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려는 자와 죽음을 준비하는 자

마태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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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옮겨가는 중심 2.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 3. 가룟 유다 4. 적용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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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가는 중심

오늘 본문을 기점으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던 계획이 빠르게 진행이 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지금 로마의 지배를 받는 이 상황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강력한 리더십이 있는 새로운 왕이 되어주기를 바랬습니다. 왕관을 쓰고 앞장 서주기를 바랬지만, 그들의 기대와 다르게 이제부터 예수님은 왕관이 아닌 십자가 죽음에 굉장히 가깝게 다가서게 됩니다.
이제 예수님은 배신 당하고, 체포 될 것입니다. 재판을 받고 결국엔 십자가 처형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미래에 받게 될 영광이 아닌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다가온 고난을 기꺼이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월절이 이틀 밖에 남지 않았다. 유월절이 되면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팔리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팔린다라는 말을 예수님은 여러번 해오셨는데, 그 말씀을 하신 이유는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의 공격과 목적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진행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 속에 모든 것들이 진행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같은 시간 때다른 장소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대제사장의 집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몇몇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합니다.
그 중 대제사장 가야바는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통치자였습니다.
로마의 속국이 되어 통치를 받고는 있었지만 그는 로마 총독 바로 아래 위치에서 힘을 쓰던 사람입니다.
그는 타고난 정치꾼으로, 어떻게 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그리고 부를 가질 수 있는지 잘 알던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의 총독들은 임기가 끝나면 다른 곳으로 가기 때문에 교체 주기가 빠릅니다. 이 속에서 대제사장 가야바는 28년을 버텼습니다. 부정한 거래에 능한 정치자였기 때문에 , 총독 바로 아래 자리에서 28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죠.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적대하는 모든 엘리트 세력들의 대표였습니다.
그와 사람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방해했고 곤경에 빠뜨리려고 함정을 팠고,
그 분의 진실성에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해 왔습니다.
하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4절. “예수를 잡아 죽이자.”
예수를 잡아 죽이기로 모두가 동의했지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월절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나와 각지에 퍼져 살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시기가 유월절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오는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 모두가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예수님이었습니다.
심지어 며칠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들어오실 때 사람들은 그 분의 길 앞에 옷을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라고 외쳤습니다.
그 분의 가르침을 받아드린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예루살렘 입성을 적극적으로 반겼던 것이죠.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목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공격을 시도할 수 없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부당하게 예수를 탄압한다는 생각을 줄 수 있었기에, 그들은 굉장히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일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나 많았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축제 후 사람들이 돌아가기를 기다리기로 합니다.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

6-13절을 보면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개합니다. 얼핏보면 유월절 중에 일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유월절을 엿새 앞둔 토요일에 이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이틀 뒤면 유월절인데, 왜 마태는 4일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을 갑자기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요? 왜 회상장면을 넣었을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동기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한 여인이 아주 값진 향유병을 갖고 옵니다. 요한복음은 그 여인을 마리아라고 소개합니다.
향유병을 들고 나올 때 예수님과 제자들은 관습대로 식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앉아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여인이 들고 온 향유병을 깨트려서 에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갑분싸.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을 것입니다.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죠.
향유를 요한과 마가는 순수한 나드라고 표현을 합니다.
나드의 원산지는 인도입니다. 히말라야 지역에서 수입해와야 합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이 순수한 나드가 멀리 떨어진 이스라엘까지 전달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그만큼 가격도 높았을 것입니다.
이것을 알았던 사람들은 이 상황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어떤 반응도 보일 수 없었습니다. 그저 그 여인이 하는 행동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이 여인은 흘러내리는 향유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대고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순전한 나드. 향유가 흘러내렸다는 것은 이분이 정말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그리스도가 맞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고 놀라고 경악할 뿐이었습니다.
모두가 당황하고 놀라고 있을 그 때 한 사람이 바로 반응하여 소리를 지르며 여인을 질책합니다!
“이 향유를 아깝게 왜 붓는 것이냐! 지나친 낭비 아닌가!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어야 한다!”
이렇게 질책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왜 소리를 쳤을까요?

가룟 유다

그가 회계를 맡은 자였기에 또 정말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이런 질책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불만과 불평 그리고 탐욕이 점점 더 커져갔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던 이유이스라엘을 로마의 속국에서 해방시켜줄, 이스라엘의 적들과 싸워 이기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전혀 이스라엘의 적들을 굴복시킬 것 같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자주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불평과 불만이 커져갔습니다.
인기가 높아지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해방 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수님께서 거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십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의 마음에 점점 “나사렛 출신 목수의 아들은 메시야가 아니다.”라는 마음이 자리 잡은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분을 위해 비싼 향유를 쏟아 붓는 ‘“마리아의 어리석은 행동도 마음에 들지 않은데,” “그 것을 칭찬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반감. 불만이 더 커지게 된 것이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머리를 싸매며 어떻게 예수를 죽일 수 있을까에 긴 논의를 했지만, 방법이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은밀하게 접근하여 그를 사로 잡아 재판에 세울 수 있을까? 하던 그들에게 갑작스러운 해결책이 생겨버렸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불평을 갖고 있던 가룟 유다가 그들의 해결책이 되었습니다.
구세주를 사치스럽게 숭배하는 것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유다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살의를 품은 집단에 가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습니다.
15절.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면 얼마를 줄 것인가?”
제가 들었던 말들 중 가장 충격적이고 최악인 질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예수님을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이 묻는 것 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따랐던 제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수많은 기적을 보았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그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 것이죠.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끝까지 붙들고 살아왔던 것이죠.

적용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메시아를 잡아 죽이려는 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에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자리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항상 예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늘 외부인이었고, 비평가였고 적이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께서 전하는 말씀을 들었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 분을 끌어내리려는 마음만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들과 다르게 예수님과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누렸습니다.
측근만 들을 수 있는 여러 이야기들도 듣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을지 모르지만, 영적으로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리 말씀을 잘 알아도, 그 분의 백성과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영적인 소경이 되어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아무리 그가 좋은 말과 신앙적인 행동을 한다 해도,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떤 것도 변화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저는 우리 모두가 대제사장과 가룟 유다와 다른 삶을 살아내는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몸만 교회에 와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부분들이 다 하나님과 가깝기를 바랍니다.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나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내가 계속해서 누리기 위해 생각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의 것을 기꺼이 내려놓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나의 삶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다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예수님과 가까웠으면 좋겠습니다.
은혜를 은혜답게 여기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분과 가깝게 지냄을 통해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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