 때는 도마의 모습은 아주 단호하고 강력합니다.
요한복음 11:16 에서 도마를 소개하고 있는데,
요한복음 11:16 (NKRV)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선두에 서서 제자들을 이끌고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할 정도로 예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굉장했고, 예수님과 함께 할 때면 어떤 제자들보다도 충성심을 보였던 도마 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열정적인 모습이 도마에게 가장 인간적인 본성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선포하기를, “내가 떠난 후에 다시 돌아와서 그곳(안식처)에 너희들을 데려가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여기서 도마가 바로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먼저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두려워하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주와 함께 죽으러 가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도마의 모습은 어디로가고, 자신의 논리 가운데 어쩔바 몰라하는 모습을 쉽게 보이고 맙니다.
눈 앞에 메시야 예수님이 계시고, 그 분이 직접 말씀하시는데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일에 그 길을 어떻게 가야할지 걱정하는 도마의 모습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하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유명한 말씀을 요한복음 14:6 에 남기셨습니다.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래서 도마를 보면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지금 당장은
도마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당장 죽으러도 가겠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모이는 은혜가 있다보니,
아무래도 이렇게 함께하면 혼자보다 용기도 생기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것 같아서,
당장은 큰 두려움이 선포할 수 있는데,
막상 집에가서,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떤 일들이 생기면,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시는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보다,
우리의 논리와 생각,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고민하게 됩니다.
아니 당장 예배당 문밖에 나가 세상과 마주하고 있으면,
바로 고민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져주시겠다고 했는데도 우리는 늘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게 되는 것이지요.
어쩌면 도마의 모습이 다른 사람 모습 갖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가 그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도마를,
오늘 본문에서도 믿음의 시험대에 올려놓습니다.
도마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볼 때 보지 못했고, 나중에 제자들로부터 예수님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도마는 요한복음 20:25
요한복음 20:25 (NKRV)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직접 보지 않고도
복음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복음을 전해들었는데,
그렇게 전해듣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사는 것,
참 은혜인 것을 느낍니다.
도마가 ,
이제 예수님이 부활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처를 준비해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도,
물론, 도마는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제자들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그 복음의 메시지가 도마에게는 믿음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포대로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도마는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사는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고 있음에도,
당장 내 손 안에 유익이 보이지 않는 한 내 삶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은 듯 합니다.
그렇게 여기서는 도마와 제자들은 여드레, 약 한 주가 지나고 다시 모였을 때,
예수님이 다시 등장하셨습니다.
그리고서 도마도 제자들과 동일하게 예수님의 선포 메시지를 듣습니다.
26절 마지막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어쩌면 하나님은 각자에게 딱 맞는 복음을 전해주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에게는 즉각적으로, 누구에게는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은 도마의 성격을 아시고, 도마에게는 이런 과정이 필요해서 즉각적으로가 아닌 한걸음 뒤에 깨닫게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하심 입니다. 의심이 많은 도마에게는 한발짝 뒤쯤에 깨닫게 해주심으로 예수님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더욱 깊은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각자에게 꼭 필요한 때에 믿음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가끔 가족들을 전도하거나 가까운 누군가를 전도하려면 참 어려운 것을 발견합니다.
그들에게도 우리가 듣고 있는 복음이 지금 딱 들어가면 좋을텐데,
우리 자녀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서 예배에 충실하면 참 좋을텐데...
아무리 전도하려해도 그 복음의 메시지가 들어가기 쉽지 않은 것을 봅니다.
그래도 우리에게 맡겨진 자녀들이나 내 가족, 뿐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게 맡겨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사용하셔서 때에 맞게 그들이 복음을 듣게 하십니다.
도마가 다른 제자들처럼 즉각적으로는 아니지만, 제자들로 통해서 일차적으로 복음을 듣게 하시고, 한주의 시간동안 마음의 준비가 되도록 한 다음에 예수님의 말씀 선포가 도마 눈 앞에서 ,
그 은혜를 깊게 받아드리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리고 도마가 대답합니다.
요한복음 20:28 (NKRV)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실제로 도마가 예수님 옆구리에 손을 넣었는지는 모릅니다. 성경에는 나와있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전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에 도마가 다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쑤님은 도마에게 시간을 주셨고, 그 사이에 도마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
하나님의 때에 도마 앞에 예수님이 등장하였고,
도마가 선포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씀으로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고백이 이뤄졌고, 그 시와 때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 요한복음 20:29 같이 읽겠습니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 부활로 인한 완전한 성취 이후
은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하나님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평강,
영원한 안식처를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최소한 여기에 함께 예배하는 성도님들은 저와 같은 믿음과 소망을 품고 살아갈 것이라 믿지만,
우리 주변에 여전히 그 믿음이 부족하여, 또는 연약하여 우리와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지요.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우리의 생각과 뜻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며 바라보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준비하시고,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그리고 성취하시는 모습을 오늘 살펴본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된 것처럼,
아직 우리와 함께하지 못하는 이들도,
우리를 이곳, 하나의 교회 공동체로 인도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말씀과 믿음으로 함께하는 이들이 계속 늘어날 줄 믿습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을 3번을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있고,
누군가는 도마처럼 연약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의심하며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때에 맞게 다시 바로 세워주신 것처럼,
우리가 기도하고 소망하고 있는 이들을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도 복이 있고,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함께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부어주셔서, 그들에게도 성령의 은혜가 임하여 복이 임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금요일마다 이렇게 기도하며 나아올 때,
연약한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올려드리고,
하나님의 때에 이뤄지는 성취도 맛보는 여기 계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길 원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보시고 여전히 갈망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가득 채워주시고,
하나님의 때에 맞춰서 역사하시는 그 길에 순종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함께 ‘주여' 기도하며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