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의 입술을 통한 미래 승리의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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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건너편 산꼭대기에 서서 아브넬을 부르고, 왕의 창과 물병이 어디 있는지 보라 합니다. 사울은 자기 생명을 귀하게 여긴 다윗 앞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다시는 그를 해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귀히 여겨 주시길 바라고, 사울은 다윗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Notes
Transcript
1 Samuel 26:13–25 DKV
그러고 나서 다윗은 건너편으로 가서 멀리 떨어진 산꼭대기에 섰습니다. 사울의 진영과는 거리가 꽤 멀었습니다. 그가 사울의 군대와 넬의 아들 아브넬에게 소리쳤습니다. “아브넬아, 내게 대답하여라.” 그러자 아브넬이 대답했습니다. “왕에게 소리치는 녀석이 누구냐?” 다윗이 아브넬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용사가 아니냐? 이스라엘에 너만 한 사람이 또 어디 있느냐? 어떻게 네 주인인 왕을 지키지 못하느냐? 누군가 네 주인인 왕을 죽이러 들어갔었다. 너는 제대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너와 네 군사들은 죽어 마땅하다. 네가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네 주를 지키지 못했으니 말이다. 자, 왕의 머리맡에 있던 창과 물통이 어디 있는지 똑똑히 보아라.” 사울이 다윗의 목소리임을 알아듣고 말했습니다. “내 아들 다윗아, 네 목소리가 아니냐?” 다윗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주 왕이시여.” 그리고 이어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왜 종을 잡으러 다니십니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내 손으로 저지른 죄악이 무엇이기에 그러시는 겁니까? 이제 내 주 왕께서는 종의 말을 들어 주십시오. 만약 왕더러 나를 치라고 하신 분이 여호와이시라면 기꺼이 그분의 제물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했다면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내게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라’ 하고 말하며 나를 내쫓고는 나를 여호와의 기업 안에 있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호와 앞에서 멀리 떨어진 이 이방 땅에서 내 피를 흘리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는 왕께서 마치 사냥꾼이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것처럼 벼룩 한 마리를 찾으러 나오신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말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가자. 네가 오늘 내 목숨을 귀하게 여겼으니 내가 다시는 너를 해치지 않겠다.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 내 잘못이 너무 크다.” 다윗이 대답했습니다. “여기 왕의 창이 있습니다. 소년 하나를 보내어 가져가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의롭고 신실한 사람에게 상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을 내 손에 넘겨주셨지만 나는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왕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오늘 내가 왕의 목숨을 소중히 여긴 것처럼 여호와께서 내 목숨도 소중히 여겨 나를 모든 고난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자 사울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기를 바란다. 네가 큰일을 할 것이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자기 길을 갔고 사울도 자기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본문 해설

사울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다윗 26:13~20
다윗은 거듭 원수의 생명을 살려 줍니다. 사울의 물병과 창을 가진 다윗은 안전한 거리로 도망한 후,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을 부릅니다. 다윗이 아브넬을 질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울에게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것이 사람의 뜻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인지를 사울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을 통해 구원 역사를 펼쳐 가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을 이스라엘 땅에서 쫓아내는 일은 그를 하나님 앞에서 쫓아내 다른 신을 섬기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과거에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던 다윗은(24:11), 이번에는 자신을 죽이는 것은 ‘죄’라며 이전보다 강하게 사울을 비판합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행동이 왜 죄가 된다고 했나요? 타인을 괴롭히는 행동이 하나님 앞에 죄임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잘못을 인정하는 사울 26:21~25
사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이번에는 “너는 의롭다(옳다).”가 아니라 “내가 죄를 범했다.”라며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을 시인합니다(21절; 24:17). 다윗은 사울에게 창과 물병을 돌려주며 자신이 왕을 죽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다윗은 각 사람에게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 자신의 선한 행동을 기억하시고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사울의 생명을 귀하게 여겼듯 하나님도 자신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 주시길 바랍니다. 사울과 다윗, 나발과 다윗의 관계에서 다윗의 신앙은 더 성숙해 갑니다(24~26장). 그리고 하나님이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갚으심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다윗은 사울에 대한 자신의 선한 행동에 하나님이 어떻게 갚아 주시길 원했나요?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을 믿고 선을 따라야 할 일이 있나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원수를 사랑함으로 그의 연약함까지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함을 허락하소서. 지금 당하는 억울함이 장차 하나님께 받을 축복의 이면임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를 인정함으로 타인의 생명을 중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람 되게 하소서.
묵상 에세이
변화의 시작
기독교가 전하는 대표적인 메시지 중 하나는 “당신은 변할 수 있습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변화된다는 것은, 이성을 관장하는 뇌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캐나다의 유명한 신경외과 의사 와일더 펜필드는 이를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세계 최초로 간질병 환자의 뇌를 수술한 뇌 의학의 대가인데, 오랜 연구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본래 ‘나’라고 하는 것은 뇌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요소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 ‘나’야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결정하고, 생각하는 것을 믿게 하고, 생각하는 것을 창출해 내는 ‘나’가 아닐까?”
인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셔야 변하는 존재입니다. 새사람이 된 후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 영적 안목이 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매달렸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으면서 새로운 세계를 향한 눈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아주 큰 새로운 실재를 깨닫고 “아! 바로 이것이었구나.”라고 고백합니다. 결국 하나님이 새로운 안목을 열어 주셔야 진정으로 변화된 나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나라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삶,곧 세상을 진정으로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영위할 것입니다. 어떻게 얻어낸 인생인데 / 김중기_ 생명의말씀사
한절 묵상
사무엘상 26장 21절 | 참된 회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다윗이 자신을 살려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울은 여전히 다윗을 향한 적대감을 버리지 못합니다. 사울처럼 화려한 언변과 설득력 있는 호소에도 ‘속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말’은 바람에 영향을 받는 돛단배처럼, 감정과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회개하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한 ‘삶의 변화’입니다.
오늘의 명언 영적 가치를 최고로 삼는 인생관에서 거룩한 행동이라는 열매가 맺힌다. - 하워드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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