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는 자가 누리는 하늘의 위로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02 viewsNotes
Transcript
불안과 우울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노자는 우울하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고 편안하면 이 순간에 사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성경에서 애통(πενθέω)은 크게 세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는 죄에 대한 애통입니다. 두번째는 상실에 대한 애통입니다. 세번째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애통입니다. 성경이 이렇게 많은 애통을 다루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 이웃, 하나님의 의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5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오늘 우리는 불안과 우울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가장 흔한 정신 질환은 우울과 불안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우울증과 불안, 일종의 강박증세로 정신병원과 상담소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에는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서 모든 것들이 편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마트에 가지 않아도 쿠팡으로 필요한 모든것을 대부분은 다음날 다 받아 볼수 있습니다. AI의 발달로 이제는 블로그 글이나 심지어는 설교도 써준다고 합니다. 삶은 편리해 졌지만 마음은 전보다 덜 편안한 것 같습니다.
상실한 것과 상실할 것 사이를 산다.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 이라는 책에서 우울과 불안은 상실과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울과 불안은 모두 상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이나 역할, 상태나 신념 등 소중한 무언가를 상실하는 것은 우울과 관련이 있고, 장래에 무언가를 상실할 것으로 기대되는 위험은 불안과 연관이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우울은 마음이 과거에 머물 때, 불안은 마음이 미래에 머물 때 옵니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상실에 사로잡혀 현재를 살아가지 못할 때 과거가 남긴 우울을 느끼고, 미래가 보낸 불안을 느끼는 것입니다.
과거에 묶여 있고 미래에 묶여있는 인생이 현재의 삶에서 상실을 경험하고 그것이- 우울과 불안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 어느때보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재정의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설명: 애통의 세가지 용례
오늘 주님은 천국백성이 누리는 여덟가지 복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성경에서 애통(πενθέω)은 크게 세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1) 첫째는 죄에 대한 애통입니다.
2) 두번째는 상실에 대한 애통입니다.
3) 세번째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애통입니다.
성경이 애통의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다양하게 다루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문제이며, 이웃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나라의 의에 관한 문제 입니다.
주장제시: 주님의 위로가 필요하다.
오늘 우리는 그 무엇보다 주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위로가 아니면 오늘 우리가 안고 죄와 상실과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는 애통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통해서만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과거와 미래에 묶여있는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위로는 이미 주어졌다. 이제는 누릴 일만 남났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팔복은 조건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을 누리는 행복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불신자에게 애통은 애통으로 끝이납니다. 혹은 다른 어떤 것들로 잠깐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에게 애통은 이미 허락된 하나님의 위로를 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애통한 인생이 천국의 위로를 누리게 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애통함으로 천국의 위로를 누릴 수 있습니까?
나의 죄의 문제에 대해서 애통할 때, 공동체를 위해서 애통할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애통할 때 우리는 천국의 위로를 경험 할 수 있습니다.
첫째, 먼저 우리는 나 자신의 죄의 문제에 대해 애통함으로 하늘의 위로를 누립니다.
첫째, 먼저 우리는 나 자신의 죄의 문제에 대해 애통함으로 하늘의 위로를 누립니다.
마태복음 26:31–35
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1)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했던 제자였습니다.
1) 베드로는 그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했던 제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가장 먼저 부르신 제자였고 주께서 그를 부르셨을 때 그 즉시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랐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때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모두가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라고 단언했던 자였습니다.
그랬던 베드로가 예수께서 붙잡혀 가시자 어떻게 했습니까?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던 사람,
그래서 대제사장과 그의 종들이 예수를 잡으러 왔을때에도 주님을 지키기 위해 칼을 빼들고 종의 귀를 떨어뜨린 이 사람,
그러나 이 베드로는 예수께서 잡혀가시고 자기의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주님의 말씀대로 닭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는 심지어 예수를 아는 것이 저주 받을 일이라고까지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는 주님을 생각하며 심히 통곡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6:75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해석
해석
베드로의 통곡은 주님이 잡혀가심으로 인한 통곡이 아니었습니다.
혹은 주님께서 자신을 버렸기 때문이 하는 통곡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자신이 예수를 버렸기 때문에 심히 통곡하는 애통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애통은 예수님의 수제자로써 믿음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에 대한 통곡이었습니다.
2) 위대한 복음전도자 사도바울은 로마서 7장2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의 이 고백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선을 행하기 원하는 마음과 / 죄의 세력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데 지는 자신을 보며 탄식하는 부르짖음이 아닙니까?
예화
예화
여러분은 주님을 배반하고 버린것 때문에 애통하며 기도해 보신적이 있습니까?
저는 호주 공동체에 있으면서 제 자신의 죄로 인한 애통함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매일 새벽과 저녁에 낡은 창고를 개조한 기도실에서 기도하면서 지나간 내 삶을 돌아보니 주님 앞에 너무도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는지, 내가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목사의 자격이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라는 것이 저의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주님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괜찮다.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차라리 “그래 너는 아니다.” 라는 말씀을 하셨더라면 속이라도 편했을텐데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것이 저로 하여금 더욱 애통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님! 왜 저를 놓지 못하십니까? 그러면서 한참을 울면서 기도한 적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기준에는 한참 못미치는 나인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의 죄에 대한 애통함은 내 죄로 인하여 주님으로부터 버림 받음에 대한 애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고 싶지만 그렇지 못했던 나를 용서하시고, 안아주시고 품어주시는 주님의 사랑때문에 나오는 애통이었습니다.
토마스 아캠퍼스
적용
적용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로부터 자유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죄로 오염된 죄에대한 성향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심령의 가난함과 애통함으로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은
의인으로서 마땅히 살아내야 할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과 연약함에 대한 회개의 탄식입니다.
그래서 신자에게 애통은 복입니다. 왜냐하면 내 죄에 대해 애통하는 가운데 내 죄를 감당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애통함으로 하늘의 위로를 누립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애통함으로 하늘의 위로를 누립니다.
요약
고린도후서 7장 말씀에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애통과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바울을 향한 쌍방간의 애통함이 가져온 위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석
해석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총 네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고린도 전서에 앞서 한 통의 편지를 먼저 보냈고 그 다음에 고린도 전서를 보냈습니다. 그리고나서 고린도 전서와 후서 사이에 또 다른 편지를 한 통 보냈는데 그 내용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엄하게 꾸짖는 편지였습니다. 바울이 성도들을 꾸짖는 편지를 쓴 이유는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예수를 믿고도 여전히 세상의 방식을 따라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의 목회 현장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복음 때문에 온갖 환란을 당하고 때로는 쫓기고 도망가며 살아야 했습니다. 한편으로 복음에 대한 담대함이 있었지만 인간적인 두려움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바울은 또한 로마서에 기록된 대로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의의 문제에 대한 애통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더욱 애통하게 만든것은 복음을 듣고도 복음을 떠나서 사는 성도들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더욱 애통하게 만든것은 복음을 듣고도 복음을 떠나서 사는 성도들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엄하게 꾸짖는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바울은 애통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개척학 교회인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기도하며 편지를 썼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애통함이 고린도교회에 방황하던 성도들을 다시 하나님 앞에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다시 세게 된 성도들은 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고린도교회 안에 있다는 소식을 그가 보낸 제자 디도를 통해서 듣고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통해 여러분을 향한 나의 애통함이 여러분을 살게 했다면 나를 향한 여러분의 애통함이 나를 살게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애통함이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했던 것입니다.
예화
예화
제가 초등학교때 저희 가족이 잠깐 시골에서 2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다니던 교회는 면사무소에 하나밖에 없던 감리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주일학교를 담당하셨던 분이 누구냐면 연세가 조금 있으셨던 속장님이셨습니다. 우리로 치면 구역장 내지는 소그룹인도자 라고 할 수 있는 분입니다. 풍채도 크시고 싱글 여자분이셨는데 남자처럼 목소리 톤도 괄괄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에 주일학교 예배에 가면 몇명 되지도 않는 아이들을 붙들고 이분이 얼마나 통곡을 하면서 우시던지, 주님 이 아이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불쌍히여겨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위기는 먹을것이 없는것이 아니고 이런 애통하는 기도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까?
히브루즈에서 알바를 하는 청년중에 다른 친구들과 달리 굉장히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이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애통하는 기도를 해본적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뭐라고 대답했냐면 제가 그 대답을 듣고 정말 크게 감동이 됐습니다. 이 청년이 CCC순장으로 섬기고 있는데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고 애통하는 기도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적용
적용
여러분은 제 안에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애통함이 식어지지 않도록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애통함으로 드리는 기도가 식어지면 교회가 생명력을 잃기 때문입니다. 애통하는 기도가 공동체를 세우고 위로하고 회복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감사한것은 그래도 우리 교회 안에 이렇게 교회를 위해서 애통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성도를 위해 성도들은 목사를 위해 서로 애통함으로 피차간에 하늘의 위로를 얻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애통함으로 천국의 위로를 누립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애통함으로 천국의 위로를 누립니다.
연결문장
연결문장
우리가 맨 처음 나 자신의 죄에 대해서 애통하고 그 다음 나의 가족과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서 애통했다면 이제 우리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애통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애통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을 향한 애통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자들과 이제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열방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서 40장은 이미 백성된 자들과 이제 하나님께서 새롭게 부르시는 백성들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위로의 메시지는 그들을 사로잡힘으로 부터 해방시키시고 참된 자유와 기쁨을 회복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곧 바벨론에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열방 가운데 이방인들을 구원하심으로 모든 육체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하는 일,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택하신 종을 부르시고 그 종을 보내신다는 약속의 말씀, 소망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승리를 가져오시는 종의 오심에 물꼬를 트는 열쇠가 3절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가져오시는 승리의 기쁨, 구원의 기쁨, 참된 위로를 기다리는 자들에게 그것을 알리는 일이 바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애통이고 하나님 나라의 선교인 것입니다.
예화
작년 6월에 레바논에 단기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작년 6월에 레바논에 단기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일정 가운데 시리아 난민 텐트에서 하루를 자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가정은 아버지가 쉐이크인 가정이었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그 집의 아버지는 이슬람의 목회자와 같은 것입니다. 언어는 안되지만 통역기를 써서 복음을 전하고 또 우리가 만들어간 전도 책자를 읽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다음날 아침에는 규혁 형제라고 아랍어를 잘하는 청년 단기선교사가 와서 같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세번째 복음을 전하고 그 집의 아버지에게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멘.. 하길래 안수기도를 해줬습니다. 그리고나서 제가 물었습니다. 아버님 우리가 이제 주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으니 저희가 아버님 가정을 조금 돕고 싶은데 혹시 어떤게 필요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아버님의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예수만 있으면 됩니다. 우리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애통해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할 때 맨 바닥에 천 쪼가리 하나 깔고 잠을 자도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면 내가 모든것을 잃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외치는 자의 소리를 통해서 오시는 종을 통해 실현될 약속을 52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애통이 왜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까?
결국 팔복 서문에서 말씀드렸듯이 인간에게 유일한 위로는 하나님의 백성됨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용납된 자만이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자의 삶은 절망으로 끝을 맺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사야 선지자와 같이 세례 요한과 같이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애통하는 마음으로 그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는 위로가 나올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것도 우리에게 참된 위로를 줄 수 없습니다.
오늘 나 자신의 죄의 문제 공동체의 회복과 하나됨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영광은 애통하는 자들을 통하여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닫는 말
오늘 여러분 안에 애통함이 있습니까?
자신의 죄를 위한 애통함이 있습니까?
교회 공동체를 향한 애통함이 있습니까?
열방을 향한 애통함이 있습니까?
오늘 애통함으로 천국의 위로를 누리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