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성령의 내주

로마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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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반지 속의 보석
로마서 8 장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장 장엄하고도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된 중요한 결과는 미래에 반드시 영화롭게 될 것에 대한 소망을 교차대칭 구조로 잘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은 그 영화에 대한 확신의 근거로 성령의 내주하심을 알려 줍니다.
로마서 5 장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한 구원의 확신을 강조한다면, 여기에서는 성령의 사역과 성령의 내주를 통한 구원의 확신을 강조합니다.
8장에서 성령이 많이 언급됩니다. 무려 19회 나옵니다.
성령님이 신자 안에서 행하시는 사역에 초점을 둡니다.
1-13절은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통한 구원의 확신의 근거입니다. 14-17절은 양자 되게 해 주시는 성령을 통한 구원의 확신의 근거입니다. 18-30절은 신자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령을 통한 구원의 확신입니다. 31-39절은 강력한 구원의 확신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입니다.

본론

1-4절은 성령을 통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5-9절은 성령 안에서 성령을 따라 사는 신자의 특징, 10-11절은 신자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현재와 미래의 사역, 12-13절은 성령을 통한 신자의 반응입니다.
1. 성령을 통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1-4절)
성경의 위대한 장으로 찬사 받는 8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것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정죄함이란 죄인이라는 선고를 받고 죄의 형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정죄함이란 법률 용어로서 법정에 서 있을 때 이 단어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법정에서 재판관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있어 정죄함을 당하느냐 당하지 않느냐는 것은 생사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법정에 서 본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장차 반드시 하나님의 법정에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기 때문이죠.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양심대로 산 사람은 없습니다.
율법대로 산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정죄를 받고 있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죗값은 죽음입니다.
그리고 육체가 죽으면 인간은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갑니다.
영원한 감옥인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죄 받는 죄인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 된 모든 인간의 운명입니다.
[신과 함께-영화, 심판-책]
기독교 세계관과는 다르게 사후의 문제를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죽음 이후에 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말과 행동에 대하여 심도 있게 재판하는 신이 있지만 매우 인간적입니다. 왜냐하면 완벽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완벽을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이자 의로움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적인 신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은 완벽하십니다. 사랑이 없어 보이시나요?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반대로 정죄함이 없다는 것은 무죄 선고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죄의 형벌을 면제받아 죽지 않게 되었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인 된 인간에게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결코 정죄함 받지 않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8장 2절은 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는지 설명합니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기서 죄와 사망의 법이란 율법을 의미합니다.
이 율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은 성령 하나님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하셔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전달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우리를 율법에서 해방시켰다는 것입니다.
3-4절은 이것을 더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롬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왜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되어야 할까요?
먼저 율법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율법은 의와 거룩함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율법은 ‘하라 또는 하지 말라’는 순종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율법은 심판과 죽음을 선고합니다.
그런데 율법은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줄 뿐,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주지는 못합니다.
이처럼 율법은 죽음을 선고할 뿐입니다.
율법은 생명을 살려 내지 못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이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하셔서 인간의 대표로서 인간 대신 죗값을 받게 하심으로 이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 믿는 내가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않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나 대신 정죄함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죄함을 받지 않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지키신 의로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따라 살며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결국에 영화롭게 하십니다.
2. 성령 안에서 성령을 따라 사는 신자의 특징( 5-9절)
사도 바울은 불신자와 신자의 삶을 비교합니다.
불신자는 신분이 육신 안에 있는 자입니다.
롬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 안에 있다는 것은 육신이 지배하는 영역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육신의 지배와 영향력을 받는 자라는 말입니다.
육신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신자는 신분이 성령 안에 있는 자입니다.
성령 안에 있다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영역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즉 성령의 지배와 영향력을 받는 자라는 말입니다.
신자가 성령 안에 있게 된 것은 성령이 신자에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거하시면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즉 신자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육신에 있는 자에서 성령 안에 있는 자의 신분으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참된 신자인가에 대한 가장 정확한 답변 중의 하나는 바로 하나님의 영 또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불리는 성령이 자기 안에 거하시는 사람입니다.
참된 신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단순한 교회 출석이 아닙니다. 지역 교회의 등록 교인 가입 여부만으로는 안됩니다.
성령께서 자기 안에 계시지 않는 사람은 어떤 외형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해도 참된 신자는 아닙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불신자는 사고 방식이 육신의 생각을 합니다.
롬8:5-6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일이 꼭 살인, 강도, 강간, 도둑질 등의 극악무도한 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의 일에는 공부하고, 일하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축구하고, 사업하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는 등의 모든 일이 포함됩니다.
육신의 일이란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활동 등 모든 삶을 말합니다.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사도요한이 말한 세상적인 것들입니다.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신자의 사고 방식은 성령의 생각입니다.
성령의 생각이란, 성령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신 일을 생각합니다.
성령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란 모든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편으로서의 나, 부모로서의 나, 직장인으로서의 나, 학생으로서의 나를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의 나를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민감합니다.
또한 자기 영혼의 성장에 관심을 가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과 사역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스도를 묵상합니다.
자신의 구원에 대한 성장에 관심이 많습니다.
성경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도와 성도의 교제와 전도에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의 상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의 배후에서 벌어지는 영적인 상황을 직시합니다.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많군!
이 모든 것이 바로 영적인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행동양식이 육신을 따르는 삶에 기초합니다.
롬8:4-5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여기서 육신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말합니다.
사자는 육식 동물의 본성이 있습니다.
양은 초식 동물의 본성이 있습니다.
불신자는 타락한 죄인의 본성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육신을 따라 살아가는 불신자의 삶의 특징은 한 마디로 사망입니다.
여기서 사망이란, 육체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을 말합니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께 대하여 아무 반응이 없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재미를 느낍니다.
정치에 대해서는 빠른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나 하나님의 주권과 위대하심에 대해서는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하여 말하면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불신자는 하나님께 원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요구를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이루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불신자의 모습입니다.
신자의 행동 양식은 성령을 따르는 삶에 기초합니다.
성령을 따른다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며, 성령이 주시는 새로운 본성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 안에 있으며, 성령의 생각을 하며, 성령을 따르는 신자의 삶의 특징은 한 마디로 생명과 평안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 부르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주 되심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자기 안에 있습니다.
땅 속에 심겨진 살아 있는 씨앗을 보십시오.
그 작고 갸냘픈 씨앗이 무거운 땅을 헤집고 나옵니다.
그리고 싹을 틔워 줄기를 내고 자라기 시작합니다.
영적인 생명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적인 일을 생각하는 것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교회를 출석하고, 예배를 참석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묵상하는 것은 자신 속에 있는 본성이 생명의 욕구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에게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은 무엇보다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생겨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습니다.
자신의 부패와 오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되 자기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사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임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하나님과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이 생기면 하나님의 법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100% 완전하게 잘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씩 순종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습니다.
어린 아이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서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법을 100% 순종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하나님의 법을 진심으로 순종하기 원합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우리는 신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성령 안에 있는 신분, 즉 성령이 신자에 내주하시는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내주하시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3.신자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현재와 미래의 사역(10-11절)
롬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
첫째, 성령은 신자에 내주하시면서 현재 신자의 영을 살려 주십니다.
몸은 죗값으로 신자나 불신자나 반드시 죽습니다.
또한 몸은 도덕적으로도 죄의 온상임을 보여줍니다.
몸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몸은 죄가 활동하는 영역이며 도구입니다.
그래서 신자도 몸을 가지고 있는 이상 이 세상에서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신자의 영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신자는 성령을 통해 영이 거듭났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영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자는 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배하며,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신자의 영은 죽어 있어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원수 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자의 몸은 여전히 죄로 죽었지만 영은 살아 있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여전히 죄의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죄에 빠지기도 하지만 영이 살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태도에서 신자와 불신자는 차이를 보입니다.
둘째, 성령은 신자에 내주하시면서 미래에 신자의 몸을 부활시켜 주십니다.
롬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신자는 영이 살아 있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신자의 죽은 몸이 부활할 때가 옵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 처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모든 신자의 몸은 영광스럽게 부활할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신 것처럼 현재 우리 영이 살아 있는 것만이 아니라 죽은 우리 몸이 다시 부활함으로써 비로소 신자의 구원이 완성됩니다.
예수님을 살리신 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재림의 날에 우리의 죽은 몸이 살아나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소망입니다.
낮고 비천한 우리 몸이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화되는 그날에는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천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하늘과 땅의 차이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불신자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해야 하는 종교인이 된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신자가 되면 심리적으로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신자가 된다는 것은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몸은 죽었지만 우리 영은 살아 있습니다.
미래의 주님의 재림 때 우리의 죽은 몸도 살아날 것입니다.
이제 신자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성령 안에 있는 자들이 미래에 육체의 부활을 맞이할 때까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뭘 해야 할까요?

결론

4. 성령을 통한 신자의 반응입니다(12-13절).
사도 바울은 신자가 성령을 통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롬8: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신자는 자신의 행동에 따라 영적으로 죽은 것 같은 상태에 들어갈 수도 있고 아주 생명력이 충만한 상태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가 하나님께 받은 영적 생명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아무도 영적 질병에 걸리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누구나 영적으로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인 사망 상태와 영적으로 풍성한 생명 상태가 우리의 소원에만 달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구체적으로 우리 머리, 눈과 귀, 손과 발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건강해지게 해야 합니다.
너무 소식하거나 과식하거나 너무 게으르거나 과로하면 병이 든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육체가 건강하지 못한 이유는 건강 상식을 몰라서라기보다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식하거나 과음하면 병이 난다는 것을 알지만 많은 사람들은 과음하거나 과식합니다.
운동 부족이면 병이 든다는 사실을 알지만 많은 사람들은 운동하지 않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질병은 잘못된 생활습관에 따른 것입니다.
영적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건강해지느냐 병에 걸리느냐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점점 기도하지 않으면 반드시 우리 영혼은 점점 병듭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할수록 우리 영혼이 살아납니다.
점점 말씀 묵상에 소홀히 하면 우리 영혼은 점점 병듭니다.
그러나 말씀 묵상이 깊어질수록 우리 영혼은 살아납니다.
점점 예배에 참석하기를 게을리하면 우리 영혼은 병듭니다.
그러나 예배 참석에 힘쓸수록 우리 영혼은 점점 살아납니다.
우리 영혼은 오늘 하루도 나의 행동과 실천에 따라 조금씩 병이 들고 있거나 조금씩 건강해져 갑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사역과 우리가 성령 안에 있으면서 성령을 통해 우리가 행해야 하는 사역 사이에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지난 1-11절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하시는 일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신자 안에서 현재는 신자의 영을 살리시고, 미래에 신자의 몸까지도 부활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신자에게 미래의 구원에 대한 분명한 확신의 근거가 됩니다.
성령이 신자에 내주하시는 한 신자는 종말에 반드시 몸이 부활하는 영화를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12-13절은 신자가 성령을 통해 해야 할 일을 강조합니다.
성령의 내주로 미래에 신자의 몸이 부활할 것이라는 확실성은 신자의 구원의 확신에 큰 도움을 주지만 신자의 몸이 부활될 그날까지는 아직 죄로 말미암아 죽은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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