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01 양청] 소요리문답2-3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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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문. 하나님은 우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도록 지도하시기 위하여 어떤 규칙을 주셨습니까?
답. 구약과 신약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하도록 지도하시기 위한 유일한 규칙입니다.
구약과 신약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하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유일한 규칙이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이 이끄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3문. 성경이 주로 가르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성경이 주로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을 믿어야만 하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가 무엇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이 뭘가르치는가? 이것보다 좋은 대답이 없다.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시는가. 이 두 가지이다. 이 유일한 규칙은 성경이다. 오늘 전체적인 내용이 이런 내용이다.
유일한 규칙이라는 것만으로도 좀 부족해서, 절대 유일한 규칙이라고 표현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그분을 알아야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데 어떻게 그분을 알 수 있나? 3번에 보면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는데, 계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모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서 보여주시는 것을 말한다. 여러분이 예를 들어 연극이나 음악회를 보러 갔을 때 막이 내려져 있다. 막이 올라가지 않으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시간이 딱 되면 막을 올린다. 막이 올려질 때 올려지는 만큼만 보게 되어 있다.
계시라는 것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시는 딱 그만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안열어주시면 제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이 열어주신다. 이것이 계시이다. 내가 똑똑해서 하나님을 좀 알아보려 한다. 천만의 말씀. 여기에는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가 있다.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여기에는 제일 먼저 ‘이성’이있다. 생각을 한다. 분명 이 일들에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원인들을 거슬러 올라가며 찾아보다보니 결국에는 이 모든 일들의 원인이 하나님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다른 것으로는 ‘감성’으로, 또 다른 것으로는 ‘느낌' 과 같은 것들도 있겠다. 또한 ‘경험'이라는 것도 있다.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데, 머리가 쭈볏 서면서 하나님이 계신 것 같더라고… 우리가 이런 것들을 사용하면서 자연을 본다. 동물의 왕국이나 BBC에서 찍은 다큐들을 보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자연이 무엇이냐? 일반 계시이다. 일반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일반이라는 것이다. 예수 믿는 자나 불신자나 자연을 바라보면서 창조주, 초월자, 신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계시는 희미하다. 이분이 하나님이신지, 이분이 부처인지, 이분이 알라인지 희미하다. 따라서 이 희미한 일반계시를 가지고도 전도는 할 수 있다? 없다? 있다. 이야기가 통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그러나 이 지식은 희미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지식은 아니다. 반면 특별계시는 우리는 성경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아브라함에게 특별계시는 어떻게 임하였는가? 아브라함이 창 12 장을 보고 하나님을 알았을까? 그때는 성경이 없었으니까. 따라서 하나님은 환상이나 꿈을 통해 말씀하셨을 것이다. 구약시대 때 제사장들의 가슴에는 우림과 둠밈이라는 것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들은 돌인데, 이 돌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가려야 할 때에 그 돌로 분별을 했다. 이런 것들이 특별계시이다. 또 하나님께서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에게 나타나셨다. 이런 것들 특별계시이다. 이런 특별계시들이 구약시대에 많았다. 선지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선명했다. 이 모든 특별계시들이 기록된 것이 성경이다. 이것은 사람이 기록하려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모세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께서 기록하게 하신 것이고 성령께서 영감을 주셔서 이 특별계시가 정경으로서 완성이 된 것이 성경이다. 사람들은 이성과 감성과 경험으로, 자연과 역사와 양심을 통해 하나님을 추측하나, 신자는 믿음을 통해서 성경을 봄으로써,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구원자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정확하게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이다. 일반계시로 알게 되는 하나님은 희미하다. 나는 하나님을 믿어. 이런 사람들 많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경우가 많다. 희미하게 아는 것이다. 반면 성경의 하나님은 명확하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데에는 말과 글이라는 정확한 수단을 사용하셨다.
벧후1:20-21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성령의 영감이 있었다. 성령의 영감으로 된 성경이기에 성경은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성령의 영감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렇게 받아적어라. 빌립보서 쓴다. 주 안에 있는 형제들에게… 받아쓰기 해라. 이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베드로와 마가와 누가와 마태와 바울과… 저자들의 학문적 배경과 개성이 다 다르다. 인간적으로 보면 인간이 쓴 편지라고 볼 수 있다. 성경을 쓴 기자들은 문체와 배경에는 차이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배경들을 무시하고 성경을 쓰게 하지 않고 그것들을 다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셨으니 이를 유기적 영감이라고 한다. 유기적 영감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바울 서신을 쓰는 바울 사이에 하나님께서 바울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기록하게 하셨는데, 바울이 가진 지식적 배경, 문학적 배경등 모든 것들을 가진 채로 기록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록하게 하실 때 성령께서는 오류가 없도록, 그의 사상 뿐만 아니라 문장과 언어와 문체와 단어 하나하나까지도 영향을 주셨다는 것이다. 이를 축자영감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성경은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이 1,900여년동안 일관되게 가지고 있던 생각이다. 그런데 19세기 말, 소위 인간의 학문의 영역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계몽주의라고 하는, 인간의 이성이 극도로 발달을 하면서 성경에 대해 다시 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성경이 인간의 책일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믿음과 신앙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로 성경에 접근하기 시작하고, 19세기말부터 20세기 성경을 둘러싼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지금 우리도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유튜브도 참 조심해야 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내용을 목사가 설교한다. “여러분, 이것은 실제 사건이 아니라 1세기 신자들이 이런 신앙을 고백한 것이다.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목사들이 되게 많다. 이런 시대에 이런 웨민 교리를 배우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이번에는 웨민 소요리문답을 통해 이런 주제들을 아주 짧고 간결하게 다루고 넘어가지만, 추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나, 웨민 대요리문답들을 통해 더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다면 더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겠지만, 지금은 이정도로만 지나가려 한다.
그렇다면 유일한 규칙으로서 성경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4가지 일을 한다. 여기서 일부의 성경이 아니라 모든 성경이다. 성경 전체이다. 성경 처음부터 마지막 전체는 총 네가지 일을 한다. 교훈, 책망, 바르게함, 의로 교육함이다. 이 네가지가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하여 교훈, 이 교훈을 따라서 우리는 인생의 길을 걸어간다. 이 교훈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말씀한다.
그런데 늘 우리가 교훈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때론 곁길로 샐 때가 있다. 그럴 때 성경은 우리를 책망한다. 돌이키게 한다. 그런데 책망만 하고 끝나는게 아니다. 우리를 바르게 한다. 교정한다. 우리를 계속해서 거룩한 자리로 바르게 인도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의로 교육한다. 이것이 성경의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믿음은 외적 증거나 논리적 증거에 의존하지 않고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통찰력에 의존하는 실증적 지식이다.” 말이 좀 어렵다. 이것은 루이스 벌코프의 믿음의 정의이다. 믿음이 무엇인지 증거를 대봐! 증거를 댈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나에게 비춰주셔서 내 안에 그 지식이 들어온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그 지식이 내 안에 들어온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내적 사역으로서 성령의 조명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은 어떤 역할을 하시는가? 요16:12-15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를 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령은 무슨 역할을 하시는가? 주님은 성령을 진리와 관련이 있는 분이라고 말한다. 성령이 오시면 금이빨이 된다, 성령이 오시면 무아지경에 빠진다 하지 않는다. 뚜렷하게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한다. 주님이 하신 모든 말씀, 주님에 대한 모든 것, 성령님은 어떤 역할을 하시느냐, 빌딩들을 보면 밑에 조명을 설치하면서 건물을 비추게 하는 조명들이 있다. 밤에 보면 건물이 드러난다. 성령님의 역할이 바로 이것이다. 성령님은 건물을 비추신다. 이 건물이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를 드러나게 하시는 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할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은혜베푸실 때 우리는 성령님께 집중하게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성령님께 집중하게 되는게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가 내 안에 있게 되면 내가 그리스도를 밝히 보게 된다. 그분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을 확신하게 된다. 성령 성령 하는 사람들은 실제 성령의 역할을 오해하고 있고 모르는 것과 같다. 아까는 제가 영감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성경을 기록한 자들에게만 일어났던 특별한 은혜였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의 조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비록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류가 없고 온전한 책이라도 우리 마음이 영적 일에 냉담할 때 성경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음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와 조명을 받을 때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안에 역사한다.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의 도우심이 은혜를 구해야 한다. 때때로 어떤 성경말씀을 읽을 때 성경을 수십년 읽어왔지만 어떤 때 이 말씀을 읽을 때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 영혼 깊이 찾아오시고 은혜베푸시는 체험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것이 매일매일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우리는 그런 은혜를 사모함으로 그분의 말씀 앞에 가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부탁드리는 것은 최소 3년동안 힘을 다해 성경을 읽는 일을 꾸준히 하라. 새벽설교 본문도 여러분이 깊이 묵상하라. 그러면서 여러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분들 안의 믿음이 견고해진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는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믿음은 존재할 수도 성립할 수도 없다. 이를 여러분들이