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바라고, 거룩하고,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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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고백 : 하나님을 기대합시다.
헌금 :
먼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립니다. 받아주옵소서. 또한 우리의 가장 값진 물질을 봉헌합니다. 주님 받으시고 기쁘게 흠향하여 주옵소서. 이 드림이 우리의 예배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을 가장 영광스럽게 하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양 : 내 안에 가장 귀한 것 / 314장(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본문 : 베드로전서 1:13-25 (13-19)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의 꽃과 같으니 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느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세상에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어렵습니다.
우리는 마음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몸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이 지켜지지 않아서 힘이 든 것입니다.
13절에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마음을 단단히 조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허리가 무엇입니까?
마음 중심을 단단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근신하여”는 무슨 말일까요?
긴장하라는 것입니다.
마음 중심을 단단히 지키고 긴장하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주실 완전한 은혜를 기대하고 기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이렇게 서로 인사합시다.
예수님을 기대합시다.
예수님의 은혜를 기대합시다.
*베드로는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절망 가운데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너희들이 바랄 것이 있다’
‘너희들이 기대할 것이 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1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이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바랄 것은 바라고,
바라지 말 것은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니까,
‘너희가 예전에 구원받기 전에,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잘 모르고 부렸던 탐욕은 부리지 마라’
바라지 마라.
이런 것들은 바라지 마라.
사욕이라는 단어는 ‘에피띠미아’라고 읽는데, 탐욕, 욕심, 욕망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랄 것은 바라고,
바라지 말 것은 바라지 말아야 되는데,
너희가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은혜를 기대해라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
그런데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은,
구원받기 전에 행했던,
사욕을 바라지 말아라.
그런 것들은 이제 본받지 말고 버려라.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바라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가져다 주실 은혜를 가장 바라고 있습니까?
죄 많은 이 세상에
가져다주실 완전한 나라,
천국,
구원,
이런 것들을 바라고 있습니까?
그것보다는,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의 쾌락과 즐거움, 욕망, 사욕을 바라고 있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 것들은 모두 있다가도 없어지고,
반짝 거렸다가도 빛을 잃어버리는 것들입니다.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24절입니다.
허무하다.
모든 것이 풀과 같다.
잠깐 빛났다가 시드는 꽃과 같다.
우리 24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모든 육체는 인생입니다.
인생을 말하는 것인데,
풀과 같답니다.
허무하고, 금방 사라지는 풀처럼 연약하다고 합니다.
영광이라는 단어는,
인생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업적, 성공, 성취,
빛나는 업적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영광 역시
풀의 꽃과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풀은 어떻게 됩니까?
말라버리고,
꽃은 어떻게 됩니까?
말라서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인생이 행할 수 있는 모든 업적과 영광, 성공, 성취는 다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은 것인데,
이런 것들을 바라는 사람들은,
‘허무하고, 고통스러워지는 것이야.’
‘그러나, 너희 그리스도인들,’
‘이 세상에서 ‘나그네’ 같은 인생들아,’
‘너희는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헛된 사욕을 따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여러분,
우리가 바랄 것은 은혜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복음을 들었습니다.
썩지 않는 게 세상에 있습니까?
그런데 썩지 않는 것을 들었습니다.
무너지지 않는 게 세상에 있습니까?
그런데 무너지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가져다 주실 완벽한 은혜인 것이죠.
우리 마음을 지키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은혜만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바랄 것을 바라고,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을 바라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 마음을 지키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비결이라는 것이죠.
*현대인들은 걱정을 달고 삽니다.
걱정을 몸에 달고 사는 것이죠.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걱정을 자기 몸에 달랑달랑 달고 다니는 것이죠.
하나님께 맡기면 걱정이 없을텐데,
하나님께 맡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간절히 바라고,
나머지 것들은 하나님께 맡기고 살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 평소에
QT 생활, 기도생활을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힘든 일이에요.
우리가 평소에 운동도 안 하다가,
갑자기 무거운 것을 들려고 하면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꾸준히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부터 맡기는 훈련을 해야 해요.
사소한 것부터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도우시는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좀 더 큰 것,
좀 더 어려운 것들도,
믿고 맡길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은혜에는 집착해야 합니다.
‘하나님, 은혜 주세요.’
‘오늘을 살아갈 은혜 주세요.’
‘은혜 없으면 안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채워주세요.’
그러나 우리가 바라지 말아야 할 것들은 집착하지 말고,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맡깁니다. 하나님이 일해주세요.’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손님이 골동품 가게에서 때묻은 그릇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 그릇값으로 말도 안되는 돈을 지불했습니다.
도무지 그 큰 돈을 왜 줬는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절대 환불불가, 교환불가,
이 손님은 볼품없는 그릇 하나를,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돈을 주고 산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손님은
집으로 돌아가서,
이 그릇을 닦고, 또 닦고,
자기가 아끼는 물건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골동품 가게 주인이,
이 물건, 혹시 내가 모르는 가치가 있나 싶어서,
‘물건 다시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내가 저번에 주신 돈 다시 드리겠습니다.’
‘물건 다시 주십시오.’
그런데 그 물건 산 손님이
손사래를 치면서,
‘절대 안 됩니다.’
환불불가, 절대불가!
내가 값주고 샀으니, 절대 환불불가, 교환불가, 절대 이 거래는 돌이킬 수 없다면서,
손사래를 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우리가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속하셨다’라는 의미입니다.
18-19절이 그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손님이 너희를 산 값은
금이나 은 같이 없어질 화폐로 지불된 것이 아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 이런 걸로 지불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산 값은,
흠 없고 점 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핏값으로 지불 되 것이다.
이건 사라지지 않는 돈이다.
영원히 쓸모 있는 돈으로 너희를 산 것이다.
그러니 환불불가, 교환불가,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거래를 한 것이다.
여러분, 이걸 구원이라고 합니다.
한번 산 여러분의 인생은,
결코 환불되지 않아요.
아이고, 다시 더러워졌네. 버려야되겠다.
다시 골동품 가게에 팔아버려야 되겠다.
절대 다시 환불되지 않아요.
그게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대속함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을 지불하고 산 사람들입니다.
결코 환불불가, 교환불가,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갈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하나님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바랄 것을 바라고,
바라지 말아야 할, 옛날의 사욕, 탐욕, 욕망들은 과감히 내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등산 하면요.
봄에 꽃들이 얼마나 예쁩니까?
그런데 등산하면서 보이는 꽃들에 정신이 팔리면,
우리가 산 정상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 안에 예전에 행했던 죄악들과 사욕, 탐욕들이 꿈틀꿈틀 거리면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신을 못 차리고,
거기에 끌려 다니다가,
하나님게서 주신 귀한 시간을,
바라지 말아야 할 것들에 집착하면서,
낭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를 깨우고,
정신 차리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우리 인생 가이드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마음 중심을 단단히 붙잡아라!
긴장해라!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
그리고 예전에 따르던 사욕들을 바라지 말아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깨우고, 정신 차리게 하는 것이죠.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의 겉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책망하시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자께서 야단을 치시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면서, 우리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결코 환불되지 않습니다.
세상은 어떻습니까?
좋아보여서 샀다가도,
언젠가는 버려지고,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죠.
비싼 값에 팔렸다가도, 헐값에 버려지는 것이 우리 인생아니겠습니까?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도다!
이 말씀이 진리인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교환/환불이 허다합니다.
쓰다가도 맘에 안 들면 버리고,
반품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가장 쓸모 없어 보이는 우리들도
결코 반품하시지 않습니다.
환불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핏값주고 싰다!
내가 비트코인 주고, 가상화폐주고 너 산 것 아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핏값을 지불하고 너를 산 것이다!
그러니, 환불도 없고, 반품도 없고, 결코 너를 버리는 일이 없다!
우리 마음 중심을 지키는 비결!
우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긴장하며,
거룩하게 살아가는 비결은,
바랄 것은 바라고,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은 버릴 때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핏값 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간절히 바라고,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 추구했던 헛된 욕망과 탐욕을 버릴 때,
우리는 하나님처럼 거룩한 인생을 살 수 있고,
쓸데 없는 걱정과 염려에 시달리지 않는,
건강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죠.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을 이끌어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들은 말씀을 떠올리며,
우리가 가장 귀하게 붙잡아야 할 것!
우리가 간절히 바래야 할 것!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내 안에 가장 귀한 분,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간절히 바라며, 찬양합시다.
*기도하겠습니다.
들은 말씀을 가지고
세상 지식보다 귀하고, 우리가 가진 물질과 소유보다 귀하고, 우리의 명예와 성공보다 더 귀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간절히 바라고 살고 있나요? 우리가 간절히 바래야 할 것은 은혜이어야 합니다. 세상의 헛된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은 것들은 오히려 더 우리를 근심케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 뿐입니다. 이 시간 기도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간절히 바라게 해달라고, 그 은혜에 잠기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담임목사님과 사모님, 리더들과 순장들을 위해
앞서 세우신 담임목사님과 사모님, 영육의 강건함으로 교회를 잘 이끌어가시도록. 청년부 리더들, 순장들에게 은혜를 부으셔서, 맡겨주신 영혼들을 잘 먹이고 인도해갈 수 있도록. 은혜 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죄악들과 탐심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헛되고 헛된 욕망들을 추구했던 삶을 회개합니다.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값주어 사시고, 우리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성령을 부으시고, 말씀으로 충만케 하여 주셔서,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오직 주의 은혜만 간절히 바라고 기대하는 우리 인생이 되게 주시옵소서. 우리 각자의 삶을 주장하시고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관찰
4가지 명령
온전히 바랄지어다 (13절) - 엘피조(기대하다, 소망하다)
가장 좋은 것을 기대하라!
거룩한 자가 되라 (15절) - 기노마이(이다, 되다)
구별하신 그분의 소원대로 살라!
두려움으로 지내라 (17절) - 아나스트레포(뒤엎다, 뒤집다, 돌아서다, 돌아가다)
사랑하는 분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지 말라!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2절) - 아가파오(사랑하다, 아끼다, 다른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관심을 가지다, 소중히 여기다, 애정을 가지다, 사랑하다)
형제끼리 뜨겁게 사랑하라!
14 순종하는 자식처럼, 사욕을 본받지 말고
22 순종함으로, 사랑하라
18 구원받은 것은, 없어질(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17 나그네로 있을 때 = 20 이 말세
21 영광을 주신 하나님 - 진정한 영광
24 그 모든 영광 - 사라질 영광
23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13 그러므로 허리를 동이라, 너희 생각의 허리 부분의. 정신을 차리라. 너희는 완전히 소망을 두어라(명령). 너희에게 운반해주실 은혜를,
우리 생각의 허리 부분 = 생각을 지키라
허리를 동이라
정신을 차리라
완전히 기대하라
긴장하고, 정신을 차리고, 은혜에 온전히 기대를 걸어라.
14 순종하는 아이들처럼,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탐욕에 순종하지 말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 탐욕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15 모든 행동(처신, 사는 모양)에 있어서 너희는 거룩한 자가 되어라(명령)
삶의 모든 영역 - 거룩을 요구함
16 기록된 바,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내가 거룩하니.
17 그리고 공평하게 판단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고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되돌아가라(명령).
18 은이나 금으로 너희의 대가가 지불된 것이 아니다(수동태). 조상으로부터 전해 받은, 헛된 것으로부터,
아버지나 어머니로부터 배운.
혹은 집안 전통으로 배운.
불신 세계에서 배워왔던.
그 헛된 행실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구출된 것은, 은이나 금처럼 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다.
19 도리어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다. 흠없고 흠 없는 그리스도의.
20 그는 세상의 시작부터 알려진 분이시다. 그러나 분명히 드러났다, 이 마지막 때에, 너희 때문에
너희 때문에 분명하게 나타내신 것이다.
너희는 위대하신 분을 보게 된 것이다.
21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 안에서 존재하게 하려 하셨다.
22 너희 영혼을 성결하게 하셨다(하그니조 / 완료). 너희가 사실(진리 / 알레쎄이아)를 순종함으로, 거짓이 없는(꾸밈 없는) 형제 사랑 안에서, 마음으로부터 서로 너희는 아끼라(명령 / 아가파오), 뜨겁게
이미 너희 영혼을 성결하게 하셨다(직설법).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으로부터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명령법).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것으로 되었다. 살아있고 계속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
썩지 아니할 것 = 하나님의 말씀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같고, 모든 영광은 풀의 꽃같다, 풀은 마른다, 그리고 꽃은 떨어진다.
모든 육체 / 풀
모든 영광 / 풀의 꽃
풀은 / 마르고
꽃은 / 떨어진다
25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있다. 너희에게 전파된 복음이, 이 말씀이다.
메노
계속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말씀 (23)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있다 (25)
연구
하나님은 항상 그의 백성을 거룩하게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그분의 거룩하심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안에 썩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가지고 있으므로 순수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라는 서두는 이전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 부분이 시작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네 가지 명령("소망하라", "거룩하라", "살라", "사랑하라")이 이 부분을 하나로 묶어주며 윤리와 신학을 연결합니다.
첫 단락은 소망("은혜에 소망하라")과 거룩함("거룩하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두 명령은 신자들의 이전 삶과 현재 상태 사이의 대조를 강조함으로써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1:14: "순종하는 자녀들처럼" 대 "너희 이전의 무지의 정욕").
13절
이 구절의 주요 동사는 1:13-25에 나오는 네 가지 명령 중 첫 번째 명령인 "소망하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앞의 두 구절에 의해 수정되어 희망에 어떤 태도가 수반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너희 허리를 동이고 = 영적인 경각심을 가지라
근신하여는 실제적 술 취함을 금지하는 것뿐 아니라 (이 어구의 전후문맥이 마음의 태도와 관련이 있는 까닭에) 어떤 종류이든 정신적 도취 혹은 영적인 경성을 방해하는 중독, 혹은 부주의함(혹은 “태만으로”)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죄에 빠지게 만드는 마음의 나태함으로 이끌어 방황하게 하는 것을 막아준다.
선지자들은 복음의 위대한 특권을 예언했고, 천사들조차도 복음을 더 잘 이해하기를 갈망했기 때문에 신자들은 자신의 생활 방식에 대해 같은 종류의 진지하고 깨어 있는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신자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 거룩할 필요는 없지만, 믿지 않는 세상에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흩어져 있던 신자들에게 "소매를 걷어붙이고" 행동할 준비를 하라고 도전했습니다. 순종이 항상 자연스럽게 또는 쉽게 오는 것은 아닙니다. 헬라어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여매라"는 말은 달리기 위해 긴 옷을 허리에 두른 띠에 집어넣어 "허리를 동여매는" 사람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고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신속하게 순종할 준비를 하라!
자제력을 가지십시오. 신자들은 성적 욕망과 물질적 욕망, 분노, 말을 자제하고 절제해야 했습니다.
신자들은 술 취함, 중독 또는 자신의 마음과 몸을 압도하고 통제할 수 있는 태도를 피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에게 가져다주실 은혜에 모든 희망을 두세요.
모든 희망을 예수님께!
우리는 다른 목표를 세우고 다른 미래를 바라보며 산만함과 방해 요소를 제쳐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산만하게 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라!
신자들의 '소망'은 우리가 이루기를 바라는 막연한 소망이 아닙니다. 그 대신,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에 대한 확신에 찬 기대이며, 우리의 확실한 목적지입니다.
14절
순종하는 자녀로서 여러분은 무지 속에 살 때 가졌던 악한 욕망을 따르지 마십시오.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이제 우리가 산만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종”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을 때 그들은 새로운 마음가짐, 새로운 목표, 죄에 대한 새로운 민감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새로운 소망,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악한 욕망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신자들은 삶의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와 단절하고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악한 욕망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15절
15절("그러나"로 시작)은 순종하는 자녀로서의 신자들의 현재 상태와 이전의 생활 방식 사이의 대비를 증폭시킵니다. 신자들은 부도덕한 욕망을 무지하게 추구하는 삶을 본받는 대신 거룩해야 합니다(1:13-25의 네 가지 명령 중 두 번째 명령). 이 명령은 스스로 거룩하신 아버지의 성품에 근거합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자신의 삶을 헌신한 후에도 여전히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시작하셨고, 그들은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가 죄와 악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거룩함은 그분의 성품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불경한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거나 헌신하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특별한 용도를 위해 구별되고 죄와 그 영향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추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돌보시는 자비와 정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높은 도덕적 기준을 따라 그분을 본받기를 기대하십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죄로부터의 분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TV와 대부분의 영화를 없애야 합니다. 술에 취해 욕설이 난무하는 프로 스포츠 경기를 멀리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재화와 쾌락에 대한 욕망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초점과 우선순위는 그분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따로 사용”하기 위해 “구별”된 존재들이다.
이제는 “다른 대상”을 향해 “눈치”를 보아야 한다.
우리는 구별되었으므로, “하나님”의 눈치를 더 많이 보아야 한다.
16절
16절은 레 11:44-45을 인용하여 1:15의 명령에 대한 성경적 배경을 제시합니다.
두 번째 단락은 올바른 행동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함으로써 이전 구절의 주제인 거룩함을 더욱 강화합니다.
베드로는 이 단락에서 기독교 윤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속 사역, 즉 신자를 하나님 아버지와의 새로운 관계로 이끈 사역에 근거하고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경건한 두려움은 무자비한 주인에 대한 노예의 두려움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자의 건강하고 열렬한 존경입니다. 하나님은 온 땅의 심판자이시기에 신자들은 감히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를 진정으로 두려워하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17절
베드로는 이전 단락(1:15)의 핵심 용어인 "부르심"을 활용하여 1:13-25의 네 가지 명령 중 세 번째 명령인 "[특정한 방식으로] 살아라"로 이어지는 조건문("만약"으로)을 만듭니다.
베드로는 편지의 첫 구절에서 독자들을 묘사할 때 사용한 단어("선택된 거주 외국인")를 상기시키며 그들에게 "유배자"로 살라고 지시합니다. 그는 2:11에서 이 주제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영구히 머물거나 그 문화에 동화될 생각 없이 지나가는 관광객처럼 살아야 합니다.
관광객은 “구경”은 하지만, “살지”는 않는다.
우리는 노예나 흉악범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18절
이 절은 신자들의 생활 양식의 핵심 요소를 설명하는 단어("알다")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구속이 은과 금과 같은 부패하고 부패하기 쉬운 물질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적절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구속되었다는 단어는 누군가가 노예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돈을 지불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빚을 지게 되면 그 사람이 노예로 팔려갈 수도 있었습니다. 가까운 친척이 노예를 구속(노예의 자유를 사는 것)할 수 있었는데, 이 거래에는 돈이나 귀중품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귀중품은 부패하기 쉬우며 은과 금도 부패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다시 사시기 위해 하신 거래는 환불이 불가능하며 영구적인 거래입니다.
예수님은 “환불불가”, “교환불가”의 거래를 하셨다.
보통 거래는 환불이 된다.
구매 후 14일 이내로 환불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환불이 안된다.
예수님은 “영원히 환불되지 않는 거래”를 하셨다.
그것은 영원히 썩지 않는 “자신의 피”로 세우신 “거래”이다.
예수님은 도덕적으로 완전하고 완벽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죄를 위해 죽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잘못한 적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번도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바라보신다.”
19절
이 절은 신자들이 "알아야 할 것"에 관한 1:18절의 설명을 이어갑니다. 19절은 1:18("너희는 'X'로 구속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Y'로 구속되었습니다.")과 대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20절
여기에서 두 개의 분사("알려지다" 및 "계시되다")는 1:19의 흠 없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더 묘사합니다. 예수님의 역할은 영원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마지막 시대에 이르러서야 하나님의 백성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1:10-12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과 구원 역사에서 청중이 갖는 특권적 지위와 주제적으로 공명합니다.
너희들은 특별하다 - 마지막 때에 드러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자신의 백성을 선택하셨고(1:2)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구속하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항상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셨지만(요 1:1), 이 마지막 때에 성육신을 통해 세상에 계시되었습니다. "마지막 때"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연인들이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계속해서 궁금해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마음이 어떤지 계속해서 궁금해 하는가?
2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심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대신 영원 전부터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신 분을 신뢰하면서 그분께 믿음과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21절에서 다시 “온전히 바라라”(13절)고 했던 그 주제를 반복하고 있다.
마지막 단락은 1:13-25에 나오는 네 가지 명령 중 네 번째 명령인 "사랑"을 제시함으로써 방금 논의한 구원의 당연한 결과(1:18-21)를 보여줍니다. 베드로는 "소망하라", "거룩하라", "특정한 방식으로 살라"고 말한 데 이어 이제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라"(1:22)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기독교 윤리가 거듭남의 실재(1:23-25)와 하나님 말씀의 능력에 근거하고 있음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22절
이곳의 주요 명령형은 "사랑하라"(목적어 "서로"와 부사 "강렬히"가 사용됨)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첫 단어인 "정결하게 하라"로 수정됩니다. 이 정화는 베드로의 그리스도인이 "강렬히 사랑하라"는 명령을 이행하기 전에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신자들은 순종과 사랑으로 영혼이 정화되었기 때문에 거룩함을 향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순결함과 거룩함이 성장하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더 깊은 사랑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진정한 상호 사랑은 단순히 외적인 모습이나 고백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료 신자들에 대한 악한 생각과 감정을 기꺼이 버려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악한 생각과 감정을 버릴 때, 진정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
뜨겁게 : 인내("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또는 강도("열렬히, 긴급하게")로 이해될 수 있다.
23절
"사랑하라"(1:22)는 주 명령은 이전에 일어난 것으로 가정되는 두 가지 행동에 의해 수정됩니다: "정결하게 되었다"(능동, 1:22)와 "거듭났다"(수동, 1:23). 이 두 가지 모두 진정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는 베드로의 권고를 따르는 데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거듭났고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진리에 순종하며, 자신을 정결하게 지키고,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를 사랑하며 살도록 동기를 부여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거듭남은 언젠가는 시들어 죽게 되는 인간적인 기원을 의미하는 썩어질 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살아 있고 영속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묘사되는 불멸의 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최정상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람은, 산중턱에 머물지 않는다.
24절
베드로는 이사야 40장 6~8절을 인용하며 신자들에게 이 세상의 모든 것(소유, 업적, 사람)은 결국 사라지고 사라질 것임을 상기시켰습니다. 모든 육체는 모든 사람, 모든 인간 존재를 의미합니다. 풀과 꽃이 한 계절 동안 피었다가 시들고 떨어지듯이, 이 모든 삶은 본질적으로 덧없고 사라질 것입니다.
영광은 지상의 모든 성취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필멸의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고 변함없습니다. 베드로의 독자들은 고난과 핍박에 직면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영원하듯이 그들의 구원과 그에 따른 영원한 영광도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25절
"이제 이것은..."이라는 1:25b의 짧은 표현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에 대한 베드로의 설명을 다시 언급하며 1:3에서 "산 소망"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된 그의 생각을 결론에 이르게 합니다.
무엇이 삶의 이유를 제공합니까?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평화와 인내를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왜 희망을 가져야 할까요? 베드로는 이 질문에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신자들은 사도들이나 다른 신자들을 통해 전해진(또는 선포된) 복음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1:23) 거듭났습니다.
적용
우리는 고물상에서 더러운 물건처럼 다시 사들여졌습니다. 우리는 모두 만들어진 목적과는 다른 온갖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물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궁극적인 대가를 치르셨으니, 바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귀한 피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이전 소유자가 나타나서 예전의 용도로 다시 사용하도록 강요하지 마세요.
우리가 생각이 복잡한 이유는, ‘목표’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우리 목표는 “하나님 한분”이다. 그 외에 다른 목표는 모두 “풀의 꽃”과 같다.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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