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결단

2023 주일예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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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26:36–46 (NKSV)
36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근심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38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39 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40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41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42 예수께서 다시 두 번째로 가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는 것이면,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43 예수께서 다시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 졸려서 눈을 뜰 수 없었던 것이다. 44 예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두고 다시 가서, 또 다시 같은 말씀으로 세 번째로 기도하셨다. 45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남은 시간은 자고 쉬어라. 보아라, 때가 이르렀다.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46 일어나서 가자. 보아라,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

기도원에 가는 이유?

여러분은 기도원에 가서 밤새 하나님 앞에 메달려 기도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한국교회의 기도원 운동은 주여 삼창과 통성기도와 더불어 나무 뿌리 뽑는 기도가 유명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간절히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바로 앞에 여러분에게 놓인 중요한 인생의 결정들과 문제들 앞에서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과 경험으로 해결되는 일이라면 간절함은 덜할 것입니다. 성실히 그 일을 해 나가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힘과 능력과 경험으로는 할 수 없는 미래의 진로와 질병의 치유, 가족의 구원, 사명에대한 응답 앞에서 우리는 더욱 간절히 기도할수 밖에 없습니다.
제 인생에 기억나는 두번의 기도원이 있습니다. 한 번은 태백에 있는 예수원이었습니다. 군대를 늦게 간 저는 제대하고 바로 4학년 복학을 해야 하는데, 저에게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습니다. 10월에 제대를 하고는 무작정 태백의 예수원으로 책 몇권들고 기도하러 갔습니다. 예수원은 노동과 침묵의 수도원적 영성으로 기도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간절한 기도는 당시 97년 부흥콘서트 콰이어(뒤에 서있는 청년)를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매주 모여 연습하고 기도하면서 98년 부흥 콘서트까지 놀라운 기도의 현장에 하나님께서 저를 두셨습니다. 이후 하나님앞에서 전임 사역자로 삶을 헌신하였습니다.
그렇게 두번째 기도원은 사역을 안식년 없이 9년정도 하였을 때, 안식년과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서 금식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때가 2007년이었습니다. 그러니 꼭 10년째 되던 해 였습니다. 절실한 기도였습니다. 사역을 계속해야할지, 안식년을 해야할지 결정해야 하기에 기도원에 들어가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몇일 기도하면서 아내와 저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안식년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역이 있다는 것을 믿고 내려왔습니다. 그해 말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어머니를 뇌출혈에서 치유해 주셨고, 서울 화요모임도 강남지역과 강북지역으로 나누어서 진행하는 새로운 사역의 길로 하나님은 저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기도의 언덕, 겟세마네를 향하여.

사랑하는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으로 발을 씻어주시고, 떡과 잔을 나누신 후에 늘 하시던 대로 감람나무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하시던 대로 감람나무산 근처에 겟세마네라는 곳에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22:39 (NKSV)
39 예수께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그를 따라갔다.
겟세마네(=기름틀)는 올리브나무산 즉, 감람산 비탈길에 있는 ‘동산’으로 감람나무(올리브나무)로 둘러싸여 있었고 기름을 짜는 곳이 있던 곳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요18:2 a“2 예수가 그 제자들과 함께 거기서 여러 번 모이셨으므로, 예수를 넘겨줄 유다도 그 곳을 알고 있었다.” 에보면 제자들과 함께 모이시던 곳입니다. 예수님은 늘 하시던 대로, 제자들과도 함께 모여 말씀도 나누고 교제를 나누던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에 있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는 특별하지만 일상적인 기도의 습관, 기도의 루틴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길것을 아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도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예언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 요한복음 18:2 b“2 예수가 그 제자들과 함께 거기서 여러 번 모이셨으므로, 예수를 넘겨줄 유다도 그 곳을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면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장소에 가서 기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장소를 최대한 피하여 숨어서 기도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 한가하게 기도나 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위험에 대비해야할지 대책을 만들어서 실행에 옮겨야 할 때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겟세마네에 제자들과 함께 가셨습니다. 찬송을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갔다고 마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6:30 (NKSV)
30 그들은 찬송을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갔다.

위험과 고난을 결정하는 기도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언약궤와 성배를 찾아 다닙니다. 그 중에 성배를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성배 안에 든 성수를 마시면 영원한 생명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말한 것처럼 정말 그런 물이 있다면 당장 마시고 싶지 않겠습니까?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 잔을 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 거절하고 싶으셨던 잔은 바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잔입니다. 단잔이 아니라 쓴잔입니다. 그 누가 그 쓴잔을 마시고 싶겠습니까?
마태복음 26:37–39 (NKSV)
37 그리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근심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38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39 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예수님은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함께 깨어 있으라 당부하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그들에게 돌을 던지면 닿을만한 거리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하는 심리적인 안정감이 필요하셨습니다. 혼자 기도하기에는 감당하기 힘든 기도였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번이나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이 시간이 자기에서 비껴가게 해달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기도가 너무도 나약하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영웅이라면 이 잔을 내가 감당하겠나이다.라고 기도하였을 텐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땀이 피가 되어 흘러 땅에 떨어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천사가 와서 기도를 도울 정도로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가 끝났을 때 제자들은 너무 슬퍼서 깊은 잠에 들 정도 였습니다.
누가복음 22:43–45 (NKSV)
43 [[그 때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그에게 나타나서, 힘을 북돋우어 드렸다. 44 예수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 45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제자들에게로 와서 보시니, 그들이 슬픔에 지쳐서 잠들어 있었다.
구약에서 잔이라는 표현은 보통 심판과 진노에대한 상징입니다.
시편 75:8 (NKSV)
8 주님은 거품이 이는 잔을 들고 계신다. 잔 가득히 진노의 향료가 섞여 있다. 하나님이 이 잔에서 따라 주시면, 이 땅의 악인은 모두 받아 마시고, 그 찌끼까지도 핥아야 한다.
에스겔 23:33 (NKSV)
33 너는 잔뜩 취하고 근심에 싸일 것이다. 그것은 공포와 멸망의 잔이요, 네 언니 사마리아가 마신 잔이다.
이사야 51:17 (NKSV)
17 깨어라, 깨어라, 일어나거라, 예루살렘아! 너, 주님의 손에서 그 진노의 잔을 받아 마신 예루살렘아! 비틀거리게 하는 잔을, 네가 바닥까지 다 들이마셨다.
예수님이 정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을까?라는 질문을 신앙생활하면서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성자 위격의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 육인이 되신 하나님 인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은 그저 잠간 껍데기를 빌려 온 그러한 모습이 아니라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시어 인간의 희노애락을 그대로 느끼시고 체험하신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는 이제 앞으로 당하실 수난과 고통, 죽음이 얼마나 엄중한 죄에대한 심판이며 죄에대한 하나님의 진노임을 아셨기에 얼굴을 땅에 엎드려 기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의 엄중함은 인간이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구약에서 심판과 저주를 피하는 방법은 바로 제사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예배자가 하나님 앞에 제사할 때 제물을 가져와서
레위기 1:1–9 (NKSV)
1 주님께서 모세를 회막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너희 가운데서 짐승을 잡아서 나 주에게 제물을 바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소나 양을 제물로 바쳐라. 3 바치는 제물이 소를 번제물로 바치는 것이면, 흠 없는 수컷을 골라서 회막 어귀에서 바치되, 나 주가 그것을 기꺼이 받게 하여라. 4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은 번제물의 머리 위에 자기의 손을 얹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을 속죄하는 제물로 받으실 것이다. 5 그런 다음에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은 거기 주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아야 하고,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은 그 피를 받아다가 회막 어귀에 있는 제단 둘레에 그 피를 뿌려야 한다. 6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저며 놓으면, 7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이 제단 위에 불을 피우고, 그 불 위에 장작을 지피고, 8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이, 고기 저민 것과 그 머리와 기름기를 제단에서 불타는 장작 위에 벌여 놓아야 한다. 9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내장과 다리를 물에 씻어 주면, 제사장은 그것을 모두 제단 위에다 놓고 불살라야 한다. 이것이 번제인데, 이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그 향기로 나 주를 기쁘게 하는, 살라 바치는 제사이다.
우리의 죄에대한 값을 치르려면, 이와같이 제물에 우리의 엄중한 심판과 저주를 안수하여 전가하고, 그 제물을 죽이고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저미고, 내장과 다리를 물에 씻어 주면 그것을 제사장이 번제단 위에서 태웁니다. 그러므로, 제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경건하고 거룩한 모습이기 보다는 피비린내나고, 타는 장작냄새가 가득한 의식입니다. 우리가 그 제물과 같이 심판과 진노를 받아야 하지만 그 제물이 대신 받게 되는 속죄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플지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이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이해해 주실까? 고민될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기도는 예수께서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결단과 문제,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슬픔앞에서 떨리는 우리의 그 마음을 예수님은 아십니다. 이해하시고 공감하시고 함께 해 주십니다. 그런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결단

예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뜻대로 이뤄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42 (NKSV)
42 예수께서 다시 두 번째로 가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는 것이면,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예수님은 기도하며, 심판과 진노의 잔을 피하고자 하는 뜻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부딪히는 기도 속에서 고뇌하며 기도하셨습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의 뜻과 소망을 아버지께 관철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간절하기에 예수님처럼 깊은 고통과 슬픔 속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간절한 기도 한 가운데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해 주시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미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이 요3:16-17 “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과같이 예수님은 이땅에 오신 이유가 이 잔을 마시지 않고는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계획이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0:16–17 (NKSV)
16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어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겟세마세동산의 올리브 나무 산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 유다가 배신하여 예수를 팔아넘길 것을 알고도 올라간 그 산, 늘 가던 산이기에 유다가 쉽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그 산에 올라가신 것도 결국 구약의 모든 성경 말씀이 지금 자신 안에서 이뤄지기를 소망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이 겟세마네 기도를 마치신후 잡히실 때 예수님은 그저 담담하게 잡혀 가셨습니다. 자기가 입맞추는 사람이 바로 예수라고, 유다는 예수님께 와서 인사하며 대제사장들과 칼과 몽둥이를 들고와서 잡아가려 합니다. 그러자 지난 주 온몸을 씻겨 달라던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내리쳐저 잘라버립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열두 군단이상의 천사들로 예수님곁에 세울수 있는 권세가 있으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결단 하셨습니다. 기도 후 그 마음을 굳히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 고난 받는 종으로서 예언된 메시야의 부르심을 이루고 말씀을 성취하는 것에 순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55–56 (NKSV)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강도에게 하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서 가르치고 있었건만, 너희는 내게 손을 대지 않았다. 56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이렇게 되게 하신 것은, 예언자들의 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그 때에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예언자의 글, 즉 구약 성경의 메시야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잡히심과 수난을 당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잡히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스가랴 13:7 (NKSV)
7 “칼아, 깨어 일어나서, 내 목자를 쳐라. 나와 사이가 가까운 그 사람을 쳐라. 나 만군의 주가 하는 말이다. 목자를 쳐라. 그러면 양 떼가 흩어질 것이다. 나 또한 그 어린 것들을 칠 것이다.
이 한절의 말씀까지도 예수님은 이루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제 잡히셔야 합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발을 씻기듯이 이제 죄인으로 사람들에게 잡히시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과 함께 댓가지불이 따르는 순종이라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기도가 내 입술에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고통과 고난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우리를 사랑하시어 구원하시려는 열망을 기도하면 할 수록 아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결단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26–28
26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27또 잔을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모두 돌려가며 이 잔을 마셔라.
28이것은 죄를 사하여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예수님을 따라 우리도

히브리서 5:7–10 (NKSV)
7 예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경외심을 보시어서, 그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8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에게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아픔을 이해하시며 공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받은 거절감을 아십니다. 제자에게 배반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 거뜬하고 넉넉하게 할 만하기 때문에 감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어야할 고난과 절망 앞에서 하는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공감하여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진노의 잔 대신에 생명의 잔을 나눠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에 함께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도에 함께 하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에 끝까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 모두 도망갔지만, 예수님은 절대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함께 하여 주실 것입니다. 공감하시기에, 함께하여 주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여 주시기에 함께 하시고, 우리 앞에 닥친 고난을 지난 우리가 받게 될 영광을 아시기에 함께 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쁨과 영광을 누리를 사순절 기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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