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권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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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기도: 301장(지금까지 지내온 것)
**찬송: 301장(지금까지 지내온 것)
**본문: 잠언 1:8-9
잠언 1:8–9 (NKRV)
1: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1:9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본문관찰
**1:8. 너는 들으라(샤마아, 명령형) 너의 아버지의 교훈을. 너는 떠나지 말지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토라(계명, 교훈, 교리)를
>(샤마아, 히) - “들으라” 듣는 단순한 행위 이상을 가리킨다. 이것은 순종할 것을 명령하는 말.
>(무사르, 히) - “가르침” {개역개정, “훈계”}로 번역되었다. 교훈의 말을 순종하지 않을 경우, 징벌을 의미한다.
>(토라, 히) - “교훈” {개역개정, “법”} 성경의 첫 다섯 권 토라. 율법을 구체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닌, 교훈의 일반적 의미로 해석된다. 부모님의 가르침은 십계명일 확률이 높다.
**1:9. 왜냐하면, 네 머리의 은혜의 관이다. 그리고 네 목의 목걸이(보석이 달린)이다.
본문연구
<거시적 관점>
<미시적 관점>

실제로, 교사의 자리에 있는 어머니를 언급하는 것은 고대 지혜 문헌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심지어 잠언에서도 어머니는 가끔씩만 언급되며 대부분 아들에게 말하는 이는 아버지다(6:20과 31:1을 보라).

어쨌든, 아들은 무엇보다 이어지는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권고받는다. 아들은 초반 강화의 명백한 대상이며, 실제적인 독자인 우리도 아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지혜가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들으라”(샤마아[šm‘])라고 요청받는다. 이 히브리어 단어는 듣는 단순한 행위 이상을 가리킨다. 이것은 순종을 암시한다. 아들은 단순히 무감각한 사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가르침에 따라 행동해야만 한다. 금지하는 것이 어머니의 가르침의 언급에 사용됐는데 이도 동일한 것을 암시한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은 그 가르침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모는 아들에게 보상을 암시하는 은유의 형태로 자신들의 가르침에 주목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충고와 보석을 비교한다. 보석은 사람의 미를 증진시키는 것이지만 비싸고 간절한 바람의 대상이다. 이 이미지는 지혜가 나중에 부를 더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하는 이유가 된다.

손양원 부모에게 효도하라 (잠언 6장 20–23절, 23장 22–26절, 1장 8절)

경신숭로敬神崇老(신을 공경하고 노인을 숭배함)1하고, 부모에게 효도해야 할 여섯 가지 까닭이 있습니다.

1. 부모는 나를 낳아 주셨습니다. 내 존재가 어디로 좇아 되었습니까? 하늘에서 떨어졌습니까, 땅에서 올라왔습니까, 나무에서 내놓았습니까?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과 부모로부터 세상에 왔습니다.

2. 나를 성육成育시켜 주신 은혜 생각하니 효도해야 합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효성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대학을 졸업할 때 많은 상급을 받아가지고, 남루한 옷 입고 숨은 어머니 앞에 찾아가서……. 생아자生我者(나를 낳은 이)도 교아자敎我者(나를 가르친 이)도 활아자活我者(나를 살리는 이)도 부모입니다.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십시오.

3. 부모애父母愛의 중심을 생각해 보니 애지중지愛之重之(사랑하고 소중히 여김)입니다. 부모의 마음에는 자식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대학생이 선생의 말을 듣고 하기夏期(여름) 방학에 돌아와서 아버지의 발을 씻기자 아버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그때야 부모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4. 나를 향하여 축복해 주는 심경을 생각하십시오. 자기는 못되어도 자식은 잘되기를 축복합니다. 어머니를 고려장高麗葬 하러 가는 불효자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들어 보십시오.

5. 효자가 복 받고 불효자가 망한 것을 보십시오. 구약 시대에는 불효자는 죽이라 하였습니다. 진眞(진짜) 효자, 가假(가짜) 효자가 있습니다. 부모에게 진심, 정성으로 효성하십시오. 효자는 효자를 낳습니다.

6. 후회 없기 위하여 효도하십시오. 부모가 죽은 후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만약 죽은 부모가 살아온다면 내 어찌할까요? 생시에 효성孝誠하십시오.

부모의 첫 가르침은 금지하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죄인들을 멀리하라는 경고다. 특히 부모는 살인과 강도를 목적으로 아들을 데려가려는 갱단을 상상한다. 갱단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자를 희생시킨다.

부모는 아들이 그들의 구성원에 뽑히는 유혹에 저항하라고 경고한다. 부모는 상상의 시나리오를 말하는 가운데 합류하라고 아들을 설득하는 갱단의 주모자를 인용함으로써 경고한다. 그러나 이 상상의 시나리오가 인정받으려면 당시 사회에서 이것의 실제적인 가능성을 반영해야만 한다. 즉 법을 준수하는 사회의 일원을 희생시키려는 갱단이 있어야 한다.

(1:8) 아들의 지시. 부모의 훈계를 들으라는 부르심은 자녀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도록 요구하는 율법의 당연한 결과입니다(출 20:12). 따라서 일반적으로 아이의 첫 스승이었던 어머니의 지혜는 아버지의 지혜와 동일시된다. 이 말은 또한 "아버지"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아들만을 언급하는 프타-호텝의 가르침과 아히카르의 말에서 유사한 진술과 대조됩니다. "아들"은 또한 이 각각의 경우에 말씀을 받아들이고 항상 혈연 관계를 요구하지는 않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은 스승의 말과 비유를 암기했을 것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배운 것을 적용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호 14:9 참조). 딸의 생략은 왕의 아들은 일반적으로 교육을 받았지만 왕의 딸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은 현실을 반영합니다.
(1:9) 화환과 사슬. 사회의 지혜를 담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은 아들의 머리에 장식적인 화환이 될 수 있고 사무실의 사슬이나 목걸이가 될 수 있습니다. 승려가 승리의 화관으로 장식되고 새로 임명된 관리가 그의 직분의 쇠사슬과 의복을 받는 것처럼 주의 깊은 아들도 번영과 안정된 삶을 보장받습니다(잠 4:1-6 참조). Ptah-Hotep이 말했듯이 "현명한 사람은 스승의 조언을 따르므로 결과적으로 그들의 프로젝트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이집트 문학에서 지혜, 진실, 정의와 관련된 여신 Maat는 신들에게 승리의 화환을 제공하고 다양한 관리들의 목에 사슬처럼 착용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네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말라
1994년 5월 8일
어머니의 날
잠언 1:7–9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요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네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말라 참으로 그것들은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장식품이로다.
잠언서는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위대한 왕이었고 위대한 왕의 아들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모든 영역에서 유명하고 강력하고 최고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면전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그가 말한 대로 했습니다. 그는 엄청난 권위와 명예를 가졌습니다.
위대한 왕도 어머니에게 절해야 한다
그는 이 고귀한 역할을 맡은 어머니를 어떻게 대했습니까? 당신은 그의 어머니가 밧세바였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녀는 매우 추악한 상황, 즉 하나님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는 상황에서 그의 아버지 다윗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어머니였고 이것이 열왕기상 2:19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밧세바는 아도니야를 대신하여 솔로몬 왕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왕이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고 그녀에게 절하고 왕좌에 앉았습니다. 왕의 어머니를 위하여 보좌를 베풀고 왕의 오른쪽에 앉았더라
그런 다음 그들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그녀를 위해 일어났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절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대화를 위해 자신의 옆에 왕좌를 둘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녀는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왕이라도 어머니가 방에 들어오면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솔로몬은 완전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의 저자 중 누구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통찰력을 인도하시고 여기 잠언에서 우리를 위해 참된 통찰력을 보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본문묵상
오늘날 세상이 말하는 지혜자는?
적용 및 서론
아버지, 어머니의 교훈을 깊이 세기자.
현대 사회에서는 가족의 구조가 과거보다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요즘 세대 젊은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자녀와 부모님 사이의 간격이 더 멀어지고, 서로 생활 방식이 다르게 되어 자녀가 부모님을 공경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또한 현대 사회는 인터넷과 스마트 폰 등의 기술 발전으로 인하여, 자녀들이 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더이상 부모님의 의견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면, 자녀들이 부모님의 의견을 수용하기가 더 어려워진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녀들은 어릴 때 부터 학교 외 저녁 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며,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많아 지면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가족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과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자신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여 부모님을 공경하기를 꺼려하게 된 것입니다.
가족간의 소통과 이해를 바탕으로 가족구성원끼리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데, 부모님들이 보수적인 생각과 태도로 자녀들에게 강요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는 옳지 못합니다. 젊은 이들은 자신과 부모님의 가치관이 다르다고하여 부모님의 가르침과 교훈에 거부감을 가지기 보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드리며, 젊은 시대의 가치관 또한 존중해주듯이, 부모님 세대의 가치관 역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는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위해 매우 엄격한 규칙과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규율”과 “규정”을 강조했습니다. 자녀들은 이런 부모님의 권위에 순종하고 그들의 언행과 행동을 따랐습니다.
반면에,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들의 “개인적 선택”과 “자유”에 대해 더 많은 고려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대화하고, 자녀들의 생각과 느낌을 존중하며 자녀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부모들이 자녀의 “개인적인 선택”과 “자유”에 대해서 별로 고려하지 않았지만,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의 “개인적인 발전”과 “삶의 질”을 더 중요시 여기며, 자녀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돕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들이 자녀들이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과도하게 존중하게 되면서, 부모의 권위를 무시한 채, 자녀가 자신의 권리만을 강조하며 부모의 가르침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지혜자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아들을 훈계하는 말로 시작을 합니다.
잠언 1:8 NKRV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우리 나라 {개역개정} 성경을 보면, “내 아들아”라고 시작을 하고,
원어 성경을 보면, “너는 들으라” - (샤마아) 로 시작을 하는데,
“너는 들으라, 내 아버지의 훈계를” 이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들으라”는 단순히 듣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할 것을 명령하는 말입니다.
지혜자는 지금 아들에게 아버지의 지시와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종하라고 명령합니다. 오늘날 지혜자의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도 아들의 위치에서 이 말씀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지혜자는,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말하는데,
아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르침을 동일시 여기며, 두 부모님을 공경하도록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대 문헌에서 교사의 자리에 여성을 언급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교사의 지위에 남성의 가르침과 역할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하지만, 성경 잠언의 지혜자는 교사의 자리에 어머니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 당시 아들에게 말하는 이는 대부분 아버지였다는 사실에서 성경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르침을 동일 선상여길 만큼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쌍을 이루며 함께 등장하는 것은 자식을 권면하고 양육하는 것에서 어느 한쪽이 아닌 두 부모의 공통적인 책임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다만, 잠언 오늘 본문에선 아버지가 직접 자식을 권면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어머니가 자식에게 말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잠언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직접 훈계하는 모습은 보이지만,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두고 많은 성경학자들은 자녀 양육의 책임은 두 부모에게 있으나, 아버지에게 더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아버지가 자녀 훈육에 앞정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열방교회 성도 여러분, 아버지의 훈계와 어머니 법을 떠나지 말라는 이 말씀은 “아버지는 자식들의 훈계자가 되어야 하고, 어머니는 올바른 길로 가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해석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자녀 양육은 양 부모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다음 세대를 위하여, 우리 자녀들의 신앙도 영적으로 양육을 잘 해야 할 것입니다.
가끔 교회 사역을 하다보면, 이 부분을 놓치는 부모님들께서 상당히 많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녀들의 공부, 학업은 너무 중요하고, 많은 학원에 보낼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이 교회에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또 주일 예배시간이 아닌 한 주간의 삶에서 어떻게 신앙을 지키며 생활하고 있는 지는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주일 예배 한 번으로 자녀에 대한 모든 신앙생활의 양육을 마치 다 몰아놓고 교회가 모든 것을 책임지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교회가 좀 해달라”고, “교회가 하면 될 것이라”고, 저는 부모님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주일 날 한번으로 자녀 신앙생활 다 바로 잡힌다면, 대한민국에 청소년 신앙은 지금쯤 전 세계 부흥을 맞이하였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녀들의 신앙교육은 교회에서 담당하고 책임을 져야 하지요. 맞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에게 더 먼저 책임이 있다는 것 아셔야 합니다. 그렇게 부모와 교회가 같이 우리 자녀들의 신앙생활을 함께 책임지는 것이 저는 옳다고 봅니다.
또 오늘 말씀을 잘 보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 제 5계명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께선 제 5계명을 통하여 ‘부모를 공경하면 장수하는 축복’을 약속해주셨는데, 오늘 지혜자의 말도 보면, 부모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큰 복을 누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함께 본문 9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잠언 1:9 NKRV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지혜자는 말하길, “아버지의 훈계와 어머니의 법은 자식의 아름다운 관이 되고, 금 사슬이 된다”고 말합니다.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아들에게는 보상을 암시하는 형태로 지혜자의 가르침에 더욱 주목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자의 말처럼 <부모님의 충고와 가르침>은 마치 보석과도 같은 것입니다. 보석은 사람의 미를 증진시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비싸고 간절한 바램을 뜻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머리에 쓰는 관은 ‘승리의 상징’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양육을 잘 받은 자식들은 성공적인 삶을 살아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을 살 것입니다. 부모의 지혜와 슬기로움이 곧 자식의 재능이 되어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반절에 등장하는 ‘금사슬’은 우리나라 {개역개정} 성경에서의 표현이고, 원어 성경을 보면 ‘보석이 달린 목걸이'로 해석됩니다.
옛부터 목걸이는 인도와 보호의 상징이었습니다. 부모님의 가르침을 귀담아 들은 자식들은 부모의 지혜와 슬기로움이 그들을 보호하고 갈 길을 인도해 줄 것입니다. 지혜는 그렇게 부모의 세대에서 자녀의 세대로 전수될 때 가장 아름답고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려서부터 부모의 훈계와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면, 훗날 성인이 되어서 대인 관계를 해치고, 그의 삶에 해가 될 만한 습관들과 버릇들을 미리 교정할 수가 있는 큰 유익이 있습니다.
오늘 지혜자는 부모가 자식에게 훈계와 법에 귀를 기울일 것을 간절히 권면합니다. 아니 강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자의 이같은 권면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은 부모도 어쩔 수 없는 ‘자녀의 몫'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녀들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대로 자식들이 커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옛 속담에서도 “자식을 이기는 부모가 없다.”라고 할 정도로 자녀 양육은 부모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르침을 자녀들이 잘 받아들이고, 훈계를 좋아하며, 재물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버리지 않도록 날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녀들을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 어머니의 교훈을 마음 속 깊이 세겨야 할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녀들은 더욱더 부모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은 부모님의 말씀이 마치 하나님의 말씀처럼 여기며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 교훈을 깊이 세겨야 할 것입니다.
TV나 인터넷에서 보면,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에 있어서 “절대 감정적으로 화내지 말라",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훈육보다 아이의 입장을 존중해주고 소통으로 해결하라.”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인본주의적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가르침입니다.
물론, 인본주의적 양육방식에는 <자녀의 자존감도 강화>되고, <자녀의 사회성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오늘 지혜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 아들아, 너는 들으라! 네 아비의 훈계를!”
“내 아들아, 너는 떠나지 말라! 네 어미의 교훈을!”
“왜냐하면 그것은 네 머리의 아름다운 면류관이요, 네 목의 목걸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자식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교훈에 듣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그 가르침을 마음 속 평생에 깊이 세겨야 할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훈계하고, 규율과 규정을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로서 그 권위에 복종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지혜자의 권고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자녀들이 부모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이고, 그렇게 성장할 수를 있길,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에서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으로 이어져 평생동안을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성장할 수를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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