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D_0331_창세기12.10-20_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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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10–20 (NKRV)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있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의 여행을 떠난 아브라함이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였던 애굽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땅을 줄테니까 그 땅으로 먼저 이사를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답게 그 말씀만 믿고 멋지게 출발했습니다.
그냥 지낼 때는 그런 일이 별로 없는데, 이제 하나님 제대로 믿어보고, 말씀대로 살아보고자, 다짐을 하고 결심을 하면 그것을 방해하는 어려운 일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딱 아브라함이 그렇습니다. 75세 할아버지가 다 되어서, 살림살이 다 정리하고 집팔고, 땅팔아서 식구들 다데리고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이사가는 것은 굉장한 믿음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입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식구들이 다합하면 수백명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창세기 14:14 (NKRV)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아브라함 식솔 중에 전투에 참여할 만한 훈련된 남자만 318명이라는 것을 볼 때, 최소 식솔들이 천명정도는 되지 않았었나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조카 롯의 식구들도 함께 데려갔기 때문에, 아브라함 단체가 소규모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집단이 한 번 움직이면 온 동네가 떠들석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사가나보다? 하는 것이지요.
세, 네 식구 살림살이 정리해서 이사가는 것도 살림살이가 보통일 아닙니다. 아니 혼자서 거처를 옮겨 가는 것도 신경써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이런 규모로 옮겨다니는 것은 거의 사생결단 수준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정말 거침없는 믿음이지요. 이 세상의 여건이나 자기생활의 조건들을 넘어서는 굉장한 믿음의 진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거침없는 믿음의 길에도 때로는 만만하지 않은 현실이 기다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을 가보니까 막상 천명이상 되는 식솔들이 자리펴고 앉을 땅이 없는 것입니다. 워낙 식솔들이 많다 보니까 아무 곳이나 자리를 펼 수가 없습니다.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마땅한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계속 옮겨 다닙니다. 벧엘로도 가고, 남쪽 헤브론까지 계속 내려갑니다. 가다가다 이제 좀 괜찮은 곳이 있다 싶어서 자리 잡을까했더니 그 시기에 그 지방에 큰 기근이 들었습니다.
창세기 12:10 (NKRV)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기근이 심하게 들어서 돈이 있어도 먹을 것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백명의 식솔들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밥먹고 치우고 하는게 가장 큰 일이고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은 대표니까 결정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내 자손에게 주신다고 하셨으니까, 어떻게든 여기서 죽이되든 밥이되든 버텨보든가. 아니면 우선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무슨 방법이 있나 찾아봐야 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상황을 보면서 우선 먹고 살 길을 찾자고 결정하고 약속의 땅을 벗어나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오늘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창세기 12:11–13 (NKRV)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사래가 너무 아름다우니까 애굽왕이 아브라함 자기를 죽이고 사래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래 나이가 65세입니다. 할머니이시거든요. 굉장히 예쁜 할머니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80대 권사님이 그렇셨습니다. 65세면 정말 팽팽하고 예쁠 때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는 머리스타일도 지금처럼 이렇지 않고 아주 예뻤다고. 옷도 지금처럼 이렇지 않고 아주 예뻤다고 그 권사님께서 말씀 하셨는데, 저는 아직 40대라 무슨 뜻인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의 사래의 아름다움은 지금 현대적인 여성의 외모적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래는 천명이상되는 어떤 집단 족장의 아내입니다. 이 고대시대에 이 정도 규모면 하나의 나라입니다. 사래는 그 나라의 왕비입니다. 사래라는 이름의 뜻도 왕비라는 뜻입니다.
사래의 아름다움은 그 기품과 품격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 나라의 왕비로서 갖는 품위가 돋보였다는 것이죠. 이 당시 애굽왕 바로는 세계사에서 보면 멘투호텝이라는 왕으로 보이는데, 이 왕조는 그 시대에 애굽의 세력확장을 위해서 주위에 강력한 세력들과 정략결혼하는 것을 외교전략으로 채택했었습니다.
힘 좀 있는 나라들의 공주와 결혼해서 사둔만들어서 동맹을 맺는 것이죠. 사래가 아브라함의 여동생이라고 하니까 얼른 정략결혼을 해서 아브라함이라는 광야의 세력과 동맹을 맺으려 한 것입니다. 만약 아내라고 하면 남편 아브라함을 죽이고 사래를 후궁으로 들여 그 식솔들을 다 빼앗으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사래를 여동생이라고 속이고 바로에게 정략결혼을 시키려고 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 후손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피붙인 조카 롯이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롯이 살아있어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기고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 롯을 애지중지 보호하면서 아내를 어쩔수없이 정략결혼으로 희생시키고, 애굽에 머물면서 기근도 피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강한 자 바로와 동맹을 맺으면 앞으로 나쁠 것이 없다고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적극 개입하셔서 강력하게 가로 막으십니다.
창세기 12:17 (NKRV)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아브라함은 한 방에 애굽에서 그냥 쫓겨납니다. 어리둥절합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착착 잘 되는가 싶었는데, 결혼 첫 날밤에 이런 초자연적인 사단이 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참 모든 사람이 난감해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애굽에서까지 쫓겨났으니 어디로 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습니다.
사래는 사래대로 현실 문제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새남편 들일뻔했다가 이 무슨 일인지 혼비백산하여 뛰쳐나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브라함을 전남편이라고 해야 하나, 오빠라고 해야하나, 대표님이라고 해야하나, 그냥 아무일이 없었던 걸로 해야하나 난감합니다.
그 많은 식솔들은 식솔들대로 이제 좀 애굽에서 쉬면서 먹을 것 좀 먹나 했는데, 또 짐싸서 어딘지 모를 고단한 여행길을 떠나야하니 이것도 난감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땅 상속자가 롯인 줄 알고, 그렇게 롯을 지키려고 하고, 울면서 믿음으로 사래를 희생시키는 결정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르게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래를 지키시고, 롯을 아브라함에게서 떠나 보내셨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 인생의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후손이 롯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이 당시 아브라함은 그 사실을 모릅니다. 롯이 아니고, 이삭이라는 아들이 생긴다는 것을 모릅니다. 더 나아가 더 큰 그림으로는 그 후손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은 전혀 모릅니다. 그저 아브라함은 본인 현실에 전전긍긍하며 매여있지만, 아브라함의 인생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담겨지는 굉장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point
point
성도의 인생은 현실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 내 현실 속에 무엇이 담겨지고 있는지를 본인이 다 알 수가 없습니다. 현실은 걸어가야 하는 현실입니다. 성도는 각자의 현실에 매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현실 위에 하나님의 위대함을 써내려 가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5:8–13 (NKRV)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당장 아브라함 눈 앞에는 먹이고 입혀야 하는 수백명의 식솔들이 아브라함의 현실입니다. 보호하고 지켜야 하는 아내와 조카가 있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감당해내야 하는 기근이 있고, 어떻게든 거짓말을 해서라도 피해가야하는 나보다 강한 자 바로가 코 앞에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입니다. 이 모든 생생한 현실이 하나님의 강한 말씀에 붙들려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의 인생은 이게 다가 아닙니다.
reason
reason
왜냐하면, 성도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부르신이상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4:21 (NKRV)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example
example
아브라함은 그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인생을 들어서 하늘의 별처럼 많은 믿음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보이는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시간 속에 계시고, 시간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우리의 현실을 유익하게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잘 되는 것도 아름다게 쓰시고, 아프고 괴로운 시간들마저도 하나님의 은혜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다 알고 이해해서 가는 것 아닙니다. 몰랐습니다. 100세나 되어서 애를 낳을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토록 어렵게 나은 외동아들을 다시 하나님의 재단에 받쳐야 하는지.
만약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계획들을 한 번에 다 알려주셨다면 아브라함은 단 한 가지도 감당못하겠으니 그냥 이 자리에서 죽여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루에 한 걸음만 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한 걸음을 가는 것입니다. 확실하지 않은 시간을 또 하루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때쯤 한 꺼번에 돌아보면, 나 혼자 아등바등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point
point
나의 인생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그 이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위로를 받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도전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우리를 보고 시험을 받고, 어떤 사람들을 우리를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어차피 오늘 내일, 오늘 내일 하다가 그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부서져가는 인생, 무슨 의미가 있나, 오늘 죽나, 내일 죽나 어차피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런 시간들에 무슨 좋은 날이 있겠나. 생각되는 날들이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좋은 날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인생은 모든 사람이 다 잊었다할지라도 하나님께 잊혀지지 않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큰 그림 속에 작은 한 부분을 그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 인생의 그림만 봐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그림인지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와 여러분의 삶은 이 세상에 정말 필요한 인생입니다. 어느 한 부분을 오늘처럼 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그림이 완성이 됩니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멋있게 서 있으십시오. 비가오면 비를 맞고 서 있으십시오. 괄시를 하면 괄시를 받고 서 있으십시오. 자존심때문에 못견디겠으면 소리를 지르면서라도 서 있으십시오.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요 뒤에 영광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아무도 가지 않는 그 길을 가시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한 번 하시면 끝내 그렇게 하시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으십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부족함이나, 실수, 무지함, 그보다 더 큰 죄가 있다할지라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너를 복이 되게하겠다는 하나님을 아브라함은 막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끝내 복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습니다.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하는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무슨 소리냐 너에게는 내가 있지 않으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해서 오늘도 한 걸음 가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생각하시면서, 사순절의 한 자락을 감사와 은혜 속에서 지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세상 보다 크시고, 우리의 기대보다 크시고, 우리의 현실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낙담과 불확실함뿐이지만 그 위에서 큰 그림을 그리시고, 약속을 이루어내시고, 그 시간들이 복이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더이상 견디기 힘들 때 위로를 주시고, 더이상 아무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열어 주셔서 우리에게 쉴틈을 주시고 남겨진 시간을 충성과 기쁨으로 채워갈 수 있도록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