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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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Big Idea는 무엇인가?
“주님이 깨닫게 해 주셔야 부활을 믿을 수 있다. 우리는 그 부활을 믿으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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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는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만약 그 시대에 뉴스 기자들이나 csi, fbi 같은 조직들이 있었다면, 그 사건이 순식간에 다 전파될 것이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이슈가 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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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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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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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에 반역하고자 하는 자들이 백성들을 선동하기 위해 벌인 사기극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뒤섞여서 전해졌겠죠?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로마 병사들을 심문하고,
무덤을 막고 있었던 돌문에, 혹시나 사람의 지문이 묻어있진 않은지 조사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문이 묻어있었겠습니까? 그럴 수 없죠. 마태복음 28장에 기록된 것처럼,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돌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이야기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겁니다.
그런데 참~ 신기합니다.
우리는 그 현장에 없었는데, 그 부활에 대해 확실히 알고, 아는 것뿐만이 아니라 온전히 믿고 있으니 말이죠.
우리는 어떻게 부활을 믿게 되었나요?
성령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결코 믿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본론
본론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한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제자 요한과 베드로는 처음부터 부활을 믿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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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 후 첫날 새벽부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무덤의 돌문이 열려있는 겁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곧장 요한과 베드로를 찾아가, 누군가 무덤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거라곤 생각도 못한 겁니다.
그리고 이 당시 이스라엘에는 실제로 무덤을 약탈하는 강도가 많았기 때문에 마리아의 이런 추측이 이상하진 않았을 겁니다.
요한과 베드로는 반신반의한 심정으로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무덤에 도착해보니 엄청난 무게의 돌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요한이 머뭇거리면서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을 때,
베드로가 뒤늦게 도착하는데, 역시 급한 성격의 소유자답게 그는 고민도 없이 무덤 안으로 스윽 들어갑니다.
그리고 세마포와 수건이 따로 놓여져있는 걸 발견합니다.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하기엔, 예수님의 몸을 둘러 싸고 있던 세마포와, 머리를 싸고 있던 수건이 너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의 11장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를 기억하시죠? 예수님의 빈 무덤의 현장은 부활한 나사로의 모습과 상당히 상반됩니다.
나사로는 온 몸을 세마포로 칭칭 감은 채로, 그리고 얼굴은 수건으로 꽁꽁 싸맨 채로 무덤 밖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나사로를 향해 “세마포와 수건을 풀어 주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나사로에게 부활을 허락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마포와 수건이 풀린다는 것은 부활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겠죠?
오늘 본문의 그 빈 무덤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나타내기라도 하는듯, 세마포와 수건이 다~~ 풀려있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몸만 세마포와 수건에서 빠져나오시고, 그것들을 가지런히 정리해놓으신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요한은 그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야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말은 믿지 않았을 겁니다.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면, 세마포와 수건을 풀어놓을 정신도 없이 급박하게 옮겼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요한과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은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그래서 그들은 여전한 두려움과 의심을 품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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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마태복음의 28장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의 무덤을 지켰던 경비병들이 깨어나 대제사장들에게 자신들이 본 것을 다 보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번개처럼 빛나는 천사들이 돌문을 열었고, 그리고 자신들이 기절한 것, 깨어나 보니 무덤 안에 세마포와 수건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던 것을 말이죠.
부활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분명한 증거들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은 부활을 믿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경비병들의 보고를 받은 대제사장들은 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거짓말을 시키죠.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말하라고 말입니다.
경비병들은 부활의 증거를 직접 봤으면서도 그 악한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거죠. 탐욕 때문에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부활의 증거가 사라져버렸습니다.
만약 그들이 부활의 증거를 보고 믿었다면, 제사장들의 제안을 거절했겠죠.
보고 들은 것을 어떻게 말하지 않겠냐며 소리쳤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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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지나고 나서의 일이지만, 사도행전의 4장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온전히 믿게 된 베드로와 요한이 부활의 소식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다가 공회에 끌려간 장면을 보셨을 겁니다.
대제사장과 관리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지 말라고 협박합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사도행전의 4장 20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오늘 본문에 등장한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죠?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활을 믿는 믿음을 주신 겁니다. 그리고 2023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그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무덤의 돌문이 열렸다는 겁니다.
우리도 주어진 생을 마치면, 다~~ 무덤에 묻히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순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그 무덤문을 열어주실 겁니다. 그리고 이미 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고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로마서의 6장 5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로마서 6:5 (NKRV)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오늘 죽는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믿으십니까?
부활을 믿는 우리는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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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죽음을 바라보지 않고 부활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은 부활의 현관문입니다. 우리가 집에 들어갈 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죠. 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관문도 필요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현관문은 부활이라는 집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우리 인생의 고통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죽음 바로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평안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 셀 식구들이 재정의 어려움 앞에서 어떻게 그렇게 여유로울 수 있었을까요?
상황은 결코 평안하지 않고 여유롭지 않았는데 말이죠...
코 앞에 다가온 죽음을 바라보지 않고 주어질 부활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복된 주일을 보내실 때, 그리고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 일상을 보내실 때,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을 바라보시길 축복합니다.
그 때 여러분의 마음과 삶 가운데 평안이 가득할 겁니다. 그리고 그 평안이 여러분의 부모님과 자녀들과 셀 식구들에게도 전해질 겁니다.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없습니다. 그 복을 반드시 풍성히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