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6 주일 1부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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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신앙, 건강한 인생의 토대(4)
건강한 신앙, 건강한 인생의 토대(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가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질 때 우리는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성경적인 자아상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러한 것들이 아니다.
우리의 자존감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달라지는 것이 있다. 지난 주에 그것을 배웠다.
1). 새로운 혈통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게 되었다.
2). 하늘 나라의 상속권을 얻게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이기 때문에 자녀가 된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유산을 완전히 상속 받게 되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엄청난 것들을 상속받게 될 공동상속자이다.
3). 온전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자녀를 울보듯이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돌보시고 도우신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물론 아버지 중에 폭군도 있고, 자녀와의 관계가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아버지를 둔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이 그리 좋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보다 완벽하시고, 그들의 모델이 되시는 완벽한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이 선포될 때 자주 어머니의 사랑에 비유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의 사랑을 어머니에 비유한다.
우리 자아상과 자존감혀형성의 4가지 원천들에중에서 아주 중요한 것은 부모, 배우자, 가족들, 선생님, 영적 선생님, 친구들로부터 받는 사랑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임을 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지는 무엇에는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엄청난 대가를 치르시고 우리 죄를 해결하셨다.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받았고,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되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셨다.
왜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이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나? 그것은 우리 죄로 인한 저주와 고통을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겪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고통에 함께 동참하시고, 죄 때문에 분리된 것을 정말 슬퍼하신다. 그렇기에 가장 아꼈던 아들을 보내셨고 고통받게 하셨다.
사랑의 표현에 요구되는 대가가 크면 클수록 사랑을 표현받는 대상이 그 사랑의 크기를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목숨을 주는 것은 사랑의 최고 행위이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이 땅에서 가장 큰 사랑은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 주는 사랑이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표현하신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히 아끼시기 때문에 당신의 가장 소중한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러셨다면 우리에게 그 모든 것을 더하지 않겠느냐?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고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당당하고 담대하게 살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존재 깊은 곳까지 꿰뚫어보신다.
우리의 사랑을 보이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고 지켜보시는 자들이다.
4). 천국을 영원한 본향으로 소유하게 된다.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그네가 영원한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일종의 관문.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자존감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 목숨이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목숨이다.
그런데 이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영원한 생명, 영생이다.
영생은 그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진주 비유로 영생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보여주셨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서 영생을 소유한 것이다.
(천국=영생, 바꿔도 무방하다.)
영생이 얼마나 값지면 자신의 소유 모두를 팔아서 구한다고 한다.
영생이 없으면 다른 것이 얼마나 많은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우리가 영생을 얻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가 인생의 의미, 인생의 진정한 성공과 실패를 분간할 수 있다.
이 땅에서 얼마나 오래, 길게, 건강하게, 누리면서 살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죽음 이후에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는가 없는가에서 우리 인생의 진정한 성공과 실패가 결정된다.
예수 믿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주님이 다시 오심, 재림하심으로 완성될 하난미 나라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광스러운 상급을 받을 놀라운 기회를 갖고 있다.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천국으로 간다. 이것이 바로 ‘사후 천국’이다.
성경에는 이러한 사후 천국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강도에게 말씀하신 낙원 등이 바로 그러한 사후 천국이다.
이러한 사후 천국은 ‘중간기적 천국’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완성된 천국이 아니다.
완성된 천국은 무엇인가? 그것은 ‘종말론적 천국’이라 부른다.
계시록에 나오는 천국은 중간기적 천국이 아니라 완성된 천국, 종말론적 천국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종말론적 천국이 임할 때 우리 몸은 부활하게 된다. 이 몸은 다른 사람의 몸이 아니라 우리의 몸, 본래 우리의 몸이다.
이 때 우리가 살게되는 땅은 새 땅, 완전히 새롭게 갱신된 땅이고, 하늘도 우리가 살던 하늘이지만 완전한 새 하늘, 갱신된 하늘이다.
그 때에 우리가 살면서 보던 것이 전부 있지만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완전히 갱신된 것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지만 질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되어 지금의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 믿고 영생을 얻게 된 우리는 지옥 심판을 받지 않고, 우리가 행한 대로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상급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행한 대로 상급의 심판이 임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실 일들을 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우리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과 함께 왕 노릇 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다스린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로마의 통치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로마가 팔레스타인을 정복해서 본래 통치권은 로마에 있지만 그것을 자신들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대리 통치자인 분봉왕을 세워 다스리게 했다. Ex). 헤롯 하켈라오, 헤롯 안티파스 등등
이 개념을 잘 이해하면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왕노릇 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작은 왕, 분봉왕이 되어서 하나님이 새롭게 완성하실 땅에서 대리 통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통치할 수 있도록 능력과 권세 또한 함께 주실 것이다.
우리에게 그러한 것이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면류관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여기서 면류관이 상징하는 것은 통치의 권리를 나타낸다.
마지막 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상급으로 면류관에 대한 성경의 모든 언급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작은 왕으로 통치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짐승들과 모든 선한 천사들과 만물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우리가 행한 대로 결정될 것이다.
각 분봉왕들도 통치의 범위가 달랐다. 그런 것 처럼 우리 또한 다를 것이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대로’ 결정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잘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가 잘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예수 십자가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신분의 변화가 생겼다.
우리의 신분에 변화가 생겼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 상속자가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지금도 받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받을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여 어떤 상황이든, 어떤 순간에 처하든 담대하고 힘있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